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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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동아시아 지역 다자외교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아세안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그리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가 막을 내렸다. 대개 10월 말~11월에 진행되었던 이 일련의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는 인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와 일정을 맞추기 위해 9월에 열렸다.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임기 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해리스(Kamala Harris) 부통령이 바이든의 빈자리를 메웠다. 2024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사실상 올해가 마지막으로 대외정책과 외교에 신경을 쓸 수 있는 해였다. 재선이 된다면 모를까 2024년 11월 5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일정을 감안하면 2024년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 바이든 대통령의 참석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2023년 바이든 대통령의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불참은 바이든 행정부의 미흡한 동남아 관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기업원(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선임연구원이자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하는 쿠퍼(Zack Cooper)는 “바이든이…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은 미국의 일관성 없는 관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신호다… 바이든은 지난 APEC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바이든의 참석 기록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기록에 더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1 동남아 지역 전문가의 견해도 유사하다. 싱가포르 외교부 차관을 지낸 카우시칸(Bilahari Kausikan)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트럼프 대외정책의 “공손한 버전(polite form)”이라고 묘사하고 있다.2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ia Society Policy Institute)의 정치안보 담당소장인 엘리나 누르(Elina Noor)는 “바이든이 없어도 괜찮아. 아세안은 자기 갈 길을 만들면 돼(No Biden, no problem: Asean just has to forge its own path)”라고까지 주장한다.3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에 가졌던 기대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에서 바이든의 성적표는 좋지 않다. 아세안 국가들이 기대했던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미국, 경제적 관여의 확대를 통해 중국과 균형을 맞추는 미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이든 임기 내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 중국 견제를 위해 몇몇 가까운 동맹국가와 전략적 협력만 강화되었다. 여기에 아세안의 자리는 없었다. 역내포괄적경제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참여는 고사하고 한때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의 부활 등 역내 자유무역을 위한 미국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고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 구축에 바빴다.

전체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동남아 전략 성적표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굳이 평가를 하자면 동남아 국가들의 눈에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보다는 나아졌지만 기대했던 오바마 행정부 수준에는 한참 모자랐다. 현재 중국이 아세안 방면에서 미국을 압도하는 전략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바이든 행정부 미국의 대아세안 관여가 시원치 못한 상황에서 중국이 공세적으로 나왔다면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입지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높았던 기대 – 지역 다자주의와 경제적 관여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동남아 국가들은 새로 등장하는 미국 행정부에 많은 기대를 보냈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대한 기대는 롤러코스터를 탔던 앞선 행정부들의 대아시아 정책, 대동남아 정책에 비춰보면 이해된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피벗 정책(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ancing) 정책으로 하루가 다르게 부상하는 중국의 힘에 맞서 미국의 동남아 지역 관여가 지역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4 이런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지역에 대한 비관여(non-engagement)를 넘어선 무시 정책으로 인해 크게 낮아진 상황이었다.5 피벗 정책을 실시했던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던 바이든의 귀환, 그리고 당시 외교안보 참모진의 대거 행정부 발탁은 이런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를 크게 높였다.6

2020년 말,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행해진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nstitute for Southeast Asian Studies-Yusof Ishak Institute)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동남아 국가의 기대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였던 2019년과 2020년을 앞두고 행해졌던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대동남아 관여가 증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각각 68%, 77%는 미국의 대동남아 관여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가할 것이라는 대답은 13.3%, 9.9%에 불과했다. 반면 바이든의 취임을 앞두고 행한 조사에서 미국의 관여가 감소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6.9%에 불과했고, 관여가 증가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68.6%에 달했다. 불과 1년 전인 2020년 결과에 비해 거의 60%포인트(p)가 증가한 놀라운 반전이었다.7

<그림 1. 바이든 행정부의 대동남아 관여에 대한 동남아 국가의 기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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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의 관여에 대해 가졌던 기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역 다자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와 경제적 리더십이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EAS,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SEAN Defense Ministers’ Meeting Plus, ADMM-Plus) 등은 아세안이 늘 주장하는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프레임워크 들이다. 이런 다자협력체에 지역 국가, 특히 미국과 중국같은 강대국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해야만 아세안중심성이 의미를 갖게 된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이런 지역 다자협력 참여를 등한시했다. 아시아 피벗 정책을 실시한 오바마 정부는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바마는 2013년 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이라는 긴급한 국내 문제로 EAS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 외에는 임기 중의 모든 EAS에 참여했다.9

