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남짓밖에 안 되었지만, 트럼프 2기의 출범은 전 세계에 안보, 경제, 민주주의 차원의 심각한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안보 차원을 보자.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을 멀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권위주의 지도자와 밀착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즉각적인 우크라이나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을 러시아, 북한, 벨라루스와 같은 편에 서서 반대했다.
경제 차원에서는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중국, 유럽, 아시아의 중요 무역파트너 국가들의 상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해외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유치하여 제조업을 부활하겠다는 전형적인 중상주의 정책이다. 동맹국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고, 자유무역이라는 국제규범의 혜택을 누리며 경제성장을 이뤄온 한국은 큰 불안과 고민에 빠졌다.
트럼프 2기 출범의 세 번째 도전은 민주주의의 후퇴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배하는 공화당은 의회 상하원 다수 의석을 장악했고, 대법원도 그를 지지하는 보수적 대법관들이 다수다. 그런 상황에서 이달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인들을 추방하지 말라는 연방판사의 판결을 무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 판결을 내린 판사의 탄핵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존 G 로버츠 대법원장은 “2세기 이상 동안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법은 탄핵이 아니라, 다른 정상적인 사법절차가 있었다”며 공개 반박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논객 로버트 케이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공화적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 정치 시스템으로 확 바꾸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정치가 건국 초기의 민주주의, 삼권분립 등 자유주의적 건국의 아버지들에 반대했던 반자유주의의 흐름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유를 인종 갈등에서 찾는다. 트럼프는 2011년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와 관련한 적법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공화당의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자들이 트럼프 중심으로 뭉치면서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경제적 불평등이 미국 민주주의 약화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인종주의도 과거 미국의 노예제가 남부에서 유지될 때 소수의 부유한 백인 농장주들이 부유하지 않은 다른 백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장한 이념이었다는 것이다. 정체성 갈등이나 문화적 갈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경제적 이익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도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탈산업화 과정에서 진행된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양극화로 인한 정치적 불만 누적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주의자(Trumpist)들이 활용했다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세계화, 자유민주주의,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추진해 온 세력과 다양성과 같은 그들의 담론 자체를 몰아내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스라엘에서는 2023년 이래 베냐민 네타냐후 우파 정부가 사법부의 권한을 제약하려 개혁을 시도하다가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모범적 민주국가 독일에서는 나치에 동조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올해 총선에서 20.8% 득표로 두 번째 다수 정당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이 정당을 미국의 밴스 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이 지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24년 반이민, 국가주의를 내세우는 극우주의자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National Rally)이 의회선거 1차 투표에서 34%를 확보했다.
스웨덴의 한 연구소(V-Dem Institute)는 2024년 현재 지난 20여 년 이래 처음으로 독재국가들이 민주국가들보다 많아졌다고 발표했다. 지구 인구의 4분의 3이 독재정부 치하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1978년 이래 최고로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는 인구는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강력한 민주주의 후퇴의 광풍이 한국에도 몰아칠 가능성이 몹시 우려된다.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도 사실 위태위태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삼권 분립, 그중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이 과연 잘 지켜지고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의심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탄핵 남발로 인한 혼란은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념, 지역, 계층, 세대, 젠더까지 겹겹으로 갈등이 중첩되고, 일부 무책임한 소셜미디어들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본산으로 여겨졌던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가 걱정스럽다. 전시효과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원칙 준수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낮추거나 제거해 버릴 위험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제왕적 대통령제와 무한 갈등의 정당정치를 개혁하고 지방자치제를 강화해서 한국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튼튼히 해 놓아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거의 내란 수준에 준하는 극단적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의 길을 열면서 안보, 경제 분야의 도전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전은 승자독식 대통령제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정치학자 바버라 F 월터 교수의 경고다.
* 본 글은 3월 29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