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1. 들어가며

 
지난 2020년 2월 29일 미국과 탈레반은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합의’(이하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에 서명했다. 2001년 발생한 9 · 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한 이후 18년 이상 ‘전장’(戰場)이었던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평화는 아직 가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 9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취임식 당시 압둘라 압둘라 아프가니스탄 前 최고행정관은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취임식을 열었다. 2020년 5월 17일 내각 구성권을 분할하여 행사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한 국가 두 대통령’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이러한 사태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정이 불안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1 아프가니스탄의 정정이 불안한 가운데 과연 실질적인 평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미국-탈레반 평화합의가 이행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미국-탈레반 평화합의는 미국이 오래된 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오고 있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로도 기록될 것이다. 더구나 저 멀리 1973년 1월 27일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간 체결된 ‘파리 평화협정’ (Agree ment on Ending the War and Restoring Peace in Vietnam)을 통해 미국은 베트남 전장으로부터 이탈했으나 파리 평화협정
이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던 것처럼 미국-탈레반 평화합의 역시 미국에게는 하나의 출구전략이 될 수 있겠으나 과연 아프가니스탄에 실질적인 평화가 도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본 이슈브리프는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주요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1973년 파리 평화협정과 비교하여 미국-탈레반 평화합의가 아프가니스탄에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가능성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미국-탈레반 평화합의가 한반도 평화협정에 시사하는 바에 대하여도 논의를 덧붙일 것이다.

 

2.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주요 내용

 

(1) 미국에 의해 국가로 승인되지 않은 탈레반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정식 명칭은 ‘Agreement for Bringing Peace to Afghanistan between the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which is not recognized by the United States as a state and is known as the Taliban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이 명칭 내에는 미국이 탈레반을 국가로 승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국이 현재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탈레반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탈레반이 향후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정권을 획득할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겠으나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시도하는 것 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탈레반이 국제법상 한정된 영토, 항구적 인구, 실효적 통제(정부), 다른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형성할 능력 등2을 갖추어 국가로서의 요건을 충족할 수는 있다고 보아야 하나 현 시점에서 미국은 탈레반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2)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네 가지 틀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는 크게 네 가지 틀로 구성되어 있다.3 첫째, 아프가니스탄 영토가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을 보장하고 (이를 이행하는) 이행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 둘째,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를 보장하고 이행 메커니즘 및 타임라인을 설정하는 것, 셋째, 탈레반이 2020년 3월 10일 아프가니스탄 내 (합법적인 정부를 포함
하여) 다른 정치세력과 ‘대내’협상 을 개시할 것, 넷째, 대내협상의 주제가 항구적이고 포괄적인 휴전(또는 정화)이 될 것 등이다.

네 가지 틀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틀은 세 번째와 네 번째 틀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틀을 구체화한 매우 구체적인 합의가 미국-탈레반 평화합의 내에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3) 첫 번째 틀을 구체화한 합의 내용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첫 번째 틀을 구체화한 합의 내용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프가니스탄 영토가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을 보장하고 이를 이행하는 이행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알카에다를 포함하여 어떤 집단이나 개인도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
이다. 이는 탈레반이 알카에다와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따라서 탈레반은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탈레반 자신이 점령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영토 내에서는 이들을 위한 그 어떤 장소도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고, 탈레반 내부 사람들에게는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협력하지 말 것을 명백히 지시해야 한다.

또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영토가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훈련시키거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도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에게 탈레반이 여권, 비자 등을 제공해서도 안 된다.

(4) 두 번째 틀을 구체화한 합의 내용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두 번째 틀을 구체화한 합의 내용의 핵심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모든 군대가 ‘14개월 내’에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타임라인이 합의되었다.

첫째, 미국은 135일(4.5개월) 이내에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의 숫자를 8,600명으로 감축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동맹국들도 이 숫자에 비례하여 자신의 군대의 숫자를 줄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5개의 군사기지로부터 모든 군대를 철수시킨다.

둘째, 탈레반이 어떻게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는지를 조건으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남은 9.5개월 내에 철군을 완료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군사기지로부터도 모든 군대를 철수시킨다.

