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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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하반기부터 중국은 자국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1의 일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지정학적 역할, 즉 미중 전략경쟁 하에서 ‘스윙 국가(swing state)’로서 활동할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중국의 태도 변화는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이 경제협력에 국한되지 않고 전략적으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목적을 가지고 추진될 것을 시사한다. 미중 전략경쟁 하에서 자국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모색해온 중국의 행위와 정세 인식을 고려할 때, 중국은 △다극적 국제질서 구축, △중국식 담론과 체제 확산, △경제성장 모멘텀 확보를 추구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우군을 확대하며 미중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고립주의와 선별적 개입주의에 기반한 대외정책을 추진한다면, 중국은 이를 활용해 더욱 적극적으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중국식 담론과 체제를 확산하며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는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정책을 면밀히 관찰하며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한중 간 체제와 가치의 이질성 문제가 글로벌 사우스 협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중국은 중국식 담론과 화법(narrative)을 글로벌 사우스에 확산하며 자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정책을 글로벌 사우스 정부기관에 전파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모든 국가가 중국식 담론과 통치 방식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겠지만,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서 최소한 그것에 공감하고 일부 수용하려 할 것이다. 가치외교(value diplomacy)를 추구하는 한국이 이를 경시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과정에서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경우 협력 목표와 이익이 기대한 것보다 제한될 수 있다.

둘째,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 지역과 국가별로 적절한 협력 의제를 발굴해야 한다. 다자무역체제 확대, 공급망 안정, 지역 평화와 안정 등은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의제이지만, 너무 포괄적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중국과의 차별성이나 한국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의제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뛰어난 기술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프라 및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한국이 우위에 있는 문화를 매개로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

 
최근 ‘글로벌 사우스’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행위자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경제적 낙후성으로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미중 전략경쟁구도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나머지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에 힘입어 강대국과는 차별화된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모색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2 예를 들어, 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서방국가에 대한 불만과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때문에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 러시아의 UN인권 이사회 자격 중단 등 UN 표결에서 서방과 다른 입장을 표명했고,3 러시아산 석유를 지속적으로 수입하며 서방의 대러 제재에도 불참하는 모습을 보였다.4

글로벌 사우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2023년 하반기 중국은 자국을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2023년 7월 25일 제13차 브릭스(BRICS) 회의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은 당연히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라고 밝혔고,5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2023년 8월 22일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 2023 폐막 연설에서 중국은 “개발도상국이자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으로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공동의 미래를 추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6

과거 중국은 자신을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라고 하기는 커녕, 글로벌 사우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에도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이는 서방이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과 개발도상국 관계를 이간하기 위해서 글로벌 사우스 개념을 제기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7 일례로, 우하이롱(吳海龍) 중국공공외교협회장은 2023년 6월에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방국가들이 냉전적 사고로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념을 사용해 개발도상국 진영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8 2023년 1월에 인도가 주최한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Voice of Global South Summit)’에 초청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자신이 개발도상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재강조한 것도9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중국을 글로벌 사우스의 범위에서 배제하려는 서방의 시도가 빈번해졌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와 함께 서방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가 아니라고 주장하며10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된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 개념을 제기했다.11 2023년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발간된 ‘뮌헨 안보 보고서 2023(Munich Security Report 2023: Re:vision)’은 미국과 유럽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2 또한,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박탈 법안(People’s Republic of China Is Not A Developing Country Act)’이 2023년 3월 미국 하원에서, 6월에는 미국 상원에서 통과됐다. 중국은 이러한 서방의 행위가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 중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연결을 끊으려는 시도로 인식했다.13 경제성장과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지속 추진하기 위해서 개발도상국 및 신흥시장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중국은 이러한 서방의 견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자국을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으로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협력 현황

 
과거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경제 취약성과 수요를 고려하여 경제적 지원과 교역 확대 등에 집중해 왔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다자협의체를 신설하고 그 협력 범위를 정치안보, 과학기술, 기후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1. 경제 협력
 
중국은 신개발은행(NDB: New Development Bank, 2014년 출범), 남남협력 원조기금(中國南南合作援助基金, 2015),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2016) 등을 주도하며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수요에 맞춰 경제 지원과 인프라 개발 투자를 추진해 왔다.

