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1월 14일,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한에게 핵 및 미사일 도발을 중지하도록 촉구할 의무가 있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발언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의 “정당한 우려(legitimate concern)”를 균형되게 충족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맞대응했다.1 또한 북한이 11월 18일 ‘화성-17’형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을 발사한 후 21일(뉴욕 현지시각) 소집된 UN 안보리에서 안나 에브스티그니바(Anna Evstigneeva) UN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는 북한의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비판이나 추가 제재를 거부하면서 이러한 상황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2 이는 최근의 북-중-러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국제규범을 위반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제동을 걸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의 이러한 정책은 2017년 북한의 ‘화성-15’형 ICBM 발사에 대응한 UN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찬성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며, 이는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전에 없는 밀착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북-중-러 3각 관계의 결속은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촉발된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의 가치전쟁 구도, 그리고 한미동맹 견제라는 3자 간의 공통된 이해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북한이 7차 핵실험과 같은 도발을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 등 평양에 압력을 가하는 움직임에 동참할 가능성은 낮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역시 자국이 가진 국제적 위상으로 인해 국제 비확산체제의 훼손을 불러왔다는 비난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 중국-북한-러시아가 무조건 협력을 지속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북한, 중국, 러시아 간의 공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데, 이는 중국 및 러시아가 치러야 할 대가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압력 행사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 역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가진 과도한 기대를 접고, 대중국 및 대러시아 정책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한미 차원의 대북 억제태세 강화를 통해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 북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북한의 대중국 및 대러시아 외교의 특성은 무엇이고, 향후 북-중-러 3각 협력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살펴보며, 이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대응 방향을 제시해 보려 한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對중국 및 對러시아 재접근
전통적으로 북한의 외교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나는 북·중 관계 및 북·러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對사회주의권 외교였고, 다른 하나는 미국과 서방국가라는 적대세력에 대한 외교였다. 마지막이 비동맹운동(Nonalignment Movement) 및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였다. 그러나 이러한 축은 1990년대에 들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오랜 후원세력이었던 중국은 중국식 개혁·개방 와중에 북한과 소원해지기 시작했으며, 舊소련은 러시아에 의해 사실상 계승되기는 하였지만 해체되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체제변환에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결속관계로부터 이탈하였으며, 非동맹운동 역시 과거와 같은 동력을 가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舊소련은 1990년,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함으로써 북한에 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면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호의적인 여건의 변화였다. 중국은 1990년대 ‘화평굴기(和平屈起)’의 대외정책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단독의 세계질서 주도를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시작하였고, 이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하 후진타오)의 ‘화해세계(和諧世界, 조화로운 세계)’로 더욱 뚜렷해졌으며, 시진핑(習近平) 주석(이하 시진핑) 시대에는 ‘분발유위(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할 일을 함)’로 이어졌다. 상황은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푸틴 대통령(이하 푸틴) 등장을 전후하여 세계 및 지역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러시아의 욕구는 미국 위주의 세계질서 재편에 제동을 가하는 한편, 유럽 편향적 국가전략에서 탈피하여 유라시아에 대한 전략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과 연결되었고, 이러한 러시아의 전략적 판단은 균형적 대남⋅대북 정책의 추구로 이어졌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복원됨에 따라 2000년대 이후 북한은 기존의 ‘벼랑끝 전술’에 세련미를 더할 수 있게 되었으며, 종래와 같은 강변(强辯)과 위협 일변도의 접근에서 탈피하여 대화를 병행함으로써 대외정책에 탄력성을 보강하였다. 