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평가: 비자유주의 세력의 도전
아산정책연구원은 2018년 국제정세전망에서 비자유주의 국제질서(illiberal international order)의 부상을 예측했다. 세계적·지역적 차원에서 비자유주의 세력이 부상하고 공세적으로 나오는 반면, 자유주의 연대의 기반이 약화됨에 따라 전후 세계질서를 주도해 왔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도전에 직면하고 불안정해 질 것으로 전망했다. 강대국 간의 경쟁과 갈등이 증가하면서 전략적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대외정책이 보다 배타적이고 제로섬 성격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와 병행하여 기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해 왔던 제도와 기구의 기능이 약화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화되고 내정 불안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편적 가치보다 개별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협력과 경쟁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규범과 제도가 약화될 것으로 2018년을 전망했다. 또한 개별 국가들이 이와 같은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협력 대상과 협력망 구축에 집중할 것으로 보았다.
비자유주의 요소의 확산과 분열하는 국제사회
전반적으로 2018년 한 해 동안, 자유주의 국제질서 세력의 구심점이 약화 및 분열되는 반면, 비자유주의 세력들의 경우 비록 부상 속도가 이전에 비해 느려지긴 했으나 여전히 지속되는 양상을 보였다.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회복 및 유지를 위한 노력도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동남아지역, 중동지역을 비롯한 여타 지역에서도 비자유주의 질서의 부상에 대한 고민과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경우 외부 여건의 변화와 동시에 내부 정치상황이 불안정하게 됨에 따라 외부문제보다는 내부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역전쟁을 매개로 표면화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전면적·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였다. 트럼프 정부가 제시한 인도-태평양(Indo-Pacific) 전략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부상과 세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국 견제 전략과 정책이 더 구체화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 및 대체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는 오히려 중국의 부상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진척은 예상에 미치지 못했고, 제19차 전당대회를 계기로 주변국들의 경계심이 강화되었다.
그림 1.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한층 더 적극적으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쳤다. 다자보다는 양자 간 관계에 기초하여 접근하고, 가치보다는 구체적 이익을 중시하며, 책임의 분담을 강조함으로써 동맹과 우방국들과의 마찰이 발생하고 미국 중심의 질서 및 구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처럼 미국은 스스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기본을 약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프랑스와 독일 등 선진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미 의존도를 줄이며 자체 협력과 안전망을 모색 및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강화되었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중국과 러시아 간 협력도 한층 강화되었다.
그림 2. 중러 정상회담
강대국 경쟁이 심화하는 동북아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을 정점으로 한 세력 경쟁은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듯했으나, 수면 아래에서의 견제는 강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즉 상호 간 물리적 충돌을 회피하면서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협력망과 전략 구도를 구축하고 자체 능력을 확충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점은 기존 동맹체제, 특히 한미동맹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미일동맹을 축으로 하는 전략 구도를 유지하지만, 내부적으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중 갈등 관리와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또한 일본은 동남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일종의 헤징(hedging) 전략을 추진했다. 4자 간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일본의 지분과 역할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안보협력을 격상·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일 관계, 한중 관계, 일러 관계의 회복과 개선은 상당히 더딘 속도로 진행되는 반면, 북중 관계의 개선은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면서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다시 강화되기 시작했다. 북러 관계 역시 진전되어 새로운 북중러 3각 협력관계가 구축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국은 군비 현대화를 추진하였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힘의 투사능력을 높이기 위한 해·공군력 증강을 지속하고, 군의 활동도 강화했다. 중국은 해상전력 강화와 함께 남중국해 섬 매립과 군사기지화를 지속해서 추진했다. 또한 무력시위의 빈도를 늘리기도 하였다. 미국은 새로운 전력을 투입하지는 않았으나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활동을 증가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행동을 취했다. 일본의 경우 공격형 무기체계의 구매를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고, F-35를 비롯하여 미국으로부터의 첨단무기 구매를 확대하였다. 또한 미국과 일본은 남태평양상 도서에 레이더 기지 건설을 확대하고 해당 지역 국가들의 능력 개발을 위한 지원도 배가하였다.
