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경험치’ 무장한 북한군, 쿠르스크 전장 판도 바꿨다

왜소한 체격과 나약함이란 선입견이 앞섰다. 6개월 전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러시아 땅에서 목격된 북한군에 대한 국내외의 첫인상이었다. 우리 당국자나 전문가들 대부분은 북한군이 현대적인 전쟁에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파병은 자살행위라며 평가 절하했다. 실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현지 적응 훈련을 거쳐 전투에 참전한 지난해 12월 이후 한 달 남짓 동안 3000명 안팎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관측이 나오며 이런 평가는 사실인듯했다. 생포된 북한군 포로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일선에 내몰렸는지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북한군을 ‘간단히’ 봐선 안 된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간방패로 나선 북한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은 명운을 건 도전이었다. 자칫 러시아의 불만이 나올 수 있고, 국제적으로도 웃음거리가 될 수 있어서다. 따라서 김정은 입장에선 어떤 부대를 보낼지 딜레마였을 것이다. 한국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방 병력을 빼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기량이 떨어지는 후방의 보병사단에서 병력을 보낼 수도 없었기에 김정은이 선택한 게 폭풍군단과 정찰총국 소속 부대다.

지난해 10월 북한군이 처음 러시아에 도착해 현지 적응 훈련을 할 때 함께 싸워야 할 러시아는 북한군을 환영하지 않았다. 인종적인 편견과 언어 소통이 불가능한 군대(북한군)가 무슨 싸움을 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었다. 일각에선 북한군을 왜 데려왔냐는 불평도 나왔다. 북한군의 탈주나 심지어 절도 행위들이 보도되면서 북한군에 대한 이미지도 바닥이었다. 그래서 북한군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러시아군은 북한군에 우크라이나군의 화력에 노출된 개활지를 돌격하라면서도 화력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북·러 군사협력이 삐걱거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북한군은 병력 한 명, 한 명을 쫓아와 공격하는 우크라이나의 드론에 속수무책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북한군에 대한 드론 공격 영상을 공개하면서 전과를 자랑하고, 러시아와 북한의 사기를 꺾으려 했다. 지난 1월 우크라이나는 북한군이 대규모 사상자를 내면서 전장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북한군은 인간 방패 수준에서 버려진 존재 같았고, 북한의 전쟁 개입은 실패처럼 보였다.

 

“자폭할지언정 포로 되진 않겠다”

하지만 전열을 정비하고 전장에 다시 돌아온 북한군은 달라진 모습이었다. 2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파국을 맞는 틈을 타 러시아는 쿠르스크 지역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돌아온’ 북한군이 이 공세를 주도했다. 러시아의 화력 지원을 받아 드론 공격을 피해가며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를 공격하고 확보하는 데 북한군이 앞장선 것이다. 지난달 10일을 전후해 러시아는 핵심 요충지인 쿠르스크 수자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은 군사 정찰 정보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종전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차원이었다. 현대전은 정보전인데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정보를 활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세가 ‘성과’를 낸 데는 북한군의 역할이 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군은 비교적 잘 훈련돼 있고, 유능한 전력”이라며 “주로 보병 전력이며, 모든 면에서 볼 때 그들은 능력이 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목격하는 건 그들이 분명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평가를 흘려 들어선 안 된다.

실제로 북한군은 후퇴했던 1개월 남짓 동안 부대를 다시 편성했다. 이전 자신들의 전술을 분석하고 드론 등 첨단 무기에 맞서는 ‘돌파구’를 모색했다는 얘기도 미 국방부 주변에서 나온다. 러시아군의 일부로 전투에 참여하던 것과 달리 현재는 러시아의 화력 지원 속에 북한군이 독자적인 지휘권으로 전투 중이고, 드론 공격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피해를 대거 줄였다고 한다. 무모하게 전장에 뛰어들었던 북한군이 현대전에 적응을 한, 일종의 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참전 초기 한 달 동안 3000여명 가까이 피해를 보았지만, 최근 두 달 동안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2000명 전후의 사상자 발생에 그쳤을 것이라는 추정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명령을 완수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조차 없다”라거나 “자폭할지언정 포로가 되진 않겠다”는 병사들의 정신 전력도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다.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결과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던 북한군의 경험은 북한군 전체의 전략 전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군 정보 수집, 발등의 불

