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지난 4일 담화로 시작된 북측의 대남 공세는 역시 김여정의 13일 담화로 확실한 의도를 드러냈다. 이 정도면 처음부터 전면적 관계 단절과 긴장 조성을 의도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끝이 어딜지 불확실하지만, 다음은 확인된다.
첫째, 북한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 제기는 한반도 긴장 조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김여정의 4일 담화에서 예고한 “남측과의 일체 접촉공간들을 완전 격폐하고 없애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들”은 통일부의 전단 살포 금지 조치 발표에도 9일 남북 통신선 전면 단절과 대남 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남측이 11일 급을 높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전단 살포를 다시 한번 불법 행위로 규정했음에도 김여정은 13일 담화를 통해 군사 도발을 포함한 연속적인 행동으로 보복하겠다고 천명했다. 한국의 요구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극적 긴장 조성을 계획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북한의 초조함이 읽힌다. 4일부터 시작된 북한의 담화 공세는 하루에 두 번까지 발표되고, 미국의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비난 성명이 연속되는 등 숨 가쁘게 진행됐다. 언급된 주제도 전단 살포 외에 처음부터 “상전”이라면서 미국을 소환했고 곧바로 핵 문제로 넘어갔다. 12일 담화를 통해 “국가 핵발전 전략을 토대로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라고 했다. 13일 담화에서도 “핵능력 향상은 바로 이 순간에도 쉬임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북한이 쫓기듯 한반도 긴장을 단숨에 고조시킨 것은 북한 내 위기 상황을 반영한다. 북한은 처음부터 노동신문을 통해 전단 살포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고 남한 정부와 탈북자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활용하는 타도 대상 선정의 전형적 행태다.
북한 내 위기는 아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잠행과 대외 활동 축소 등을 불러온 이유가 원인이 될 수 있으나, 외부에서는 경제적 문제가 보인다. 북한은 1월부터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함으로써 경제적 생명선이 막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평양에서도 물가 급등과 사재기가 관찰된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경제적 내구성이 다해가는 북한이 익숙한 ‘벼랑 끝 전술’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조성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도 겨냥하고 있다. 자력갱생을 통한 장기전으로 계획했던 정면돌파 노선이 코로나19로 차질을 빚자 시간표를 빨리 돌려 단기간 한국을 전방위로 몰아붙이면서 미국에 부담을 안기려 하는 것이다. 북한도 한국이 제재 대오에서 이탈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동시에 코로나19와 인종 문제로 미국이 북한 문제에 신경쓸 여력도 부족함을 인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에 극적으로 긴장을 조성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선전에 북한 문제가 악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양보를 얻어내려 하는 것이다.
정부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군사 조치를 예고한 만큼 한·미동맹 점검이 시급하다. 2013년 한·미가 서명한 ‘국지도발 대비계획’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더불어 남북 관계를 통해 북·미 관계를 추동한다는 정책에서 물러나야 한다. 북한이 핵 위협을 천명한 이상 남북 관계는 북한 비핵화와 병행돼야 한다는 미국 입장을 수용해야 한다. 북한의 말폭탄에 대해서도 경고해야 한다. “달나라에서나 통할 달타령”과 같은 북한의 막말에 같은 수준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으나 원칙 차원에서 북한 행태에 대한 단호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 본 글은 6월 15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