최근 중국은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 Global Development Initiative)’를 제기하고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21년 9월 76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의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달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GDI를 발표한 이래, 중국은 1,10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총 20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했다.14 2015년도 20억 달러를 출자한 남남협력 원조기금은 2022년 글로벌 개발 및 남남협력기금으로 격상되어 총 기금이 40억 달러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그 다음해인 2023년도에 중국은 남남협력기금 총액을 100억 달러로 증액하여 ‘GDI’에 전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5
 
2. 안보 협력
 
시진핑은 2022년 4월 보아오 포럼 개막식에서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 Global Security Initiative)’를 제기했다. 2023년 2월에 발표된 ‘GSI 개념문건’ 은 아세안, 중동, 아프리카, 남미, 태평양도서국 등 각 지역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향후 5년 간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가 5,000명을 양성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다.16 2018년도에 출범한 ‘중국-아프리카 평화안보포럼(中非和平安全論壇)’이 아프리카에 군사훈련, 장비, 기술 등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돼 왔음을 고려할 때,17 중국은 다양한 안보포럼과 교육 프로그램을 각 지역별로 출범시키며 글로벌 사우스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은 태평양도서국과의 안보협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1년 중국은 태평양도서국 수교 10개국과 함께 ‘중국-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회의’를 출범하고 바로 다음 해인 2022년도에 포괄적인 안보 협정 체결을 시도했다.18 비록 일부 국가의 반대로 중국이 제안한 안보·경제 협력 합의문이 동 회의에서 채택되지 않았지만, 중국은 이 회의에 대해서 관련국 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했다고 평가하고 향후에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태평양도서국과의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외에, 2022년 4월 중국은 인도적 지원, 자연재해 대응, 국민 생명·재산 보호, 사회질서 유지 등을 포함하는 안보협정을 솔로몬제도와 체결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사회질서 유지 및 중국인 안전을 위해 솔로몬제도에 군병력과 무장경찰을 파견하고 군함을 솔로몬제도 항구에 정박할 수 있게 됐다.19
 
3. 과학기술 및 기후 협력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과학기술 협력을 대폭 확대하며 글로벌 사우스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우주협력이다. 중국은 2008년에 ‘아시아태평양우주협력기구(APSCO: Asia-Pacific Space Cooperation Organization)’를 출범했다. 이란, 몽골, 파키스탄, 페루, 태국, 방글라데시 등이 참여하는 이 조직은 우주 기술 및 응용 분야에서 아태 지역 내 다자간 협력 촉진을 목표로 한다. 또한, 중국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Artemis Program)’의 대항마로 2021년도에 러시아와 공동으로 ‘국제 달 과학연구기지(ILRS: International Lunar Research Station)’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중국 당국에 의하면, ILRS 프로젝트에는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파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니카라과, 태국,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세네갈 등의 국가 외에도 APSCO 등 40여개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다.20

또한 중국은 자국산 글로벌 항법위성시스템(GNSS: 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인 베이더우(BeiDou) 시스템을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 등130여개국에 수출하고,21 ‘중국-아랍 베이더우 협력포럼(中阿北鬥合作論壇, 2017)’,  ‘중국-중앙아시아 베이더우 협력포럼(中國-中亞北鬥合作論壇, 2019)’, ‘중국-아세안 베이더우 응용 및 산업 발전 협력포럼(中國-東盟北鬥應用與產業發展合作論壇, 2020)’, ‘중국-아프리카 베이더우 협력포럼(中非北鬥合作論壇, 2021)’ 등을 연달아 창설했다. 글로벌 사우스의 첨단기술 수요에 따라 자국의 기술과 관련 정책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 대응과 관련하여 중국은 2024년 9월까지 개발도상국 42개국과 53개에 이르는 기후변화 협력 문서에 서명했을 뿐 아니라, 총 62회의 기후변화 대응 교육 과정을 통해서 기후변화 대응 분야의 전문 인력 2,500여 명을 양성했다.22 특히, 중국은 2023년 9월 아프리카의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청정에너지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 ‘아프리카 라이트 벨트(非洲光帶, African Light Belt)’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브룬디, 차드, 나이지리아, 토고, 상투메 프린시페(São Tomé and Principe) 등 국가와 협력 문서를 체결했다.23