셋째, 미국은 ‘신뢰구축조치’(confidence building measure)의 일환으로 신속히 포로와 정치범을 석방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될 수 있도록 모든 이해관계당사자들과 함께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특히 ‘대내’협상이 개시되는 2020년 3월 10일 ‘최대’ 5,000명의 탈레반 그리고 ‘최대’ 1,000명의 다른 이해관계당사자에 속하는 포로와 정치범이 석방된다. 그리고 3개월 내에 나머지 포로와 정치범이 석방될 것이다.

넷째, 아프가니스탄 대내협상의 시작과 함께 미국은 탈레반에게 부과하고 있는 제재를 재검토하고 2020년 8월 27일까지 모든 제재가 해제될 것을 목표로 한다.

다섯째,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다른 이사국들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외교적 노력을 다하여 2020년 5월 29일까지 탈레반에 속하는 사람들이 제재 명단에서 삭제될 수 있도록 한다.

(5)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이행 상황

아프가니스탄의 ‘한 국가 두 대통령’ 사태가 2020년 5월 17일에야 해소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가 예정하고 있던 타임라인이 준수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예를 들어,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 ‘대내’협상이 개시되는 2020년 3월 10일 최대 5,000명의 탈레반 그리고 최대 1,000명의 다른 이해관계당사자에 속하는 포로와 정치범이 석방되어야 하나 2020년 6월 현재 3,000명의 탈레반에 속하는 포로와 정치범(그리고 500명의 다른 이해관계당사자에 속하는 포로와 정치범)만 석방된 상태이다.4

물론 ‘최대’(up to)라는 표현이 반드시 5,000명의 탈레반에 속하는 포로와 정치범이 석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탈레반은 ‘최대’라는 표현을 애써 무시하고 5,000명의 탈레반에 속하는 포로와 정치범이 석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5 그럼에도 아프가니스탄 대내협상이 곧 개시될 것이라는 전망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6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대내협상이 아직 개시되지 않았음에도 미국은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에 포함된 타임라인에 따라 이미 미군의 숫자를 8,600명으로 줄였다.7 즉, 미국-탈레반 평화합의는 어느 정도 이행되고 있는 중이다.

 

3.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의 비교

 

(1)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 평화협정인 1973년 파리 평화협정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체결된 평화협정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합법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기 쉽지 않은 유엔 헌장 체제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현 유엔 헌장 체제 하에서 전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의 허가 또는 불법적인 무력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로 일어날 뿐이다. 합법적
으로 전쟁을 할 수 있었던 1945년 이전에는 법적 종전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평화협정 체결이 자주 이용되었으나 1945년 이후에는 법적인 차원에서 전쟁 발발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는 이상 평화협정 체결도 지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1945년 이후 체결된 평화협정으로는 1973년 파리 평화협정
과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 평화협정 등 정도만을 그 사례로 적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파리 평화협정은 1975년 북베트남이 무력사용과 함께 남베트남을 병합함으로써 철저히 실패로 귀결되었다. 파리 평화협정 내에 포함된 어떤 내용 때문에 파리 평화협정이 실패했는지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2)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의 독소적 내용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의 독소적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하나는 북베트남에게 상응하는 조치를 부과하지 않은 채 파리 평화협정의 내용이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철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베트남인들’의 ‘민족자결권’ 행사를 너무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 평화협정 제4조8는 미국이 남베트남에 대한 군사 개입을 중단하고 남베트남의 국내문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베트남에 대하여는 이에 상응하는 남베트남에 대한 군사 개입을 중단하거나 남베트남의 국내문제에 간섭하지 않을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 이는 미국과 북베트남에게 부과된 의무의 크기 또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어서 파리 평화협정 제5조9는 파리 평화협정 서명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완전히 철군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파리 평화협정 제6조10는 파리 평화협정 서명일
로부터 60일 이내에 남베트남 내 모든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군사기지가 완전히 철거될 것이라는 점도 규정했다. 그런데 북베트남에게는 남베트남 으로부터 철군하거나 남베트남 내 군사기지를 철거할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다. 즉, 파리 평화협정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현저히 균형을 상실한 의무만을 부과한 평화협정이라 할 수 있다.