우리 군은 드론봇과 유무인 복합전투를 외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한·미 연합연습에서는 4족 보행 로봇에 소총탑재 드론까지 동원하면서 무인무기체계의 역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막상 일선의 육군 부대 중에서 드론을 맘대로 운용하는 부대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처럼 분대 단위로 드론을 사용하고, 총알과 포탄 대신 자폭 드론을 사용하는 것은 아직 우리 군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그간 우수한 첨단 과학 기술과 장비의 우위를 자랑하면서 북한군을 비웃었다. 그러면서도 천안함 폭침 사건을 비롯해 북한군에게 공격을 당하면 예산이나 인력 부족을 변명하기 바빴다. 우리가 처절한 현대전의 현실을 외면하는 사이에 북한군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불법적인 전쟁에 파병했다는 비판과 인명을 대가로 한다는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을 토대로 속도감 있는 변화에 나설 게 뻔하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이 우리 군에 또 다른 발등의 불을 던진 것이다. 혁신을 거부하면 패배뿐이다. 이제 군은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는 것 뿐만 아니라 재래식 군사 경쟁에서도 버거워질 수 있다는 상정을 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 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냉철하게 분석하는 게 먼저다.

 

* 본 글은 4월 4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문화일보] 북한군은 현대화, 국군은 훈련 부족

2025년은 북한에 결실의 해이다. 북한은 2022년부터 러시아에 탄약 수출을 시작해 2023년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상회담 후 노골적인 거래에 나섰다. 북한이 전시 비축탄까지 수출하면서 러시아를 지원하자, 러시아는 유엔 대북 제재 무력화와 북러 군사동맹으로 화답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를 점령하자 북한은 기어이 전쟁에 참전해, 초기 파병부대의 커다란 희생을 교훈 삼아 올 3월부터 승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올해 러시아는 북한의 노력과 희생을 착실히 보상할 것이다.

올해는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모든 성과를 입증하는 해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가속해 전술핵탄두, 극초음속미사일, 핵어뢰, 미사일 잠수함 등을 차례로 선보였고,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공격적인 핵 태세까지 과시했다. 이러한 성과를 종합하고 8차 당대회의 목표를 달성했음을 과시해 내년의 9차 당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북한이 올해 반드시 마무리할 과제이다.

이제 북한은 핵개발을 마무리하면서 재래무기 현대화까지 추구한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초부터 꾸준히 전차·자주포·방사포 등 지상 장비는 물론 해군 함정까지 현대화하려고 했지만, 재원·자원과 핵심 기술의 부재로 실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북러 밀착 본격화로 러시아가 지원에 나서면서 북한군 현대화는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한은 과거 홀로 추진할 수 없었던 공군과 해군 분야에서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 공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남포에서 4000t급 호위함과 함께 핵잠수함을 건조 중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군에서는 최근 조기경보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호위함과 조기경보기에 장착될 고성능 레이더와 통제 장비, 잠수함용 원자력 추진 체계는 북한 홀로 개발이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북한군 현대화에 적극 협력해 기술과 장비를 제공하고 있음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군의 미래전 준비 태세이다. 북한군은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무려 4000여 명의 희생을 기록하면서 현대 전쟁을 몸소 체험했다. 지난 3월 공세에서 북한군은 러시아의 광케이블 자폭 드론 지원 아래 공세를 주도해 우크라이나군의 핵심 거점도시 수자를 점령하면서 이제 현대 드론전쟁에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부터 자폭 드론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북한은 단순히 러시아제 카피가 아니라, 이를 더욱 발전시킨 자폭 드론들을 선보였다. 특히,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실전적 성능을 강화한 북한제 드론은 러시아에 수출되는 것은 물론 북한군의 주요 전투 장비로 보급돼 가성비 전쟁을 주도할 것이다. 북한군의 혁신과 진화가 눈앞에 있다.

가장 혁신을 잘하는 이는 당장 혁신하지 않으면 죽는 자들이다. 북한은 그런 절박함으로 남의 전쟁에 참전하고 핵과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는 국방혁신 4.0과 유무인 복합전투라는 미래를 외치지만, 구호는 있으되 절실함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의 방패’(FS) 한미 연합연습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잇달면서 국군의 준비가 부족함을 보여줬다. 훈련을 실전처럼 절실히 준비하지 않으면 북한군에도 밀릴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 본 글은 4월 1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아산정책硏, ‘2025년 한국의 대(對)중동정책 제언: 방산·원전 협력과 전후 재건 기여’ 이슈브리프 1일 발표

보도자료 - Pres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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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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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硏, ‘2025년 한국의 대(對)중동정책 제언:
방산·원전 협력과 전후 재건 기여’ 이슈브리프 1일 발표