4. 중국-글로벌 사우스 다자회의 확대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기존의 협력 메커니즘 외에도 중앙아시아, 중동, 태평양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자협의체를 신설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범위를 경제 분야에서 외교안보 분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다자협의체를 통해서 중국이 제기한 글로벌 담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지지를 유도하며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9월에 개최된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Forum on China-Africa Cooperation)에서 채택된 ‘베이징 선언’은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중국이 제기한 인류운명공동체, 일대일로, GDI, GSI 등의 글로벌 담론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24

 

< 1>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 정상 장관급 다자회의
표1

출처: 필자 작성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 전망

 
역사적으로 1970년대 마오쩌둥(毛澤東)은 ‘3개 세계론’을 제시하며 제3세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제3세계의 지도국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런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자신을 개발도상국으로 규정하고 그 정체성을 유지해 온 것은 지경학적 관계를 기반으로 자국의 경제성장과 각국과의 협력관계 구축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스윙 국가’ 역할 가능성이 부각되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 나타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는 중국이 향후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를 지정학적으로 접근할 것을 시사한다.

또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신흥시장국가와 개발도상국의 집합체”로 정의한다.25 중국이 줄곧 자신을 개발도상국이라고 주장하며 신흥시장국가와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을 추진해온 점을 고려할 때, 새로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의 범위를 미국, 미 동맹 및 협력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로 망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 하에서 자국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모색해온 중국의 행위와 정세 인식을 고려할 때, 중국은 향후 아래와 같은 방향성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추진하며 미중관계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1. 다극적 국제질서 구축 모색
 
2024년 3월 양회 기자간담회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글로벌 사우스가 국제 질서 변혁의 핵심 세력”임을 언급했다. 중국이 탈냉전 이후 다극적 국제질서를 모색해 왔음을 고려할 때,26 이것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다극적 국제질서로 바꾸는 과정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활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글로벌 사우스 각국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르고 이슈에 따라 중국과 입장차를 보이기 때문에 한계는 있다. 그러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미중 전략경쟁구도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용외교를 추진하며 국제사회에서 ‘스윙 국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및 서방의 민주주의 연대와 비교할 때, 중국은 가치와 정치체제 문제를 떠나 글로벌 사우스의 정치경제적 필요를 더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협력을 통해서 UN 등 국제기구에서 중국에게 유리하거나, 적어도 서방의 의도와는 다른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서방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은 국제사회에서 미국 및 서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그 반대급부로 중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다극적 국제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2. 중국식 담론과 체제 확산
 
2023년 7월 왕이 외교부장은 글로벌 사우스 협력을 위한 4개의 방안을 제시했다.27 그것은 ① ‘갈등 해소 및 평화 공동구축’, ② ‘활력 증진 및 발전 공동촉진’, ③ ‘개방포용 및 진보 공동모색’, ④ ‘단결일치 및 협력 공동논의’를 포함하는데, 구체적 내용은 인류운명공동체, GSI, GDI 등 시진핑 시기에 제시된 여러 글로벌 담론과 맥을 같이 한다. 그간 중국은 미국의 민주주의 연대에 대항하기 위해서 서구와 차별된 중국식 담론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의 가치동맹이 각국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서구적 가치를 확산하려는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중국은 향후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외교안보 분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담론과 화법을 공동성명이나 의제에 넣는 방식으로 중국식 담론과 화법을 국제사회에 확산하려 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강화는 중국식 체제의 확산과도 연결된다. 2024년 6월 28일에 개최된 ‘평화공존 5대 원칙’28 발표 7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은 ‘글로벌 사우스 연구 센터’를 설립해 ‘평화공존 5대 원칙 장학금’ 1,000명 지원, 교육연수 10만 명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글로벌 사우스 차세대 리더 프로그램’을 공언했다.29 이미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경제지원 과정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서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다고 전파하며 중국의 정책과 통치 방식을 전파하고 있다.30 특히, 디지털 격차에 직면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중국은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관련 인프라, 전자상거래, 사이버정책, 차세대 네트워크 표준 등 첨단기술과 관련 정책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중국의 기술과 표준을 확산하고 글로벌 사우스의 대중 의존도를 높이려 할 것이다.
 
