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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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2023년 서울에서 열린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공공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인기 보드게임을 태평양도서국 버전으로 만든 ‘퍼시픽 블루 마블’을 하고 있다. 출처: 도준석, 서울신문,
https://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11010013.

 

서문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태평양 도서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영향력 경쟁은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 18개 회원국과 미국, 프랑스, 영국의 해외 영토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 즉 지구 표면의 약 20%를 차지하는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전략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일부 국가들에 대해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중국으로 전환하도록 설득해 왔다.1 또한 솔로몬 제도와 같은 국가와 새로운 안보 및 치안 협정을 체결했으며, 2022년에는 10개 태평양 섬 국가와 안보 협정 체결을 시도하기도 했다.2 이는 전통적인 안보 파트너이자 주요 개발 공여국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이러한 전략적 배경 속에서 대한민국도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전략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으며3, 윤석열 정부는 2023년 5월 29일 서울에서 제1회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제까지의 성과는 어떠하며, 한국이 태평양 섬 국가들과 보다 효과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본 이슈브리프는 윤석열 정부의 태평양 도서 국가와의 관계가 어떠한 맥락에서 발전했는지 분석하고, 그 영향과 미래 전망을 평가한다. 먼저 대한민국의 태평양 도서 국가와의 협력 현황을 개관하고, 이어 한미 동맹 내에서의 책임 분담, 유사 입장국과의 협력, 국가적 위상 강화를 위한 동인들을 논의한다. 또한,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태평양 도서국에서 달성한 성과를 검토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전략적 파트너, 호주, 뉴질랜드,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이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본 이슈브리프는 대한민국이 태평양 도서국들과 독자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요 동맹 및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대한민국이 ‘전력 증강 리베로(force multiplier)’로 기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는 미크로네시아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호주와는 해상 안보 역량 강화에, 뉴질랜드와는 보건 및 기술 훈련에, 일본과는 개발 지원과 재난 대응에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1. 한국의 태평양 도서국 관여 배경

 
한국과 태평양 도서 지역 관계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노동 이주 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수천 명의 한국인이 하와이와 팔라우와 같은 지역의 농장에서 일했다. 미크로네시아의 사이판과 괌은 3,000명이 넘는 괌 주민, 즉 전체 인구의 2.2%가 한국계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로 남아 있다.4 그러나 한국이 태평양 도서 국가들과 외교, 경제, 안보 관계를 수립한 것은 여타 지역 국가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중국과 대만이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외교적 인정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온 것과 달리, 남북한은 이 지역 내 공산주의 정권 부재로 인해 냉전 시기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듯, 북한은 현재 태평양 섬 국가들 중 어느 한 곳에도 외교 공관을 두고 있지 않다. 반면 한국의 태평양 도서 국가들에 대한 관심은 주로 남태평양에서 운영되는 심해어업 선단,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괌 주둔 미군을 겨냥한 북한 미사일 위협, 그리고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국기를 사용하는 선박을 통해 제재를 우회하려는 북한의 시도5에 대응하는데 집중되었다. 또한, 유엔 등 국제 기구에서 북한 관련 결의안에 대한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관광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6

 

그림 1.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 회원국
(참고: 준회원과 옵서버는 흰색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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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acific Islands Forum Secretariat

 

1971년에 설립된 태평양 도서국 포럼(Pacific Islands Forum, PIF)은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한 18개 공식 회원국을 대표하는 주요 지역 기구이다. 또한, 주권을 공유하는 협정을 맺은 여러 준회원과 옵서버도 포함되어 있다(표 1 참조).7 대한민국은 1995년 PIF의 대화 파트너로 가입했으며 현재 PIF에는 총 21개의 대화 파트너가 있다.8 한국의 PIF와의 공식 교류는 대부분 차관급에서 이루어졌고, 2011년 이후 외무장관급 회의가 4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이 최근 10년간 태평양 도서국에 보여준 지도자급 참여와 비교하면, 한국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PIF 회원국을 직접 방문했으며, 시진핑 주석은 2014년 피지와 2018년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대통령은 2018년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와 같은 다자 정상회의를 제외하고는 태평양 도서 국가를 공식 방문한 기록이 없다.