 
아산정책연구원은 4월 1일 장지향 수석연구위원의 이슈브리프 ‘2025년 한국의 대(對)중동정책 제언: 방산·원전 협력과 전후 재건 기여’을 발표했다. 장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중동 정세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는 2025년 우리의 대(對)중동 정책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람직한 중동 정책의 핵심은 국가별로 차별화된 접근을 전제로 하되, 전체적으로는 방산 및 원전 분야의 협력 강화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의 전후 재건 참여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산유국과는 방위산업과 원자력 발전소 개발 협력에 집중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이어, 방산과 원전은 한국이 전략적 중대 과제로 키운 덕분에 국제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갖춘 분야이며, 동시에 걸프 산유국이 미국의 탈중동 정책과 이란의 군사적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자립화와 기술 습득을 적극 추진하는 핵심 산업이기도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양측의 이해가 맞물리는 접점을 활용해 실질적인 협력을 추진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또한 가자지구의 전후 재건 기여는 한국과 중동 국가 모두가 각자의 국가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수행하고 국제적 리더십을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역내 질서는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군사작전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으로 이란과 시아파 진영은 잠시 위축되는 한편 걸프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아랍 수니파 세력과 이스라엘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한국은 전략적 기회와 외교적 존재감을 선점할 수 있는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슈브리프 관련 문의:
장지향 수석연구위원 02)3701-7313, jhjang@asanin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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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의 대(對)중동정책 제언: 방산·원전 협력과 전후 재건 기여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중동 정세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는 2025년 우리의 대(對)중동 정책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람직한 중동 정책의 핵심은 국가별로 차별화된 접근을 전제로 하되, 전체적으로는 방산 및 원전 분야의 협력 강화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의 전후 재건 참여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산유국과는 방위산업과 원자력 발전소 개발 협력에 집중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

방산과 원전은 한국이 전략적 중대 과제로 키운 덕분에 국제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갖춘 분야이며, 동시에 걸프 산유국이 미국의 탈중동 정책과 이란의 군사적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자립화와 기술 습득을 적극 추진하는 핵심 산업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은 양측의 이해가 맞물리는 접점을 활용해 실질적인 협력을 추진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또한 가자지구의 전후 재건 기여는 한국과 중동 국가 모두가 각자의 국가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수행하고 국제적 리더십을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역내 질서는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군사작전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으로 이란과 시아파 진영은 잠시 위축되는 한편, 걸프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아랍 수니파 세력과 이스라엘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한국은 전략적 기회와 외교적 존재감을 선점할 수 있는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중동, 특히 걸프 산유국은 한국의 최대 석유 공급처이자 구매력 높은 수출시장이다. 한국은 이들 나라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산업 다각화와 사회 개방화 및 외교 안보 다변화 개혁에 필수 기술과 발전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최근 세계 9위 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며 중동은 세계 무기 거래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요 시장이다. 한국 전차와 포병 전력은 UAE, 카타르와 현지 연합훈련을 통해 국산 무기체계를 소개해 왔다. 2024년 한국-걸프협력회의(GCC) 자유무역협정(FTA)과 한국-UAE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로 무기 수출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걸프 산유국과의 방산 협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한국은 UAE 바라카 원전 성공을 기반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의 원전 프로젝트 수주를 추진해 왔으며, 2025년 한미 원전 수출 협력 약정 체결로 중동 원전 시장 진출을 가속할 전망이다. 한편 한국은 그간 중동에 대한 원조와 인도적 지원을 늘려 왔으나 그 규모가 여전히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 평균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특히 대(對)팔레스타인 인도주의 지원은 걸프 산유국은 물론 이스라엘과 이란, 미국이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신경 쓰는 의제이기에 한국은 가자지구 재건과 평화 구축 활동에서 역할을 더 확대해 신뢰받는 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게 중동은, 중동에게 한국은
 
1970~80년대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은 중동, 특히 아랍 걸프 산유국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걸프 산유국에서는 대규모 건설 시장이 형성되었고 한국 기업들은 도로, 항만, 기타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는 계약 다수를 따냈다. 건설 사업을 통해 유입된 대규모 외화는 경제 도약의 초기 자본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한국은 수출 지향 전략을 통해 세계 경제의 핵심 일원이 되었고, 이제 최첨단 기술 강국으로 변모했다.

특히 걸프 산유국은 한국의 최대 석유 공급처이면서 동시에 높은 구매력을 갖춘 주요 수출시장이다. 한국은 세계 7위 석유 소비국이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존 러시아산 석유를 중동산으로 대체하면서 중동 의존도는 72%까지 늘어났다. 주요 수입국은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등이고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에 사용된 금액은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의 약 17.6%를 차지한다.1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등 여섯 개 산유국으로 구성된 GCC와는 2023년 12월에 FTA를 맺어 경제협력의 절정기를 맞았다. GCC는 한국산 자동차, 무기류, 조선, 기계류, 의료기기, 화학제품 등 품목의 76%에 이르는 관세를, 한국은 GCC산 석유제품, 천연가스 등 품목의 89%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거나 감축하기로 해 여러 분야에 걸쳐 양측 간 교역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앞서 같은 해 10월에는 한국-UAE CEPA가 체결되기도 했다. CEPA는 FTA와 비슷한 무역협정의 하나로 양국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에 더해 포괄적 협력 강화를 포함한다. CEPA의 체결로 한국과 UAE는 주요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고 나아가 에너지, 바이오, 디지털, 스마트팜 등 14개 특정 분야에서 협력을 밝혔다.2