3. 경제성장 모멘텀 확보
 
글로벌 사우스가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경제적 성장이기도 하다. 2024년 10월 개최된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에서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 GDP에서 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G7을 넘어섰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31 기술 수준, 산업 구조 등에서 글로벌 사우스가 선진국에 비해 낙후되었더라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높은 인구증가율과 경제성장으로 새로운 시장이 부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프라 및 첨단 산업 투자, 핵심 자원 생산 등 여러 분야의 경제협력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기 하방 압력에 직면한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경제 지원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의 협력도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32 그러나 글로벌 사우스의 경제적 성장은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 간의 경제협력 구도를 중국의 일방적인 지원에서 상호 협력 구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이를 경제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하는 데에 활용하고 표준, 자원 등의 특정 분야에서의 우위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사우스가 신흥 시장으로 부상함에 따라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국내 수요 부진으로 인한 과잉생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중국 기술에 기반한 인프라와 첨단 산업을 구축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기술시장을 선점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국제 표준 경쟁에서 자신의 기술과 표준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는 데에 이용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역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중국의 채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며 광물 협정 체결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33 이를 통해서 전략 광물 공급의 2/3을 해외 공급원에 의존하는 중국은34 자국에게 우호적인 자원 공급망을 확보해 서방의 광물 공급망 교란 시도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한국에 대한 함의

 
한국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운 이후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2023년 5월)’ 및 ‘한-아프리카 정상회의(2024년 6월)’ 개최, 한-아세안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격상(2024년 10월) 등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고립주의와 선별적 개입주의에 기반한 대외정책을 추진한다면,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지원이 바이든 행정부 시기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를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중국식 담론과 체제를 확산하며 글로벌 사우스 협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는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정책을 면밀히 관찰하며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한중 간 체제와 가치의 이질성 문제가 글로벌 사우스 협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중국은 중국식 담론과 화법을 글로벌 사우스에 확산하며 자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책과 통치 방식을 글로벌 사우스 정부기관에 전파하고 있다. 중국식 담론과 화법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중국 중심적 정세 인식에 기반하기 때문에 한국이 추구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중국의 정책과 통치 방식을 교육 받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중국의 권위주의 사고방식과 정책을 반영할 수도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한중 간 체제 및 가치의 이질성이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모든 국가가 중국식 담론과 통치 방식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겠지만,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서 최소한 그것에 공감하고 일부 수용하려 할 것이다. 가치외교를 추구하는 한국이 이를 경시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과정에서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경우 협력 목표와 이익이 기대한 것보다 제한될 수 있다.

둘째,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 지역과 국가별로 적절한 협력 의제를 발굴해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는 각국의 이익에 따라 실용외교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사우스와의 접촉면을 확대하고 협력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지역이나 국가별로 관심이 있고 공동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의제를 발굴하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 다자무역체제 확대, 공급망 안정, 지역 평화와 안정 등은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의제이지만, 너무 포괄적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중국과의 차별성과 한국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의제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뛰어난 기술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프라 및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한국이 우위에 있는 문화를 매개로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동규
이동규

지역연구센터, 대외협력실

이동규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이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정치 전공으로 국제지역학석사 학위를, 중국 칭화대학(淸華大學)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중국정치외교, 한중관계, 동북아안보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일대일로: 보건 실크로드와 디지털 실크로드의 확장과 그 함의”, “중국공산당의 정치개혁은 퇴보하는가: 시진핑 시기 당내 민주의 변화와 지속성”, “중국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전략으로 본 시진핑 사상”, “냉전시기 한중관계의 발전요인과 특수성: 1972-1992년을 중심으로”, “개혁개방 이후 마르크스주의 중국화 연구” 등이 있다.

김지연
김지연

연구부문

김지연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원이다. 베이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정치사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외교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연구 관심분야는 미중 관계, 정체성, 종교 및 민족 갈등, 정치폭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