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China Morning Post] 2021-01-26
Xi Jinping charms Moon Jae-in as China and US compete for an ally in South Korea
[South China Morning Post] 2021-01-26
Xi Jinping charms Moon Jae-in as China and US compete for an ally in South Korea
[코나스넷] 2021-01-26
* 배포 후 바로 보도 가능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1월 26일(화), 장호진 객원연구위원(한국해양대 석좌교수, 前청와대 외교비서관)의 이슈브리프 ‘잊혀진 수교 30주년, 한∙러 관계의 현주소’를 발표했다. 이 이슈브리프는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지만 작년(2020년) 9월 30일은 한∙러 수교 30주년 이었고 코로나 19로 기념 행사 개최가 어려워 2021년까지 수교 30주년 행사를 연장하기로 했음에도 여전히 별다른 관심을 못 받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러관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있다.
장호진 객원연구위원은 한∙러 관계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저하된 것은 양국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이나 비약적인 교역 증대와 같은 외견상 발전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에 대한 정무 협력, 교역∙투자 등 경제 협력 그리고 남∙북∙러 3각 협력과 같은 양국 협력의 주요 축에서 한반도 주변 4국의 하나인 러시아와의 관계에 걸맞는 협력의 내실화와 미래 발전의 동력 확보가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와 같은 한∙러 관계의 저점을 극복하고 활력을 회복해 나가기 위하여는 현실적 어려움과 여건상 한계를 감안하여 우선 정부 정책이나 접근 차원에서 가능한 전환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와 관련, 2000년대 초∙중반 푸틴 대통령 집권 초기 경험한 바 있는 러시아의 북한과의 정보 교류와 소통 능력을 활용하여 한∙러간 정무 협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았다. 다만, 현재와 같이 북핵 문제를 미∙북 협상에 맡겨 놓는 방식으로는 러시아측이 굳이 우리와 협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우리가 북핵 문제의 당사자로서 응당한 역할과 비중을 갖도록 북핵 외교의 정상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한다. 장호진 객원연구위원은 북한에 대한 포용의 명분과 북핵 문제와 같은 현실적 제약에 묶여서 20여년간 아무 진전도 없는 남∙북∙러 3각 협력을 통한 가스∙철도∙전력 연결 사업과 관련된 돌파구 역시 제언하고 있다. 즉, 차후 북한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 놓되, 우선적으로는 한∙러 양자 사업으로 전환∙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 관련 문의:
장호진 객원연구위원 02) 3711-7366, hjchang@asaninst.org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하고 너무 조용히 지나가서 대부분 의식하지 못했지만, 2020년 9월 30일은 1990년 우리와 당시 ‘소련’이었던 러시아가 외교 관계를 수립한지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행사 개최가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수교 30주년 행사를 2021년까지 연장하긴 했지만 설령 금년에 코로나19가 잦아 들어도 한∙러 관계나 수교 30주년에 대한 잊혀진 관심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없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수교 당시의 관심과 기대, 그리고 냉전의 최전선에 선 분단 국가로서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 진영과는 교류조차 거의 없었던 한국이 마침내 공산 종주국의 문을 열었다는 그 시절의 대단했던 흥분과 전율에 비하면 실로 덧없는 무상함과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흔히 회자되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수교 당시 모스크바를 평양으로 가는 관문으로 보았고 소련은 우리를 경제 난국 타개와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경협과 투자 파트너로 보면서, 서로 접점이 맞지않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기대 하에 수교를 했고 그래서 짧은 흥분기를 거쳐 실망과 침체기로 이어졌다고 한다.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러나 그 후 상호 기대 수준의 조정과 적응 등을 통해 외견상 동맹 다음으로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함께 최고 수준의 협력 관계라 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고 양국간 경제 관계도 1990년 수교 당시에 비해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로 관심이 없게 되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외견과 명칭 상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정무 협력, 교역 및 투자 등 경제협력 그리고 철도∙가스∙전력 연결 등을 대상으로 하는 남∙북∙러 3각 협력과 같은 한∙러 관계의 주요 축에 있어서 정세적∙구조적 요인 등으로 발전동력이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분명 한반도 주변 4국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게감에 걸맞게 협력관계를 내실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평양으로 가는 관문’ 즉 북한 문제에 대한 협력대상으로서 러시아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러시아는 우리와의 수교 이후 다분히 친한적인 외교 노선을 택하고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들어있던 1961년의 「조∙소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을 만료시켜 버림으로써 북한과의 사실상의 동맹 관계를 해지하였으나 북한의 반발로 대북 영향력과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입지가 상당히 위축되게 된다. 한국 외교로서는 주적(主敵) 북한의 가장 든든한 후원 세력의 하나인 러시아를 떼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로 인해 평양으로 가는 문을 열어야 할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동시에 초래된 셈이다.