한편 한국은 중동 국가들이 정권의 사활을 걸고 시행하는 산업 다각화와 사회 개방화 및 외교 안보 다변화 개혁에 다양한 기술과 발전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등 걸프 산유국과 태양광, 수소, 풍력 등 재생에너지, 친환경 스마트 시티, 바이오, 디지털 전환, 첨단 제조 및 관광 부문에서 협력을 확대해 왔다. 더불어 한국은 빠르고 놀라운 산업화로 개발도상국의 성공 모델을 제시하며, 중동 여러 국가에게 개혁과 개발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국가와 민간기업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자동차, 전자, 조선과 같은 핵심 산업의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대규모 산업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인적자원 육성과 기술 혁신을 위해 교육과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노동 집약적 제조에서 첨단기술로 핵심 산업을 전환하고 경제를 다각화했다. 걸프 국가들은 비석유 부문 육성과 글로벌 시장과의 연결을 위해 한국의 성공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3 또 탈이슬람 개혁을 추진하지만, 서구화나 사회주의를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 걸프 국가들에게 ‘한국 모델’은 공동체, 도덕, 윤리 등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시장 경제를 발전시킨 이상적인 유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한국은 2010년대부터 중동 지역에서 평화유지군 활동과 대테러 작전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 왔다. 한국 평화유지군은 2007년 레바논 동명부대를 시작으로 2009년 아덴만 청해부대, 2013년 남수단 한빛부대까지 지속해서 임무를 수행하며 국제 평화와 안정을 지원하고 있다. 2007년 7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01호에 따라 처음 파병된 동명부대는 한국의 평화유지군 역사상 최장기 파병 기록을 가지는 전투부대로 레바논에서 의료지원, 공공시설 보수, 학교 시설 개선 등 인도적 지원사업은 물론 태권도와 한국어 수업 및 현지 여성의 자립 프로젝트를 운영해 왔다. 또한 한국의 평화유지군 활동 중 큰 주목을 받은 사례는 2004~2008년 이라크 아르빌에 파견된 자이툰부대로 중동에서의 대규모 평화유지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쌓았다. 2020~2021년 한국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규모에서 세계 10위를 차지했고 2022~2024년 유엔 정규예산 및 평화유지활동 예산 분담률은 13.5%가 올라 세계 9위 수준으로 상승했다.4

2023년 10월 7일 이슬람 급진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을 때 한국은 민간인 무차별 살상과 인질 사태를 규탄했다. 이어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군사 보복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하며 국제법에 따른 민간인 보호를 촉구했다. 2024년 4월 유엔 안보리가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을 총회에 권고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자 한국은 15개 이사국 중 다른 11개국과 함께 찬성표를 던졌다. 결의안은 결국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으나 우리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 열망에 공감하고 두 국가 해법 지지를 재확인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7월에는 한국 외교부가 서안지구 내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대규모 토지를 국유화하려는 이스라엘의 조처에 대해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한국은 인질과 수감자의 조속한 맞교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철군, 전후 재건 등을 포함한 미국의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안을 지지했다.

 

한국-중동 협력의 핵심 중점 분야: 대(對)걸프 방산과 원전 협력

 
방산 협력
 
한국은 최근 세계 9위 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며 2027년까지 4위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표 1]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의 방산 수출은 2022년 크게 도약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24년 방산 수출액은 95억 달러로 전년 대비 감소하였지만, 이는 일부 대형 수출 계약이 협상 연장 등의 이유로 2025년으로 이월되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처럼 보인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는 평균적으로 약 30억 달러 수준의 수출 규모를 유지했다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4년간의 수출 규모는 평균 약 119억 달러 수준으로 이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약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 방산의 눈에 띄는 부상은 정부의 K-방산 전략 사업화 추진, 한국 무기의 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과 신속한 납품 역량,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무기 수요 증가 등이 그 배경이다.

