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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새로운 시리아를 둘러싼 각축전

올 4월 한국은 유엔 193개 회원국 중 마지막 미수교국이던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로써 북한을 제외한 모든 유엔 회원국과 수교를 맺으며 우리 외교 지형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특히 이번 수교는 북한 정권과 닮은 꼴이던 바샤르 알아사드 세속 독재가 반군의 기습 공세에 극적으로 무너지며 가능해진 일이라 더 남다르다. 한국과 시리아는 앞으로 깊은 협력을 약속했다.

시리아가 중동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큰 시장이 열린 거냐며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다. 그렇진 않다. 시리아의 최근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600달러로 6000달러 수준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보다도 낮다. 1970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아랍 사회주의 1인 독재를 시작해 부패 무능 통치가 본격화됐고 2000년부터는 아들 바샤르가 이를 세습했다. 긴 독재 기간 시리아는 늘 가난했고 2011년 내전과 뒤이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의 발호로 더욱 황폐해졌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공존하던 문화의 보고이자 섬세한 전통을 간직해온 나라가 지도자를 잘못 만난 비극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지중해에 접하고 튀르키예, 이스라엘,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는 중동에서 가장 전략적 가치가 높은 요충지다. 지난 3월 출범한 시리아 과도정부는 지금 그 전략적 입지를 둘러싼 외부 세력의 치열한 각축전 한가운데에 서 있다. 우선 알아사드 정권을 감싸온 러시아와 이란은 과거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 과도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며 민병대와 종교단체 채널을 유지하려 한다. 러시아는 타르투스 해군기지 임대권은 지키고 있으나 라타키아 공군기지에선 장비와 병력을 철수했다. 이란도 혁명수비대 인력을 상당수 뺀 상태다.

튀르키예는 아흐마드 알샤라 과도정부 대통령을 반군 시절부터 후원해 왔고 막강한 대통령 권한과 중앙집권체제를 지지한다. 자국과 맞닿은 국경지대에서 자치 구역을 꾸리며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계 시리아 민병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또 자국 내 시리아 난민 310만여 명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쿠르드계·드루즈계와 공통의 적을 공유하고 있어 이들 소수계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연방제를 지지한다. 무엇보다 알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이란과 ‘저항의 축’ 프록시 연대를 약화시킬 기회로 보고 이들의 인프라를 파괴해 이란-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군사 네트워크를 차단하려 한다.

사우디아라비아·UAE·카타르는 과도정부에 막대한 경제 지원을 통해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하고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이 아닌 아랍권의 입장을 투사하려 한다. 특히 사우디와 카타르는 지난 4월 시리아가 세계은행에 체납한 부채 1500만달러를 상환했고 공무원 급여 지급을 위한 재정 지원도 약속했다. 한편 미국과 유럽연합은 ISIS의 재부상과 무슬림 난민 유입을 우려해 지난 5월 시리아의 재건과 안정을 명분으로 제재 일부를 해제했다.

역내외 세력이 앞다퉈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리아에서 과도정부는 민주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무장 세력을 포용하며, 구정권의 유산을 청산해 ‘과도기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뿐 아니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제를 복구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리아 국민 다수는 알샤라 대통령을 지지하고 자유와 안보 개선을 체감하지만 경제에 대해선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국은 시리아에 책임 있는 재건 참여를 약속했고, 과도정부는 우리의 개발 경험을 배우기 위해 대표단을 곧 보내겠다고 했다. 시리아가 혼란의 이행기를 무사히 통과하길, 우리와의 협력이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 본 글은 6월 10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문화일보] 中의 서해 공세 강화와 올바른 대응