오바마의 뒤를 이은 트럼프는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를 무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APEC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비전(a vision for Free and Open Indo-Pacific)”을 밝혔으나 EAS가 열리는 필리핀까지 갔다가 정작 EAS에는 참여하지 않고 회의 시작 직전 귀국하는 돌발행동을 보였다. 2018년 EAS에는 마이크 펜스(Mike Pence) 부통령이 대신 참석했고, 2019년에는 격을 더 낮추어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 국가안보보좌관이 대신 참석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EAS를 개최하는 필리핀은 물론이고 이를 주도하는 아세안 전체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비쳤다.10 동남아 국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한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이 ‘피벗 2.0(Pivot 2.0)’의 방향으로 가면서 아세안 주도의 다자무대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바랬다.11

두 번째 기대는 지역 경제질서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이었다. 여전히 경제성장이 가장 긴급한 국가 과제인 동남아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지역 경제질서의 안정은 중요하다. 더욱이 많은 동남아 국가들이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 자유무역 질서는 경제성장을 위해 핵심적 요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동남아 국가들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라는 과제가 있다. 동남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상승에도 불구하고 2021년 기준 미국은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의 수출 1위 대상 국가이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고 아세안 전체로 수출 2위 대상국이다. 베트남은 미국 시장에서 무역흑자를 보는 국가 중 세 번째로 큰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12 이런 동남아 국가의 상황을 놓고 보면 왜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이 주도했던 TPP에, 더 정확히 말하면 TPP를 통한 자유무역 확대와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에 큰 관심을 보였는지 이해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아세안은 지역의 무역 자유화와 경제통합을 위해 RCEP을 만들었다. RCEP은 미국을 제외한 아세안 국가의 주요 무역파트너를 모두 포함한다. 아래 표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2021년 기준 아세안의 상품 무역을 보면 아세안 역내 무역이 21.3%를 차지해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중국, 미국, 일본, EU, 한국 등이 뒤따르고 있다. 이 중에서 RCEP에 포함된 아세안 10개국, 한, 중, 일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와 무역 규모를 보면 아세안 국가 전체 무역의 약 57%를 차지한다. RCEP을 통한 이 15개국 간 무역 자유화의 확보가 아세안의 무역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미국을 포함하면 이 비율은 68%까지 올라간다. RCEP이 아세안에 가장 중요한 무역 대상들과 무역 자유화를 추진하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안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장에 관한 우려도 있다. 미국이 RCEP에 참여한다면 역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장에 대해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표 1. 2021년 아세안 역내 무역과 주요 무역 상대국>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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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이 소외된 바이든 행정부의 인태 전략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아세안과 아세안 국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동맹 국가들과 안보, 전략 문제 중심의 인태 전략은 아세안 국가를 포함한 많은 지역 국가들을 미국의 인태 전략에서 소외시켰다.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의 인태 전략에서 주변부에 머물거나 그 밖에 위치한다는 것은 중국의 영향권 확장 노력 앞에 이 국가들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 동맹 위주로 진행된 인태 전략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 1년 만인 2022년 2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을 펴냈다.14 이전 트럼프 행정부에서 인도-태평양은 애매했다. 2017년 11월 베트남 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비전(a vision for Free and Open Indo-Pacific)”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를 이어받아 미 국무부는 2019년 11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보고서를 펴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처음으로 인도-태평양을 언급했을 때는 전략(strategy)이라기보다는 프레임워크(framework) 정도로 불렸다.15 여기에 공식적으로 ‘전략’을 붙인 것은 바이든 행정부였다.

동맹의 복원을 외친 바이든 행정부의 인태 전략의 전략적 협력은 소수의 동맹 위주로 전개됐다. 이전 트럼프 행정부는 호주의 탈퇴로 약해진 쿼드 협력을 2017년 부활시켰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더욱 강화해 2021년 3월 쿼드를 정상회의로 격상시켰다. 2022년 5월 쿼드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성명에서는 안보, COVID-19, 보건, 인프라, 기후변화, 사이버, 신기술, 우주협력, 해양상황인식, 인도적지원 등에 관한 쿼드 워킹그룹을 결성해 협력을 구체화했다.16 2021년 9월 미국, 호주, 영국은 오커스(AUKUS)라는 3국 간 안보협력을 발표했다. 미국은 영국과 협력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고, 3국 간 국방과 외교 정책의 고위급 교류, 외교안보와 관련된 사이버 공격 대응,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같은 첨단기술 분야 협력, 해저 능력 등 안보와 국방 기술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17

일견 활발해 보이는 미국의 인태 전략 추진은 동맹과 전략적 협력이란 방향으로 경사되어 있다. 미국의 인태 전략에서 가장 주축이 되는 쿼드와 오커스는 기존 미국의 동맹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는 중국의 전략적, 안보적 위협에 어떻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 동맹국가들이 대응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나온 합의에 따라 3국 간 전략적 협력, 안보 협력이 더욱 강화됨으로써 전략적 협력, 안보 협력, 배타적 성격을 가진 동맹 중심의 협력이라는 미국의 인태 전략이 가진 성격은 더욱 공고화되었다.

