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정부서 안 보이는 세 가지, 전략·유능한 참모·국격… 더 무서운 건 ‘오만과 편견’
자기들만 평화 세력이고 대북관 다르면 무차별 공격… 실수 바로잡을 시간 아직 남아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의 후폭풍이 거세다. 다자 회담을 계기 삼은 회동도 아니고 방미 양자 회담을 가졌는데도 공동성명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공동 언론 발표도 없다. 각각 내용이 다른 양측의 발표는 갈등하는 한·미 동맹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엎친 데 덮친 격인 김정은의 오지랖 발언은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말 이대론 안 된다.
최근 정부의 행보에는 세 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먼저 전략이 없다. 어느 수준의 비핵화 최종 상태를 어떤 과정을 거쳐 추진할지가 불분명하다. 그저 대화만 이어가면 된다는 식의 대화 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 워싱턴 방문도 그 단면일 뿐이다.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해법이 언젠가는 미국과 접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하노이의 충격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했다. 서둘러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그랬는지 준비와 소통이 부족했던 한·미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고, 정부가 급조해 낸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은 한 달 만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유능한 외교 안보 참모진이 보이지 않는다. 중재안을 들고 미국에 갔으면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지지(support)’ 발언을 이끌어 내야 했다. 치열한 협상을 통해 나라 체면을 세워야 했다. 미 측이 ‘지지’를 못 하겠다면 ‘주목(notice)’이라는 말이라도 얻어내야 했다. 그래야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실무 협상만으로는 부족해서 정상 간 대화로 미국을 설득해야 했다면 영부인 대동 단독 회담이라는 의전을 포기해야 했다. 사진 촬영을 곁들인 공개 행사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고, 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과 ‘제재 완화 반대’를 말해 버려 사실상 정상회담은 거기서 끝났다. 이럴 바엔 ‘단독 회담’이라는 말이나 말지, 별로 빛날 것도 없는 의전을 자랑하려다 전무후무한 ‘2분 단독 회담’을 외교사(史)에 남겼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대한 존중이 없다. 지난 12일 김정은의 ‘오지랖’ 발언은 듣는 귀를 의심케 했다. 자기 뜻대로 대화가 안 된다고 그간 도움을 준 한국 정부를 무시했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가을이 왔다며 떠들던 정상회담 합의문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정상회담을 갖겠다는 뜬구름 같은 말을 하면서 북한의 막된 행동에 무한 관용을 베풀고 있다. 우리의 국격과 국민적 자존심을 생각했다면 “남북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말부터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고 격조 있게 일침을 놔야 했다. 정부의 침묵으로 세계 10위권 중견국 한국은 불법 핵 개발을 빼면 모든 게 최하위권인 북한에 훈수나 받는 처지가 되었다.
김정은의 몽니로 그간의 보여주기식 성과마저 무너지고 있지만, 아직도 문재인 정부에는 3년이 남아 있다.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실수를 바로잡고 올바른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봐야 할 잘못된 인식이 있다.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오만은 잘못된 판단을 낳는다.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평화 세력이라는 왜곡된 믿음으로 정세를 잘못 읽었다. 북한의 비핵화 개념을 따져봐야 한다는 국내 일각의 걱정보다 북한의 모호한 태도에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며 열광했다. 남북 관계를 되돌릴 수 없게 진전시키겠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 돼서 남북 관계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편견은 위험하다. 자신의 대북관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직접 “적대와 분쟁의 시대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듯한 세력도 적지 않다”고 말해선 안 된다. 편견을 갖는 순간 그 외교는 반쪽짜리가 된다. 다른 견해를 무시하고 편 가르기를 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원리처럼 무능한 인사를 양산한다. 대통령은 생각이 다른 이를 힐난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북핵 전문가가 지금 주변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래야 이번과 같은 외교적 재앙을 예방할 수 있다.
바뀔까 하는 걱정은 여전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기대는 남겨둔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겉으로는 오만해 보이는 남자와 자신은 사람을 잘 파악한다고 자부하는 편견에 사로잡힌 여자가 각기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며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을 담고 있다. 정부도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언젠가 다시 찾아올 남북과 미·북 정상회담을 비핵 평화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길 기원한다.
* 본 글은 4월 17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