오는 15∼17일 캐나다 앨버타주의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국의 외교정책 방향에 대한 우려를 불식해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서방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주권을 경시하고 한국을 주변의 약소국 정도로 치부하는 중국의 일방적 외교 행태에 대해 합리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 우리 현실에서, 해양 안보에 관한 한 추호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양국간 외교 갈등의 원인이 된 중국의 서해 구조물들만 해도, 한·중 어업협정상 공동어로·공동관리 수역인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돼 있어 한국 어선의 항행 안전을 저해하거나 해양생물자원과 해양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데도 중국은 사전 양해조차 구하지 않았다. 중국은 2013년 최윤희 해군 참모총장이 방중했을 때 ‘동경 124도 서쪽으로 넘어와 해군 작전을 하지 말라’는 통보 식 발언을 했는데, 국제법상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자체 작전구역을 설정하고 경계선을 그은 것이다. 올해 5월에는 예고 없이 서해 3개 해역을 22∼28일 항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 항공모함까지 진입시켰다. 이는 1954년 이후 중국 외교의 기본 방침인 ‘영토 보전과 주권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 평등, 평화 공존’이라는 ‘평화 공존 5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중국의 일방주의 외교 사례는 서해에 그치지 않는다. 2016년 우리가 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사드(THAAD) 배치를 공식화하자, 중국은 이를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경제·문화 보복에 나섰다. 이러한 조치는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강대국적 사고의 전형이다. 더욱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인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긴커녕 우리의 방어적 조치를 비난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또, 2023년 4월 한·미 워싱턴선언이 발표되자 중국은 관영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워싱턴선언은 한국에 우환이 될 것’이라고 협박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는 우리 외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세계 10위의 ‘중견국’인 한국을 여전히 과거 ‘조공체제’적 인식으로 보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자주외교의 확립이 중요하다. 중국의 압박이 아닌 우리의 이익과 가치에 따라 외교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그 입장을 분명히 견지하며, 국제사회와 연대해 외교의 다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둘째, 서해 해역에 대한 실시간 감시 및 정보 분석 능력을 강화하고, 해군·공군·해경 간의 통합적 작전 수행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의 도발이나 무력시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셋째, 나아가 서해 고위도 해역에서의 한미 연합기동훈련, 대잠수함훈련, 해상차단작전훈련 등을 통해 우리도 해양 권익을 수호할 의지와 수단이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그에 걸맞은 책임과 성숙함이 요구된다. 힘에 의존한 외교는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도 이번 G7 정상회의를 통해 과거와는 다른 위상과 역량을 가진 국가임을 보여줘야 한다.

 

* 본 글은 6월 10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아산정책硏, “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중국의 지역전략과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이슈브리프 발표

보도자료 - Pres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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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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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硏, “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중국의 지역전략과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이슈브리프 발표

 

아산정책연구원은 06월 10일(화), 이동규 연구위원과 김지연 연구원의 이슈브리프 “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중국의 지역전략과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를 발표했다. 이 이슈브리프에서 저자들은 이번 러시아 전승절과 중러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확대되는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명확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 이슈브리프에 의하면, 향후 중국은 지역 내에서 러시아와의 소규모 연합훈련을 확대하며 역내 국가들의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 참여를 위축시키는 한편, 핵미사일 개발이 ‘자위적 핵억제력’을 위한 것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미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자들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중 간 이견과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국 정부가 대중 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첫째, 한국의 이익 존중보다는 한미동맹 약점 공략에 중점을 두는 중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인식해야 한다. 향후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풀어나갈 때 한중관계의 회복을 빌미로 한국에 대한 회유와 압박을 추진하며 역내 미국 동맹체제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인식하고 한미동맹 및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위상을 고려하며 대중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둘째, 중국과의 외교채널과 대화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서 한국 대외정책의 원칙과 레드라인(red line)을 중국에 당당하게 전달해야 한다. 향후 한미 협상과정에서 대중국 견제와 관련된 논의가 불거져 나올 때, 중국이 자신의 안보 이익을 빌미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대비해 한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먼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과 내부 원칙을 정하고, 중국과의 소통 과정에서 이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이 안될 때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유도해야 한다.

 
*아산리포트 관련 문의:
이동규 연구위원  02)3701-7346, dglee@asaninst.org
김지연 연구원 02)3701-7360, jykim22@asanin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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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중국의 지역전략과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하 시진핑)이 2025년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反파시즘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이하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2015년 이후 10년 만의 참석이다. 이번 러시아 전승절과 중러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확대되는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중국은 지역 내에서 러시아와의 소규모 연합훈련을 확대함으로써 역내 국가들의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 참여를 위축시키고자 할 것이다. 동시에, 핵미사일 개발이 ‘자위적 핵억제력’을 위한 것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며 이를 근거로 한미 연합훈련 및 한미일 연합훈련이 역내 안정을 해친다면서 미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중 간 이견과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는 대중 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한국의 이익 존중보다는 한미동맹 약점 공략에 중점을 두는 중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인식해야 한다. 향후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풀어나갈 때 한중관계의 회복을 빌미로 한국에 대한 회유와 압박을 추진하며 역내 미국 동맹체제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인식하고 한미동맹 및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위상을 고려하며 대중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둘째, 중국과의 외교채널과 대화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서 한국 대외정책의 원칙과 레드라인(red line)을 중국에 당당하게 전달해야 한다. 향후 한미 협상과정에서 대중국 견제와 관련된 논의가 불거져 나올 때, 중국이 자신의 안보 이익을 빌미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대비해 한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먼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과 원칙을 정하고, 중국과의 소통 과정에서 이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이 안될 때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익을 지키고 건강한 한중관계를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배경