그림 3. 남중국해 영토분쟁 지역
대화와 평화 분위기 속 불안함을 더하는 한반도
한반도 상황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결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됐다. 2018년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정점으로 다양한 대화의 양적‧질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게 되었고, 이후 다양한 차원의 남북교류가 재개되며 화해의 물결로 가득한 한 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연되어 남북 관계와 비핵화 협상 간 속도의 차가 드러났다. 남북 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단계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한미 간 공조는 약화되고 양국 간 이견이 발생하는 양상을 보였다. 핵 문제와는 별개로 남북 관계의 진전이 비록 속도는 더디지만 계속해서 진행되며, 희망이 현실을 앞서는 현상이 발생했다. 다행이 한미 간 실무협의회를 운영한 이후 표면적 갈등은 가라앉는 모습을 보인다.
그림 4.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북한이 적극적인 평화 및 대화 공세를 추진하며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함에 따라 북핵 및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주요 관련국들의 관여와 경쟁이 심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북한 내 경제상황은 위기로 치닫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성장을 약속한 김정은 정권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5. 북중러 3자 회담
출처: 중국 외교부.
북핵문제와는 별개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미래 지휘체계, 방위비 분담, 자유무역협정 등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으로 인해 동맹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제약이 생겨났다. 제5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SCM)를 통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조기 전환의 원칙과 미래 지휘체계에 대한 합의가 다시 확인되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한 결과이다. 그러나 방위비 분담을 둘러싼 한미 간의 이견은 양국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한국 내에서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평화 및 대화로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갈등이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그 결과 2018년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 확산 속에서도 불안감이 공존했던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흔들리는 미국의 리더십
2018년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논란과 스캔들에 휩싸였지만, 의미 있는 정책 성과도 이루어 냈다. 내부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에 이루지 못한 세금개혁과 규제 완화를 강행하여 친기업 시장 환경을 조성하였다. 실업률은 50년 만에 4% 미만에 도달하였고 분기 성장률 또한 1년 전보다 1.2% 높았다. 트럼프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철폐하고 동맹국들로부터 미국이 제공하는 리더십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힘에 기반을 둔 외교를 펼치고 있는 트럼프는 이란 핵 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을 무효화하고 제재를 재가동 시켰으며, 중국과는 무역전쟁을 시작하였다.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 중인 모습도 보였지만 지난 10월 중거리 핵전략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하며 미러 관계는 새로운 대립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북정책과 한미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북한 문제는 2017~18년 사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017년에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 그리고 미국의 최대 압력 조치들로 한반도를 긴장 상태에 빠지게 했다. 반면 2018년에 들어서며 남북은 평화와 번영을 강조하였고 북미는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갈림길에 선 중국
중국에게 있어서 2018년은 시진핑 집권 2기의 원년이었고 중국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적잖은 장애에 직면하면서 성취한 영광보다는 위기와 도전이 부각되는 한 해였다. 2018년에 들어서 중국은 대내적으로 시진핑 1인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고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공산당이 모든 것을 이끄는 공산당 독재가 실현되고 있다.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일부 지식인들의 비판 속에 시진핑 우상화와 공산당 독재에 항거하는 조짐들이 나타났으나 ‘찻잔 속의 돌풍’에 지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서 민영기업 퇴진과 종교억압이 이슈가 되었으며, 공포통치에 대한 논란도 불거진 한 해였다.
2018년에 중국은 대외적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탈피하여 주동작위(主動作爲)와 분발유위(奮發有爲)를 더욱 본격화했다. 특히 중국은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 구축함에 40미터까지 근접하면서 핵심이익을 수호하고 증강된 해군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노출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2018년 봄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휩쓸리면서 대외적으로 상당한 곤경의 늪에 빠져들었다. 시진핑이 강조하는 일대일로 역시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는 등 순조롭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미얀마,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중국의 장밋빛 계획에 동조하던 파트너 국가들이 하차 움직임을 보이는 등 일대일로의 한계가 드러나는 한 해였다.
외교적 고립화를 우려하는 일본
아베 정권은 2018년에도 ‘강한 일본’을 표방하며 인도-태평양 전략 제시와 미일동맹 강화 등을 적극 추진했다. 동맹국인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 노선이 급격히 전환되었던 반면, 일본은 압박 노선을 견지하면서 재팬 패싱(Japan passing)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베 정권은 다양한 경로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은 외교적 고립화를 탈피하고자 헤징 전략을 가동하여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과의 안보 협력도 강화했다. 한편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확정판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한일 간 역사 갈등의 골은 2018년 들어 더욱 깊어지는 실정이다.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유럽
유럽은 아직도 내우외환 중이다. 이탈리아 재정적자 확대, 난민정책 갈등, 리더십 공백위기 등이 새로운 도전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브렉시트(Brexit)로 인한 불확실성과 미국과의 갈등이 또 다른 과제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중시하던 유럽 국가들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독선으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협력 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럽 국내적으로는 보수적인 색채가 강화되면서 유럽 공동의 이익보다는 자국의 개별 이익과 국내 정세에 부합하는 정책적 성향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속되면서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상태에 놓임에 따라 대러 관계가 안정화 소강국면으로 진입하였다. 이에 사이버, 기후변화, 테러 등 비전통적인 안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가했고, 정보와 전통적인 무력 수단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위협(hybrid threats)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안보 도전에 대한 논의와 대응 모색이 활발해졌다.
