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트럼프(Donald Trump)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바이든(Joe Biden) 행정부의 대 동남아 정책이나 동남아 관여가 동남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서 바이든 행정부는 적어도 동남아에 대한 ‘립 서비스’ 정도는 했었다. 트럼프 2기에 들어 그의 1기 정책 노선이 더욱 강화된다면 이런 최소한의 립 서비스 마저 사라질 것이다. 바이든에서 트럼프로 정책 노선이 급격히 바뀌면서 몇몇 국가는 미국과 양자 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겪을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도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은 동남아 국가 전반의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동남아 국가에게 짧은 기회가 될 수는 있지만 이런 기회의 창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 경제 정책은 보호주의의 강화로 이어지면서 동남아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 질서 약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반대급부로 중국 등 수정주의 노선을 택한 국가들의 동남아 진출은 강화될 수도 있다. 중국, 러시아 등이 미국이 비워 놓은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대 동남아 접근을 강화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동남아 국가들 내에서도 미국에 실망한 목소리는 자율성 극대화라는 ‘헤징’ 전략의 강화로 나타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남아에 대한 무관심은 동남아 정책 부재를 넘어선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트럼프의 재당선으로 인해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가졌던 확신,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향후에 미국이 이 지역에 관여하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동남아 지역의 기대는 최하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동남아 국가들은 지역에서 지역 중견국들과 연대의 움직임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이런 동남아 국가들의 움직임은 한국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2024년 아세안과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한국은 이어지는 행동계획을 통해 아세안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동남아에 대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무관심
동남아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로 트럼프의 귀환은 2017년 미국 대외정책의 급격한 전환, 리플래시(reflash)를 의미한다. 적어도 선거 과정에서 드러났던 정책적 입장은 정확하게 이를 지향하고 있다. 다만 차이는 2기 트럼프 행정부는 1기에서 얻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처음부터 더욱 확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대외정책 방향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1기 트럼프 대외 정책은 적어도 아시아 방면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중국 때리기였다. 여기에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겹쳐졌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 방향, 즉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글로벌 공동체가 미국에 대해 가졌던 기대를 충족시키는 정책과 같은 추상적인 목표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중국을 직접 압박하고 이 압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파트너 국가들을 동원했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미국의 헤게모니와 리더십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위해 지출했던 비용들은 빠르게 삭감했다. 오히려 America First를 위해 리쇼어링(re-shoring)을 강조하면서 적극적 보호주의 방향으로 옮겨갔다. 이런 트럼프 정책에서 개발 도상국 모임이자 미중 사이에서 헤징 전략을 취하는 동남아, 아세안은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이런 미국의 대동남아 정책 소홀로 인해 ISEAS에서 행한 여론 조사가 보여주듯 미국에 대한 동남아 국가의 신뢰는 트럼프 행정부 기간 내내 감소해왔다.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트럼프 1기인 2018년, 2019년, 그리고 마지막 해인 2020년 각각 7.9%, 7.9%, 7.4%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영향력도 30.5%, 26.7%, 30.4%를 기록했다. 이런 수치가 바이든 행정부 들어 경제적 영향력에서 10%를 넘어섰고, 정치적 영향력에서도 약간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중 둘을 놓고 비교한 선호도에서도 2019년 말 미국은 53%를 기록해 46%인 중국에 약간 앞섰다. 2020년 말 바이든 행정부 등장을 목전에 두고 미국에 대한 선호는 61%까지 올랐다.1
트럼프 2기: 동남아에 대한 무관심 지속
트럼프 2기에서도 동남아에 대한 정책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동남아 국가에 확신을 주는 관여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동 없이 립 서비스만으로 동남아 국가들에 관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와서는 이런 립 서비스마저 사라질 것으로 보이고 그 속도와 규모는 1기 트럼프 행정부를 넘어설 것이다. 이미 1기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 정책, 대외 정책이 2기에 들어서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더욱이 1기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2기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자신의 정책 아젠다를 강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고, 이를 추진할 고위직을 모두 자신에게 충성할 인물로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상, 하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는 상황은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에 탄력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군사외교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남중국해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의 구체적 이익, 즉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필리핀과 같은 국가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남중국해 문제에서 필리핀 안보에 대한 공약을 트럼프 행정부가 이어가기를 바란다면 필연적으로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 아세안 전반적으로 미국이 동남아 지역에 관여해 중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는 안보, 전략적 아키텍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 기대한다면 동남아 국가들도 그에 걸맞은 비용을 치르라는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다자적으로 아세안이 주도하는 지역 협력체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더욱 줄어들 것이며 이제 트럼프는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주도 다자 협력체에 대한 미국의 이런 태도는 세 가지 정도의 함의를 가진다. 