러시아는 이후 남∙북한 및 미, 중간 ‘4자 회담’ 개최로 한반도에서 소외된 형국이 되고 한국과의 경협은 미진한 상태가 계속되자 남∙북한 등거리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舊소련 해체 후 남게 된 북한의 36억 루블(舊소련 화폐 단위 기준) 상당의 부채 상환 문제와 이로 인한 러시아 의회의 대북 신규 차관∙지원 금지 조치 등으로 안 그래도 예전 같지 못한 대북 정책의 수단과 영향력이 더욱 제한되고, 러시아와 북한 간에는 한∙러 수교 후 10여년간 일종의 냉각기가 지속된다. 2000년 7월 푸틴 대통령의 전격적 방북으로 이러한 냉각기가 깨지게 되고 2002년 10월 제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면서 2000년대 중반 ‘6자회담’ 초기 과정까지 러시아는 꽤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이후’ ‘6자회담’ 과정의 교착과 힘께 간헐적 활동 외에는 중국측의 역할에 다소 편승하는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한데 이는 대북 영향력과 가용 자원의 한계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경제적 측면을 보면 한∙러 간 교역은 1990년 수교 당시 9억불에 약간 못 미치던 규모에서 2019년에는 223억불 규모(우리측 기준으로 수출 77.7억불, 수입 145.6억불)로 무려 25배 증가하여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 대상국(수출 대상국 15위, 수입 대상국 9위)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제재와 국제 유가 하락 이전인 2014년에는 교역 규모가 257.9억불로 최대치에 달한 적도 있으나, 국제 정세와 유가∙원자재 가격 동향 등 외생 변수의 영향이 크고, 최근 러측의 수입 대체 산업 육성과 러∙중간 밀착 현상으로 중국산 제품 수입 증가 등 장애 요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투자의 경우는 우리 기업들이 전자, 자동차, 식품, 호텔 등 여러 분야에 진출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일들도 적지 않으나, 우리의 대 러시아 투자는 28억 400만불 규모로 1990년 이후 2019년 까지 우리의 해외 투자 중 0.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여년전부터 거론되어온 산업 공단 등 대규모 정부 주도 프로젝트나 극동∙시베리아 개발 등과 관련한 가스, 전력, 조선, 북극항로, 철도, 항만, 일자리, 농업, 수산 등 소위 ‘9개의 교량’ (nine bridge)도 에너지 수송 덕을 보고 있는 조선 분야 일부 외에는 거의 진전이 없는 답보 상태이다. 러시아에 대한 투자가 미흡한 이유로는 법적∙제도적 여건 미비 등이 많이 거론되기도 하나, 유럽 국가 등 여타국들의 대러 투자가 지속되고 있음에 비추어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러시아 시장 자체가 익숙치 않고 규모도 아직 그리 크지 않으며, 거리와 물류 문제 등도 있어 러시아로부터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리적 위치에 있는 유럽 국가 등과는 또 다른 여건의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이 떠오르는 러시아 극동 지역도 아직은 시장 규모가 충분치 않은 상태이며,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러측의 국가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과 우리측의 시장 경제적 접근의 차이 및 사업 후보지의 현지 상황 등의 변수도 있다.
