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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우방 쉽게 무시하는 트럼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흔들려
인·태지역 동맹 네트워크 구축을
 
출범 3개월째로 접어든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폭탄 투하 등 동맹국들을 대하는 발언과 정책이 경악스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를 “우리가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캐나다에 대해서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행보에 대해 프랑스의 한 상원의원은 “민주주의 몰수(confiscation of democracy)의 시작”이라고 비판했고, 어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야만적 현실주의자’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러시아가 무력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불법적으로 침공했음에도 미국 대통령이 이제 와서 러시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위주의 체제들에 적당한 이익을 보장해주면 미국의 지도력이나 권위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고, 동맹국들에 더 많은 기여를 강조하면 미국은 국내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는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듯하다.

대내적 억압에 따른 국민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속성상 자신들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아무런 징벌이 가해지지 않을 경우 그들은 더 큰 도발이나 침략을 노릴 것이다. 미국의 타협적 정책이 미국 쇠락의 신호라고 받아들여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더욱 노골적으로 도전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권위주의 세력의 거센 도전을 극복할 소중한 자산인 동맹국을 미국이 스스로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동맹국을 폄훼하고 압박하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동맹 및 우방은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가치에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동맹이 흔들리면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질서도 위태로워지고, 미·중 전략경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 등 공급망 재편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몰입해 눈앞의 위험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자유주의 동맹국들이 먼저 나서서 상호 연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0년대에 들어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이 중심에 서서 동맹국들을 이끄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s)’ 체제를 탈피해 동맹국들의 상호협력을 강화하는 ‘격자무늬 동맹(Lattice-like Alliance)’ 구축을 추구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동맹 네트워크 강화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 권위주의 체제들에 대한 경고와 억제의 의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실망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의 나토 탈퇴에 대처하기 위해 ‘대비 태세 2030(Readiness 2030)’ 로드맵을 제시하고 5년 이내에 재무장할 것을 선언했다.

둘째, 미국의 동맹국들이  상호 협력을 강화해 자유민주주의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이는 부담 분담과 동맹국들의 기여 확대라는 기조와 부합한다. 따라서 거래를 중요시하고 미국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트럼프 정부라도 동맹국들과 손을 잡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판 나토’ 설립 논의를 본격화해 러시아·중국·북한의 권위주의 국가들의 연대에 따른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나토식 핵 공유를 통해 북한 핵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높이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는 지난 2022년부터 ‘인도·태평양 4개 파트너국(IP4)’ 자격으로 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해왔다. 이제는 포괄적으로 대서양 국가들과 태평양 국가들을 아우르는 안보 협의 메커니즘을 제도화하고, 합동 군사훈련 등을 통해 협력의 실행성을 높여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동맹은 미국을 중심으로 창설됐지만, 미국만의 것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동맹들과의 협력에 소극적일수록 여타 동맹국들은 더욱 단합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공동의 자산을 지킬 수 있다.

 
* 본 글은 4월 9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