 

표 1. 하위 지역별 태평양 섬 포럼 공식 회원9

표1

*COFA: 자유연합협약; FA: 자유연합

 

2. 태평양 도서국 관여의 동력

 
왜 한국이 갑자기 태평양 도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왜 2023년에 첫 번째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했을까?10 동남아시아나 중동 등 다른 지역과는 달리 태평양 도서 국가들과 한국 사이에는 주요한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동력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PIF 국가는 여전히 개발 도상국으로 분류되며, 호주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한국과 PIF 국가 간의 총 무역액은 수백만 달러에 불과하다. 한국과 호주 간의 연간 무역량은 2022-23년 동안 776억 호주 달러였으며,11 뉴질랜드와의 양방향 무역은 2023년에 85억 뉴질랜드 달러에 달한다.12 일부 PIF 국가는 상당한 경제적 투자와 인도적 개발 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집중되지 않았다. 더불어, 남태평양 지역 전역에서 중국의 경제 및 안보적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의 이익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또한, 국제 기구에서 외교적 지지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조차도 주요 고려 사항이 아닌데, 이는 일부 태평양 섬 국가들이 다른 국가의 해외 영토로서 투표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마침내 태평양 도서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한-미 동맹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됨에 따라 한국은 새로운 임무와 책임을 이행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13 예를 들어,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태평양 파트너십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이 태평양 도서국에 관여하는 것을 분명히 격려하고 환영했으며 이 전략의 네 번째 주요 과제는 ‘역내외 동맹 및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조한다.14

2023년 4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성명은 “두 정상은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도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회복성 있는 보건 시스템, 지속 가능한 개발, 기후 회복력 및 적응, 에너지 안보, 디지털 연결성을 촉진하기로 약속했다.”라고 명시했다.15 이 성명에는 또한 미국이 한미일 3자 협력의 우선순위로 태평양 도서국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이후 구성된 한미일 3자 인도-태평양 대화에서는 “미국, 일본, 한국의 대표들은 각국의 인도-태평양 접근법과 협력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으며,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섬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라고 언급했다.16 이러한 반복적인 동의는 관료적 인센티브와 그에 따른 후속 조치에 대한 압력을 유발한다.

둘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한민국의 주요 전략적 파트너들은 태평양 도서국 참여를 새로운 공통 관심 분야로 삼아 긴밀한 협력을 장려했다. 예를 들어, 2023년 대한민국은 인도주의적 자원, 사이버 회복력, 해양 및 어업 연구선, 기후 변화 지원을 통해 PIF 국가를 공동으로 지원하는 비공식 협의 및 조정 이니셔티브인 ‘푸른태평양동반자관계(Partners in the Blue Pacific, PBP)’의 8번째 회원국이 되었다.17 또한 양자적으로, 2024년 한-호주 외교•국방(2+2) 장관 공동 성명에서는 태평양 도서에 대한 광범위한 언급이 있었으며,18 2024년 9월 서울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룩슨 뉴질랜드 총리도 이와 유사한 입장을 보였다.19 따라서 앞으로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은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인도-태평양 전략적 파트너들과 양자 및 소규모 회담에서 태평양 도서국에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셋째, 대한민국의 증대하는 영향력은 여전히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외교적 및 재정적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간단히 말해, 과거 한국은 남태평양 지역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했으나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했다. 그러나 한국의 성장하는 역량은 이전에 배제되었던 분야나 지역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지지하는 새로운 동력들을 만들어냈으며, 이들은 협력의 기반으로서 공유된 이익과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부는 아프리카, 민주주의, NATO와의 지역 간 협력, 사이버 보안 및 인공지능에 관한 주요 정상회담을 주최했다.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는 민주적 거버넌스에 대한 지출을 총 1억 달러로 크게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2024년 한국은 약 50개 아프리카 국가가 참여한 첫 번째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으며, 정부는 아프리카에 대한 수출 금융을 140억 달러로 확대하고 2030년까지 공적개발원조(ODA)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20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성장하는 역량에 부합하는 위상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 한국의 태평양 도서국 전략 성과

 
윤석열 정부는 2023년 5월 29일 서울에서 제1회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한-태평양도서국 파트너십 정상선언: 회복력 있는 태평양의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을 발표했다.21 윤 정부는 한-태도국 정상회의를 “대한민국의 외교적 지평을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하고 책임 있는 기여 외교의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22 ‘자유•평화•번영의 태평양을 위한 행동계획’은 협력 로드맵 중 가장 야심 찬 계획 중 하나로, 2023년 5월에 43개의 구체적인 의제와 행동계획을 발표했다(표 2).23