한편, 가스, 전력, 철도 등 남∙북∙러 3각 협력에 묶여 있는 사업들은 북핵의 그늘에 묻힌 채 아무 기약이 없이 시간만 20년 이상 흘러 보내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간헐적으로 한∙러 간이나 북한과의 논의가 있기도 했지만 초보적인 수준으로 본격적인 논의는 해보지도 못한 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나 진전만 오매불망 바라고 있는데, 설령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북한이 자신들의 내부를 관통해 가는 이러한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에 응해 나올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보장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면 이러한 상태로부터 한∙러 관계의 활력을 회복하고 관계 발전의 동력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양국 협력 관계의 주요 축인 정무∙경제∙3각협력의 현실상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만큼 우선 양국 관계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계내에서의 대안이나 이를 우회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 분야는 여건상 한계도 있고 외생 변수의 영향도 크고 시간도 걸리므로 일단 정부 정책이나 접근 차원에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집중 탐구와 검토를 통해 가능한 전환을 도모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북한 및 북핵 문제와 관련한 협력부터 고려해 보면, 경험적으로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대북 영향력이나 수단의 한계에 따라 북한 문제를 자신들의 어떤 목적에 활용하거나 또는 이를 통해 자신들의 역할과 입지가 보다 주목∙평가받을 수 있는 상황이나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의 동향에 대한 정보나 예측 면에서 상당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측면에 기반하여 협력을 강화하고 시너지 효과로 이어져 나가도록 하는 방안을 도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7월 푸틴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북은 소련과 러시아 시기 전체를 통해 국가 원수의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한 북한 방문이라는 나름 꽤 의미가 있는 외교적 행보였다. 일각에서는 2000년 5월 푸틴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의 남∙북 등거리 정책 의지 과시 차원에서 서울보다 평양을 먼저 방문했다고 해석하기도 했으나, 그 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을 압박하여 인공위성을 대리 발사 해주면 로켓 실험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이후, 이어서 참석한 오키나와 개최 G8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약속을 들이밀며 미사일 방어 체제(MD)가 필요 없다고 부시 미 대통령을 압박하는데 주목적이 있었다고 보인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이를 통해 취임 후 처음 참석한 정상급 국제 회의였던 G8 정상회담에서 일약 지략있는 스타로 각광을 받으며 국제 사회에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생전에 수차례 소련을 방문했던 김일성 주석과는 달리 집권 후 러시아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김정일 위원장도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이후 2001년 7-8월과 2002년 8월 러시아를 찾았는데,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북 관계의 긴장 국면과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방북 등 일∙북 접근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러∙북 정상의 접촉은 세간의 상당한 관심을 끈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 발생후에는 그해 12월말 푸틴-부시 대통령간 정상 통화에 이어 국제 사회 최초로 2003년 1월 로슈코프 외무 차관을 특사로 북한에 보내고 2003년 7월에는 북한의 ‘6자회담’ 수용 사실을 러시아 외무 차관 및 주 러시아 북한 대사 면담 결과로 최초 발표하는 등 국제 사회의 대북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통해 나름의 역할과 입지를 극대화하며 과시하기도 하였다. 2019년 4월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도 2회의 미∙북 정상 회담 개최와 좌초 등 대화 국면의 전개와 교착 가능성이 교차된 상황에서 국제 사회가 예의주시 하였음은 물론이다.
한편, 러시아는 북한과의 소통을 통해 북한의 입장과 배경에 대해서도 상당히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고 그러한 입장이 관철되지 못할 경우 다음은 어떤 행태를 보일지에 대해서도 꽤 정확히 예측했으며 얼마 후 북한이 실제로 그러한 행태를 보인 사례도 상당히 있다.
