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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한반도 북핵 위협 최고조… 對北 옵션으로 급부상한 전술핵 재배치]
역대 정부, 북핵 능력 얕보다 위기 초래… 강력한 대북 억지력 위해선 핵균형 필수

북핵, 유사시 한국 지원할 뒷덜미 노려
매케인 의원 “전술핵 재배치 심각히 고려”
한국형 3축 체계도 핵 없인 반쪽 불과

현재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은 한반도가 북한의 ‘핵 독점 시대’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서막이었고, 2017년 7월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발사와 9월 수소탄 실험은 한·미 동맹이 유례없는 북의 도전에 직면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북한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에 근접함으로써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려는 미국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 하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핵무기에는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냉전 시절부터 이어져온 국제적 상식이자 냉엄한 교훈이다. 핵을 선점한 미국에 대응해서 소련이 핵 개발에 나선 것을 필두로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와 파키스탄 등 군사적으로 대치한 경쟁국들은 모두 상대의 핵 개발에 자체 핵 개발로 응수했다. 1945년 지구상에서 핵 시대가 열린 이래 적대적 당사국 간에 어느 한쪽의 핵 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없다. 미국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의 핵 독점 구도를 타파하여 남북한이 ‘핵 대 핵’으로 대응하는 한반도 ‘핵 균형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한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1991년)을 우리가 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북한의 위반으로 이미 휴지 조각이 된 선언을 고수하자는 것과 같다. 1980년대 이미 핵 개발에 나선 북은 비핵화 공동 선언에 서명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를 지킨 적이 없다. 우리가 먼저 핵을 포기하고 북의 핵 포기를 유도한다는 비핵화 정책은 북한 정권의 핵 보유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한 역대 정부의 자만과 안일함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전술핵을 내줄 리 없다’는 일각의 믿음도 작용한다. 최근 토머스 버거슨 주한 미 공군사령관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에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 기류를 꼼꼼히 따져보면 결국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 문제의 관건은 한국의 태도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트럼프 행정부부터 출범 초에 북핵에 맞서는 대안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헤리티지 재단의 에드윈 퓰너 회장이 “전술핵 재배치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전술핵 재배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하는 등 미국 조야에서 이에 대한 우호적 의견이 늘고 있다. 결국 전술핵 재배치는 한·미 정상이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5국의 공군기지 6곳에 전술핵 150여 기를 실전 배치해 놓고 있다.

일각에선 전술핵이 북한의 선제공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전술핵은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핵 균형 시대’의 인계 철선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전술핵에 대한 공격은 핵의 인계 철선을 건드리는 핵 도발이며 미국의 핵 보복과 북한 정권 소멸로 이어질 것임을 북한도 잘 알 것이다. 한반도 재래식 무기 균형 시대에 주한 미군이 대북 억지 역할을 했던 것처럼 핵 균형 시대에는 전술핵이 핵우산 공약의 상징이자 인계 철선으로서 대북 억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얘기다.

전술핵은 미국이 펼치는 핵우산의 우산살 하나를 한반도에 고정해 놓는 것과 같다. 유사시 핵우산이 흔들리는 일이 없게 하는 확실한 보장 장치인 셈이다.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핵우산 공약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 미국이 자국 안보를 위해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는 우려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미 본토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거리 폭격기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 자산에 의존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수천㎞ 떨어진 전략핵보다는 북한 코앞에 배치된 전술핵이 훨씬 더 큰 억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미국의 전략 자산은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하는 측면이 크다. 중·러도 북핵 대응을 구실로 작전 반경이 넓은 전략핵이 한반도에 개입하는 것보다는 작전 범위가 제한된 전술핵을 덜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핵이 없는 상태에선 아무리 첨단 재래식 전력을 갖춘다 해도 북한 핵을 당해낼 수 없다. 향후 5년간 78조2000억원을 투입해서 핵이 빠진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국방부의 계획은 그래서 공허하다. 첨단 재래식 전력도 핵으로 뒷받침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핵이 빠진 첨단 전력은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 정부로서는 예산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한정된 예산을 무작정 재래식 전력 증강에만 투입할 수도 없다. 전술핵 재배치는 예산 절감과 ‘비용 대 효과’ 측면에서도 합리적 대안이다. 우리가 북핵의 인질이 된 상황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한국이 동맹을 존중하고 핵 비확산 규범을 준수하면서 안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타당하고 현실적인 선택이다.

* 본 글은 10월 18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