미국의 인태 전략이 인태 지역에서 비교적 힘이 강한 미국의 전통적 동맹 국가를 중심으로 군사, 안보, 전략 문제에 집중하면 할수록 인태 지역 내 많은 개발도상국은 미국의 전략에서 소외되기 쉽다. 쿼드만 해도 동남아 지역에서는 미국이 지역의 믿을 만한 동맹국들을 앞세워 미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냉전시기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 체제의 귀환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미국이 태평양 너머 수퍼 허브(hub)로 존재하고, 인태 지역을 각각 일본(동북아와 일부 동남아), 호주(일부 동남아와 남태평양), 인도(서남아)라는 세 개의 세미 허브(semi-hub)가 관리하는 변형된 형태의 허브와 스포크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다.18 동남아 국가를 비롯한 인태 지역의 많은 국가는 여기서 힘없는 스포크, 더 나쁘게 말하면 관리 당하는 약소국으로 남게 된다.

오커스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영국이 지원해준 핵추진 잠수함으로 호주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활동을 감시할 것이다. 반면 동남아 국가 입장에서는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배타적 경제수역, 영해를 누비고 다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호주와 동남아 국가 사이 미묘한 긴장관계는 둘째 치더라도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의 활동을 감시할 만한 해양상황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 MDA) 능력이 부족한 동남아 국가들은 자신의 주권 영역 침해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19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대비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해양 주권에 침해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 반갑지는 않다.

 

아세안의 기대에 못 미친 바이든의 경제 전략

 

바이든 행정부의 인태 전략에서 경제적 축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세안 국가 입장에서 경제 부문의 인태 전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세안의 기대에 어긋난다. 먼저 미국의 인태 전략은 지역 개발도상국가에게 실질적 이익이 되고, 개발도상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기대하고 있는 경제협력을 뒤로하고 쿼드, 오커스 등 전략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두 번째로 경제협력도 경제안보라는 이름하에 안보 문제로 포함시켰다. 경제안보도 중요하지만 몇몇 미국의 인태 지역 동맹 국가를 제외하면 경제안보, 공급망 강화 문제는 당장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긴급한 문제도 아니며 개발도상국은 경제안보와 공급망 강화에 있어 중요한 행위자도 아니다. 오히려 아세안 국가들처럼 개발도상국이 원하는 TPP의 부활, RCEP에 대한 미국의 관심, 전반적으로 지역 경제질서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바이든 행정부 인태 전략의 경제적 축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7월 한국,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뉴질랜드, 피지와 아세안 7개국이 협상 참여를 선언하고 2023년 미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계기 타결 선언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중이다. 7개에 달하는 아세안 국가들이 IPEF 협상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세안 입장에서 IPEF는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가져오기 어렵다. 아세안 국가들은 경제적 목적보다 미국의 지역에 대한 지속적 관여의 보장이라는 전략적 목적을 위해 IPEF가 요구하는 어려운 국내 경제 개혁 등을 받아들인 측면이 크다.20

반면 동남아 국가들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TPP의 복원을 기대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공을 들였던 정책인 만큼 이를 함께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가 TPP를 복원할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21 미국이 탈퇴한 후 일본, 호주 중심의 인태 지역 국가들은 미국의 복귀를 기대하면서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을 마련하고 미국을 기다렸다. 결국 이런 미국에 대한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표 2. IPEF, RCEP, CPTPP 참여 현황>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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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유무역과 자유무역협정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현재 미국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바이든 정부의 TPP 복귀는 어려운 일이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TPP를 부활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했어야 하는데 그런 시도도 없이 더 손쉽고 느슨하며 구속력 없는 IPEF로 갈아탔다. IPEF는 추진하기 쉬운 만큼 장기적 구속력이 없다. 의회 비준을 거치는 조약이 아닌 만큼 바이든 행정부 이후에도 IPEF가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인태 지역 국가들이 미국에 바라는 경제적 리더십, 즉 자유무역, 시장개방에 관한 내용도 없다.24 한편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내세우는 공급망 강화와 같은 문제들이 IPEF에 전진배치되어 있다.