그림 6.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출처: Reuters.
2018년 10월 브뤼셀 ASEM(Asia-Europe Meeting, ASEM)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게 되면서 한-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관계는 새로이 주목을 받게 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의 EU의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에 던진 ‘비핵화 촉진을 위한 제재 완화’의 명제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차가웠다. 만나는 정상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CVID)’와 철저한 제재 이행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를 예상하지 못하고 대북 제재 완화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린 것은 유럽에 대한 이해 부족과 미흡한 사전 조율의 결과였다. 유럽의 다자주의 원칙, EU의 의사결정 구도, 미-유럽 관계에 대한 몰이해가 빚은 외교적 시행착오였다.
동진을 구체화하는 러시아
2018년 대화의 국면에 들어선 동북아 정세 변화로 러시아의 전략적 공간이 확대되었다. 다중심 다극체제를 목표로 하는 러시아는 2018년 초까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동참에 내키지 않았지만,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양자적 대화전략에 따른 동북아 정세 변화로 인해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더욱 구체화되면서 러시아의 동진 의지는 보다 분명해 지고 있다.
올해 주목할 점은 푸틴의 국내 대중적 인기가 고유가와 재정수입의 확대로 높은 지지율을 누렸던 2004년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내 정치적 안정에 비해 2018년에도 러시아는 EU와의 대결노선을 늦추지 않았다. EU는 지난 2017년 12월 러시아의 민스크(Minsk) 합의 불이행에 맞서 러시아 경제제재를 2018년 7월까지 연장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같은 해 3월 스크리팔(Sergei Skripal) 부녀 암살미수를 계기로 EU 회원국 등 30개국이 150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그러나 대선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탈피한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등에서 더욱 모험적인 대외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결속, 방향성과 중심성이 약화된 동남아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상호 견제가 강화됨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 간 영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완화되면서 동남아 지역의 정세는 대체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미국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었다. 강력한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아세안 중심(ASEAN Centrality)과 연계성(ASEAN Connectivity)이 약화되고 아세안의 존재감도 동반 약화되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경쟁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 간 경쟁 및 견제에 대해 아세안 국가들은 대체로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2018년 아세안, 동남아 지역은 국내 정치적 변동과 연이은 자연재해로 어수선한 한 해였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간 영해 문제가 어느 정도 관리되는 가운데, 동남아 국가들은 내부의 정치 문제들과 자연재해 및 재난 관련 문제들에 집중했다. 말레이시아의 정권교체, 캄보디아의 권위주의 강화,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자연재해 피해가 겹쳤다. 아세안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일대일로의 강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으나 정작 아세안 국가들의 미-중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졌고, 미중 무역전쟁이 가져온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한국은 아세안에 대해 신남방정책을 선언했다. 성공적 대통령 순방과 신남방정책추진특별위원회 등 제도적 준비에도 불구하고 후속 조치가 빠르게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지각변동의 중동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 대립이 악화되고 미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불안정성이 커졌다. 시리아 내전이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아사드 정권을 도운 이란과 러시아 주도의 비자유주의 역내 질서가 다져졌다. 이란, 러시아가 주도하고 터키, 중국이 지원하는 비자유주의 중동 질서가 자리잡는 가운데 미국의 일방적인 다자합의 파기와 이로 인한 미국과 서방 동맹국 간의 불협화음이 두드러졌다. 시리아 내전과 달리 예멘 내전에선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사우디 간의 갈등이 증폭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2018년 하반기에 들어와 이란과 사우디의 국내외 권력구도가 흔들리면서 역내 역학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란에선 강경 보수연합의 국내 지지층이 등을 돌리며 사상 초유의 반체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사우디 왕실은 자국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Jamal Khashoggi)의 암살에 왕세자 연루 의혹이 커지면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고 국제사회와 미국, 서방 동맹국의 거센 비난과 제재 위협까지 받았다. 이란과 사우디의 힘 겨루기가 반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국에서 일어난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증거 폭로를 무기로 사우디와 미국을 압박하는 거래에 나섰다.