실제로 2009년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 및 2차 핵실험, 2010년 한반도에서의 2차례 도발(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중러는 북한의 국제적 규범 위반과 강경행동을 일정 수준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극단적 고립을 촉발할 수 있는 행동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외교 차원에서는 2005년 10월 후진타오 주석의 북한 방문, 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의 중국 비밀 방문, 2011년 5월 베이징에서의 김정일-후진타오 정상회담 이후 별다른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2007년 7월 푸틴의 평양 방문 및 김정일-푸틴 정상회담 이후 2001년 8월(모스크바), 2002년 8월(블라디보스톡), 2011년 8월(울란우데) 3차례의 추가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지만, 김정은 시대 초반에는 정상 차원의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UN안보리결의 2087호(2013. 1, 장거리로켓 발사)부터 2397호(2017. 12, ‘화성-15’ 발사)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관한 한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제재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변화한 것은 2018년이었다. 2018년 중 북한 외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미북 대화였지만, 북한은 기존 우방국들과의 결속 재강화에도 그 못지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개최가 이를 상징하는 사례이다.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5~6월 정상회담이 논의되던 상황이던 2018년 3월 25일 전격적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시진핑과 가진 최초의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전통적인 북중 관계의 복원을 알리는 동시에 미북 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협상을 위한 안전밸브를 마련하였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2018년에만 두 차례나 더 중국을 방문했으며, 이는 모두 주요한 북한의 대외관계 행보가 이루어지는 시기를 전후한 것이었다. 북한과 중국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5월 8일 다롄(大連)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일주일 만에 3차 정상회담(6월 19일)을 개최하였다. 북한은 2019년 1월에도 베이징에서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2019년 6월에는 시진핑이 집권 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등 2018~2019년 2년간 북한과 중국은 전에 없는 결속을 과시했고, 이는 2018년 3월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북중관계를 “피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한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3
러시아와의 정상 채널 역시 2019년 다시 가동되었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의 미북 정상회담이 ‘노딜’로 종료된 이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여 푸틴과 북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4월 25일 열린 단독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이 회담의 목적이 “한반도와 지역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북한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정세를 관리”하는 것임을 밝혔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이 끝난 이후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려면 미국 이외도 더 많은 국가들의 안보 보장(security guarantees)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비핵화 문제와 관련된 북한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4 김정은은 이같이 미북 관계개선을 적극 모색하고 있던 시점에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대미 레버리지뿐만 아니라 대주변국 레버리지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COVID-19’의 범람은 북한 외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국제제재나 특정 국가와의 관계 악화와는 무관하게 북한 자체적인 절연(insulation)이 불가피해졌다. ‘COVID-19’의 발원지 논쟁을 따지지 않더라도 최초 발생지가 중국 우한(武漢)이었고, 중국과 북한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한의 보건 및 의료 환경상 고위험 감염병의 확산은 체제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사이 북한 매체는 유난히 ‘방역체계’를 강조하였고, 1월 30일을 기점으로 중국과의 출입국 단절조치를 취하였다. 매년 UN안보리의 대북제재 이행을 위한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서 북한의 제재 회피를 간접 지원하는 국가들로 집중 거론되었던 중국, 러시아와의 물리적 단절은 북한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일단, 북한 경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북중 교역은 2020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난국은 북한의 대미 레버리지(제재무용론) 약화와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제3세계 외교를 뒷받침할 자원 확보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물리적 단절은 경제뿐만 아니라 북한의 외교 관행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은 『조중 우호협조 및 호상 원조조약』 60주년(6월)에 해당하는 해였고, 1995년 일단 폐기된 이후 2000년의 북러 新조약으로 대체되었지만 러시아와의 우호협력조약 역시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대규모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질 계기였지만,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는 각각 이에 대한 축전을 교환하는 선에서 그들의 역사적인 해를 기념해야 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 중국, 러시아 간의 협력 기조는 변화하지 않았다. 