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북클럽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지도의 중심에는 한반도, 중국, 일본, 동남아, 호주 등이 위치한다. 미국은 오른쪽 끝, 유럽은 왼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전 세계의 모습을 정확한 축적에 따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편리한 지도이지만, 구형(球形)의 지구를 평면으로 표현하는 데에서 오는 본질적인 한계는 극복하지 못한다. 이 지도로는 대서양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다. 어린 시절, 미국과 유럽의 거리가 궁금했던 아산정책연구원 이재현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모양의 지도를 찾아보게 됐고, 이러한 경험이 다양한 지도에의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평양이 중심인 지도와 대서양이 중심인 지도의 차이가 단순히 지리적 정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지도제작자가 어떤 의도로 무엇을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지도를 보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인들이 동북아시아 및 한반도 이슈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한반도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인 지도를 보며 사회화 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아산북클럽] A History of the World in Twelve Maps_pic

이재현 선임연구위원이 선정한 이 달의 추천도서는 제리 브로턴의 <A History of the World in Twelve Maps>(국내 번역판: 욕망하는 지도 –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이다. 제목 그대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열두 개의 세계지도를 통해 지도가 시대를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하는지, 그 속에는 어떤 욕망이 숨어있는지를 분석한다.

서기 150년경 완성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부터 2012년 ‘구글 어스(Google Earth)’까지 아우르는 이 두꺼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하다.

‘한 마디로 정확한 세계지도 따위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도 없이는 절대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하나의 지도로 세계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도 없다.’
지도, 공생하는 연금술

정확한 세계지도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지리정보는 도식 과정에서 압축되고 단순화되기 때문이다.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 결정하는 단계에서 제작자의 주관이 필연적으로 개입한다. 지도의 축적, 시점, 방위, 투영, 모든 요소들은 특정한 의미를 갖는다.

<A History of the World in Twelve Maps>가 언급하는 열두 개의 지도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제리 브로턴은 서문에서 ‘이 책에 나오는 열두 개의 지도는 세계 전체의 물리적 공간을 담고 있는데, 이 역시 세계관을 형성하는 사상과 믿음을 기초로 한다’고 설명하면서 ‘세계지도가 세계관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세계지도는 다시 해당 문화의 세계관을 규정한다’고 적었다. 브로턴이 지도를 ‘공생하는 연금술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조선이 만든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에는 당시 신생국이었던 조선의 정치적 입장과 지리적 정보가 영리하게 반영돼있다. 중국을 가장 크게 그리고 조선을 그 다음 크기로 그림으로써 대국(大國) 중국을 존중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시각으로 세계 속의 조선을 조명하여 ‘조선을 새롭게 표현한 땅에 올려놓았다’.

한편 1529년 카스티야에서는 경계선이 그어진 지도가 등장한다. 카스티야의 선박 조종사 디오구 히베이루는 포르투갈에 맞서 향료 생산지인 몰루카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이 지도를 제작했다. 지도는 값비싼 동물가죽에 세밀한 삽화와 더불어 그려졌으며,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의 국기 오른쪽에는 교황 문양을 배치했다. 교황 설득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작된 정보를 지도에 포함시키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히베이루의 지도는 ‘경쟁하는 두 제국 사이의 정치 논쟁이었을 뿐 대다수 사람들이나 그들의 일상과는 무관’했으나, 선을 그어 땅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은 하나의 선례가 되어 ‘500년 넘게 지구 전역에서 이루어진 유럽 식민 정책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지도를 보는 사람들의 책임

이재현 선임연구위원은 “어쩌면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 욕망은 세상을 단순하게 파악해서 정답을 찾고자 하는 욕망과 맞닿아 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1930년대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선동에 쉽게 넘어간 이유를 당시 독일인들의 심리에서 찾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정치 양면에서 대혼란기를 겪던 독일인들이 ‘독일인은 우수하다’, ‘이 모든 것은 유대인 때문이다’ 라는 히틀러의 아주 단순한 논리에 현혹됐다는 것이다. 종말론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복잡한 문제를 압축하고 단순화시켜서 보기를 원한다. 그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엄청난 왜곡도 발생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지도에 이같은 인간의 본성이 다 들어있다고 보았다. 지도 제작은 자연스러운 욕망의 발현이며,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지도 역시 새로이 거듭난다. 이미 구글 어스라는 새로운 차원의 지도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도도 완벽할 수 없다는 브로턴의 주장은 인류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이 말은 곧, 어떤 지도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브로턴은 “지도는 항상 그것이 나타내려는 실체를 조종한다”고 했다. 그 지도에는 없는 것, 그 지도에만 있는 것, 그러한 선택적 정보가 내포하는 주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지도가 다시 세계관에 영향을 주는 이 오래된 고리는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며, 이제껏 그래왔듯 그 과정이 언제나 선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막대그래프의 길이를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10 이라는 차이를 더 크게 보이게도, 작게 보이게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지도를 통해서 세상을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을 당부하며, “국제 관계나 특정 국가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지도를 보고 그 나라와 세계를 파악하느냐가 특히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도는 ‘세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세계의 일부’이고 ‘세계에 담긴 사상을 표현하는 완벽한 수단’이며 ‘우리 세계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도를 길을 찾을 때 쓰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지도는 과거에 이미 만들어진 길을 반영할 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 역시 만들어 왔다.

About Experts

권은율
권은율

홍보실

권은율 전문원은 아산정책연구원 홍보실에 재직 중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연구원 이슈브리프 '중국 탄도미사일이 한반도에 던지는 함의', '한반도 사드 배치와 중국' 작성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