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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69년 북해 대륙붕 사건에서 대륙붕이 육지의 자연적 연장이라 판결했다. 한국은 1970년 ‘해저광물자원 개발법’을 공포하면서 한반도의 자연적 연장에 근거해 오키나와 해구 근처까지 7광구를 설정했다. 이에 일본이 반발했지만, 결국 한·일 양국은 영구적인 대륙붕 경계 획정 대신 잠정적인 7광구 지하자원의 공동탐사와 공동개발이라는 우회로를 택했다. 1974년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이 체결된 배경이다. 하지만 협정이 1978년 발효된 이후 거의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유망 광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협정 제31조 3항에 따라오는 6월 22일이면 한국과 일본 모두 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킬 권리를 갖게 된다. 일방 당사국의 종료 통보가 있으면 3년 후에 협정은 종료된다. 이 협정이 체결될 당시 한국에 유리했던 국제법 환경은 크게 변했다.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이 성립되면서 일본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은 무조건 200해리 대륙붕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반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 변화로 한국의 강력한 논거였던 자연적 연장론, 즉 한국의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이어진다는 주장은 힘을 잃었다. 일본은 이 협정을 한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과거 일본이 공동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이유이자 일본이 협정을 종료할 것이란 예상의 근거가 된다.

협정의 종료 조항은 한·일의 협상력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일본은 오는 6월 22일부터 한국의 입장과 상관없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킬 법적 권한을 갖게 된다. 한국이 협정 유지를 원한다면 법적 권한을 가진 일본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양국 간에 일종의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일본이 이러한 갑의 지위를 대가 없이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접근이다. 설사 일본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과 한국의 6·3 대선 이후 신정부 출범을 염두에 두고 6월 22일 종료 통보를 하지는 않더라도 이후에 언제든지 협정 종료를 무기로 한국에 외교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

한국의 선택지는 단순하다. 협정 존속을 위해 일본에 대대적 양보와 타협에 나서거나, 아니면 을의 입장을 거부하고 협정 종료를 감수하는 것이다. 한국은 먼저 국제법을 철저히 이해한 다음에 협정 유지와 공동개발을 신성시하지 말고 국익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손익계산을 해야 한다.

협정이 종료된다 하더라도 한·중·일 3국의 대륙붕 권리 주장이 겹치는 이 수역에서는 어떠한 경계 획정이든 한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국 측에 불리한 결과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이러한 경계 미획정 중첩 수역에서 석유 시추 등 일방적인 자원개발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그런데도 만약 일본이 국제법 위반 행위를 감행한다면 오히려 한국이 공세의 입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 법적 대응과 함께 일본의 국제법 위반에 상응하는 자체 자원개발에 나설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협정이 종료되면 한·일 공동개발구역(JDZ)만 사라질 뿐 한국 국내법에 따른 7광구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협정상 공동개발 조항이 지난 수십 년간 7광구 탐사와 개발을 제약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협정 종료는 한국이 공동탐사·공동개발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되는 의미도 된다.

중첩 수역에서 행하는 단독 시추는 국제법 위반이므로 여전히 주변국 동의 없이 이뤄지기 어렵겠지만, 기존 협정 하에서 일본의 동의가 없어 실행하지 못했던 탐사 등 일부 기술적 조치들은 가능해진다.

협정 유지 여부는 6월에 출범할 새 정부가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이라는 큰 틀에서 결정할 것이다. 정부 교체기만 되면 한·일 관계 현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반일 팔이’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이 출몰했다.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은 그런 세력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타성을 벗어버리는 인식 전환으로 한·일 관계의 위기 요인을 관리해야 한다. 협정의 맹목적 유지가 아니라 실질적 국익 확보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협정 종료가 한국에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전략적 선택지를 꼼꼼하게 점검할 때다.

 

* 본 글은 5월 28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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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민
심상민

선임연구위원

심상민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사법학과를 나왔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국제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한국 전력산업에서의 기후변화 법-정책 문제를 연구주제로 하여 법학박사학위(JSD)를 취득하였고, 미국 환경법연구소(ELI) 방문연구원,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조교수,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카이스트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국제법 강의 외에 다양한 국제법 이슈에 관해 연구 및 정부 자문을 행하고 있으며, 특히 핵비확산·북핵 문제, 해양법, 북한인권, 국가책임, 기후변화, 그리고 비전통안보 현안(환경, 에너지, 경제, 인간안보)을 주요 연구분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