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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야기를 꺼내면 좀 생뚱맞게 느껴지는 요즈음 사회 분위기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틀 전 (재)통일과나눔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그때 밝힌 필자의 소견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 국제정치는 한반도 통일의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원심력이 커졌다. 미국과 중국이 7년 전부터 대결 구도로 들어섰고 상호 간에 경쟁과 불신의 강도가 높아졌다. 그래서 한반도 문제를 놓고도 서로 합의를 이뤄 낼 여지가 적어졌다. 6자 회담 틀에서 북한 비핵화에 협력하던 중국과 러시아가 지금은 북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을 비난하는 안건 채택에 매번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 구도를 강화하고 있는데 남북이 반대 진영에 서서 대결하는 형국이다.

남북 관계에서도 통일의 방향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힘, 즉 구심력이 매우 약화되었다. 북한의 핵 개발로 남북 경협이 단절된 지 오래다. 더구나 북은 2019년 하노이 핵협상 실패 후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며 남을 위협하고, 작년 12월 말 남북 관계를, 같은 민족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별거가 아니라 아예 이혼하자고 나선 셈이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 비율이 갈수록 줄고 있다.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4년 69.3%에서 2022년에는 53.4%로 감소했는데, 특히 20대 청년층의 경우는 61.5%에서 39.1%까지 떨어졌다.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통일방법론과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여전하다.

그러니 이제 통일의 꿈은 버려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절망스럽게 보이는 강고한 국제정치 구도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주변 국가들의 내부 상황이 그렇다. 저성장으로 접어든 중국 경제는 인구 감소, 부채 누적, 부동산 버블, 외국기업 철수 등의 구조적 요인들로 상당히 어렵다. 국민은 공산당 일당 지배를 수용하고 정부는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는 당과 국민 간의 묵계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이는 정치·사회적 불만과 불안 요인이다. 미국도 올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내정과 외교가 크게 변할 수 있다. 북한은 남북 적대국가 관계론을 내세워야 할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 불만과 사상적 이완이 심각하다. 주변국들의 이런 내부 요인들이 언제 어떻게 터져 나와 국제 정치 구도를 바꿀지 아무도 모른다. 독일도 통일 1년 전까지 냉전 붕괴로 통일이 가능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도 흔들림 없이, 긴 호흡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한반도 통일이 국제사회에도 큰 플러스가 됨을 설득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통일되면 지금과 같은 군사적 초긴장 상태의 골칫거리 한반도가 아니라 네덜란드처럼 통상·물류·문화의 허브 국가로 거듭나, 주변국들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될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

남북 차원에서도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제는 튼튼히 하면서도 우발적 충돌의 확전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소통 창구 마련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우리의 헌법적 가치에 입각해, 의료지원 등 북한 주민의 삶을 조용히 돕기 위한 직접적 또는 우회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우리 국내에서도 통일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통일의 기회가 와도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가 그것을 감당 못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같은 극단적 정치 양극화로는 통일과 같은 큰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정치 제도와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이질적 정치 체제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을 민주주의로 통합해 내는 데 지방자치제도가 대단히 중요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도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를 지양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효율성과 복지를 아우르는 사회 통합적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살벌한 무한경쟁 체제에서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으니, 국민들의 마음이 “우리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통일이냐”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3·1절, 광복절, 6·25전쟁 기념일마다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한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며 감사하고 기린다. 그렇게 선조 덕을 본 우리들이 피를 나눈 아들, 딸, 손주, 그 자손들이 더 떳떳하고 더 풍요롭게 살게 될 통일에 대해서는, “내 호주머니에서 세금 더 내야 할 통일은 못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의식 속에서 ‘역사’와 ‘공동체’는 사라지고, ‘지금’의 ‘나’에게만 매몰되어 있는 모습이다. 또 그런 모습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 어른들이다.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대국 사이에 끼어 세 번씩이나 영토를 분할 당했다. 그러다 1795년부터 아예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123년의 긴 세월 동안 그들은 국가 재건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 소멸 후, 1830년과 1863년 등 수차례에 걸쳐 국민적 봉기가 있었다. 그러한 열망이 있었기에 1차 대전 종전으로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져 힘의 공백이 생겼을 때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 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뜻이 있었기에 길도 열렸다. 우리는 어쩔 것인가?

 
* 본 글은 5월 11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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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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