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1990년대 초반 이후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완전한 북한 비핵화’는 진전이 없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해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수단의 획기적 강화가 필수적이지만, 이와 함께 다자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의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이젠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참여한 6자 회담을 복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지난 17년 동안 열리지 않았고, 북한은 향후 6자 회담이 재개된다면 ‘핵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해방 80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이란 주제의 아산플래넘에서 한 참석자는 5자 회담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제안했다. 기존 6자 회담에서 러시아가 제외되는 방식이다. 핵무장한 북한과 동맹을 결성한 러시아는 당연히 북한 비핵화 모임에 참가 자격이 없고, 한·미·일 안보 협력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결합되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5자 회담이 실제로 성립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숫자상 3대2 구도가 된 다자 회담을 거부할 것이다. 중국 역시 자신들의 발언권이 줄어들 수 있는 회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와의 타협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역시 5자 회담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다.
5자 회담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면 다른 형태의 다자 회담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데, ‘미국 이란 핵 협상’으로 알고 있는 다자 협상을 원용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P5,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에 주요 이해당사자인 유럽연합과 이란이 참가했던 협상이다. 이 방식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모두가 참가한다는 점에서 무게감을 더할 수 있다. 그래서 이란 핵 협상과 비슷하게 유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에 북핵의 잠재적 피해국인 한국·일본, 그리고 북한까지 참가하는 8자 회담이 만들어질 것이다. 다만, 일본이 참여하면 숫적으로 열세인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래서 P5+한국+북한의 형태로 비핵화 협상을 전개하는 7자 회담이 참가국들의 수용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우리의 당사자 지위를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을 대표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모두가 참가하므로, 중국과 러시아가 멤버 구성에 이의를 제기할 명분도 줄어든다. 북한이 7자 회담을 통해 도출된 합의를 위반하거나 이행을 거부할 경우, 자연스럽게 유엔 대북 제재의 추진이 가능하다.
새로운 형태의 다자 협상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관철할 통로를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 또한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에 대한 비정상적 집착을 국제사회가 절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김정은으로 하여금 핵무기에 집착하면 정권과 체제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
* 본 글은 5월 7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