이는 물론 러시아가 북한의 사고 방식과 시스템에 대해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북한이 협상 전략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주며 대외 시그널 차원에서 러시아를 활용하려 했던 고려도 당연히 있었다고 하겠다. 어쩄든 러시아가 북한이나 국제 사회에 유용한 정보의 창구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며, 북한이 러시아를 신뢰한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중국에 대한 불신을 감안해 보면 러시아도 가급적 함께 활용하려 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우리나 미국과의 협의 및 긴밀한 논의로 이어지게 되는데, 2002년말 푸틴-부시 대통령 통화 직후 러시아의 특사 방북 정보가 한∙러 간 공유되면서 2003년 새해 벽두 우리측 외무 차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로슈코프 특사의 방북 관련 심도 있는 사전 협의를 가진 것이나, 2003년 8월말 제1차 6자회담 개최를 앞두고 북한 외무성 부부장의 방러 협의에 이어 동일 오후 모스크바에서 한∙러 외무 차관 협의를 갖도록 사전 조율함으로써 북한의 입장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해 듣고 조율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보 교류와 협의는 그 자체로 양국 간 높은 차원의 정무적 협력의 동력을 창출하지만 또다른 역동성도 가져올 수 있는데, 한∙러 양측이 각기 서로를 통해 북한과 미국에 대해 간접 소통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과의 소통이 원활치 않을 때 러시아를 통해 소통할 수도 있고 러시아는 미국에 대해 직접 거론하기 껄끄러운 얘기들을 한국이 대신 얘기해 달라거나 같이 문제를 제기하자는 권유를 할 수 있다. 2003년 ‘6자회담’ 체제가 확립되기 전에 미측이 러시아를 제외한 5자회담 구상을 한동안 고집한 시기가 있는데 당시 러시아측의 고위 인사가 우리측에 “러시아는 북한이 원해서라도 6자회담에 가게 될 것이나 꼭 그런 형식으로 참석해야 하겠는가? 왜 미국의 가까운 동맹인 한국은 러시아의 참석 필요성에 대해 아무 얘기도 안하는가?” 라며 일종의 불만을 표하면서 협조를 요청해 온 적도 있다.
이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북핵 문제와 미∙북 관계가 또 다른 국면을 맞으며 미∙북간 새로운 탐색과 모색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러∙미 관계도 쉽지 않지만 미측도 군축 문제 등에서는 나름 유연성을 보이고 있고 러측도 북핵 문제 등은 러∙미 관계의 향배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을 협력 분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초기 단계에서 어느 쪽에나 조심스러운 것들의 하나가 소통의 방식과 시기이기도 한데 북한과의 소통에 관한 러시아의 비교우위를 살릴 수 있고 존재감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즉,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이슈가 한∙러간 정무적 협력의 활력 회복을 위한 유용한 계기도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우선 북핵 문제 관련 우리의 정책과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다. 북핵 문제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며 문제 해결을 미∙북 협상에 맡겨 놓고 있는 구도에서는 설령 러시아가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미국과 협의하지 굳이 한국과 협의할 이유도 없고 우리를 통해 미측과 소통하거나 영향을 미쳐보려 할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한∙러 관계의 활성화나 발전 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북한을 통한 가스∙철도∙전력 연결의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3각 협력 사업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본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이 가장 큰 자산인 러시아와의 협력에서 관련 분야 협력의 상당 부분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3각 협력의 틀에 20여년간 묶어 놓고 정체 상태로 있으면서 관계 발전의 동력을 이어간다는 것도 현실적인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을 제약하고 있는 북한 핵 문제는 언제 진전이나 해결이 가능할지 전혀 예측도 안 되며, 북한 핵 문제를 넘어서더라도 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재원 조달 등 문제도 있을 뿐 아니라 가장 근본적으로 체제 안보 때문에 온갖 고생을 감수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이 과연 자신들을 내부 깊숙이 관통해 가는 이러한 3각 협력 사업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설령 받아들이더라도 북한 내부와 관련된 사업은 러∙북 간 프로젝트가 되고 우리는 휴전선에서나 가스 또는 전력을 받거나 철도를 연결하고 막대한 소요 비용이나 제공하는 허울뿐인 3각 협력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2012년 푸틴의 대통령직 복귀 이후 러시아 고위층도 가스관 연결 사업에 대해 이 사업은 한국이 3각 협력으로 추진하자고 해서 지금처럼 진행되고 있으나 원래대로 했으면 훨씬 빨리 진전되었을 수도 있다고 아쉬워한 바 있는데, 이는 당초 구상대로 한∙러간 해저 가스관 연결로 추진했으면 신속히 진행 되었을 텐데 한국측 제의로 대북 포용 정책 차원에서 북한 통과 사업으로 추진하다 보니 너무 지체된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가능한 분야에 있어서는 향후 여건 성숙시 북한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놓고 한∙러 양자 또는 지역 차원으로 전환하여 추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끝으로,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이던 북한에 대한 포용이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던 간에 기본적으로 북한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현실 적합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지나친 성의 (overenthusiasm)는 오히려 과유불급 (過猶不及)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도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전에 러시아측과 가스관 연결 사업에 관한 대화중 러시아 외무부의 한 간부가 개인 의견이라며 언급했던 얘기 하나를 참고로 소개한다.