신안보문제의 재부상
사이버, 기후변화, 환경, 에너지, 인권 등의 신안보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사이버 안보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규범 창출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2018년 신흥안보 분야의 위기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에서 비롯되었다.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 시장 가치의 폭등은 세계 금융경제에 파장을 일으켰다. 거래규제 덕분에 표면적 불안은 해소되었으나 신기술이 가져온 잠재적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18년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난이 큰 피해를 남긴 해이기도 했다. 역대 최고급 태풍과 가뭄, 폭염의 피해가 컸다. 기후변화의 추세가 완화되지 않는 한 전 세계적인 자연재난의 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발 통상전쟁으로 인한 질서와 규범의 파괴
경기가 호전되는 가운데 미국발 통상질서의 파괴가 계속되고, 그 여파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공정하고 개방된 통상을 주장하면서도, 무역적자 해소에 집중하면서 무차별적으로 대상국들을 압박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기존 합의를 수정하거나 파기하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통상질서와 규범이 약화되는 현상이 초래되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미국과 중국은 단순한 통상 압박을 넘어 상호 간 적극적 관세 부과 조치도 감행했다. 미국은 일차적으로 연간 3,000억 달러가 넘는 대중 상품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불사했다.
미국은 캐나다 및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개정 협상을 완료했다. 단순한 NAFTA 개정을 넘어 NAFTA를 대체할 새로운 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The 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 체결을 위한 협상이 완료된 것이다. USMCA를 통해 미국은 자동차, 낙농업, 지적재산권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의사를 상당 부분 관철시켰다.
2018년 한 해에 걸쳐 한미 FTA 개정을 위한 협상도 지속되었고, 드디어 2018년 9월 24일 한국과 미국 양국은 한미 FTA 개정협정에 서명했다. 한국과 미국 양국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되어 이전 한미 FTA에 비해 극적 반전은 없었다. 하지만 2018년 한 해 동안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이외에도 다자주의를 향한 희망도 생겨났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좌초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이 그 불씨를 살린 것이다. 지난 2018년 3월 8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에 미국을 제외한 기존 TPP에 서명한 11개국이 모두 서명했다. CPTPP는 2018년 12월 30일 발효된다.
2019년 전망: 선택의 한 해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선 한국
2019년은 2018년의 연장선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비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며 주요 국가들의 세력 확장 및 연대가 한층 두드러질 전망이다. 특히 2019년은 자유주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다. 그동안 충격에 빠져 있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 세력은 내부를 재정비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비자유주의 세력의 도전에 적극 반격할 것이다. 비자유주의 세력이 이에 반발하면서 양 진영 간 충돌이 증대되고 편가르기와 전략적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선택을 강요 받는 국가들은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2019년 한국의 선택을 요구하는 사항은 대북정책의 방향, 속도, 방법론의 문제, 미일중러 등 주변국과 관계 정립의 문제, 다양한 협력 파트너 확보를 통한 외교의 다변화와 지평 확장의 문제, 그리고 글로벌 코리아 부활의 문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남북 관계는 2019년에 들어서면서 추동력이 약화되고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조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진전 사이에서 더욱 고민이 깊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북한의 대남 압박이다. 북한은 민족공조를 거론하며 대화와 협력의 속도를 조절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한국 정부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도 좀 더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 관여를 요구할 것이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주요 관련국들 간의 조율과 공조를 어떻게 추진하여 북한 비핵화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또한 비핵화와 남북 관계를 어떻게 연동하여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과 행동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의 문제가 부각될 것이다. 핵심은 제재와 관여 간의 균형, 국제공조와 남북 관계 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있다. 나아가 후반부로 갈수록 대화와 협상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국면이 전환될 경우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두 번째 선택은 주변 4국과의 관계 개선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과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편짜기가 심화될 것이다. 이는 한국이 북한 문제를 넘어 지정학적 변화를 고려한 동북아 지역의 장기적 안보구도 틀을 어떻게 구상하고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적 선택의 문제이다. 전략구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선택 압력은 증가할 것이라는 점은 한국이 선택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선택을 미루고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할 경우 한국은 고립된 상황에 부닥치게 되고, 한국에 대한 신뢰는 약화될 것이다. 