2025년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전승절 80주년 행사가 열렸다. 우크라이나를 ‘新나치(Neo-Nazi)’로 매도해 왔던 러시아는 이번 전승절 행사를 통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내부 결집을 다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만큼 이번 전승절 80주년 행사는 전승절 70주년이었던 2015년 행사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는데, 올해 열병식에 드론 부대 등 1만1천500여 명의 병력과 180여 개의 군사 장비가 동원됐다.1

이번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는 27개국의 국가 정상2과 29개국의 외국 대표단 수장이 참석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을 중심으로 확산된 반러 정서와 대러 제재의 영향으로 외국 정상들의 전승절 참석이 크게 줄었던 과거와 대비된다.3 이를 통해서 러시아는 대러 제재 상황에서도 여전히 비서방권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시진핑도 2015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5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의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은 전승절 행사 전날인 5월 8일 4시간 동안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러시아와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을 공언하며 굳건한 중러 협력관계를 드러냈다.4 중국 인민해방군 의장대도 올해 전승절에 역대 가장 많은 병력인 119명을 파견했는데, 이는 열병식에 참가한 외국군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이다.5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이 미국과 동맹 및 협력국 간 균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을 활용하여, 중국은 국제사회에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하며 자신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됐다.6 이를 대변하듯 중국은 2024년 11월에 한국 및 일본에 비자 면제 조치를 실시하며 인적 교류를 확대했고, 2025년 3월 22일 개최된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한중일 FTA 논의 재개를 제안하는 등 역내 국가 간 협력과 교류를 강조해 왔다.7 또한, 중국은 트럼프 2기 들어 유럽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년 4월 11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스페인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경제 세계화와 국제무역 수호를 위한 중-EU 협력을 강조했고,8 중국과 EU는 중국-EU 수교 50주년을 맞아 2025년 7월에 베이징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 체제 구축을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9

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은 이러한 중국의 외교 활동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전승절 참석을 단순한 정치적 의례로 볼 수도 있지만, 러시아의 침공을 우려하는 유럽 국가들이 이를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편파적인 입장으로 인식하고 중국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일본 등 지역 내 국가들에게도 북중러 연대에 대한 안보 불안을 초래해 한중일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가는 중국의 전략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이 러시아 전승절에 참석하고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과시한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 우크라이나 정세 변화로 인한 중국의 전략적 입지 확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와의 경제교류를 지속하며 러시아에 대한 암묵적 지원을 지속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하에서 이것이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고 대외협력을 제한하며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등 서방의 제재를 초래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11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미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 추진 이후 중국의 전략적 입지가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추진함에 따라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더라도 유럽국가들이 바이든 행정부 때와 같이 미국의 대중 압박에 적극 동참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경제협력,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참여 등을 통해서 유럽 국가들의 대중국 불만을 완화하고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 추진 과정에서 러시아의 위상이 변화하고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완화된다면, 중국이 더 이상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방과 원활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2. 러시아와의 결속을 기반으로 반미 연대 강화 필요성

비록 미중 양국이 5월 12일 제네바 미중 고위급 회담 공동성명을 통해서 상호관세를 유예한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견제와 압박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만을 자극하고 반미 연대를 확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국제사회의 중요한 지정학적 행위자로 주목 받고 그 위상이 높아지면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국제 질서 변혁의 핵심 세력”으로 인식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12  이런 중국의 행보를 고려할 때, 러시아와의 결속 과시는 중러 양자관계를 넘어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다양한 다자협의체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lobal Security Initiative) 등 미국과 차별적인 중국의 글로벌 담론을 확산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중국의 입장에서 러시아 전승절 참석은 중러 결속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중국의 글로벌 담론을 선전할 수 있는 정치 행사였다.

