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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대선에서 국민은 1728만 표라는 역대 최다 투표로 이재명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새 정부가 국민 통합, 경제 살리기, 튼튼한 외교안보 3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여 성공한 정부가 되기를 기원한다.

모두 어려운 과제이지만 특히 외교안보가 큰 걱정이다. 6월 4일 새 정부 출범에 대한 미·중 양국 정부의 반응부터가 심상치 않다. 미국 백악관은 “한·미 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될 것”이며 “미국은 중국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우려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몇 시간 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일관되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해 왔다”며, 미국이 “한·중 관계를 이간질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이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새 정부의 외교안보는 무엇보다도 미·중 관계의 변화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외교가 바깥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큰 후과를 치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출범 이후 2017년 12월 출간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중국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했고 1년 후 대 중국 관세전쟁이 시작되었다. 40여 년간 지속된 포용정책은 폐기되고 바이든 정부도 트럼프 1기의 대중 적대 정책을 계승했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중 관계는 거의 총성 없는 준 전쟁상태로 바뀌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동맹에 대한 압박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앞장서 국제 질서를 챙기며 ‘희생’만 했다며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년간 왜 이렇게 변했을까? 두 가지 구조적 변수 때문이다. 첫째는 중국의 상승으로 미국의 상대적 권력이 약화되었는데, 그 중국이 도광양회를 버리고 미국에 정면 도전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해군은 미국의 해군력을 추월하고 있다. 둘째는 과거와 달리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 미국을 적대하는 세력이 많아졌고 이들이 서로 연대해서 대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2기 미국이 보기에 동맹국들은 미국에 적극 협조하기보다 아직도 여유를 부리며 자국 부담을 줄일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맹들에 대한 태도가 거칠어졌다. 이러한 미국을 상대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 상황에서 우리의 국익도 추구하고 미국의 요구도 만족시킬 접점을 철저히 계산해 내야 할 것이다.

지금 한·미 간에는 최소한 3가지 중요한 인식의 격차가 존재한다. 첫째는 주한미군의 역할이다. 미국은 미·중 관계가 격화되면서 점차 주한미군을 대만을 비롯한 한반도 밖에서 활용하기를 원한다. 트럼프 2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명확하게 주한미군을 대중국 억제용으로 쓰고 북한 위협 억제는 한국군에 맡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이 북한 위협 억제에만 집중해 주기를 원한다. 주한미군이 빠져나가면 북한군의 도발 위협이 증대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군사력으로도 충분히 북한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타협안 중 하나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는 대신 우리의 대북 억제력 증강 차원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확장억제 강화를 요구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은 대만 사태에 대해서도 한국이 적극적으로 미국과 함께 해주기를 원한다.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지리적 범위가 한반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보다 광범한 지역 분쟁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시각에서는 6·25전쟁 때 한국을 지키느라고 5만4000명의 미군이 사망했는데 한국이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 편을 들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당장 미군을 빼고 동맹도 끝내자고 나올 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이미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했으나 측근들의 만류로 그만둔 적이 있다. 북한이 갈수록 군사력을 첨단화하면서 위협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책 없이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셋째,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샹그릴라 대화에서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 미국과의 방위 협력을 동시에 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을 안다”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그들의 해로운 영향력을 심화시킬 뿐이며, 긴장된 시기에 우리의 국방 관련 결정의 공간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지나치게 경제를 의존하면 해당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안보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암시가 담겨있는 심각하고도 난감한 코멘트이다. 우리는 역으로 미측에 조선, 원자력, 반도체, 방산 등의 분야에서 미국과 경제 협력을 대폭 강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과, 동시에 안보를 의존하는 동맹국 미국이 우리 외교의 최우선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북한과 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전쟁 방지를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경우 이러저러한 대북 시도를 하더라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진행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후일 미·북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 미국이 우리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게 만들 최소한의 명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트럼프 2기 한국 외교안보의 최대 과제는 동맹 관리가 될 것 같다.

 

* 본 글은 6월 7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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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윤영관

이사장

윤영관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입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에 임용되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한국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한반도 평화연구소의 창립 회원이자 이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동아시아 비전그룹 II 공동의장(2011-2012)과 국회의회 외교 자문위원회 위원장(2019-2020)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국제정치경제, 한국 외교정책, 남북관계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