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3개월을 맞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동맹국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당혹을 넘어 신뢰의 상실까지 우려된다. 취임 전부터 동맹국이 공평한 부담·분담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월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무역에 있어) 때론 동맹국들이 우리의 적보다 더 나쁘다(worse than our enemies)”고 단언하기도 했다. 4월 상호관세 발표와 90일 유예 선언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5개 ‘최우선협상국(top targets)’을 선정했는데, 이 중 4개국(한국, 일본, 호주, 영국)이 미국의 동맹국이고, 인도 역시 ‘쿼드’를 통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동맹까지도 거래대상으로 다루는, 아니 오히려 미국의 안보공약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점을 이용해 관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행태는 많은 동맹국을 실망하게 만든다. 반면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유화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침공자인 러시아와의 협상을 우선시하고, 전략경쟁의 최대 맞수라고 규정한 중국에도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보인다.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선포한 이후 우리에 대한 적의를 여과 없이 표출하는 김정은에게도 “영리한 인물”이라면서 호감을 나타낸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미국이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해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마당에 우리가 괜히 이들과 갈등 관계를 만들 이유가 없고, 북·미 협상 가능성을 고려하면 남북 간 긴장 해소를 위해 대북 유화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체제 사이의 줄타기를 통해 이익을 도모하는 마당에 왜 우리가 가치중심적 접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인권, 규칙 기반 세계질서 등의 가치가 누구에게 강요를 받은 것인가. 우리의 정체성까지 희생하면서 얻는 ‘실리’가 과연 그렇게 클 것인가.
특정 가치를 추구하면 다른 국가들과는 척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교조적 사고는 아닌가.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우위(핵능력)는 인정하되 체제 변화는 시도하지 말라는 북한의 ‘평화’ 개념이 과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이미 관세전쟁의 국내적 여파로 홍역을 치르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향후 대외정책상 조정을 시도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노선을 고집하더라도 미국 중심의 기존 세계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트럼프 시대 이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의도하든 아니든 지금 미국은 동맹국의 대응을 통해 미래의 핵심 파트너를 식별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는 실망감에서 동맹으로부터 이탈하거나 협력관계를 이완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선택은 결국 나중에라도 동맹을 복원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동맹국들의 ‘균형’은 ‘글로벌 사우스’의 그것과는 다르며, 더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당당하게 우리 의견을 개진할 것은 하되, 흔들리는 동맹을 확신시키고 설득해야 할 이유다.
안보와 경제협력을 서로 연계하고 동맹국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된 추세고, 트럼프 행정부는 그것을 분명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 역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반도 방위를 제외한 모든 군사적 관여는 ‘남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고, 지역 안정에의 기여는 특정 주변국을 적대시하는 것이므로 회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한 한·미동맹의 위기는 주기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 본 글은 4월 28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