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지지율 바닥… 연임 난망
‘포스트 스가’도 대부분 극우
더 큰 산은 對한국 강경 여론
리더십 교체로 변화 어려워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한국이 내년에 있을 대선으로 이미 선거국면에 접어들었다면, 일본은 곧 있을 자민당 총재선거와 중의원 선거로 선거국면에 접어든다. 의원내각제를 취하는 일본에서는 다수당의 총재가 곧 총리가 되는데, 아베 신조 총리의 사임으로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임기는 오는 9월 말까지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 총재선거는 9월 29일, 중의원 선거는 그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스가 총리는 올림픽 효과를 기대하며,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종료되는 9월 초 중의원을 해산하고 무투표 재선의 시나리오를 그렸으나, 올림픽 효과는 없었다. 지지율은 연일 최저점을 찍고 있으며, 안전·안심의 올림픽을 열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급증해 일본의 신규 확진자 수는 일일 2만명을 넘고 있다. 연이은 긴급사태선언에 국민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긴장감은 떨어지는 한편, 안일한 정부의 대응에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당초의 바람과 다르게 총재선거를 치르고, 다시 중의원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곧 있을 총재선거에는 스가 총리, 시모무라 하쿠분 현 정무조사회장,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등이 출마의향을 밝혔다. 이외에도 차기 총리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고노 다로 현 행정개혁상 등도 주목할 만하다. 퇴임 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베 전 총리의 재등장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코로나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물러선 총리가 코로나 확산 속에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더군다나 아베 총리는 이미 지병으로 2번이나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어 직접 나서기보다는 킹메이커로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스가 총리가 바뀌면 한·일관계가 달라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유감스럽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우선 거론된 후보 가운데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은 당내 지지기반이 낮아 당선될 가능성이 낮다. 그는 이미 2018년, 2020년 총재선거에서 패한 바 있다. 시모무라 정무조사회장은 강제징용문제, 위안부문제에 대한 배상판결을 내린 한국이 국제법이 통하지 않는 국가라고 언급한 적 있고, 헌법개정과 집단적 자위권에 찬성하는 등 강경우파로 불린다.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아베 전 총리와 같은 호소다파이자, 일본 최초 여성총리로 만들기 위한 여러 지지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하고, 일본의 역사반성을 담은 무라야마담화(1995년)를 비판한 극우정치인으로 분류된다. 비교적 온건파로 알려진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2015 위안부합의’에 서명한 장본인이다. 결국 이 중 누가 되더라도 한국에 대한 정책과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리고 스가 총리가 연임된다면 현재의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산은 일본 여론이다. 한국에 강경한 일본 주류 정치인들의 뒤에는 이를 지지하는 일본여론이 있다. 2020년 ‘요미우리신문-한국일보’의 한·일공동여론조사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문제 관련하여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고, 이 문제는 이미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에 한국여론의 81%가 ‘납득할 수 없다’고 답변한 데 반해, 일본여론의 79%가 ‘납득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정권변화에만 기대기에는 일본 내 일본정부의 대한국 강경입장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더십의 변화만으로 한국에 대한 정책과 태도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민감한 한·일관계는 일본에서도 여론의 영향을 받기 쉽고, 더욱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정부정책을 바꾸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현재 일본의 리더십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누가 총리가 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일 것이다.
* 본 글은 08월 26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