파리 평화협정은 ‘남베트남인들’의 ‘민족자결권’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조했다. 특히 파리 평화협정 제9조(a)11는 남베트남인들의 민족자결권이 ‘신성하고 침해될 수 없다는’(sacred, inalienable) 것을 전제했다. 이어서 파리 평화협정 제9조(b)12와 제9조(c)13는 (남베트남인들의 민족자결권 행사를 위해) 국제적인 감시 하에 진정 자유롭고 민주적인 총선거가 실시되어 남베트남인들이 남베트남의 정치적 미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다른 국가들은 남베트남인들에게 그 어떤 정치적 노선이나 특정 정치적 인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규정했다.

이와 같은 파리 평화협정의 내용은 북베트남의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전제에서 베트남 문제를 ‘남’베트남 문제로 한정시켰다. 이는 남베트남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의해 병합되는 결과만을 초래했을 뿐이다.

(3)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의 공통점과 차이점

가. 공통점

미국의 전장으로부터의 출구전략이라 할 수 있는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1973년 파리 평화협정
의 공통점으로 아래와 같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바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철군 시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레반과 북베트남에게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부과된 약속(또는 의무)과 상응하는 약속(또는 의무)이 부과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파리 평화협정의 첫 번째 공통점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명백히 전장으로부터의 ‘신속한’ 미군(그리고 미군의 동맹군)의 철수뿐이다. 이를 위해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는 철군과 군사기지의 철거라는 약속(또는 의무)이 부과되어 있으나 평화합의 또는 평화협정
의 또 다른 상대방인 탈레반 또는 북베트남에게는 철군 또는 군사기지의 철거에 상응하는 그 어떤 군사적 의무도 부과되어 있지 않다.

두 번째 공통점은 ‘대내(협상)’ 또는 ‘민족(자결권)’ 등의 강조이다. 이는 수사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또는 베트남에게 다른 국가들을 배제하고 국가 또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재량 또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국가 내부의 정치적 투쟁 결과에 따라 그 국가의 정치적 질서가 결정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미국-탈레반 평화합의가 결과론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합의 또는 평화협정이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 차이점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이 공통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평화합의 또는 평화협정의 이행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의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 등이다.

첫째,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파리 평화협정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법적 구속력 여부’이다. 파리 평화협정이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인데 반해 미국-탈레반 평화합의는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합의이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에 대하여 좀 더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만약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영토가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데 실패한다면 미국은 미국-탈레반 평화합의로부터 (파기 등을 통해) 법적 부담 없이 이탈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파리 평화협정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기 때문에 북베트남의 의무 위반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으나 이론적으로는) 미국의 이탈이 쉽지 않은 문서였다.

둘째, 미국-탈레반 평화합의는 파리 평화협정과 달리 미국이 미국-탈레반 평화합의 내 약속의 이행을 중단할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최초 135일(4.5개월) 이내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의 숫자를 8,600명까지 감축해야 하나 나머지 9.5개월 내에 철군을 완료할지 여부는 탈레반이 어떻게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만약 탈레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미국은 철군 일정을 지연시키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탈레반이 지켜야 되는 약속의 핵심은 아프가니스탄 영토가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이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사용하여) 미국(또는 미국의 동맹국들)만 공격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영토 내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등을 행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이러한 문제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즉, 아프가니스탄 내에 인권보장을 기초로 한 평화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인 것이다.

 

