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2000년대 초반부터 축적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인 인식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이스라엘에 더 우호적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 정계 내 유대계 영향력,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친이스라엘 정서, 중동 내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 등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미국 내 팔레스타인 동정론은 이례적으로 확산됐다. 전쟁이 길어지고, 이스라엘의 지나친 군사 작전이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 위기를 심화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미국 내 여론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지 않았지만, 그 추세가 반대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에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과 휴전 협상 실패에 대한 미국 내 아랍계·무슬림·청년층 및 정책 커뮤니티의 실망, 중동 지역 여론 악화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는 즉각적인 휴전 촉구, 가자지구 인도주의 지원 확대, 전후 평화 구상 구체화 등으로 외교 전략을 급히 조정하기도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미국 여론의 단기 변화폭이 컸고,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고려해 정책을 조정했다는 점에서 여론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 주는 함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외교에서 여론보다 핵심 지지층 입장을 우선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도 친이스라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통상 여론이 미국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전쟁을 계기로 형성된 새 여론 지형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다. 본 연구는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국 내 여론 변화 속에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초기 중동 정책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나타난 미국 내 여론 변화는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자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2022년 35%에서 2024년 52%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장기화된 전쟁이 이스라엘-이란 간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높이며,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증대시킨 데 따른 반응이다. 전쟁 기간 이란의 무장 대리세력인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이슬람 저항군 등이 하마스와 연대해 이스라엘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고, 이에 이스라엘은 ‘제2의 독립전쟁’을 선언하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로 인해 ‘중동전면전’ 우려가 확산되면서 대중의 안보 불안이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미 주요 언론과 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이란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해 역내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미 국방부도 이러한 우려를 반영해 중동 지역에 병력을 증파하고 항공모함을 전개해 대응했다.
둘째, 짧은 기간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론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이스라엘의 군사 대응 강도가 높아지며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 참사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졌다. 실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동정 인식은 기존의 25% 안팎에서 2025년 3월 33%까지 상승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휴전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점도 이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미국 안보와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한 미국인의 급증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동 정책의 안보 중심적 접근을 정당화하는 핵심 논거로 활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강경한 군사작전을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닌, 중동 지역의 안정과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로 간주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인도주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친이스라엘 노선을 고수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 또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대학가에서 확산 중인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대해, 이를 단순한 인도주의적 연대가 아닌 하마스의 폭력을 미화하고 반유대주의 정서를 조장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시위가 증오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고 보고, 관련 활동에 대한 단속과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한편, 전쟁 발발 후 확산된 팔레스타인 동정론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친이스라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반전 여론의 확산이 2024년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공화당 유권자층의 여론 변화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 공화당 지지층 내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 응답 비율은 2023년 10월 64%에서 2025년 58%로 소폭 하락했다. 전체적으로 팔레스타인 동정론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중시하는 공화당 지지층 내에서는 여전히 친이스라엘 성향이 유지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당시 경합주 내 아랍계 및 무슬림 유권자 동원에 일정 부분 신경을 기울였으나, 당선 후에는 기존 핵심 지지층에 보다 집중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랍계가 밀집한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42%의 득표율(해리스 36%)을 기록한 결과는, 트럼프 본인에게 자신의 단호한 리더십이 진영을 넘어 일정 수준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으로도 보인다. 따라서, 현재로선 미국 내 팔레스타인 동정론 확산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동 정책을 조정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오히려 핵심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향후 친이스라엘 노선을 더 강화할 수 있다.
● 2004년 이래 최소 32%, 최대 58%의 미국인은 양측 간 갈등을 자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봤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양측 간 갈등을 심각한 위협으로 본 미국인은 52%였다. 이는 2004년 최고치(58%)에 가장 근접했다. 2000~2005년이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팔레스타인 민중봉기)로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 테러,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과 보안장벽 설치 등으로 폭력과 보복이 이어지던 혼란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하다.
● 2001년 이래 미국인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장기 우호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2023년 전쟁 발발 전후로 이스라엘 우호 인식이 10%p 하락했고, 2024년 최저치(58%, 이스라엘 우호)를 기록한 점은 주목할 결과이다. 반면, 대팔레스타인 우호 인식은 최저 11%에서 최고 30% 범위에 있었다. 2024년 미국인의 팔레스타인 우호 인식은 18%로 장기 평균에 가까웠다.
●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후 이어진 이스라엘의 군사 대응에 대한 미국인의 평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대응이 적정했다고 본 비율은 2023년 11월 38%에서 2024년 34%로 감소했다. 한편, 이를 지나쳤다고 본 응답은 2024년 1월 50%까지 상승했다가 2024년 9월 42%로 하락하며 2023년 11월의 40%와 유사해졌다.
● 2001년 이래 미국인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동정 인식은 시기별로 달랐다. 2010년을 기점으로 미국인 60% 이상은 이스라엘 사람을 동정한다고 답했고, 양측 간 분쟁이 이어졌지만 이 경향은 2019년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후,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동정은 연이어 하락한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동정은 상승했다. 2019년 이후 이스라엘인을 동정한다는 미국인이 줄면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동정 인식이 늘었다. 이 비율은 2022~2024년 30% 내외를 기록했다(2022년 26%, 2023년 31%, 2024년 27%).
● 2023년 전쟁 발발 전후인 2023년 3월부터 2024년 11월 사이 미국인의 이스라엘과 팔 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동정 인식은 전반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락세, 팔레스타인은 상승세를 보였다. 전쟁 직후 이스라엘 사람을 더 동정한다는 미국인은 2023년 10월 48%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이 수치는 하락해 2024년 11월 31%가 됐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동정은 2023년 3월 10%대에서 2024년 하반기 20%에 가까운 비율까지 상승했다. 이스라엘의 군사 대응이 지나쳐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 참사로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 미국인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인식 변화는 2024년도 미국 대선 유권자의 투표 행태에서 일부 드러났다. 아랍계·무슬림 유권자가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과 휴전 협상 실패를 강하게 비난했기에 부통령인 해리스 후보를 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을 대부분 지지했던 이들은 2024년 초부터 ‘#바이든을버려라(#Abandon Biden)’ 캠페인을 벌였고, 민주당 경선에서도 낙선운동을 이어갔다. 2024년 10월 아랍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더 성공적으로 해결할 후보를 묻는 질문에 트럼프 39%, 해리스 33%로 당시 트럼프 후보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동에서도 자국 이익에 기반한 거래식 외교, 지불 능력을 중시하는 동맹관, 신고립주의를 내세우며 민주당 정부가 전통적으로 강조하던 동맹·인권·민주주의 가치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을 것이다. 역내 안보 상황이나 동맹 우방국이 처한 군사 위협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역내 군사 개입을 줄이고 기존에 주둔하던 미군 철수를 서두르면서 탈중동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최대 적국이자 자국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이란의 강경파 지배 연합에 압박 정책을 펼칠 것이다. 핵 개발 프로그램, 역내 무장 프록시 육성 등 이란의 군사 모험주의와 팽창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경제 제재와 군사 위협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이란과 거래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며 핵 협상 재개를 위한 채널을 병행해 여지를 남기는 이중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걸프 산유국과 군사 안보협력을 적극 도모할 것이다. 이들 산유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무기 거래 및 방산 협력에서 지불 능력에 근거한 거래주의 방식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산유 왕정에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기에 양국 협력은 심화할 것이다.
목차
요약
I. 들어가며
II. 미국인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식
1. 미국인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인식
2.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전후 미국인의 인식 변화
III.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대응
1.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2.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
IV. 나가며
부록: 미국인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식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