 

3. 트럼프 행정부의 대내외적 입지 타격 유도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 추진 과정에서 러시아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러시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이라는 업적을 달성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목적 외에도 중러관계 분열을 위한 전략적 인식이 작용했다.13 트럼프는 2024년 10월 터커 칼슨(Tucker Carlso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들(중국과 러시아)이 연합하지 못하게 해야만 하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고,14 루비오(Marco Rubio) 미 국무장관도 “러시아가 중국의 영구적인 하위 협력국(junior partner)이 되고, 대중 의존도 때문에 중국이 시키는 것을 무엇이든 해야 하는 상황은 러시아, 미국, 유럽, 그리고 전 세계에게 좋지 않다”고 언급했다.15 이러한 발언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게 유리한 평화 협정을 추진하고 미러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함으로써 중러관계를 흔들고 중국을 고립시키는 소위 ‘逆닉슨 전략(Reverse Nixon Strategy)’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및 중러 협력관계 과시는 트럼프 행정부의 ‘逆닉슨 전략’이 실효성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실패로 인식되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내외적 입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러시아 전승절에서 드러난 중국의 인태지역 대미 전략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러 양국은 “신시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중러 공동성명(關於進壹步深化中俄新時代全面戰略協作夥伴關系的聯合聲明; 이하 공동성명)”, “글로벌 전략 안정에 대한 중러 공동성명(中華人民共和國和俄羅斯聯邦關於全球戰略穩定的聯合聲明)”, “국제법 권위 수호 협력 강화에 대한 중러 공동성명(中華人民共和國和俄羅斯聯邦關於進壹步加強合作維護國際法權 威的聯合聲明)” 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서 중러 양국은 군사,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 협력을 추진할 것을 천명했다. 동시에, 미국의 동맹체제, 북핵 문제, 대만 문제 등 지역 내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공감대와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서 인태지역에 대한 중국의 대외정책 방향이 다음과 같이 드러났다.

 

1. 러시아와 공동으로 인태지역 내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에 대응

공동성명에서 중러 양국은 “특정 국가와 그 동맹국이 자국의 패권과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 일부 국가는 패권주의와 신식민주의에 사로잡혀 공세적 정책을 남용하며, 타국의 주권을 제한하고, 타국의 경제 및 기술 발전 억제를 통해 자신의 특권을 보호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중러 양국은 2024년 중러 공동성명에 이어 이번에도 미국과 동맹국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NATO의 동진을 추진하는 행위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핵 공유’ 군사 동맹 구축, △’확장 억제’를 명분으로 지역 내 핵무기 배치, △지상 기반 중거리 및 단거리 미사일 체계 배치를 반대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역내 안보협력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반발해 왔다. 예를 들어, 중국은 미국이 2024년 4월 필리핀에 중거리 미사일 타이푼 발사체계(Typhon Missile Launcher)를 배치하자 이에 반발해 2024년 9월 44년 만에 태평양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2025년 3월 24일 일본에서 통합작전사령부가 출범하자 중국은 이것이 미일 간 군사통합의 일환이라며 미일동맹이 미군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16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해서도 “군사동맹”, “아시아판 NATO”라며 비난해 왔다.17 이러한 중국의 우려와 불만이 중러 공동성명에 반영된 것을 고려할 때, 중국은 향후 러시아와 공동으로 역내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에 대응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는 인태 지역 이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러 연합훈련의 추세를 고려할 때, 러시아는 중국의 의도에 따라 소규모 연합훈련에 기반해 중국과의 역내 군사안보 협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군사협력을 강화해 왔다. 특히, 2024년도에 중국과 러시아는 11회에 달하는 연합훈련을 실시했는데18, ‘대양-2024 훈련(Ocean-2024, 극동 연해주 인근 해역)’, ‘북부·연합-2024 훈련(North-Joint 2024, 동해 및 오호츠크해 해역)’, ‘해상 연합-2024 훈련(Sea Joint-2024, 중국 광둥성 해역)’, ‘중러 해상 합동 순찰(태평양 해역)’ 등 인태 지역에서의 훈련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향후 중국과 러시아는 인태 지역에서 더욱 빈번하게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타국의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 침범, 일본 및 대만 주변 해역에서의 군사훈련 등의 무력 시위를 감행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에 대한 역내 국가의 참여를 위축시키고자 할 것이다.

