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위기다. 비단 북핵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미간 이견이나,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 아니다. 국제정세와 리더십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비전통적 상황이 두 개의 태풍으로 발전해 충돌하는 ‘최악의 상황'(perfect storm)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풍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피해가는 지혜로운 항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날 한미동맹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리더십의 변화로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먼저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 미국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졌다. 냉전 시기 경제력의 절대적 우위를 바탕으로 동맹국들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탈냉전 이후 국제질서가 다극화 되고 있고 중국과 다른 지역의 부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동맹국의 보다 많은 지원을 확보하려 하고 경제적으로 성장한 한국은 그 핵심 대상 중 하나다.
리더십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하면서부터 동맹국보다는 미국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물론이고, 그 밖의 동맹 문제에 대한 입장이 과거 미국 행정부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작년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했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일방적 연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러한 상황은 2월말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한미동맹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변화된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맹의 미래에 대한 심모원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한미관계에서는 동맹에 대한 존중이 드러나지 않고,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공동의 로드맵도 보이지 않으며,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서도 거래의 부정적 측면만이 부각되고 있다.
북한이라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약화하려 들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위협’의 핵심이 한미동맹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동맹의 핵심인 주한미군 감축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만일 한미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정상 수준의 갈등으로 치닫게 될 때, 두 개의 태풍이 충돌하는 상승효과로 이어져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현실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안보에 커다란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한미동맹을 방위비 분담금의 관점에서 좁게 바라보면 이익을 주고받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지만, 한미관계라는 큰 틀에서 보면 상호 이익이 되는 윈-윈(win win) 구조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안보 문제에 관심을 덜 쏟으면서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동시에 미국이라는 시장을 통해 최근 수년간 평균 20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보아왔다. 이러한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국은 국방비를 증액하며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무기체계를 구매함으로써 미국에게도 이익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유지해 왔다. 바로 이 방법이 앞으로 다가올 도전을 극복하는 길이다.
먼저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방위비 분담금은 한 푼도 소홀히 써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증액해주는 대신, 경제 분야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는 접근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의 협상 결과를 한국보다 더 잘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이나 일본과의 협상에 활용하고자 한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에게 명분을 주고, 우리는 실리를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관세 문제나 기타 통상 분야에서 일정한 양보를 얻어낸다면 대미 무역흑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이익을 다시 우리의 국방력 강화로 연계시키며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선순환적 접근을 제안한다면 미국과 서로 ‘윈-윈’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한미간 갈등 확대가 북핵 협상에서 주한미군 문제로 확대되고, 나아가 한미 통상갈등으로 이어지며 더 큰 손실로 악순환 되는 상황을 막는 일이 현 단계에서는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 본 글은 1월 27일자 디지털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