동맹 국가를 포함해 인태 지역 국가들 사이 가장 포괄적인 경제협력 체제는 RCEP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 호주를 포함해 아세안 10개국, 뉴질랜드, 그리고 중국까지 포함되어 있다. 물론 RCEP이 추구하는 무역자유화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고 인도가 마지막 순간에 빠지기는 했지만 RCEP은 인태 지역에서 가장 많은 국가가 자유무역이라는 목표로 함께 하는 다자협력체다. RCEP 참여국가 GDP 합은 26조 1천억 달러, 인구는 22억 7천만 명에 달한다. IPEF(34조 6천억 달러, 25억 명)보다는 작지만, CPTPP(10조 8천억 달러, 5억 1천 명)보다는 훨씬 크다. RCEP에 참여하는 국가는 15개로 미국의 동맹국이 주도하는 CPTPP(11개국)나 미국이 주도하는 IPEF(14개국)보다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경제협력체다.25

미국은 RCEP이 사실상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 프레임워크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이 RCEP 안에서 가장 큰 경제인 것은 맞지만 실상 RCEP은 아세안이 주도한 지역 자생적 다자 경제협력체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아세안 10개국은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격전지다. 미국이 RCEP을 외면하면 RCEP에서 중국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고 여기에 참여한 아세안의 개발도상국들은 중국 쪽으로 더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영향력 확장을 위해 이용하려는 지역 다자협력에 참여해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인태지역 국가들에게 중국보다 미국이 더 나은 선택지임을 증명해야 한다.

 

아세안 눈에 비친 바이든 행정부

 

아세안 국가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기대했던 대동남아 관여가 불충분했다는 점은 실제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앞서 언급했던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의 2023년 여론조사를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동남아 관여에 대한 동남아 국가의 평가를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볼 때 여전히 동남아는 미국을 선호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항목을 놓고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동남아 전략에 대한 평가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글로벌 차원의 자유무역에 대한 리더십과 규칙기반질서 및 국제법에서 리더십을 보면 미국이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보인다고 꼽은 비율은 2022년 각각 30.1%와 36.6%에서 2023년 각각 21.9%, 27.1%로 하락했다.26

더 직접적으로 미국의 동남아 지역에 대한 관여가 증가했는가 혹은 감소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39.4%의 동남아 응답자는 미국의 관여가 늘어났다고 답을 했다. 그러나 이 비율은 2022년 결과, 즉 바이든 행정부 첫해 미국의 대동남아 관여에 대한 평가에 비해 6.4%포인트(p)가 감소한 비율이다. 특히 미국이 인태 전략하에서 동남아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꼽는 싱가포르(60.8%에서 50.0%로 하락), 베트남(52.8%에서 26.5%로 하락)에서 미국의 대동남아 관여가 줄었다는 평가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남아 관여가 크게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을 보여준다.27

미중 경쟁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세안 국가들은 2022년 57%가 미국을 선택했고, 2023년에는 61.1%가 미국을 선택해 상대적으로 중국에 비해 미국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승세를 중국과 가깝다고 하는 캄보디아(18.5%에서 73.1%로 상승), 라오스(18.2%에서 58.9%로 상승)가 주도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과 가깝다고 하는 필리핀(83.5%에서 78.8%로 하락), 싱가포르(77.9%에서 61.6%로 하락)에서 미국을 선택한 비율은 줄어들었고, 지역에서 가장 큰 국가인 인도네시아(55.7%에서 46.3%로 하락), 중립적인 말레이시아(57.0%에서 45.2%로 하락)에서 미국을 선택한 비율은 감소했다.28 친중 성향으로 알려진 국가에서 미국 선택 비율이 늘어난 것은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가져온 반작용으로 보이며, 그 외 국가에서 미국을 선택한 비율이 하락한 것은 중국 변수가 아닌 미국의 관여 자체가 불만족스럽다는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이 인태 지역에서 중국과 벌이는 전략 경쟁은 중국의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역 동맹국가를 규합해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태 지역에서 미중 전략 경쟁은 인태 지역에서 누가 더 많은 국가의 지지를 받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누가 지역 국가들의 마음을 얻고 더 큰 세력권을 형성하는가라는 문제다. 아세안 10개 국가는 이런 미중 사이 세력권 확장 경쟁에서 키를 쥐고 있다. 중국이 미국보다 지역 국가들의 신뢰를 더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지금처럼 몇몇 동맹 국가와 군사, 안보, 전략 협력에만 관심을 두는 전략을 계속할 경우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이 제시하는 인도-태평양이라는 비전에 쉽게 올라탈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이 인태 지역에서 리더십을 다시 회복하고자 한다면 지금처럼 아세안을 포함한 다수의 지역 국가를 경시하고 동맹 국가만 끌어안으며 경제적 리더십은 방기하고 군사-안보적 측면만 중시하는 인태 전략은 재고되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