4. 결론: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한반도에의 함의

 
2020년 6월 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 한반도의 상황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종전선언 또는 한반도 평화협정 등과 관련된 논의는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한반도 평화협정 등과 관련한 논의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2020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1973년 파리 평화협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평화합의 또는 평화협정을 ‘철군’을 위한 하나의 ‘출구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평화합의 또는 평화협정이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유로 평화협정 체결과 실제로 평화가 구축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다른 이슈로 구분되어야 한다. 즉, 평화협정 체결만으로 평화가 구축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순한 사고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협정 내에는 주한미군의 철수 등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거나 북한의 의무 이행 여부에 따라 주한미국의 철수를 중단시킬 레버리지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만약 예를 들어, 한반도 평화협정 내에 북한의 의무 이행 여부에 따른 유연한 타임라인이 아닌 주한미군의 철수를 위한 일방적인 타임라인만 포함된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협정이 미군의 철수를 위한 또 하나의 출구전략 사례로 기록될 뿐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에는 평화협정이 기본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내용만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종전, 군사분계선의 국경선(또는 경계선) 전환 문제, 당사자들 간 기본관계 문제 등 평화협정이 일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만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4 만약 한반도 평화협정 내에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와 파리 평화협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군의 철수를 위한 일방적인 타임라인만 포함된다면 한반도 평화협정의 주요 과제는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로만 귀결될 것이다.

이번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은 재개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서 북한에 대하여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는 주한미군의 존재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일방적으로 포기할 이유가 없다. 즉,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오로지 한국과 미국 간 문제이므로 한반도 평화협정 내에 아무런 조건 없이 이 문제를 포함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탈레반 평화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군하고 대내협상의 결과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롭게 들어선 (탈레반의 정치적 지분이 포함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
들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실질적인 평화가 도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탈레반 평화합의의 목적은 달성된다. 바로 이 점이 평화합의 또는 평화협정의 내용이 특정 국가의 철군을 위한 출구전략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5181139001.
  • 2. Malcolm N. Shaw, International Law, 8th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pp. 157-162.
  • 3. “1. Guarantees and enforcement mechanisms that will prevent the use of the soil of Afghanistan by any group or individual against the security of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2. Guarantees, enforcement mechanisms, and announcement of a timeline for the withdrawal of all foreign forces from Afghanistan.
    3. After the announcement of guarantees for a complete withdrawal of foreign forces and timeline in the presence of international witnesses, and guarantees and the announcement in the presence of international witnesses that Afghan soil will not be used against the security of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the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which is not recognized by the United States as a state and is known as the Taliban will start intra-Afghan negotiations with Afghan sides on March 10, 2020, which corresponds to Rajab 15, 1441 on the Hijri Lunar calendar and Hoot 20, 1398 on the Hijri Solar calendar.
    4. A permanent and comprehensive ceasefire will be an item on the agenda of the intra-Afghan dialogue and negotiations. The participants of intra-Afghan negotiations will discuss the date and modalities of a permanent and comprehensive ceasefire, including joint implementation mechanisms, which will be announced along with the completion and agreement over the future political roadmap of Afghanistan.”
  • 4. https://www.voanews.com/south-central-asia/qatar-host-intra-afghan-peace-talks.
  • 5. https://www.usip.org/publications/2020/05/afghan-peace-process-back-track.
  • 6. https://www.thehindu.com/news/international/intra-afghan-talks-to-begin-soon-abdullah/article31782040.ece.
  • 7. https://www.nytimes.com/2020/06/19/world/asia/afghanistan-us-troop-withdrawal.html.
  • 8. “The United States will not continue its military involvement or intervene in the internal affairs of South Vietnam.”
  • 9. “Within sixty days of the signing of this Agreement, there will be a total withdrawal from South Vietnam of troops, military advisers, and military personnel, including technical military personnel and military personnel associated with the pacification program, armaments, munitions, and war material of the United States and those of the other foreign countries mentioned in Article 3(a). Advisers from the above mentioned countries to all paramilitary organizations and the police force will also be withdrawn within the same period of time.”
  • 10. “The dismantlement of all military bases in South Vietnam of the United States and of the other foreign countries mentioned in Article 3(a) shall be completed within sixty days of the signing of this Agreement.”
  • 11. “The South Vietnamese people’s right to self-determination is sacred, inalienable, and shall be respected by all countries.”
  • 12. “The South Vietnamese people shall decide themselves the political future of South Vietnam through genuinely free and democratic general elections under international supervision.”
  • 13. “Foreign countries shall not impose any political tendency or personality on the South Vietnamese people.”
  • 14. 이기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 (ASAN Report – 아산 국제법 인포커스 2018 -)』(서울: 아산정책연구원, 2018), 22-2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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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