 

표 2. 한-태도국 ‘자유•평화•번영의 태평양을 위한 행동 계획’

표2
 

한-태평양도서국 행동 계획에 따라 2024년에는 5개 정부 부처가 약 10개의 신규 사업을 도입했다. 해양수산부는 태평양 섬 국제 옵서버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 태평양 섬 해양수산 교육역량 강화 및 마스터 플랜 수립 연수사업, 피지 마코가이 섬 수산양식연구소 재건 및 기후변화대응 역량강화사업 등 5개의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주도했다. 이 외에 외교부는 피지 공공서비스 디지털전환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행정안전부는 피지의 홍수 예•경보시스템 구축을 지원했다.24

그러나 자원 제약으로 인해 행동 계획의 일부는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예를 들어, 외교적 영향력 확대는 행동 계획의 핵심 우선순위였으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외교부는 2023년 한-태도국 정상회의 결과의 일환으로 니우에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며,25  마셜 제도에 해외 공관을 설립할 계획을 언급했다. 특히 한국은 마셜 제도가 외교 공관을 둔 8개국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후 이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다.26 표 3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태평양 도서 국가 중 호주, 피지,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에만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4개국의 대사관과 프랑스, 필리핀 주재 대사관을 통해 태평양 지역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는 일본(12개국), 중국(11개국), 대만(3개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적은 수치이다. 이러한 주변국들의 대사관 운영 현황을 고려할 때, 한국이 앞으로 대사관을 개설할 수 있는 후보지로는 팔라우, 솔로몬 제도, 바누아투, 사모아, 통가 등이 있다.

 

표 3.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PIF 내 외교공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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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 외교부, 일본 외무성, 중국 외교부, 대만 외교부의 공공 데이터 및 영사 성명

 

또 다른 관심 분야는 행동 계획에 따른 한국의 개발 지원 노력이다. 윤석열 정부는 2008년 30만 달러로 시작된 한-PIF 협력기금을 2022년까지 150만 달러로 늘렸으며, 이를 더욱 확대할 것을 약속했다.27 2023년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이후 정부는 한-PIF 협력기금을 5배 증액해 연간 약 750만 달러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한-ASEAN 협력기금이 2018년 700만 달러에서 2023년 2,000만 달러로 증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28 또한 윤 정부는 한국의 ODA 예산을 21% 증액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2027년까지 태평양 섬에 대한 ODA 기금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2024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안에 따르면 한국의 총 ODA 중 태평양 도서국 지원액은 약 3,300만 달러로,29 이는 2023년 대비 1,200만 달러 증가한 수치다. 약속대로 지원 규모는 확실히 늘었지만, 2024년 전체 ODA 예산이 2023년보다 1조 4,900억 원(31%) 증가해 6조 2,600억 원에 달한 데 비해 오세아니아 지역 비중은 0.1% 소폭 증가에 그쳐 다른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증액을 보였다.30

요약하자면, 한국은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으나, 이러한 목표에 맞추어 외교, 인력, 재정 자원을 충분히 할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태평양 도서 지역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고 주요 전략적 파트너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까? 다음 절에서는 한국이 동맹국 및 파트너와의 협력 방식을 더 효과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한다.

 

4.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시너지

 
한국은 태평양 도서 국가들과의 관계를 단독으로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31 이 지역의 구성원인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이 지역에 오랜 관여의 역사를 가진 일본, 프랑스,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며 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 절에서는 주요 파트너들이 태평양 섬 국가와 함께 이미 진행 중인 협력 방안을 한국이 어떻게 활용하여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특히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32

이 4개국은 PBP 파트너 국가이며, 한국-호주-일본-뉴질랜드 간 협력은 NATO의 인도태평양 파트너십인 ‘NATO IP4’를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4개국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해 안보 협력 및 지역 안정화를 포함한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24년 9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서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한국은 PBP 이니셔티브 외에도 각 파트너의 우선순위와 역량에 맞춰 협력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는 미크로네시아의 회복력 강화를, 호주와는 해양 안보 역량 구축을, 뉴질랜드와는 보건 및 기술 교육을, 일본과는 개발 지원 및 재난 대응을 중심으로 협력할 수 있다.
 
