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4일,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 소식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발 빠르게 뉴스를 전하며 이번 탄핵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실시간 속보와 구체적인 정황 및 분석 기사,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언론보도와 방송까지 일본은 왜 이렇게까지 한국의 국내 사정에 촉각을 기울이는 걸까.
일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길게는 2012년부터, 짧게는 2018년 말부터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시작으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양국 관계는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그에 따른 한국의 반일 시위와 불매운동,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닥친 코로나19 여파로 민간 교류까지 급격히 감소하며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 윤석열 정부였다.
정치인의 길이 길지 않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얼어있던 양국 관계를 풀었고, 이로써 양국 관계는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12년간 멈춰있던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가 복원됨에 따라 수많은 정부 회의체가 되살아났고, 양국 국민은 더 이상 상대국을 방문하며 위협을 느끼지 않고, 더 이상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서로의 문화를 향유했다. 국내에서는 많은 비판과 ‘굴욕 외교’ ‘저자세 외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日 “정권 변화에 관계없이 한일 협력 지속돼야”
하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도 일본은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대일 정책을 바꿀 것이고, 뿌리 깊은 반일감정을 정치에 이용할 것이라는 우려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뚝심, 그리고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자세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본의 의심도 줄어들었고, 한국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윤석열 정부하에서의 대일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한일 관계는 안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던 윤석열 정부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의 상당 부분을 윤석열 정부에 기대고 있던 일본 입장에서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권 변화에 관계없이 한일 협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최근 일본에서 줄곧 나오고 있는 메시지다. 그런데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아마도 일본이 이 간결한 한 문장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의) 정권 변화와 관계없이 한일 협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그러기 위해 일본은 노력하고 있다. 한국도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현재의 대일 외교 방침을 유지해 주길 바란다)”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 정치가 불안정하던 지난 1월, 이와야 다케시 외무대신이 방한하며(1월13일) 한일 관계 진전을 약속했고, 이후 이어진 미·일 정상회담(2월7일)에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 한일 외교장관회의(3월22일)에서는 한일 협력의 중요성 등을 계속 강조했다. 정상 간 외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점에서 나온 유의미한 결과이자, 양국 외교 당국의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그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한일 관계 개선이 정부 간 관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 과정에서 줄곧 지적되어온 ‘한국의 불만, 일본의 불안’을 불식시킬 만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의 분기점을 마련한 윤석열-기시다 두 정상의 만남이 12번이나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국이 기대하는 성과는 나오지 않았고, 이는 정부 당국 간 화해 노력이 민간까지 파급되는 효과가 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정부 간 화해가 이루어졌으나, 정부와 민간, 민간과 민간의 인식 차이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의’ ‘정부에 의한’ 한일 관계 개선이 풀지 못한 과제였다. 그럼에도 현재의 한일 관계 개선 무드를 이어가야 한다는 일본의 의지는 강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의 오랜 한일 갈등의 원인이 한국에 있었던가.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다”는 우려의 목소리, 그리고 “한국이 골대를 옮긴다”는 오랜 프레임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일 관계를 바라볼 때 주로 이야기됐고,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양국 갈등의 원인, 한국이 제공한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대일 정책 혹은 대일 외교 기조가 줄곧 일관되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정말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본질이 사라지고 말았다.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고, 왜 그토록 오랜 기간 많은 이의 고통의 시간은 외면받아야 했는가.
이 과정 속에서 한국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모습들은 ‘반응적 형태’였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 의한 강제징용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대다수의 갈등 사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 정도에 따라 갈등이 크게 부각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무엇이 더 옳은 선택인지는 논의할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한국이라는 식의 표현은 옳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바뀌기 때문에 한일 관계가 흔들린다거나, 한일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프레임은 더더욱 옳지 않다. 관계는 두 국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노력은 한 국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2025년 현재, 앞으로 이어질 약 두 달간의 대선 국면에서 한일 관계는 다시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정부의 대일 정책과 대일 방침은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주목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한일 협력의 틀을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은 어느 정부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무역, 안보 등 다양한 파고 속에서 한일이 협력해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이를 위해 한국에만 기대는 한일 협력보다는 한일이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4월 12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