 

[표 1] 국내 방위산업 2012~2024년 수출 규모 변화

(단위: 억 달러)

표1
자료: 한국방위사업청 https://www.dapa.go.kr
 

한편, 중동 국가들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 무기 거래에서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구매자였다. 중동 지역은 한국 방산 수출에서 약 20%를 차지하며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중동으로의 무기 수출은 10배 가까이 증가했다.5 현재 한국의 방산 관련 수출 통계는 접근 제한이 있어 전체 내용을 세부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유엔 국제무역 통계 데이터(UN Comtrade Database)에서 검색할 수 있는 무기·총포탄 및 부속품(HS코드 제93류) 관련 수출 데이터를 통해 중동 지역으로의 방산 수출이 얼마나 확대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표 2]를 살펴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중동으로의 수출 비중이 증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22.5%에 그쳤던 중동 수출 비중은 2018년 69.2%까지 약 3배 이상 증가한 모습이고, 10년 전체로 보면 중동 비중이 40.5%로 전체 수출 대상 지역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전체 방산 수출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제한적 상황이지만 한국 방산 수출 규모의 상승과 2010년대 중반 이래 늘어난 대(對)중동 무기·총포탄류 수출 규모를 연결해 보면, 앞으로 한국 방산 수출에서 중동의 입지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표 2] 한국의 무기·총포탄류에 대한 대륙별 수출 금액 추이

(단위: US$)

표2
Source: UN Comtrade Database https://comtradeplus.un.org
 

특히 한국은 천궁Ⅱ, K9 자주포, K2 전차 등의 대(對)중동 수출을 대상국의 교육과정과 연계해 기술 이전과 인적자원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며 산업 협력 시범 사업으로 확장해 왔다. 이는 여러 걸프 산유국이 바라는 자국 방산 역량 강화 전략과 맞아떨어진다. 2024년 한국-GCC FTA와 한국-UAE CEPA가 체결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중동 주력 수출품인 무기류 대부분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걸프 산유국을 향한 무기 수출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중동, 특히 걸프 산유국은 2010년대 후반부터 외교 안보 다변화에 맹렬히 나서고 있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핵 개발과 역내 무장 프록시 육성을 통해 군사 모험주의와 팽창주의의 야심을 드러내는 데 반해 최대 우방국인 미국은 탈중동 정책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걸프 산유국에게는 대대적인 탈석유·탈이슬람 개혁에 성공해 왕실을 보호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임에도 이란은 역내 불안정을 조장하고 미국은 인도 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에만 매달려왔다. 따라서 불안에 휩싸인 이들 걸프국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미국 무기체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고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걸프 산유국은 대외정책 다각화의 방법으로 ‘룩 이스트’라는 아시아 지향 정책을 선언해 이들만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물론 최근 헤즈볼라의 궤멸, 하마스의 와해,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독재정권의 몰락 등 친이란 프록시인 ‘저항의 축’이 잇따라 붕괴하면서 이란은 당분간 팽창주의 행보를 자제하고 한발 물러서 전략적 인내를 감내할 것이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비롯된 경제난과 공포 철권통치가 가져온 민심 이반 때문에 이란의 지배 연합은 내부 체제 단속에 더 힘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란의 강경파 지배층이 이슬람공화국의 국시인 반미·반이스라엘과 이슬람 혁명 수출 및 역내 헤게모니 장악을 포기했을 리는 없다. 이란은 단기적으로 위험 회피 전략을 취하면서 프록시의 재건을 꾀하고 러시아·중국 반미연대와 더욱 밀착할 것이다. 동시에 핵개발에 집중해 대미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삼을 수도 있다. 현재 이란 당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투명성 검증 요구에 불응하고 있고 협력 관련 실무 논의도 중단된 상태다.

