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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심각한 갈등은 이제 모두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성큼 다가왔다.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대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면서 강도와 수준이 단기간 내 급격히 높아졌다. 강대국, 특히 미·중의 이해가 부딪치는 최전선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필 때 정부 차원에서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미·중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고 전개 방향을 예상하면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 본격화
트럼프, 동맹국 집결 요구
일방적 승리 어려운 구도
한국, 누구편에 서야하나

미·중 갈등은 본질적으로 경제·군사·제도 등을 망라한 패권경쟁이다. 중국이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경우 2030년 미국을 넘어서 명목 GDP에서도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국이 올해 국방예산을 6.6% 증액하기로 한 것은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빠르게 줄이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의 ‘인류운명공동체 실현’과 결합하여 거대 전략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규정한 수정주의 위협 세력이 아닌 세계의 번영을 위한 핵심 동력이라는 정체성을 선전한다.

부상하는 중국을 그대로 두면 미국 패권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미국 내에서 본격화된 것은 오바마 행정부 때이다. 이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었고, 급기야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대침체가 오면서 중국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국내 개혁과 대외 정책에서 ‘축소’와 ‘선택적 개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에 ‘포용과 견제의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참여시켜 ‘규범에 기반을 둔 질서’에 묶어두려 했다.

이를 위해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심화하고, 평화적 관여를 지속해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민주적 요소를 심고자 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미·중 모두 2차 핵 보복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무력 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뭐든지 허용만 할 뿐 금지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더불어 오바마 행정부 전략에 내재한 ‘중국이 미국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일 것이다’는 전제는 중국이 현상타파를 추구하는 수정주의 국가임을 애써 무시하는 순진한 발상으로 간주했다.

패권 측면에서 중국을 확실히 견제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는 펜스 부통령의 2018년 허드슨 재단 연설과 2019년 윌슨 센터 연설, 『국가안보전략서』를 비롯한 공식문서를 통해 표출되다가 지난 5월 21일 『미국의 대중국 전략 접근』보고서를 통해 집결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도움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개발 도상국’ 지위를 악용해 미국 시장을 약탈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중국 공산당 주도로 관세장벽, 기술 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절도, 환율 조작, 정부 산업 보조금 지급 등 세계 경제 질서에 역행하는 정책을 공공연하게 시행한다. 시진핑의 중국은 권위주의 일인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홍콩, 신장위구르, 대만 등을 억압한다. 일대일로를 내세워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가 아닌 독자적 제도를 수립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시도한 평화적인 방법에 따른 중국 ‘결박’은 실패했으므로 이제는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행동을 중단시키겠다”는 명백한 목표를 제시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다른 대외정책과는 달리 연속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외정책 대부분을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민주당도 대중 강경책에 동조한다. 지난 5월 20일 미 상원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외국기업책임법’이 대표적이다.

미국 학계도 대표 저널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의 2019년 특집호 “미국의 세기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통해 미국의 쇠퇴를 인정하면서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었음을 선포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에 대한 평화적 관여를 주창하나 소수이고, 다시금 주류의 자리에 앉기 시작한 현실주의 계열의 학자들은 분산된 미국의 힘을 모아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안을 쏟아내고 있다. 미 국민의 대중 반감도 격화하고 있다. 퓨리서치가 2005년 중국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치인 미국민의 66%가 중국을 ‘비호감’이라고 3월 응답한 바 있다. 정치권, 학계와 전문가 집단, 미국 대중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미·중 대립은 다음 미 행정부에서 지속할 가능성이 크고 이후 한 세대인 30년 혹은 그 이상 갈등이 계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중 경쟁은 쉽게 승패를 가를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 현 미·중의 권력 분포상 종합 국력에서 중국이 열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완전한 우위를 점한 것도 아니다. 중국은 세계최대 시장·생산기지이자 외환 보유국이고, 높은 교육열과 첨단 기술력이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중국과의 경제 상호의존성이 심화하여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여론에 취약하고 집권 기간이 한정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는 달리 10년 이상의 장기전이 가능한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도 지금과 같은 자국 중심주의와 대중 영합주의가 강화한 세계에서 미국과의 경쟁에 강점으로 작용한다. 기존 국제질서를 무력화한다는 미국의 지적도 중국이 지난 10년간 유엔안전보장 이사회에서 통과된 국제규범을 위반한 국가 제재 190개 중 182개에 찬성한 기록을 볼 때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요컨대 미·중 갈등이 어느 일방의 승리로 쉽게 끝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명민한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 핵을 이고 사는 한국의 미국과 동맹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가동하고 경제번영과 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일방을 선택할 수 없다면, 한국은 원칙으로 돌아가 미·중 갈등에 대응해야 한다.

한국의 안보와 번영을 보장해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인 비핵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 개방한 세계화, 법치에 기반한 다자주의, 자유민주주의 등을 원칙으로 삼고 사안 별로 대처해야 한다. 예를 들면, 트럼프 행정부가 ‘투명성과 법치에 기반한 경제번영 네트워크’ 구상을 선포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독려한다. 이 경우 한국은 ‘개방성’이 보장된다면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개방성은 특정 국가, 사실상 중국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써 ‘법치에 기반한 다자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또 다른 예로 홍콩 보안법과 관련하여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이 이해와 지지를 보낼 것”이면서 미국의 관련 국제연대에 한국이 참가하지 않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하나의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진 원칙이므로 한국이 존중하되, 홍콩에 대한 고도자치 약속 위반과 인권 탄압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문제 제기에 동참해야 한다.

미·중이 서로를 신랄히 비판하면서도 아직은 국제사회의 원칙과 규범, 제도 등을 근거로 내세우므로 한국의 원칙에 따른 대응은 유효하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제시할 경우 강대국이 보복의 근거로 삼기 쉽지 않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DD·사드) 사례는 한국이 원칙 없이 우왕좌왕해 실기한 측면이 크다.

더불어 한국은 미·중 갈등으로 압박을 받는 세계 대부분 국가, 특히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협력해서 무너져 가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미국은 원래 제국이었고 트럼프 시기 ‘약탈 국가’의 본색을 명확히 했다는 정체성 규정이나, 세력 전이에 따라 미·중 갈등은 불가피하므로 한국은 편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한국의 선택지를 사실상 없애는 운명론적 분석이다.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제대로 해석하고 전망하면서 원칙에 따른 전략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 본 글은 5월 30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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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박원곤

객원연구위원

박원곤 객원연구위원은 현재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국제지역학 교수이자 GRACE School 부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이전에 통일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연구위원,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하였다.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연구로는 "Changes in US-China Relations and Korea’s Strategy: Security Perspective," (2019);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과 인도·태평양전략,"(2019); "카터의 인권외교와 한미관계 - 충돌, 변형, 조정"(2019);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한미동맹 조정 로드맵"(2018); 공저, "트럼프 행정부 안보·국방전략 분석/전망과 한미동맹 발전 방향,"(2017); 공저, "미 신행정부 국방전략 전망과 한미동맹에 대한 함의: '제3차 상쇄전략'의 수용 및 변용 가능성을 중심으로"(2017)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