4.1.  미국: 미크로네시아 지역 협력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남태평양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과 제국주의 일본이 남긴 전쟁의 유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하와이주,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의 3개 해외 영토, 괌, 미국령 사모아,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 COFA)을 맺은 3개의 “자유 연합” 국가인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 팔라우를 포함한다. 이 모든 지역은 군사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지정학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남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과 영토적 야망이 커지는 것은 종종 제국주의 일본의 ‘도서지역을 잇는 사슬’, 군사 거점, 보급 라인과 같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행동을 반영한 것으로 묘사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PIF를 포함하여 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8억 1,000만 달러의 경제 지원, 새로운 외교 관계, 기후 변화 및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에 대한 협력, 방위 및 안보 역량 강화 지원을 포함한 미국-PIF 지도자 정상 회담을 처음으로 개최했다.33

2023년 한미 정상회담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서 한국과 미국은 태평양 섬나라들과 협력을 약속했으며, PBP와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미국은 PBP를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되, 이 이니셔티브가 안보 협정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34 한국은 PBP 파트너로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기후 변화, 경제 개발,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PBP 협력을 ‘2050 푸른 태평양 대륙 전략’과 연계하여 기후 회복력, 개발 지원, 지속 가능한 개발 등을 우선시할 수 있다.

•정책제안 1: 한국과 미국은 PIF 전반에 대한 관여를 위한 하위 지역 허브로서 미크로네시아, 특히 미국 영토 및 COFA 파트너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는 한국이 동남아시아 전략에서 대 메콩 지역(Greater Mekong Subregion, GMS)에 주목하는 것과 유사하며, 한-메콩 협력기금도 포함된다.35 비슷한 맥락으로 한국은 한-미 미크로네시아 협력 기금을 설립하여 공동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COFA 재정 지원과 미국 내무부와의 조정을 통해 자금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4.2. 호주: 해양 안보 역량 강화
 
호주는 외교, 경제, 안보, 기후 변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태평양 섬나라들과 협력하고 있다. 호주는 태평양 섬나라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의 가장 큰 공여국이자 핵심 교역 파트너다. 2018년 11월, 당시 스콧 모리슨 총리는 ‘태평양 스텝업(Pacific Step-up)’ 정책을 발표하여 태평양 섬나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현 알바니즈 정부와 페니 웡 외무부 장관, 그리고 태평양 담당 전담 장관 하에서 더 심화된 수준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주요 협력 이니셔티브로는 안보 파트너십 및 조약 체결, 태평양 해양 안보 프로그램(Pacific Maritime Security Program, PMSP), 방위 인프라 파트너십, 사이버 및 핵심 기술 협력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호주의 태평양 섬나라들과의 방위 및 안보 협력은 포괄적 접근을 지향하며 이는 2018년 보에 선언(Boe Declaration)에 명시된 포괄적인 안보 개념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또한 태평양 및 동티모르 근로자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본국에 있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태평양 노동 이동성 제도(Pacific Labour Mobility Scheme)를 운영한다.36

2021년 한-호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 격상은 2015년 국방 안보 협력 청사진을 기반으로 태평양 도서국과의 협력 관계를 심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3년 5월 개최된 외교·국방(2+2) 장관회의에서 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양 안보 증진을 위한 대 태평양 도서국 협력 방안을 모색하며 전략적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다.37 한국은 호주와의 방위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역내 해양 안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3년 5월 호주 국경보호부 청장의 한국 해양경찰청 방문은 양국 간 해양 안보 협력의 심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양국은 정보 공유 및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태평양 도서국으로 확대함으로써 역내 안보 협력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또한 호주는 미국, 일본과 함께 블루 닷 네트워크(Blue Dot Network)를 통해 역내 주요 인프라 개발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기술력과 자원을 활용한 해저 케이블 및 항만 건설 등 남태평양 지역의 핵심 인프라 구축 사업 참여를 고려할 수 있다.