이에 UAE는 자국 방위산업의 자립도를 높이고자 2019년 엣지(EDGE) 그룹을 설립해 첨단기술의 국산화와 무기체계의 현지 생산 목표를 밝혔다. 2022년에는 타와준 위원회(Tawazun Council)에서 경제 분야를 제외하고 개편해 방산 투자 및 파트너 국가와의 전략적 안보 협력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같은 해 UAE는 약 4조8천억 원 규모의 국산 요격미사일 시스템 천궁Ⅱ의 수입 계약을 맺었다. 2023년에는 우리와 전략적 방산 협력 MOU를 체결해 K2 전차와 KF 21 항공기 등 다양한 무기 시스템에도 관심을 보였다. 2024년 7월에는 한국, 미국, UAE가 3국 육군과학화 전투훈련에 처음으로 함께 참여했다. 한국군 6사단 초산여단, 주한 미군 2사단 및 한미연합사단 예하 1개 스트라이커대대, UAE 1개 보병중대 소속 3천여 명이 강원도 인제군에서 11일간의 일정으로 연합작전의 수행 능력을 키우는 훈련을 진행했다. 이 훈련을 통해 UAE 군은 한국군의 K1E1 전차, K200 장갑차, K55A1 자주포, 공격·기동 헬기, 드론 및 무인기 등 전투 장비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었다. 2025년 2월에는 육군 기계화부대가 UAE에서 열흘간 K2전차와 K9A1 자주포 등을 투입해 UAE군과 연합훈련을 진행했다. 한편, 육군의 전차와 포병 전력이 현지 연합훈련을 실시한 건 2024년 10월 카타르군과의 훈련이 최초였다. 당시 우리 K2 전차와 K9 자주포 부대 100여명이 카타르에서 2주간 카타르군과 함께 야외 기동훈련을 마쳤고 특히 카타르군을 상대로 국산 무기체계에 대한 성능 설명과 탑승 체험을 시행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년 개혁 개방의 야심작인 ‘비전 2030’ 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까지 국방비 지출의 50%를 현지화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7년에 국영 방산 기업인 SAMI(Saudi Arabian Military Industries)를 출범시켰고 2030년까지 세계 25위의 방산 기업으로 키운다는 목표로 연구개발과 기술교육 및 인재 양성에 집중해 현지 생산화에 매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2022년도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지출 규모는 7.4%로 34%인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할 만큼 국제 방산 수입의 큰손이다.6 2023년 한국의 대(對)사우디아라비아 무기류 수출 규모는 2억 8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4% 증가했다. 2024년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은 약 4조 3천억 원 규모의 천궁Ⅱ의 수입 계약을 마무리했고, 이어 한화, LIG넥스원, 풍산은 발사대와 탄약에 대한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중동은 물론 미국도 한국을 포함한 동맹 우방국에게 중동 지역 안정을 위한 해상 안보 협력을 바라고 있다.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은 글로벌 주요 물류 경로이자 중동 에너지의 핵심 수송로이다. 이란의 프록시인 예멘 후티 반군이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후 이스라엘과 무관한 상선들까지 무차별 공격하면서 글로벌 해운회사들이 우회로를 택해 공급망 차질 우려가 커졌다. 이에 미국은 항해 자유 보호와 경제 안보를 위해 국제해양안보구상(The International Maritime Security Construct, IMSC)을 구축해 동맹 우방국의 참여를 독려해 왔다. 2020년 미국은 한국에 IMSC 가입을 요청했으며, 한국은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을 아덴만에서 약 3.5배 확대하고 연락 장교 두 명을 IMSC에 파견했다. 일본 역시 해상자위대를 독자적으로 파견하며 직접적인 참여는 유보해 왔다. 향후 미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를 요청할 경우, 한미일 3국은 중동에서도 자유주의 질서 수호를 위한 안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2024년 4월 한국 해군, 미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는 3자 해상 훈련을 시행한 바 있으며, 이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의 연대가 강화되는 중동 해상에서도 협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원전 협력
 
한국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국가적 중대 과제로 내걸고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금융기관, 민간기업 등이 참여하는 ‘팀 코리아’를 강화해 원전산업의 재도약을 선언했다. 걸프 산유국 역시 원전 개발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전례 없는 개혁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는 동시에 탄소중립을 선도해 왕실의 품격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크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에 따르면 2030년 중동의 원자력 발전 용량은 2023년 생산량 대비 10% 증가한 580억 kWh로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7 이에 더해 우라늄 농축에 집착하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핵심 원자력 기술을 확보할 필요도 있다.

한국은 2009년부터 UAE에서 최초의 사막형 발전소인 바라카 원전 1~4호기를 설계부터 가동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UAE는 한국과 함께 제3국 원전 시장 공동 진출에 대한 포부를 종종 밝혀왔고 2024년 5월에는 한국전력공사(KEPCO)와 UAE의 원자력공사(ENEC)가 제3국에서의 원전 프로젝트 공동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8 UAE에서의 성공을 토대로 한국은 2022년 이집트에서 2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엘바다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해 한수원과 두산 에너빌리티 등이 시공과 기자재 공급처로 참여 중이다. 곧 대규모 원전 건설에 착수할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한국의 UAE 원전 성공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9 한국은 2025년 상반기에 입찰이 시작될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2기 프로젝트에서 이미 우선권을 받으며 수주 가능성을 높여 놓았다. 2011년 한-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협력협정이 체결된 후 양국은 2015년 스마트원자로 사업을 함께 추진했고 2018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전 설계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나아가 2025년 1월 한국과 미국이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원자력 수출 협력 약정에 서명해 ‘팀 코러스(KORUS)’를 구성하면서 한국의 중동 원전 사업 진출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한미 양국의 원전 수출 파트너십은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원전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자 윤곽을 빠르게 잡아갔다. 앞으로 양국의 파트너십 아래 중동 시장에서는 한국이 ‘한국형 원전’으로 진출 주도권을 잡고 유럽 시장에서는 미국이 역할을 주도하는 협력 분담을 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10