한국이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2019년은 주변국들의 전략적 경쟁 구도하에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현실로 나타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주변국들의 지정학적 경쟁구도는 물론 현안을 둘러싼 양자 관계에서 불거지고 있는 이견은 한국에 전술적 선택의 문제로 다가온다. 한미 간에 북핵 문제를 둘러싼 조율이 원만히 이루어진다 해도 방위비 분담, 자유무역협정 비준, 자동차 관세 등과 같은 문제는 잠재적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다. 나아가 인도-태평양 전략과 동맹 간 연계성 설정, 대중국 정책은 한미 간 신뢰 문제로 주목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낙관할 수 없다. 아직도 사드(THADD)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남아 있고, 한미동맹과 유엔군사령부 등과 같은 안보문제에 대한 중국의 압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중국의 대북한 접근 강화 역시 한국에게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일본과의 관계 악화는 필요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제약하고 코리아 패싱을 강화하여 동북아 지역에서의 한국의 입지를 약화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2019년은 역사문제와 여타 협력을 분리하여 접근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을 실험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러시아와 관계 역시 새로운 진전의 계기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 지금까지 한국이 합의하고 이행하지 않은 양국 간 협력 사업들의 조속한 이행을 강조할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동북아 상황은 한국이 북한 문제에만 집중할 경우 역내 역학구도의 변화와 조정 과정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부터 4강을 넘어선 외교 지평의 확장과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강조해 왔다. 대통령 취임 이후 역대정부와는 달리 유럽과 동남아에 특사를 보낸 것은 대상지역과 국가들의 한국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특히 동남아 국가들과 협력관계 확장∙강화를 골자로 한 신남방정책 발표는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감을 높게 하였다. 그러나 2018년을 지나면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순방(10월)과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11월)은 성과가 미진하였다. 통상문제와 북한 문제 중심의 접근은 문재인 정부가 역대 한국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을 형성하고 실망감을 더했다. 중동정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화하는 중동정세와 전략적 구도에 맞추어 유연한 대중동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과거의 경제관계 중심 외교정책을 답습하여 새로운 협력분야의 개발과 관계를 구축하거나 강화하는 것에 미흡했다. 중동지역 안정화와 인권을 포함한 인간안보문제에 대한 기여로의 정책 영역 확장이 필요하다.
이들 국가와는 미국 우선주의, 중국의 부상, 규범과 법치 등과 같은 근본적이고 전략적인 협력 의제가 존재하였으나 이에 대한 협의와 협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이 과연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했다. 지속되는 실망감과 과거의 답습과 관행은 한국 외교의 고립화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2019년은 이들 국가와 지역들의 실망감을 해소하고 실질적 협력 동반자로 만들어 4강을 넘어선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는 선택의 한 해가 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 부활 검토 필요성에 직면할 것이다. 2018년을 지나면서 한국은 북한 문제에 몰입하여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질병과 보건, 개발, 기후변화, 환경테러, 사이버 안보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참여와 기여가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 역량에 대해 높은 평가를 가지고 있고 인류보편적 가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구현에 대한 한국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운 거버넌스 구조를 만드는 것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제사회에서 위치를 설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과 기회의 창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는 의문이고, 참여와 기여가 미루어지거나 낮아질수록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다. 2019년은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기능적 협력을 강화하여 한국에 대한 평가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의 중심에 설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가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미국: 갈등과 변화 사이
임기 하반기에 들어서는 트럼프 행정부는 여소야대 의회라는 쉽지 않은 도전에 맞서게 된다. 2018년 중간선거 이후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인 합법성을 문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이 절반이 넘는 상원과 민주당 다수의 하원 사이 마찰 가능성이 증가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적 개혁안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으나 의회와 백악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대부분의 정책 사안들은 정체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정책에 있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관여와 대화로 지켜보지만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상응 조치가 없는 한 제재 완화나 평화협정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기존 정책에 변화를 주기 위해 과도한 도발을 시도할 경우 미국의 대북 접근 방식도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 중동 정책의 경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안보 문제와 관련된 해결책을 이르면 2018년 말 늦게는 2019년 초에 발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란과 반미 테러조직들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노력도 지속될 것이다. 중국을 상대로 진행 중인 무역전쟁은 그대로 유지 될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미중 관계 관리 속 영향력 확장