첫 번째, 지금까지 미국이 보였던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에 대한 지지는 이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 미국의 불성실한 지역 다자 협력 참여는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 협력에 대한 지역 국가들의 관심을 줄이고 그에 따라 이 다자 협력 제도가 가지는 전략적 무게를 크게 줄일 것이다. 세 번째로 이런 미국의 부재는 상대적으로 중국이 지역 다자 협력에 보이는 관심 혹은 지역 다자 협력을 주도하는 힘을 증가시키고 이는 전반적으로 지역에서 중국이 미국에 대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해 관계가 갈리는 개별 국가 양자 관계
개별 국가를 놓고 보면 필리핀이 가장 잃을 것이 많다. 바이든 대통령과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Jr.) 대통령 사이에 남중국해 문제, 안보 문제를 놓고 만들어졌던 협력 관계가 트럼프 행정부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필리핀이 현재의 안보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갑작스럽게 현상 변경을 가져올 만큼 공세를 높이든지, 아니면 필리핀이 미국의 협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반면 새로 등장한 쁘라보워(Proabowo Subiant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과거 두테르테(Rodrigo Duterte) 전 필리핀 대통령이 트럼프와 보였던 관계와 유사한 관계 설정이 가능할 수도 있다. 쁘라보워의 파퓰리스트적인 성향과 트럼프의 성향이 마치 트럼프-두테르테가 가졌던 관계와 유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유사한 성향이 특별히 두 국가 사이 관계나 협력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듯하다. 일례로 두테르테 하의 필리핀과 트럼프 하의 미국 사이 긴밀한 전략적 협력 혹은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중요한 양보 혹은 이익을 얻어냈다는 증거는 없다.
반면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에 따라 동남아 지역과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 힘의 균형이 붕괴되는 점에 대해 크게 우려할 수 있다. 두 국가는 모두 동남아 지역에서 강대국 힘의 균형에 민감한 국가들이다. 강대국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 동남아의 작은 국가들에게 일종의 전략적, 경제적 안전판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미국의 동남아에 대한 관여 축소, 관심 하락은 미중 사이 힘의 균형에 심각한 균열을 의미할 수도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헤징 전략에 충실한 대외 정책을 펴는 국가로 특히 2022년 현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말레이시아 총리 집권 이후 이런 다변화, 헤징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중국, 러시아와 거리를 좁히고 2024년에는 브릭스(BRICS)에도 가입을 했다. 이런 말레이시아가 트럼프 2기 첫해인 2025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게 된다. 의장국이 가진 권한이 제한적이라고 해도 말레이시아의 대외 정책 성향과 트럼프의 탈동남아 전략이 맞물리면 아세안 전반을 미국에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동남아에 무관심한 트럼프 행정부를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는 국가도 있다. 이미 중국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는 국가들은 대체로 미국의 관여 수준이 낮아질수록 한쪽 방향에서 오는 압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의 탈관여의 최대 수혜자는 미얀마 군부일 수도 있다. 2021년 쿠데타로 아웅산 수치(Aung Saan Suu Kyi)의 민간 정부를 뒤엎은 미얀마 군부는 그 이후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 하에 있다. 트럼프의 집권으로 이런 제재가 해제될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요 대외 정책 아젠다에서 미얀마의 순위가 크게 낮아지고 관심도 덩달아 낮아질 가능성은 크다.
동남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도 증가할 전망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데 따른 국제 경제 질서의 혼란이 가져올 비용을 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트럼프가 집권하는 한 미국에게 지역 경제 질서 안정을 위한 리더십은 기대하기 어렵고 그나마 있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도 형해화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IPEF는 조약에 기반해 있지 않기 때문에 행정부의 결정으로 쉽게 되돌릴 수 있다. 물론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동남아 국가들이 기대했던 미국의 환태평양경제협정 (Trans-Pacific Partnership, TPP)로 복귀는 당연히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의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를 포함한 개발 도상국의 미국 시장 접근은 시간이 가면서 어려워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반적으로 동남아, 인태 지역에서 미국의 퇴각은 지역 경제 질서, 특히 무역 질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 유지했던 자유 무역과 시장경제에 관한 미국의 리더십이 퇴조하면서 그 빈자리를 중국이 메울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다시 한번 더욱 강력한 경제적 각자도생의 시기가 오는 것이다. 중국과 디커플링의 추구는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 중국을 대신해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제조업 부문을 가진 국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미국 시장 접근에 수반되는 미국 시장에서 무역 흑자는 다시 이들 국가에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압박이 침투하는 통로로 작용할 것이다.