감염병으로 인한 무역 관계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유학이나 관광비자를 이용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수용하는 형태로 북한을 우회적으로 지원했다.5 중국의 경우 매년 빠짐없이 UN안보리의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제재회피를 지원한 것이 지적되었을 뿐만 아니라, 2021년 이후 신의주-단둥(丹东) 철도의 복원을 통해 북중 무역을 재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간의 밀착은 2022년에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하고, 3월 2일 UN총회에서 러시아 규탄과 전투 중단,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통과되었을 때, 북한은 침공당사자인 러시아,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시리아와 함께 반대표를 던진 몇 안 되는 국가였다.6 이러한 연대는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모라토리엄(발사유예) 파기 등 도발행위에 대한 대응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3월 24일 북한이 ‘화성-17형’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2018년 4월의 모라토리엄을 파기하자 UN안보리가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규탄 언론성명을 채택하려 하였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반대하였으며 대북제재 강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5월 25일 북한이 다시 ‘화성-17형’을 발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UN안보리에 상정된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2017년 12월 통과된 UN안보리결의 2397을 인용할 경우, 북한의 계속된 핵⋅미사일 활용에 대해 안보리가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논의해야 함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앞서 지적한 11월의 ICBM 발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7
북-중-러 3각관계: 촉진요인과 장애요인
일부에서는 한-미-일 협력관계의 강화가 북-중-러 3각 관계의 회복을 촉발했다고 주장하지만,8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중-러 3각 관계는 북중과 북러, 중러 양자관계 측면에서 이미 재강화 계기가 마련되고 있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중-러 3각 관계가 다시 부활하게 되고, 이것이 2022년에 특히 두드러진 원인은 크게 세 가지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상호 전략적 가치의 증대이다. 1990년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한 수준이었다면, 2010년대에 들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대미 견제의 유용한 카드로 간주하는 ‘적극 활용’ 정책으로 전환하였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와 중국의 대미 전략경쟁 의식은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면서도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필요성을 증대시켰으며,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이자 대미 레버리지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핵⋅미사일 개발로 인해 연이은 국제제재에 직면하게 된 북한으로서도 경제발전을 위한 자원 확보 차원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을 것이다.
둘째, 2020년대에 들어 북한과 중국, 러시아 모두가 권위주의적 1인 독재체제를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도 북-중-러 3각 관계의 재강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중국과 러시아는 공산당 독재 및 과두제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 독재에 가까운 형태였으며, 이는 북한과는 다소 이질성을 띠는 정치체제였다. 2020년 헌법개정을 통해 영구집권 기반을 다진 푸틴, 2022년 20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집권 3기를 맞이한 시진핑,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총비서로 다시 추대되면서 권력집중을 강화한 김정일 간에는 1인 독재라는 공통분모가 형성되었고, 이는 북한만이 개인독재의 형태를 띠었던 과거에 비해 북-중-러 밀착의 기회를 강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정치형태는 독재자들 간의 개인적 친분이나 최상위 선에서의 합의가 있을 경우, 국내의 다른 의견에 관계없이 결속을 다질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점에서 2018~2019년에 이루어진 북중, 북러 간의 정상회담은 북-중-러 3각 관계 재강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두 가지 기반 위에 2022년에 들어 형성된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의 대립구도는 3각 협력관계를 강화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이후 “민주주의 연대(Coalition of Democracies)”를 강조하면서 권위주의 체제로서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 국가들의 정서적 연대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미국이 공격하고 있는 권위주의 체제 및 가치는 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와 북한의 입장에서도 체제의 정통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외부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치 대립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서로의 생존을 위해 협조해야 할 동기가 강화되었다. 세 체제 모두 정보의 엄격한 통제를 특징으로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정보의 완전한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어느 한 체제에서 독재의 몰락은 다른 체제에서의 내부적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독재체제의 위기나 몰락에 고무되어 더욱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할 위험도 우려스럽다.