•정책제안 2: 한-호 양국은 해상 연안 순찰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을 우선 과제로 설정할 수 있다.38 호주의 태평양 해양 안보 프로그램(PMSP)은 약 40년간 지속되어 온 대표적 역량 강화 프로그램으로서, 퍼시픽 포럼급, 가디언급, 케이프급 순찰선 등 다수의 순찰 함정을 PIF 회원국들에 제공해 왔다. 그러나 호주 조선업체들이 자국 해군력 증강을 위한 건조 물량 확대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조선 산업이 호주의 조선 역량 보완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39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풍부한 경험을 보유한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신규 함정 건조 및 정비·수리·점검(MRO) 수요에 대응할 수 있으며, 배타적경제수역(EEZ) 감시를 위한 첨단 무인수상정 공급 등 새로운 협력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40

 
4.3.  뉴질랜드: 보건 및 기술 훈련
 
뉴질랜드는 태평양 도서국, 특히 폴리네시아 지역과 긴밀한 문화적·경제적·정치적 유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쿡 제도, 토켈라우, 니우에와는 ‘자유 연합(free association)’ 형태의 주권 공유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태평양 지역은 뉴질랜드의 국가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이는 2023-2028 ‘국가안보전략(Secure Together)’에서 태평양의 회복력과 안보를 강조한 것에서도 드러난다.41 2018년 도입된 ‘태평양 리셋(Pacific Reset)’ 정책은 기존의 일방향적 원조 관계에서 탈피하여 공동의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호혜적 파트너십으로의 전환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는 역사적·민족적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태평양 지역 개발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NZD 총 7억 4,640만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 중 60% 이상을 재생에너지, 수산업, 경제 회복력, 보건 등의 분야에 집중 지원하였다.42 2023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동료 검토는 뉴질랜드의 파트너 주도적 접근방식, 토착 가치 중시, 시민사회 지원, 기후변화 대응 재정 확대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43 최근 크리스토퍼 룩슨 신임 총리의 서울 공식 방문 시에는 PBP 체제하의 협력과 남극 협력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44

한-뉴질랜드 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인지하고 있으나, 구체적 협력 의제가 제한이었기 때문에, 태평양 도서국 협력이 새로운 우선순위로 부상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30여 개의 태평양 도서국 정부기관과의 네트워크 및 14개국과의 ‘4개년 개발 계획’을 보유하고 있어, 이는 한국의 역내 파트너십 확대를 위한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키리바시 베티오 병원 건립 사업에서 나타난 일-뉴질랜드 공동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는 역내 다자간 협력의 실현 가능성을 시사한다.45 역내 지정학적 동학의 변화에 따라 뉴질랜드는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으며, 룩슨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에 걸친 관여 확대와 호주, 영국, 일본, ASEAN, 인도 등 주요국과의 협력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46

•정책제안 3: 한-뉴질랜드 양국은 태평양 도서국 전역을 대상으로 대규모 예산 및 인력 투입에 의존하지 않는 고부가가치 중심의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 특히 원격의료 시스템 및 모듈형 의료장비 생산 등 보건의료 기술 지원은 뉴질랜드의 폴리네시아 건강 회랑(Polynesian Health Corridors) 프로그램과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교육 및 기술 훈련 분야에서는 양국 교육기관 간 협력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한국의 우수한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교수진은 뉴질랜드와 남극 및 환경 연구를 중심으로 견고한 연구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더불어 파시피카(Pasifika) 대학원생을 위한 공동 펠로십 기금 조성은 한국 전문가의 뉴질랜드 프로그램 참여를 촉진하는 상호 호혜적 관리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다.