 

2. 북핵 문제를 역내 미 동맹 압박용으로 활용

중러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관련국들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조치와 압박 정책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고 “정치외교적 수단만이 한반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19 북핵 문제 해결이나 북한 비핵화를 언급하기는커녕, 핵미사일 개발이 ‘자위적 핵억제력’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2024년 중러 공동성명과 비교할 때 대북 강압 조치 폐기를 촉구한 대상이 미국에서 관련국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20 이는 향후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한국 및 일본 등 역내 미 동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중국은 북한의 주장을 답습해 한미 연합훈련 및 한미일 연합훈련이 역내 안정을 해친다고 주장하면서 미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다자외교에 대한 부담, 경호 문제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북중러 연대에 자신이 묶이는 것을 꺼려하는 중국이 북중러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모습을 경계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북핵 카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북중 우호관계에 기반해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을 과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북러 밀착 이후 소원해진 북중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2025년 4월 18일 왕야쥔(王亞軍) 주북 중국대사의 김일성 생일 기념 행사 참석 등 최근 북중 간 고위급 교류가 활발해지는 이유이다. 러시아와의 군사밀착을 추진해 왔던 북한이 이에 얼마만큼 부응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중국은 북한 단체 관광 재개, 북중 경제교류 확대 등을 추진함으로써 북한의 대중 경제의존도에 기반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관리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에 미북대화가 진행된다면,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 필요성이 약화되었다면서 역내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의 정당성을 공격할 것이다.

 

3. 대만 문제 개입에 대한 단호한 대응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2월 국무부의 미-대만 관계 홈페이지에서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We do not support Taiwan independence)”는 문구를 삭제했다. 또한, 지난 3월 29일 언론에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잠정 국가방위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Defense Strategic Guidance)”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를 명시하고 있다.21 이런 미국을 의식한 듯 이번 러시아 전승절 연설에서 시진핑은 전후 국제질서 수호를 언급하며 대만의 중국 반환이 전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했다.22 대만 독립을 지원하는 행위가 중국 내정 간섭을 넘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임을 공언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중국은 대만 문제에 대한 외부세력의 개입에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을 재확인했다.

2025년 5월 15일 브런슨(Xavier Brunson)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 심포지움에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며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고 언급했다.23 트럼프 행정부가 “잠정 국가방위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를 명시한 만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외부세력의 개입을 저지하려는 중국은 한국의 대만 문제 관여를 방지하기 위해서 주한미군과 관련된 한미 간 협상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정부 및 민간 교류 시 대만 문제 관여에 대한 압박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한국인 입국 비자 면제 조치 등 최근 중국의 대한국 유화 정책이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한국 내에서 한중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상술했듯이 중국은 역내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 대응에 우선순위를 두고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에 공세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중 간의 이견과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는 대중 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한국의 이익 존중보다는 한미동맹 약점 공략에 중점을 두는 중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인식해야 한다. 최근 한국 내에서 미중 간 균형외교를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24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신, 비자면제 조치 등 중국의 대한국 유화정책, 국내정치적 혼란에 대한 반작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중국 내에서도 신정부가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와 함께 한중관계의 발전을 강조하는 만큼 한중관계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자칫 한중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이미 양자 차원을 넘어 국제 정세와 안보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향후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풀어나갈 때 한중관계의 회복을 빌미로 한국에 대한 회유와 압박을 추진하며 역내 미국 동맹체제를 약화시키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이를 인식하고 한미동맹 및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위상을 고려하며 대중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둘째, 중국과의 외교채널과 대화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서 한국 대외정책의 원칙과 레드라인을 중국에 당당하게 전달해야 한다.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미동맹을 유지 및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인태 지역 내에서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동맹들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대두됐다. 역내 미국의 안보협력 강화를 우려하는 중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즉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향후 한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의 문제를 협상해 나갈 때, 대만 문제 등 대중국 견제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자신의 안보 이익을 빌미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비해 한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과 원칙을 정하고 중국과의 소통 과정에서 이를 당당하게 전달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이 안될 때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익을 지키고 건강한 한중관계를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 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