“한국측의 가스관 연결 사업 구상은 아마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공사를 위해 북한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북한은 가스관 통과료도 받고 가스도 일부 받아 쓰고 몰래 빼서 쓸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가스관을 잠궈서 한국측의 에너지 수급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패 (leverage)도 쥐게 되는데, 북한으로서는 너무 후한 제안이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The Wall Street Journal] 2021-01-25
[주간조선] 2021-01-25
일본 상대 ‘위안부 손배소’ 승소
판결 인정 않는 日 항소 안 할 듯
2015 위안부 합의 인정한 정부
구체적 해법 내놓고 협의 나서야
“곤혹스럽다.” 지난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판결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현재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식에서 보이는 것처럼 올해도 한·일 갈등의 해결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으며, 이에 대해 14일 이내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으면 1심 결과가 최종 결과가 되고, 그 시점이 바로 내일(23일) 0시이다. 당초 ‘주권면제’(한 나라의 법원이 다른 나라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 원칙을 들어 재판을 부인해 온 일본 정부가 항소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한·일 관계에 또 한 번의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판결 이행을 위한 자산압류, 현금화 절차 등은 지난 2018년 10월 강제동원 판결 이후의 과정과 유사하게 진행될 것이나, 위안부 문제가 주는 외교적 충격과 영향은 강제동원 문제와 다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강제동원 문제와 달리 위안부 문제는 부족하게나마 지난 수십여년간 양국 정부에서 그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대 각 정부의 노력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양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인데, 사안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주권면제’원칙, 그리고 판결에 따른 일본 정부재산 압류 등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될지 국제법적으로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사안은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판결 당일, ‘2015 위안부 합의’를 “상기한다”는 외교부의 고민을 담은 애매한 표현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입을 통해 “인정한다”로 명확해졌으나, 여전히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형해화(形骸化)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합의’의 인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제 해결을 위한 어려움이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입장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난 수년간 이 문제는 사실상 방치됐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한·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우리 정부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신중하고,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직접적이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단기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중장기적 해법을 모색하면서 관계 회복을 위한 우회적 방법이 아닌, 갈등의 핵심에 직면하고,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지 표명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둘째,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논리적 일관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역대 우리 정부가 기울여온 노력을 바탕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리와 일관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서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셋째, 갈등 사안에 대한 분리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한·일 간에는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문제, 수출규제 등 다양한 갈등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일각에서는 모든 갈등 사안을 한번에 풀 수 있는 양 정상의 결단력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각 사안의 전개과정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양 정상의 결단을 위한 양국의 국내정치적 기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가능한 부분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 점진적인 관계 회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2021년 01월 21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헤럴드경제] 202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