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본 원고는 향후 부분적으로 수정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최근 들어 북한은 우리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1년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은 제14기 최고인민회의 5차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은 그동안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한반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며, 이것이 먼저 철회되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북한이 말하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는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달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미군을 철수하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존재는 가장 큰 정치적 위협이기 때문에 적화통일을 통해 이런 위협을 제거하여 1인지배 체제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이루는데 가장 큰 방해요인이 한미동맹이며 주한미군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군만 철수하면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이 적화통일을 빠른 시일 내 달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주장하는 것이다. 2020년 출간된 밥 우드워드의 『격노(Rage)』에 따르면 김정은은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남한 군대는 나의 적이 될 수 없다 … 사실 한국군은 내 군대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Now and in the future, South Korean military cannot be my enemy … the truth is that South Korean military is no match against my military)”라고 썼는데, 적화통일에 가장 큰 장애가 주한미군이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하면서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고 있고, 1961년 맺은 『조중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는 “한 쪽이 군사적 침략을 받을 경우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자동개입을 의미한다. 2017년 7월 북한이 화성-12, 14호 등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시험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11월 북한이 화성-15호를 발사하고 미국은 “코피작전(bloody nose)”까지 검토하는 등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자, 중국은 북중 국경지대에 10만명이 넘는 병력을 배치하였고, 유사시 북한을 지원할 태세를 갖추었다. 우리의 동맹인 미국은 태평양 너머 멀리에 있는 반면, 북한의 동맹인 중국은 바로 압록강 너머에 있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북한에 군사개입할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안보상황이 얼마나 불안한가를 보여 준다. 이는 최근 우크라이나 상황과 비슷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대에 10만명이 넘는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 언제든지 침공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러시아 전문가인 로버트 리 박사는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를 총동원한다면 매우 짧은 시간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들은 처음 30∼40분 이내에 우크라이나 동부군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우리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

남북간에 상대방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은 1953년의 정전 이후 3천건이 넘는 크고 작은 대남도발을 계속해왔고, 긴장 국면이 조성될 때마다 “서울 불바다”를 수시로 언급해왔다. 북한은 1953년 정전 이후 전후복구 기간이 끝나자 마자 1962년 노동당 제4기 5차 전원회의에서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고 외치면서 군사력 건설을 재개하였고, 全인민의 무장화, 全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인민군의 현대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였다. 이어 1968년과 1969년에는 1.21 청와대 습격 미수, 푸에블로호 피납,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EC-121 격추 등 한반도 전체를 전쟁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중대도발을 잇달아 자행했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직후 김일성은 ”전쟁을 통해 남조선 인민이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며 얻을 것은 통일“이라고 호언하며 중국에 군사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이고 행동이다. 핵을 가진 북한은 더욱 호전적이 되어 서슴없이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주장의 가장 큰 허구성은 그들의 핵무기 개발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미국은 1991년 한반도에서 모든 전술핵을 철수했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 이행을 위한 조치 추진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의 안전조치 이행을 약속했었고, 2005년의 『9.19 공동성명』에서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과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런 약속과 합의를 위반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추구해왔으며, 6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고도화를 향해 역량을 집중해왔다. 더욱이, 2021년에 들어서는 주로 한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의 능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해왔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를 겨냥해 첨단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의 행동은 그들의 적대시 정책 철회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최근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한 신문의 칼럼에서 미국은 지난 30년간 적어도 40차례에 걸쳐 북한에 적대적 의도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93년 6월 미북 공동성명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위협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에서는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 위협이나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고,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에 다른 미래를 제공할 준비가 되었다 … 북한은 더 큰 안전과 존중받는 미래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했으며, 2018년 김정은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의 갈등이 내일의 전쟁일 필요는 없다 … 역사가 계속해서 증명하듯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북한 비핵화를 바라지만 북한은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통일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민의 90%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2018년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직후 미국 CNN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70%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핵무기야말로 우리를 굴복시켜 적화통일을 가능케 할 무기이며, 북한의 세습독재체제가 영원토록 이어지도록 할 수 있는 핵심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 랜드 연구소가 2020년~2021년간 수행한 공동연구에 의하면 현재의 상황이 그대로 이어져 2027년에 이르면 북한은 최대 242개의 핵무기를 가질 것이고, 그럴 경우 초전에 한국에만 60여개 이상의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북한은 앞으로 비핵화 대신 핵공갈을 하면서 미국과 거래하려 할 것이며, 우리를 쥐락펴락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우리의 생존도 보장된다. 동서 냉전시대의 상호확증파괴전략(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과 같이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핵을 통해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갖추어 대응해야 하는데, 현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더욱 우려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최근 논의가 되고 있다는 핵선제 불사용(No First Use)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임박한 적의 핵공격에 대응하고 적으로 하여금 미국의 핵사용 시점을 모르도록 함으로써 억제효과를 높이기 위해 핵 선제사용 가능성을 열어놓는 입장을 유지해왔는데, 바이든 행정부는 핵무기는 사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사용억제를 위한 수단이라고 보고 핵선제 불사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 핵선제 불사용이 공식화되면 북한은 미국의 확장억제공약이 흔들린다고 오판할 수 있고, 우리는 북한의 호의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지만, 우선은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기 위한 한미의 대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아무리 첨단이라 할지라도 재래식 무기는 재래식 무기일 따름이고, 핵무기가 갖는 정치적, 심리적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억제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한국판 상호확증파괴전략(MAD)을 구상하고 추진해야 한다. 핵심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클 것이라는 점을 인식토록 하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를 요격할 수 있는 다층방어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핵을 사용하면 반드시 궤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1992년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북한의 핵무장으로 인해 사문화되었음을 공표하고, 미 하원군사위원회가 ”2013 국방수권법 수정안“에서 권고했듯이 1991년 철수한 전술핵무기 중 일부라도 재배치하고, 한미간 핵공유 그리고 이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계획의 수립과 연습훈련을 통한 운용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