과거 한국 정부는 국내 원전의 폐지 정책과 이에 따른 원전 엔지니어와 전문가의 해외 유출로 중동 및 걸프 산유국에서 한국의 원전 사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2024년 IAEA를 비롯해 한국과 미국, 일본을 포함한 22개국은 원자력 르네상스 시기를 맞아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을 2010년 대비 3배 더 늘리기로 했다. 또한 유럽연합은 2023년에 친환경 분류 체계에 원자력을 포함시켰고 프랑스와 영국은 탈원전 포기를 선언했다. 원전 건설을 금지했던 스웨덴도 2045년까지 원전 10기 건설을 밝혔으며 일본은 원전 수명 규제를 없애 60년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11 한국도 국제사회의 흐름에 발맞춰 원전의 중요성과 중동과의 협력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나가며: 한국-중동 협력에서 개선되어야 할 분야, 가자지구 재건 기여

 
원조 수혜국에서 기부국으로 전환한 한국은 책임감 있고 신뢰받는 글로벌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자 그간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확대해 왔다. 2023년도 ODA 지원액은 2022년보다 11.4% 증가했고 2024년도의 ODA 예산은 역대 최대 폭인 31.1%로 확대한 규모였다. 2025년도 ODA 예산은 2024년 대비 8.5% 증가한 약 6조 7,972억 원 규모로 편성했다. 국내 기업들도 미래에 대비한 장기 투자라는 관점으로 인도적 지원을 늘려왔고 2023년 유엔 난민기구에 대한 시민 모금 등 민간의 기여가 정부 기여를 뛰어넘는 4천 9백 만 달러를 기록했다.12

대(對)중동 원조 정책과 관련해 한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시리아, 예멘, 팔레스타인, 이라크에 인도적 지원금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터키, 레바논, 요르단의 난민촌을 지원했으며 국내에 들어온 시리아와 예멘 출신 난민에게 인도적 지위를 부여하는 중요한 조처를 했다. 특히 2008년에 코이카 팔레스타인 사무소를 설립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위한 인도주의 정책을 확대했다. 2013년 서안지구에 국립 약물중독재활 치료센터와 바이오 연구센터 건립을 착수하고 의료장비를 제공했으며, 2016년에는 ‘소녀들을 위한 더 나은 삶(Better Life for Girls)’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건 지원과 교육을 시행했다. 2018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산하 외교부의 행정서비스 시스템 구축을 위한 MOU를 체결해 공무원 역량 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9년에는 헤브론에 위치한 폴리테크닉 대학교 바이오 연구센터를 열었고, 2020년에는 700만 달러 규모의 양자 무상협력 결과로 라말라에 공무원 교육원을 세웠다.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인도주의 긴급 지원을 시행했다.13 한편 국가가 문화유산을 스스로 보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지속 가능한 유산 개발 역량 강화 사업의 방편으로 이집트의 최대 규모 신전인 룩소르 라메세움 복원 원조 사업 등에도 나섰다. 이에 문화재청도 2024년 ODA 사업 관련 예산을 2023년 대비 173% 증가한 130억 8천 800만 원으로 증액했다.14

2023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한국은 중동 내 인도적 지원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전쟁 직후 2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데 이어 2024년 4월 가자지구의 상황 개선을 위해 800만 달러 추가 지원을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 시작되자 3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금을 레바논에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중동에 대한 원조와 인도주의 정책은 여전히 취약하다. 2023년도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총소득 대비 ODA 비중은 0.17%로 회원국의 평균인 0.37%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ODA 규모는 일본의 약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대(對)중동 ODA 규모는 더 작다.15 2024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일본을 앞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경제력과 국격에 걸맞은 기여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한국의 ODA 지원은 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집중되어 있고 중동 국가에는 위기 시 긴급 구호의 형태로 제공되는 반면, 일본은 1970년대부터 다져온 중동 국가와의 경제협력 사업과 더불어 원조정책 및 재건 지원 프로젝트도 활발히 벌여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건설해 왔다.16

