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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5일~1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규칙 기반 자유무역 확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식량안보 달성, 공정하고 투명한 디지털 생태계 조성 등에 대한 회원국들의 협력을 재다짐하는 자리였다.

APEC을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 간 경쟁이 지나친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한편, 기후변화· 마약 퇴치·인공지능 문제 등에 있어서는 협력해 나갈 뜻을 표명했다. 그동안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 각종 신흥안보 이슈에 대한 국가 간 협력 동력의 상실 등을 우려했던 지구촌 가족들에게는 안도감을 주는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우리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리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각종 국제회의를 통해 세계의 눈높이에 맞춘 외교를 펼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는 우리의 한반도 문제 해결 정책에 대한 지지만을 호소하거나 단순히 참가에 의의를 두는 기존의 외교 관행으로부터 탈피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행보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APEC 정상회의 개막일에 열린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행사 기조연설에서 “다자무역체제의 수호자로서 APEC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언급했고, 이는 17일의 제2세션 발언에서도 다시 강조되었다. APEC의 역할 강화 필요성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은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위한 APEC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제의(제2세션)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16일 ‘인도-태평양 경제협력프레임워크(IPEF)’ 정상회의에 참석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공급망 안전을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첨단 과학기술의 보호·발전을 위한 협력, 디지털 격차 해소 및 거버넌스 확립은 미래 성장동력과 직결된 현안으로, 우리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조해 온 사항인데, 윤 대통령은 APEC 제2세션 회의에서 AI·디지털 규범과 거버넌스 정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내년 중 한국에서 개최할 ‘AI 글로벌 포럼’에 대한 APEC 회원국들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첨단과학기술과 디지털 분야 협력의 중요성은 17일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한일정상 좌담회에서도 다시 언급되었고,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원천기술 및 첨단기술 개발, AI와 디지털 거버넌스 정립, 탄소 저감과 청정에너지 분야에서의 한-미-일 공조 강화와 공동 리더십 발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이제 글로벌 의제들의 대상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제창출자(Agenda Setter)’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글로벌 중추국가’를 향한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GM, 듀폰, IMC, Ecolab 등 미국 4개 기업으로부터 총 1조 5000억 원(11억 6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것 역시 우리 세일즈 외교의 개가라 할 수 있다.

지난 8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동력을 확보한 한-미-일 협력 추세를 다시 과시한 것도 이번 APEC 정상회의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그리고 기시다 일본 총리는 16일 별도의 3자 회동을 가졌고, 한일 간에는 16일 정상회담에 이어 17일 스탠퍼드 대학에서도 다시 만남이 이루어졌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에는 한일관계의 완전한 회복과 지속적인 협력의 정신이 다시 확인되었다.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 이후 국내외적으로 이에 대한 견제와 북러 간의 외교·군사적 밀착이 있었음을 고려할 때 이는 분명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한-미-일 협력이 북러 밀착과 북-중-러 삼각 관계의 강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고,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국제정세의 격변 속에서 미국이 국제질서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또한 북한이 핵 능력 고도화를 지속하는 현실에서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 공약과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윤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참가는 ‘캠프데이비드 정신’은 변함이 없고, 각종 도전요인들에 맞서 한-미-일의 결속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통해 미중 정상회담과 일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지만, 한중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다른 양자관계에 비해 한중 간의 긴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한중 간에는 이미 지난 8월 중국 정부가 유커(游客)들의 한국 관광을 다시 허용한 데에서도 나타나듯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고, 중국 역시 과거의 외교 관행이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불러왔다는 교훈을 상기할 것이다. 설사 중국이 한국을 한-미-일 안보협력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여 초조감을 불러일으키려는 포석을 두고 있다고 해도, 이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중국의 협력적 자세를 유도할 수 있다. ‘캠프데이비드 정신’과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상호존중의 한중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 본 글은 11월 21일자 정책브리핑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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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