2019년에 중국지도부가 직면하게 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미중 관계의 개선과 안정적 관리다. 중국지도부는 적당히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는 선에서 양보와 타협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2019년 미중 관계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도권은 중국의 손에 있지 않고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중국지도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양자 관계가 불투명해질수록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역내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통해 미국에 대한 견제에 힘쓸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대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할 것이며, 중국과 일본의 양국 관계는 내년에 안정적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일본: 헤징 전략
일본이 2019년에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재팬 패싱론의 불식이다. 이를 위하여 기존 외교 정책 노선을 견지하는 가운데 주변국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의 해양 진출 문제는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지속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한층 강화하며, 해양 안보를 중심으로 국방을 정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한층 더 강하게 추진할 것이다. 다만 경제 부문에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 무역갈등의 불씨가 일본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안정화와 제3의 길 모색
EU는 현재 산적한 내부 현안으로 인해 대외문제에 전력을 경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EU는 복합적 위기 국면을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U의 경제는 그리스 재정위기 진정과 함께 5년째 연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적자재정 편성 문제로 이탈리아와 정면 충돌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난민유입은 현저히 줄었지만 이를 빌미로 한 극우세력의 확산이 계속되는 가운데 난민문제 해법을 둘러싼 회원국 간 갈등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안보위협과 중국의 공세적 외교노선도 유럽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미국과 불화는 안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브렉시트(Brexit) 협상은 일단락돼 가고 있지만 영국 국내정치의 혼란으로 인한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의 가능성이 있어 아직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러시아: 국내 불안정 속 극동지역 진출 모색
2019년 푸틴의 정치기반은 더욱 안정될 것으로 예측된다. 러시아 대중의 압도적 지지로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한 푸틴은 2019년 임기 초반을 맡게 된다. 푸틴이 임기 하반기 정치 안정화를 위한 삼선 개헌을 포기할 경우 후계자 문제가 대두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메드베드프(Dmitry Medvedev) 총리가 후계자로 유력하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하므로 2019년 메드베드프의 총리직 유지 여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푸틴이 개헌의 무리수를 둘 경우 적절한 시점은 2019년 말, 2020년 초로 예상된다. 푸틴의 권력욕에 집권 엘리트의 일부와 반대 정치세력이 연합하여 국내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북한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경제협력 문제는 2019년에 더욱 구체화될 것이다. 2019년도에 대북 제재가 완화되거나 우회적인 경로가 마련된다면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을 통한 경제특구 개발, 철도 건설, 에너지 협력에 러시아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경제협력 수준이 높아지더라도 러시아의 동북아 정치군사 목표에 큰 변화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북한의 급진적인 변화를 지양하고 한반도 현상 유지를 원하는 러시아의 소극적 동북아 지역 전략은 신동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의 만남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 것이다. 2019년 러시아는 주도적으로 동북아 정세에 개입하기보다 남북 관계, 북중 관계 변화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선에서 멈출 것으로 예측된다.
동남아: 미중 경쟁 속 자율공간 확대
동남아를 둘러싼 2018년 미중 경쟁 교착상태가 2019년에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 미중 양자 경쟁이 격화되며 양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일대일로 전략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반면 미중을 신뢰 못하는 아세안은 다자적 노력을 통해 자율적 공간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9년은 동남아/아세안에 전환점이 될 해이다. 내적으로는 중량급 국가들의 선거가 기다린다. 2019년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각각 대선,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군부통치하에서 수년간 선거를 미뤄온 태국 총선도 예상된다. 신남방정책의 성패도 2019년에 가름이 날 것이다.