대(對)팔레스타인 인도적 지원과 재건 사업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를 포함한 걸프 산유국이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위상을 유지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신경 쓰는 의제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치열하게 벌이는 역내 경쟁 속에서도 정당성 확보와 직결된 주요 사안으로 민심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편 한국은 중동 방산과 원전 시장에서 일본보다 더 높은 수출 실적을 내면서 이러한 경제적 성과에 비해 정작 원조나 인도주의적 기여가 적은 점은 이들 나라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평화헌법과 무기 수출 규제 원칙으로 인해 방산 수출에 제약을 받아왔고, 최근 들어 관련 규제를 일부 완화해 글로벌 방위산업 이전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중동 방산 시장에서는 당분간 한국의 우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이 ‘경제적 이익은 앞서가면서 인도적 책임에는 소극적이다’라는 인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와 지원을 늘려야 한다. 동시에 재건 기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가자지구 내 급진주의 무장 조직이 아닌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직접 돌아가도록 투명한 외교적 소통과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해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를 불식하고 원조의 실효성과 신뢰도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폐지하는 수준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해외원조 프로그램 대부분을 중단시켰다. 이러한 기조는 팔레스타인 정책에도 반영되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가자지구를 인수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가자 재건 구상’을 제시하면서도 인도적 지원을 위한 재원은 물론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주를 위한 자금도 미국 정부가 조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가자지구 재건 과정에서 자국의 직접적 재정 투입보다는, 주요 동맹 우방국이 보다 큰 기여를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은 그동안 중동 대부분의 국가들과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두 국가 해법과 항구적 평화의 필요성에 공감해 왔다. 이제 한국이 국가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고, 중동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글로벌 리더십을 공유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한 원조와 기부를 확대하고, 전후 재건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하지만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석유 수출 확대 정책을 펼치면 한국 정부는 미국산 원유의 비중을 늘려 중동에 편중된 원유 도입처를 다변화하고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낮추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H. Yoo, 2024, “Energy sector in South Korea – Statistics & Facts,” Statista, September 19.
  • 2. 강금윤, 2024, “한-UAE CEPA 주요 내용 및 우리 수출기업 인식 조사,” KITA 통상리포트 9호.
  • 3. Ji-Hyang Jang, 2024, “South Korea-GCC Ties : Dynamic Reciprocity” Commentary by Istituto per gli Studi di Politica Internazionale, June 18.
  • 4. 외교부, 2021, “보도자료: 2022-24년 우리나라의 유엔 예산 분담률 결정,” 12월 28일; Ji-Hyang Jang and Joseph A. Kéchichian, 2021, “Uncovering a Global Reputation: The ROK’s Stabilization Policy and Development Model in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Asan Issue Brief 2021-4.
  • 5. 대한상공회의소, 2023, “보도자료: 중동 주요국과의 경제협력 과제 연구,” 10월 23일; Pieter D. Wezeman, Katarina Djokic, Mathew George, Zain Hussain, and Siemon T. Wezeman, 2024, “Trends in International Arms Transfers 2023,” SIPRI Fact Sheet, March 2024.
  • 6. Agnes Helou, 2023. “Saudi Arabia Military Industries wants to be top 25 global firm: CEO,” Breaking Defense, June 21; Nan Tian, Diego Lopes Da Silva, Xiao Lorenzo Scarazzato, Lucie Beraud-Sudreau , and Ana Caolinda de Oliveira Assis, 2023, Trends in World Military Expenditure 2022,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Report, April 23.
  • 7. A Mycle Schneider Consulting Project, 2024, The 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November 7.
  • 8. “Korea and UAE agree to expand nuclear cooperation,” World Nuclear News, January 16, 2023; “KEPCO, ENEC to jointly promote overseas nuclear projects,” World Nuclear News, May 30, 2024.
  • 9. Osamah Alsayegh, 2024, “Ensure GCC’s Energy Future by Reconsidering Joint Nuclear Plant Collaboration,” Issue Brief of Rice University’s Baker Institute for Public Policy, December 19.
  • 10. Lami Kim, 2023, “Nuclear Belt and Road and U.S.-South Korea Nuclear Cooperation,” CSIS brief, April 24.
  • 11. Simon Johnson, 2023, “Sweden plans new nuclear reactors by 2035, will share costs,” Reuters, November 16.
  • 12. 국무조정실, 2024, “내년 ODA 규모 8.5%↑…“글로벌 중추국가 책임 다할 것,”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6월 20일.
  • 13. 차승만, 장은정, 김명진, 2016,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Better Life for Girls): 소녀들은 마음껏 꿈을 꿀 권리가 있다』, 한국국제협력단 국제개발협력 학술지; UNICEF, 2021, “Press release: UNICEF AND KOICA sign a memorandum of understanding to improve education quality in the west bank,” October 14.
  • 14. 국가유산청, 2024, “보도자료: 2024년 문화재청 주요정책 추진계획,” 2월 23일.
  • 15. Donor Tracker, 2024, “Donor Profile: South Korea,” Donor Tracker by SEEK Development, December 20; 국무조정실, 2023, “보도자료: 개발협력 7조원 시대 코 앞에 정부, 내년 ODA 규모 6조 8,421억원 요구액 의결 ‘글로벌 중추국가 도약’ 위해 사상 최고액 기여키로,” 6월 30일.
  • 16. 외교부, 2023, “보도자표: 2022년 한국 공적개발원조(ODA) 27.9억불 지원,” 4월 13일;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2022, “White Paper on Development Cooperation: Japan’s International Coop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