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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해야 하고, 만일 한국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주한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은 그가 취임하던 2017년 9507억원에서 2023년에는 1조2896억원으로 35% 이상 증가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동맹국인 미국을 신뢰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9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1.6%가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이는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한국민들의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와 존경은 단순히 미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고,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미국인들은 소련을 “공포와 멸시(fear and contempt)”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반대로 소련 사람은 미국을 “공포와 존경(fear and respect)”의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에 대한 공포심뿐만 아니라 적대국의 국민들로부터도 존경을 얻을 수 있었던 저력 때문이었다.

동맹을 부부 관계와 비교해보자. 부부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하는 것처럼 동맹도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있어야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 동맹을 경제적인 손익으로만 따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발상은 미국에 대한 동맹국의 신뢰와 존경을 훼손하고 오히려 미국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다. 가정이 화목하게 유지되려면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우리’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이 툭하면 부인에게 생활비를 더 내라고 하면서 안 내면 이혼하겠다고 하면 그런 가정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덩치만 큰 이기적인 국가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미국의 지위는 흔들리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다. 냉전 시기에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에는 수많은 동맹국의 기여가 있었고, 구(舊)소련·중국·북한이라는 공산권 세력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던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맹과 우리 국민의 노력의 결과였다.

1950년 1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딘 에치슨이 한국을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한 실수를 저지르자 여섯달 만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해 유엔군을 결성하고 16개국의 전투병 파병과 7개국의 의무 지원을 이끌어내어 유엔 깃발 아래 공산 세력의 침공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6·25전쟁에서 우리 민간인 100만명과 한국군 15만명, 미군 3만4000명이 포함된 유엔군 4만1000명이 사망했다.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데, 만일 그 당시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국가였으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았을까?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기념비문에는 “미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라고 쓰여 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글귀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한반도는 강대국의 안보 이익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인데, 6·25전쟁은 공산 세력이 유라시아 전체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북한을 앞세워 저지른 것이었고, 만약 한국이 공산화되었다면 일본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며, 서태평양 지역의 정세는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미국의 융성과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도 어려워지면서 오늘날의 세계사는 다시 쓰여야 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공정(fair)’한 분담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상호(mutual)’라는 문구는 미국만이 한국을 일방적으로 지켜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한국 역시 언제든 미국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고, 이것이 공정한 방위조약의 정신이다.

지난 2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 인도-태평양사령관 인준 청문회에서 새뮤얼 파파로 지명자는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동맹 및 파트너국 중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고,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도 “주한 미군은 돈을 받고 한국을 지키는 용병이 아니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위비 분담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해도 트럼프와 같이 동맹국을 마구 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는 평등하며, 이는 유엔 등 국제기구의 1국 1표 원칙에도 반영되어 있다. 트럼프는 이 원칙을 망각하고 미국이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는데, 이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일이다.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미국은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국가가 미국의 가치에 공감하고 그 전략에 동참하는 것은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일방주의를 자제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트럼프의 유아독존적 사고방식은 동맹을 흔들고 미국이 만들고 수호해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위협할 것이다.

 
* 본 글은 5월 13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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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