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활동은 일상이 되었다. 비대면 활동은 인터넷망을 통한 온라인 공간의 확보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온라인 공간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인터넷망 유지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해저 (데이터) 케이블도 보호되어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해저 케이블의 보호를 둘러싼 국제법적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터넷망 유지와는 관련이 없기는 하지만 해저 케이블의 보호를 위한 여러 국가들의 노력은 이미 19세기 후반 결실을 맺은 바 있다. 1884년 ‘파리 협약’이라고도 불리는 ‘해저 전신 케이블의 보호를 위한 협약’(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Submarine Telegraph Cables)이 체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협약은 오늘 현재도 발효 중이다.
해저 (데이터) 케이블에 문제가 발생하여 온라인 공간의 확보에 전제조건이 되는 인터넷망이 두절되는 경우는 이론적으로나 존재하는 상상의 일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08년 1월 해저 케이블이 손상되어 이집트 전체 인터넷망의 약 70%가 끊어진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아직까지도 설왕설래가 있으나 선박의 닻 때문에 해저 케이블이 손상되어 인터넷망을 통한 온라인 공간 자체가 강제적으로 폐쇄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명이다. 2020년과 같이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활동이 일상이 되고 온라인 공간이 오프라인 공간을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해저 케이블을 보호할 필요성은 더욱 더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저 케이블의 보호는 어떤 국제법상 쟁점 또는 논점과 관련이 있는가? 여러 가지 쟁점 및 논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유엔해양법협약 제113조가 “모든 국가는 자국기를 게양한 선박이나 자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사람이 전신이나 전화 통신을 차단하거나 방해할 우려가 있는 방법으로 공해 아래에 있는 해저 전선을 고의나 과실로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저 관선이나 고압 전선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는 처벌 가능한 범죄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규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령을 제정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참고로 유엔해양법협약의 국문 번역본에서는 해저 케이블이 해저 ‘전선’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유엔해양법협약이 통신과 관계있는 모든 종류의 케이블을 규율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13조는 기본적으로 공해 아래에 있는 해저 케이블을 고의나 과실로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자국 국적 선박 또는 자국 관할권 내에 존재하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입법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 의무만으로는 만약 자국 국적 선박 또는 자국 관할권 내에 존재하는 사람이 고의나 과실 ‘없이’ 타국에 속하는 해저 케이블의 파괴 또는 훼손에 관여된 경우 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 더구나 해저 케이블의 파괴 또는 훼손은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묻는 문제보다는 오히려 어떤 국가에 속하는 해저 케이블의 파괴 또는 훼손에 타국 선박 또는 사람이 관여된 경우 그 타국에게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물을 수 있는 논리 도출에 방점이 있어야 한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2008년 이집트 전체 인터넷망의 약 70%가 두절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해저 케이블의 파괴 또는 훼손의 결과는 그 끝을 상상하기 어렵다. 단순히 비대면 소통이 중단되는 것을 넘어 여러 국가들의 금융시장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국가에 속하는 해저 케이블의 파괴 또는 훼손에 타국 선박 또는 사람이 관여된 경우 그 타국에게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제법상 몇몇 논리가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논리는 바로 “국가(들)가 자신의 관할권 또는 통제 내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 또는 국가관할권 한계를 넘는 지역의 환경에 손해를 야기하지 않을 것을 보장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소위 ‘No-harm 원칙’을 해저 케이블의 보호를 위한 하나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No-harm 원칙이 해저 케이블의 보호를 위해서도 원용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국가는 타국에 속하는 해저 케이블의 보호를 위해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상당한 주의를 다하지 못한 경우 설령 자국 선박 또는 사람이 고의나 과실 ‘없이’ 타국에 속하는 해저 케이블의 파괴 또는 훼손에 관여된 경우에도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제고된다.
이외에도 어떤 국가가 타국에 속하는 해저 케이블을 ‘절단’한 경우 이를 ‘무력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여부도 논의되고 있다. 해저 케이블의 절단은 ‘물리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요즘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고 있는 ‘사이버 공격’과는 다소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해저 케이블의 절단으로 온라인 공간의 폐쇄가 단 하루만 일어난다 해도 피해를 입은 국가의 피해를 수치화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어떤 국가가 타국의 해저 케이블을 절단하는 경우 그 ‘규모와 효과’에 따라 무력공격으로 간주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는 논리적으로 유엔헌장 제51조에 따라 해저 케이블의 절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가 가해국에 대하여 자위권을 발동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전 세계 인터넷 ‘해외’ 트래픽 중 약 90% 이상이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해저 케이블의 보호를 위해 국제법이 보다 정교한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해저 케이블의 보호를 위해 지금보다 국가들이 좀 더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부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적 논리를 개발하는 것은 비대면 활동의 일상화를 맞이하고 있는 2020년 현재 최우선적인 국제법적 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2020년 12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