중동: 지속되는 내정불안과 전략구도의 불안정
이란 강경파는 1979년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슬람혁명 이래 최대 규모의 반체제 시위와 국내 핵심 지지층의 분열로 인해 역내 팽창정책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다. 강경 보수연합은 우선 체재 단속에 집중하면서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강화된 중국-터키-카타르 반미연합을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내 영향력을 이어갈 것이다. 나라 안 저항으로 위기에 처한 이란의 집권세력과 달리 사우디의 위기는 바깥에서 올 것이다. 사우디 왕실이 반정부 언론인의 암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은 국제적 파문을 일으키며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 체제의 정당성을 뒤흔들었다. 개혁개방의 아이콘인 사우디 왕세자가 국제사회의 높은 압박에 처한 만큼 예멘 내전 휴전과 같은 파격적인 양보로 위기의 돌파구를 찾을 것이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가 평화 협상을 수락할 경우 미국의 고강도 제재와 국내 반체제 시위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이란 강경 보수연합은 절호의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란과 사우디가 전략 수정을 꾀하는 가운데 이란, 러시아와 밀착하며 미국, 사우디로부터 견제를 받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힘의 공백을 이용해 1인 체제를 더욱 다질 것이다. 자국에서 일어난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 사우디로부터 경제적 혜택을 얻어낸 후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 종전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이란 제재 복원 이후 미국과 서방 동맹국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중동 내 비자유주의 질서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거버넌스: 신흥안보를 중심으로 새로운 거버넌스 모색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 및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선택에 대한 압박이 증가할 것이다. 2019년에는 자유주의 세력과 비자유주의 세력 사이의 갈등이 심화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의 참여 요구가 증가할 것이다. 한국이 북한 문제에 집중하느라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는 한국을 외면할 수 있다. 사이버 안보, 우주, 질병, 재해 재난과 같은 문제에 한국의 적극적 참여 요구가 증대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은 동북아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후변화, 공적개발원조, 빈곤, 인권, 테러 등과 같은 주요 국제문제에 한국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고립이 심화하였다. 2019년은 고립을 넘어 글로벌 코리아로 나갈 것인지, 동북아에 남아 국제조류에 뒤처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통상전략: 새로운 통상체계로의 진전
2019년에도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지속된다. 미국은 대중 상품수지 적자 개선, 중국의 미국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 해결, 중국 위안화 절상이라는 실현하고자 하는 몇몇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중에도 메가 FTA 탄생을 위한 전진은 계속된다. 무엇보다 CPTPP는 생각보다 빨리 2018년이 지나가기 전에 발효된다. 그리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 협상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다. RCEP 체결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무역지대가 창설되어야 한다는 협상 참여국 간 공감대는 확고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속에서도 CPTPP와 RCEP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자유무역협정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양자주의에 의존해서는 국제통상질서가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킨게임에 가까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CPTPP와 RCEP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관심을 급격히 제고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택의 주요 이슈들
한미 관계
2019년 미국은 동맹국들에 적극적인 안보∙국방 책임 분담과 미국에 유리한 무역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은 2019년에 방위비분담과 자유무역협상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한국은 북한의 과거 협상 방식을 반면교사 삼아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미국과 함께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있어 미국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한 만큼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와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일본의 전략 방법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위험과 미국과 이란의 갈등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과 이란은 한국 경제 및 에너지 안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갈등을 겪으며 한국에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한국은 기회들과 위험요소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국가이익을 향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중 관계
중국은 2019년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이 일본을 방문해 중일 관계의 정상궤도화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유지 차원에서 2019년에 북중수교 70주년을 기념해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을 실현함으로써 김정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중국판 체제보장을 확인해 주고, 양국관계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또한 중국은 2019년 주변국 관계 개선의 과정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사드 이전의 단계로 회복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2019년에 한국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사드 경제보복조치의 대폭 해제와 더불어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함으로써 양국 관계 개선의 이정표를 세우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한국은 기존의 한미동맹을 유지해 나가는 한편 한중 관계를 개선하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복합 딜레마에 직면할 가능성이 고조된다.
남북 관계
2019년은 비핵화에 관한 북한의 전략적 결단의 진실성 여부가 확인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여전히 지연되는 가운데 남북교류 확대를 요구하며 한국 정부에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반면 미국은 제재라는 수단을 이용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2019년 한국 정부는 남북교류 확대, 종전선언, 제재완화 등의 문제에 있어 북한의 입장과 한미공조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지의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한미공조의 약화는 국내 경제를 악화시킬 수 있어 결국 한국 정부는 한미공조를 택할 것이지만, 한 해 내내 대북정책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전개될 전망이다.
