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부터 지난 6개월간 한국 국내 정치의 변화를 당사자인 우리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대표적 이웃 국가 중 하나는 아마도 일본일 것이다. 한일, 한·미·일 관계를 중시하고, 일본의 대외정책과 결을 같이했던 윤석열 정부가 예기치 못한 사태로 단명 정권으로 끝나며 불안과 우려가 증폭되었다.

2023년부터 이어져온 한일 관계의 해빙 무드 속에 양국의 상호 호감도가 높아지고, 양국 국민 간 교류가 이미 1000만 명을 넘으며 정치,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협력을 논하며 한층 격상된 관계를 지향했던 양국의 노력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지난 2년이 한일 관계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기반을 다져왔던 시간이라면, 앞으로의 2년(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은 그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양측 모두 국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2025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시바 총리의 관계를 통해 ‘윤석열-기시다’를 잇는 ‘윤석열-이시바’ 밀월관계, 혹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잇는 제2의 공동선언, 나아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를 마지막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국빈방문을 22년 만에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시각에서 볼 때, 이 모든 기회는 윤석열 정부의 퇴진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한국에 이익 안 되면 반일로 돌아설까 걱정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일본의 현재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이다. 2023년 이후 이어져온 한일 관계 개선의 선두에 서있던 사람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고, 국내적 반대와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도 이를 끌고 왔던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은 윤석열 정부에는 빚이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에 호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칠게 말하면, 이는 ‘한국’과의 협력이라기보다는 ‘윤석열 정부와의 협력’ ‘윤석열 정부에 대한 호응’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윤석열 정부만큼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할지는 미지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제1당 유력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윤석열 정부의 대일 노선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일본에 대한 정책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조되는 실용·실리·실익은 오히려 불신을 부추긴다. 일본에서 “한국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반일로 돌아서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과거 일본을 ‘적성국가’로 언급하는 등의 발언이 있었던 것을 통해 볼 때 갑작스러운 일본 친화적 자세는 오히려 미심쩍다는 것이다. 신뢰의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일관성이 없다는 인식과 그동안 축적되어온 신뢰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인식과도 이어진다. 더군다나 현재의 여론조사상의 유력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 다수를 점한 강력한 정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 점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일본의 인식이다. 주지하듯이, 의원내각제인 일본이 바라보는 대통령제 한국은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에 주목되어 있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 주어지는 대통령의 영향력은 대통령 개인, 대통령의 측근들의 인식과도 이어져 있고, 그들의 주요 생각이 미치는 영향력을 주목하게 만든다. 차기 정권의 대일 정책에 있어 각 후보자가 일본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는지, 각 후보 진영 내 외교·안보 분야 참모는 누구이며, 그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차기 안보실장, 외교장관, 주일 한국대사는 누가 될 것인지에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日 사회에 ‘한국은 중요 협력 파트너’ 인식 커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 국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제1당에서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 국회의 절대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은 대통령은 글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실상이 이와 다르다 하더라도, 막강한 국회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이는 오는 7월 치러질 참의원선거의 결과와 관계없이, 여전히 소수 여당인 자민당의 현실과 불확실한 이시바 정권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일본이 한걸음 더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본 내에는 한국과의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폭넓은 컨센서스가 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일본의 인식이다. 전 세계적으로 처해진 트럼프발 관세 위기와 국제 정세의 불안정 속에서 일본과 유사한 입장에 처해 있는 한국과의 협력은 일본에도 중요하다.

비록 바이든 정권의 퇴장으로 캠프 데이비드로 대표되는 한·미·일 협력이 어느 정도 유지·발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북핵 문제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공동 대응 등 전통적인 협력 의제와 경제안보, 과학기술, 보건·환경·기후변화 등 새로운 글로벌 과제에 대한 협력 필요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즉, 역내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은 일본에도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다만, 다양한 국내외적 변화 속에서 일본이 먼저 적극적으로 협력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협력의 자세는 유지하되, 한국의 새로운 정권의 대외정책 기조와 방향성을 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국 신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일 간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한시적이긴 하나, 6월 출입국 절차 간소화를 시작으로, 6월 중순 주한 일본대사관(6.16), 주일 한국대사관(6.19) 수교 60주년 기념 이벤트에 양국 리더 참석 여부가 주목될 것이고, 6월22일 이후 가능해지는 한일대륙붕협정 종료 여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G7(주요 7개국) 등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성사 여부, 이후 8월이 되면 일본의 전후 80주년 담화와 한국의 광복절 기념사 등이 주목받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과제 속에서 한일 관계의 선순환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본 글은 5월 31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