이러한 점에서 2022년 이후에도 북-중-러 3각 협력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욱 결속이 강화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결속의 장애요인 역시 존재한다. 우선, 중국과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주요국(dominant power)’으로서의 위상과 인식이다. 이들 모두 미국과 대립하고 있지만, 『핵확산 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NPT)의 유지에 대해서는 나름의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위치이다. 러시아의 경우 1970년대 미국과 함께 NPT 체제를 출범시킨 국가이며, 중국도 1992년 이후 NPT에 참여한 만큼, NPT 체제의 붕괴를 촉발했다는 비판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ICBM 발사에는 침묵하거나 제재에 반대했지만, 북한의 핵실험마저도 옹호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든데, 이는 북한이 약속한 모라토리엄의 완전한 파기와 NPT 체제의 타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9 만약 중국과 러시아가 7차 핵실험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 결의안을 묵인하는 모양새를 취할 경우,10 북-중-러 3각 연대의 결속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둘째는 3자 간의 상호 신뢰 문제이다. 북-중-러 관계의 역사에서 북한은 가능한 러시아와 중국 어느 한쪽에 경도되는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는 중국과 러시아 중 상대적으로 소외된 측으로부터의 불이익이나 밀착이 가져오는 정치·경제적 종속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1990년과 1992년 북한에게 적지 않은 외교적 타격을 안긴 국가들인 만큼, 이들을 완전히 신뢰하기도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1950~1980년대까지 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했던 북한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힘들 것이다. 더욱이, 현재로서는 북한의 핵능력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북한이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할 경우 모스크바와 베이징이 핵협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11 불신은 중국과 러시아 간에도 존재한다. 미국 견제라는 공통분모하에서 협력하고는 있지만, 광활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는 필연적으로 견제와 경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북중, 북러, 중러 관계에서 개인독재가 강화되는 시기에는 오히려 관계가 악화된 적이 많았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1인 독재 자체가 개인숭배적 요소를 띠며, 개인숭배 체제하에서 최고지도자는 다른 국가에 대한 장악력 강화 욕구를 강하게 지닌다는 점에 기인한다. 특히, 북중 관계에 있어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진핑의 의지와 동아시아 지역 강자로서 북한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김정은 간의 갈등 가능성은 향후 북중 관계의 중요한 과제 거리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셋째, 특히 북한의 입장에서 북-중-러 3각 관계의 강화가 북한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미북 직거래 관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했으며, 김정은 역시 2018~2019년의 미북 협상 국면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친서외교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였다. 김정은이 선대와 차별화된 자신만의 성과로 삼고자 하는 경제발전의 달성을 위해서 새로운 미북 관계의 구축은 포기하기 힘든 목표이다. 그러나 가치 대립의 시대에 북-중-러 3각 관계의 강화에 몰입하면 할수록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재의 북-중-러 관계 구조대로라면 김정은으로서는 미국과의 협상 기회가 다시 도래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반대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수록 대미 레버리지의 역할을 했던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력이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의 함축성과 대응방향
이와 같이, 북-중-러 3각 관계에는 촉진요인과 장애요인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당분간은 촉진요인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북한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지향하는 목표, 즉 핵무기를 통한 대남 우월성의 실현, 한미동맹의 약화와 궁극적 해체에 있어서는 중국과 러시아 역시 이를 공통의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쌍중단·쌍궤병행(雙中斷·雙軌竝行)’을 통해 북한이 주장하는 한미 연합훈련 철폐, 평화협정을 통한 주한미군 철수 등에 보조를 같이해왔으며, 러시아 역시 한미동맹의 해체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전략적 융통성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이를 환영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북한식 한반도 문제 해법에 따른 이익은 존재하는 한편,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북한의 입장에 동조할 수 있는 유인(誘因)이다. 한반도에 있어 북한의 핵개발은 비확산 문제라기보다는 남북한 간의 대결 문제로 포장될 수 있고,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나 세계적인 차원의 갈등과는 달리 미북 혹은 남북 갈등에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이상 미국과 군사적 대결을 감수해야 할 위험도 없다. 한반도에 있어 북한이 우위를 보이는 남북한 관계 구도가 형성된다면, 이는 정치체제가 유사한 중국과 러시아의 내부 선전을 위해서도 유용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향후 7차 핵실험과 같은 도발을 계속한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거나 자제를 권고하기보다는 그 분위기 자체에 편승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여 설혹 북한에 대한 추가제재 결의안에 기권한다고 하더라도 우회적인 북한 지원을 통해 북한이 곤경에 빠지는 것은 방지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북-중-러 결속이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되거나 강화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다음과 같은 대중국 및 대러시아 정책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기대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외교적인 수사 면에서 한중 관계 및 한러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북한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들은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북한의 기존 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의 대북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11월 15일 G-20을 계기로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이 더욱 건설적 역할을 기대한다고 언급하며 중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였으나, 시진핑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한국이 남북 관계를 적극 개선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중국은 우리의 ‘담대한 구상’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12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한반도에서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거나 극단적 위기를 조성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정도로 현실화하거나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우회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 역시 강화될 필요가 있다. 