 
4.4.  일본: 개발지원 및 재난 대응
 
1960년대 이래 일본은 어업 및 개발 협력을 통해 태평양 도서국들과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1997년부터 3년마다 열리는 태평양•섬 정상회의(Pacific Islands Leaders Meeting, PALM)는 지역 문제에 대한 주요 포럼이다. 2016년 당시 신조 아베 총리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비전에 뿌리를 둔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인도-태평양 지역 담론이 확대됨에 따라 발전했다.47 2021년 스가 총리는 일본과 태평양 섬 국가 간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태평양 유대(Pacific Bond) 정책을 도입했고48, 2023년 기시다 총리는 태평양 도서 지역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49 일본의 태평양 지역과의 협력에는 이제 안보와 군사적 측면이 포함된다. 일본은 2024년 7월 제10차 태평양•섬 정상회의(PALM10)에서 자위대 항공기와 함정 기항을 통해 방위 협력을 강화하고 해상보안 기관 간 교류를 촉진하는 공동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은 2023년 12월 피지와 공적안보지원(Official Security Assistance, OSA) 협정을 체결하여 순찰선과 관련 장비를 제공하여 태평양 지역과의 안보 관계를 강화했다.50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대한민국은 일본과의 양자 관계를 개선하며 협력 기반을 꾸준히 구축해왔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ASEAN과 태평양 도서국을 한미일 협력의 핵심 영역으로 강조했다. 2023년 한미일 외교부 차관보 공동성명은 “2050 푸른 태평양 대륙 전략”에 따라 태평양 섬 국가들과의 협력 중요성을 재확인했다.51 이러한 공약은 2024년 1월 개최된 3자 인도-태평양 대화에서도 반영되어 태평양 지역 협력의 필요성이 재강조되었다. 2023년 10월 열린 한미일 개발 및 인도적 지원 정책대화에서는 KOICA, USAID, JICA 등 ODA 기관 간 협력을 강화하고, 기후 변화, 연결성, 해양 안보, 사이버 보안,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 프로젝트를 발굴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다. 특히 한국의 2024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과 일본의 PALM10 공동 행동 계획은 각각 재생에너지와 수소 경제를 “전략적 그린 ODA”로 강조하며 청정 에너지 이니셔티브를 중점으로 설정했다.52 한국과 일본은 관련 자원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4년 4월 탈탄소 및 신에너지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합의에 따라 양국 간 협력 잠재력이 더욱 기대된다.53

•정책제안 4: 한국과 일본은 태평양 섬에서 각각의 개발 원조 프로그램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양국 간 조정 또는 협력 분야를 모색하며, 미국과 함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삼자 및 다자 협력 기회를 탐색해야한다. 예를 들어, 최근 일본의 JICA는 피지에 사이클론과 같은 자연 재해 발생 시 활성화될 수 있는 7,000만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54 이는 재난 발생 후 혼란스러운 초기 몇 주 동안 행정적 노력을 절감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피지에 있는 한국의 KOICA 사무소는 PIF 회원국들을 위한 공동 기금 조성을 검토할 수 있다. 이 기금은 공공 및 민간 자금을 유치해 KOICA 단독으로 배정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결론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은 태평양 도서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중요 조치를 취해왔다. 각 국가는 이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고유한 우선순위와 틈새 역량을 활용하며, 강점과 한계를 반영한 접근 방식을 통해 태평양 섬나라와의 협력을 발전시키고 있다. 한국이 아직 협력의 깊이와 규모 면에서 이들 국가와 맞먹지 못하지만, 이들 국가의 전략에서 배우고 협력함으로써 한국만의 유연하고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할 수 있다. 정상회담과 각종 문서들을 통해 이미 기반을 마련한 한국은 이제 계획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동하여 태평양 도서국과의 참여를 강화하기 위해 자원을 전략적으로 적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야심찬 태평양 도서국 전략은 아직 진행 중인 과제다. 이 전략은 지역의 요구에 부합하는 독창적인 한국형 기술 지원, 외교적 관계 확대, 그리고 소규모이지만 전략적으로 배분된 자원 기여를 특징으로 할 것이다. 또한, PBP 이니셔티브와 같은 다자간 협력 플랫폼을 통해 역외 국가들의 노력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한국 고유의 태평양 도서국 전략적 접근과 역내 파트너와 다자간 협력이라는 두 접근 방식 사이에는 본 이슈브리프에서 제시된 맞춤형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이 자리할 것이며, 이는 한미 동맹과 한국의 주요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여 푸른 태평양 지역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피터 리
피터 리

지역연구센터

피터 리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연구위원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인도-태평양 안보, 미국 동맹체제, 중견국 외교 등이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미국학연구소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 그리고 멜버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한국국제교류재단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최근 연구 저서로는 “한미 방위산업협력에서 상호 신뢰와 열망의 조화” (아산 이슈브리프 2024년 5월), “미국 동맹국들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 비교” (아산 이슈브리프 2024년 3월), “인도태평양지역 다극체제 미래와 한국의 국력” (시드니대 미국학연구소 2024년 2월), “왜 미국 해군력은 아시아 동맹국이 필요한가” (워온더락 2024년 1월), “호주국방전략서의 주요 내용과 함의” (국방대학교 안보현안분석 2023년 9월)가 있다. 호주 멜버른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전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김민주
김민주

연구부문

김민주는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의 책임 연구원으로, 주요 연구 관심사는 국제협력, 공적개발원조(ODA),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의 국제관계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학사와 국제협력학 석사를 취득했으며, 아산정책연구원에 합류하기 전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에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