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의 반대 급부로 동남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고, 그 결과 동남아 일부 국가의 무역 흑자가 늘어난다면, 급격한 관세 인상을 통한 경제적 압박은 동남아 국가를 향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 그리고 미국과 이웃한 국가에 집중되었던 무역 압력은 이제 동남아, 인태 지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미국의 보호주의는 사기업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의 대동남아 투자를 유지했던 미국 사기업 투자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충격파는 미국과 동남아 국가 양자 경제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기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은 미국의 국내 경제 정책이 간접적으로 동남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보복관세는 미국 시장 내 상품 가격 인상을 가져오고, 불법 이민 단속은 미국 노동력 시장에서 값싼 노동력을 몰아냄으로써 전반적인 임금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모두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수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022-23년 글로벌 경제가 경험했던 익숙한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다시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금리 인상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개발 도상국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동남아에서 달러가 이탈하고, 동남아 국가의 외채 상환 및 이자 부담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동남아로 향했던 해외 투자도 미국으로 모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동남아 국가의 경제 성장과 안정에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책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문제
호주의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는 미국 대선 직후 “미국이 트럼프를 한번 더 위대하게(America Makes Trump great, again)”라는 제목의 칼럼을 펴냈다.2 트럼프의 선거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를 패러디한 제목으로 상당한 풍자이면서, 조롱인 동시에 실망, 특히 트럼프를 다시 선택한 미국에 대한 실망을 드러내는 제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근본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임기 4년짜리 미국 대통령의 구체적인 대 동남아 정책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도 4년 후에 임기를 마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진짜 문제는 트럼프 2기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이라는 국가, 제도에 대한 동남아를 포함한 글로벌 차원의 신뢰, 확신이다. 핵심은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의해 직접적으로 손해, 불이익을 얻을 것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확신이 이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 국가들은 개별 차원이든 아세안 차원이든 이제 미국 없는 동남아, 중국과 균형을 맞출 강대국이 없는 인태 지역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지역 국가들이 이를 현실로 인식한다면 향후 미국이 다시 절치부심해 노력한다고 해도 한번 사라진 미국의 리더십을 다시 회복하기에는 엄청난 자원과 노력,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회복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때 미국은 글로벌 차원과 지역의 공공재를 공급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였다. 미국의 대외 정책과 외부로 드러나는 행태에서 일부 문제는 있지만 선의의 헤게모니 파워(benign hegemonic power)라는 미국에 대한 묘사에 그래도 동의할 수 있었다. 미국은 글로벌 차원의 공공재를 공급하고 그 대가로 리더십을 확보했다. 냉전 직후 정점에 달했던 미국의 힘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변곡점으로 급속히 쇠퇴하는 듯했다. 그 끝자락에 트럼프의 등장이 있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글로벌 차원의 리더십에 우선시하고 모든 면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경쟁을 하는 지구상의 많은 ‘평범한’ 국가 중 하나로 변모하고 있다. 적어도 동남아에 비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그렇다.
트럼프 2기는 한-아세안 관계 강화를 위한 기회
적어도 동남아 지역에서 트럼프 1기, 바이든 행정부를 지나며 지속적으로 약화된 미국에 대한 확신은 트럼프 2기에 들어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미국의 대 동남아 관여가 약해진다면 그 반대급부로 중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 전개는 아세안을 포함한 지역의 중견 국가와 세력들이 지역 질서의 약화, 특히 규칙 기반 질서의 약화를 방지하는 연대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할 수 있다. 미국의 관여가 약화된다고 해도 수정주의 세력의 도전을 막고 기존의 질서를 강화하는 지역 국가와 세력 간 연대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아세안 입장에서는 한국과 같은 지역 중견국과 협력, 연대를 강화할 필요성이 증가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역 중견 세력과 연대를 통해 지역 규칙 기반 질서를 강화하는 보루를 만들어야 한다. 아세안도 이런 연대할 세력 중 하나다. 한국은 2024년 아세안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CSP)를 만들었다. 2025년에는 그 이행을 위한 행동계획(Plan of Action)도 만들 예정이다. 한-아세안 CSP의 행동계획은 미국 대선 이후 펼쳐지는 환경 변화와 그에 따른 한 단계 높은 협력의 필요성을 잘 담아내야 한다. 특히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지역의 규칙 기반 질서, 자유무역 등 지역 경제 질서의 강화 등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함께 협력할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세안은 아세안 주도의 다자 협력을 다시 전면에 내세워 아세안 중심성 강화와 인도 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 중심 협력을 지속하는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한국은 아세안을 활용해 대 강대국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한국은 글로벌 중견국이면서 동시에 지역에서 중견국 이상의 무게를 가지는 위상에 걸맞은 대외 정책 다변화도 꾀해야 한다. 한국이 전략적으로 지역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거듭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에 편향된 대외 정책을 넘어서 더 다변화된 외교 정책을 가지고 지역 내에서 한국의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Seah, S. et al., 2024.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Report. Singapore: ISEAS-Yusof Ishak Institute.
- 2. Daniel Flitton. 2024. “America makes Trump great, again” The Interpreter. 6 November. (https://www.lowyinstitute.org/the-interpreter/america-makes-trump-great-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