미국 및 일본, 서방국가들과의 협력하에 중국 및 러시아가 북한 의 UN제재 회피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국제적 제재이행 감시망을 강화하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북한의 핵개발 및 핵능력 고도화가 결국은 대외적 확산 및 국제 비확산체제의 위기와 연결될 것이라는 점 역시 강조되어야 한다.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되기는 힘들 것이지만, 북한의 미래 핵협박 대상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될 수도 있다는 논리가 민간 차원의 학술회의나 교류를 통해서 적극 개진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러시아나 중국이 반발하는 정책을 취하면 보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일변도의 정책으로부터도 탈피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민주주의 연대의 일원으로 간주하면, 그에 대해서는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대중국 및 대러시아 레버리지 강화에 유리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국제적 공감대가 존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 역시 자신 있게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위협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향후 북한의 핵협박에 대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북한 핵위협에 대한 대응 및 억제 능력을 조기에 강화하는 것 역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11월 1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표명된 것과 같이, 북한의 도발행위가 계속될 경우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과 미국의 전력은 더욱 보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것이 단순한 외교적 언급이 아닌 실제적 조치로 연결되도록 한미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전략자산 전개와 같은 전력 강화가 결국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역량과 연결되는 만큼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이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북한의 핵개발 등 긴장 조성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기를 갖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술핵 재배치 등 확장억제 조치의 구체화가 대중국 및 대러 전략 차원에서도 유용하다는 논리를 미국 측에 설득해 나갈 필요도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미중 정상회담의 논의내용은 공동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 형태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 양측의, 별도 언론 브리핑을 통해 알려졌다. 시진핑의 발언은 왕이 외교부장이 내외신기자들에게 소개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Wang Yi Briefs the Media on the Meeting between Chinese and U.S. Presidents and Answers Questions,” https://www.fmprc.gov.cn/mfa_eng/zxxx_662805/202211/t20221115_10975747.html
참조 (최초 검색일, 2022. 11. 17). - 2. “북한 ICBM: 중러 ‘거부권’ 또 사용… 유엔 안보리 ‘개혁’ 가능할까?” 『BBC News 코리아』(2022. 11. 22).
- 3. “김정은 [북중친선 목숨처럼]…시진핑 [피로 맺어진 인연],” 『연합뉴스 TV』(2018. 03. 28).
https://m.yonhapnewstv.co.kr/news/MYH20180328006800038 참조 (최초 검색일, 2022. 11. 18). - 4. 최강·차두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행보: 내부안정과 대미 기 싸움의 지속,”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2019. 05. 03).
- 5. “안보리 제재로 북한 해외노동자 러시아에 2500명가량 남아, 유학생 숫자는 오히려 늘어,” 『BBC News 코리아』 (2020. 01. 17). 러시아는 2020년 10월 북한 노동자 송출에 연루된 자국 기업을 미국이 제재하자 이에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러시아, 북한 노동송출 관련 제재 반발,” VOA (2020. 11. 20).
- 6. 이 표결 결과에 대해서는 https://digitallibrary.un.org/record/3959039를 참조할 것.
- 7. “유엔 안보리, 북한 ICBM 규탄 성명 무산…중-러 반대,” 『BBC News 코리아』 (2022. 3. 26);
https://edition.cnn.com/2022/05/26/asia/us-north-korea-united-nations-intl-hnk/index.html. - 8. “‘한미일-북중러’ 대결 허상에서 실재로…‘동맹체인’이 부를 그늘,” 『한겨레 신문』(2022. 7. 9).
- 9. 이와 관련, 다수 중국 및 러시아 전문가들은 만약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이에 대해 UN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이 논의될 경우, 러시아와 중국이 서로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결의안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기권함으로써 주요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리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10. 물론, 이 경우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추가제재로 인해 북한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을 원치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대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제재 효과를 상쇄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 11. 실제로, 2021년 아산-Rand 공동연구보고서에서도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할 경우 중국까지도 핵협박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Bruce Bennett, Kang Choi, et. al. Countering the Risk of North Korean Nuclear Weapons, Asan-Rand Perspective (Apri1, 2021) 참조.
- 12. 시진핑은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북한이 호응해 온다면 담대한 구상이 잘 이행되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의 시발점은 북한이 호응할 수 있는 여건을 한국이 만들고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즉, 중국은 우리의 ‘담대한 구상’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우리의 정책이 대북 先양보 혹은 대북 유화정책으로 변화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