한일 관계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일본은 2019년에도 기존의 대북정책 노선을 대체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본은 기존 방침을 지속하되 북일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현재 일본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이다. 현재 일본은 자국민 납치문제의 해결에 관한 북한 측의 성실한 대응을 이끌어낸다는 전제 하에 핵 사찰, 인도적 지원, 경제협력 등의 부문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한러 관계
한국이 대륙과 해양, 유라시아와 아태지역을 연결하는 가교국가가 되는 것을 핵심목표로 하는 신북방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대외전략이다. 다양한 양자적 관계가 동북아 정세를 흔들면서 한국의 신북방정책이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을 만나고 경제특구 방식의 경제발전을 노리는 북한이 여기에 결합하는 방식의 경제협력이 일어날 모양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국제제재를 돌파하려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한반도에 경제적으로 보다 깊이 연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투자와 참여는 현 남북 정부 모두가 원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식이 아닌 북한식 시장개혁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경제특구에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고 투자국 정부로부터 재산권 보호를 약속 받은 거대 기업과 수령이 직접 계약하여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방식을 북한은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2019년 내내 한국, 북한, 러시아 삼국이 특구방식의 경제개혁에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과 한국
유럽은 한국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매력적인 협력대상이다. 최근 들어 유럽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한-유럽 협력 가능성은 더 커졌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중국의 부상 속에서 유럽과 안보협력은 새로운 안전망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미 관계의 중요성과 미-유럽 관계의 다면성을 고려할 때 유럽을 미국의 대안으로 삼기는 어렵기에 미-유럽 관계를 잘 읽고 적절히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활적 이해관계의 결여, EU 의사결정 제도의 정부 간 특성, 유럽 차원의 리더십 부재 등 불확실성 요인으로 유럽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보완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유럽 양자 간 협력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어 2019년 한-유럽 관계는 돈독하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치와 규범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유럽과 안보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동맹을 넘어선 안전망 제공 및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 핵문제와 인권문제에 있어 미국과 분업, 정직한 중재자의 역할, 대화 채널의 꾸준한 가동과 대북접촉 유지를 통한 북한 정보 축적 및 공유 등을 통해 유럽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와 한국
동남아지역은 통상, 중국의 부상, 미중 갈등 내 생존전략, 초국가적 인간안보문제에 있어서 한국과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안보분야에서의 협력 고리는 매우 취약하다. 2019년에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통상을 넘어 안보문제를 포함한 전략적 협력으로 격상하고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와 같은 통상문제 중심 그리고 북한문제가 있을 때만 협력을 구하는 과거의 행태를 반복하여 제한적인 협력에 머무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2017년 11월 3P-People, Peace, Prosperity-를 축으로 하는 신남방정책이 발표되면서 한국에 대한 동남아국가들의 관심과 기대는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2018년을 지나면서 신남방정책의 추진동력과 성과도 미흡하였다. 주요 내용 역시 과거와 별반 차이 없이 주로 통상문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감만을 키우는 결과로 귀착되었다. 구체적인 정책과 적극적 추진으로 신남방정책이 수사가 아닌 정책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2019년 개최 예상되는 세 번째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결과가 신남방정책 성패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중동과 한국
한국은 중동의 불안한 역내 균형 속에서 국제규범과 자유주의 질서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이란, 러시아가 주도하고 중국, 시리아, 터키, 카타르가 후원하는 비자유주의 중동 질서는 한반도 의제의 평화적 해결에 걸림돌이다. 특히 이란 강경파는 역내 무장세력과 북한 정권을 무기거래 파트너로 연결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란의 강경 보수연합이 대외 팽창정책의 속도를 줄인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청신호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 정권이 중동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협력과 불법 무기거래 파트너들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에 진출한 유럽∙일본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 기업 역시 미국의 제재 복원에 따른 타격을 받고 있기는 하다. 우리는 2012년과 비슷하게 미국으로부터 예외국 지위와 원화결제계좌 사용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제재 복원을 강행한 만큼 제재 효과에 대한 압박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이란 경협의 전망은 밝지 않다. 그러나 한반도 의제 측면에서 보면 북한 정권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이란 강경파가 국내외 압박으로 대외 무력활동을 자제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와 한국
2019년 역시 자연재난과 기후변화의 위협은 지속할 것이다. 신기술과 기후변화와 같은 신흥안보 위기들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경제∙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신흥안보 위기들은 한국을 한 단계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신흥안보 관련 글로벌 거버넌스의 대부분은 미완성 단계로 강력한 제도가 부재하다.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구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통상전략과 한국
미중 무역전쟁 아래 한국이 처한 상황은 근시안적∙한반도 중심적 접근이 아닌 장기적∙포괄적∙입체적인 관점에서의 통상정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2018년 양자주의에 기반한 국제통상질서는 한계를 보였고, 2019년 CPTPP, RCEP으로 대표되는 다자무역협정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통상질서 판의 변화를 분석, 판단하고 당위성과 이상보다는 합리성에 근거한 전략적 선택을 요구한다.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전략적 지위와 국가 목표의 달성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선택은 한국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며, 이에 따라 협력 혹은 갈등의 내용과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