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희생자는 취약계층에 집중돼 있다. 중동도 마찬가지다. 시리아·리비아·예멘의 내전 지역과 터키·요르단·레바논의 대규모 난민촌에는 많은 사람이 무방비로 방치돼 있다. 이곳의 코로나19 감염자·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매우 처참할 것이란 추측만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를 비롯한 걸프 산유국의 희생자 대부분도 취약계층인 외국인 노동자, 특히 비숙련 노동일을 하는 서남아시아 출신이다. 외국인은 걸프 산유국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민간 부문 노동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유럽이나 이웃 중동 국가 출신은 사무직이거나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지만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출신은 저임금 단순노동자로 열악한 환경의 공동 숙소에 모여 산다. 취약계층 감염은 지역 감염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중동은 코로나19로 인한 이중고까지 겪고 있다. 초유의 저유가 때문이다. 전 세계는 국경폐쇄와 통행제한을 실시했고, 공장 문을 닫았다. 원유와 천연가스 수요절벽으로 유가가 급락했다. 추락을 거듭한 유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재정의 80% 이상을 에너지 자원 수출로 충당해 온 걸프 산유국은 큰 타격을 입었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자원부국의 저주다. 자원 의존율이 낮은 두바이는 그나마 나을 듯했다. 하지만 물류와 관광 허브화에 올인한 두바이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이러한 충격은 이웃 비산유국으로도 이어졌다. 걸프 산유국에서 일하는 이집트·레바논·요르단·모로코 출신이 월급을 자국으로 제대로 송금하지 못하면서다. 산유국발 송금은 이들 비산유국 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해 왔다.
중동 코로나19 희생자는 빠르게 늘었다. 5월 중순 이래 걸프 산유국은 하루 최다 확진자 수를 연일 경신했다. 인구가 280만명인 카타르는 인구 대비 최다 확진자 수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란과 터키는 최다 확진자 수 세계 10위권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란은 중국·이탈리아와 함께 최대 사망자를 낸 나라였다. 이집트 역시 맹렬한 기세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국가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피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반된 그림이 드러난다. 걸프 산유국은 드라이브스루 진료소 확대, 대규모 추적 검사를 통한 공격적 방역으로 확진자 수가 급증한 사례다.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찾아가 무료 검사를 실시했다. 이들 나라의 인구 대비 검사 건수는 세계 상위권으로 치솟았다. 권위주의 감시 시스템을 이용해 격리와 봉쇄를 일사불란하게 집행했고, 감염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했다. 비민주적일 수 있으나 법 집행력과 투명성에 있어 국가 역량을 선보인 순간이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정부가 재정위기 정면 돌파를 위해 부가가치세 인상과 보조금 지급 중단을 단행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석유 체제 탈피를 위한 개혁 정공법을 택했다.
반면 팬데믹 초기 희생자가 속출하던 이란·터키·이집트에서는 어느 순간 집계 속도가 느려졌다. 정권의 역량과 의지 부족 때문이다. 이들 정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는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걸프 산유국이 택한 선제 방역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대신 당국은 바이러스 확산 금지 명목 아래 긴급사태, 집회 금지를 선포했고, 반정부 인사를 감시·추적했다. 정권은 정적을 잡아들이고 언론사도 폐쇄했다.
코로나19 시기, 시민은 단호하고 강력한 지도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감염병 공포와 혼란이 지나간 후 권위주의 지도자는 민생고 심화에 따른 사회 불만을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것이다. 저항과 탄압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정권은 흔들리고 시민의 기본권이 내팽개쳐질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가의 실패를 틈타 ISIS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며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본 글은 6월 16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