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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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지금의 한일관계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위안부,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대한민국과 일본 간에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가 한꺼번에 펼쳐지고 있다. 일본이 좌충우돌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놓고 긴밀히 공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정교하면서도 냉정해야 한다. 더구나 일본이 문제를 일으키는 위안부,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대해서도 주제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공론화 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오히려 일본 정부를 상대로만 강한 압박을 가해야 일본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게 되는 문제도 있다.

안보협력에 관한 한 일본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적극적이나 냉정한 대응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극도로 악화된 한일관계와 그 원인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일본 아베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위안부 합의’를 정서적으로 수용 못 한다”며 “(일본 정부가) 무라야마 ∙ 고노 담화를 존중하고 계승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1 이는 지난 2015년 12월 28일 대한민국과 일본 간에 타결된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대한민국 신(新)정부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2017년 5월 17일 일본을 방문한 문희상 특사도 일본 기시다 외무상을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2 문재인 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국민정서 또는 여론을 ‘공식적인’ 정부 입장으로 전환시키고 있는데, 이는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 정부가 보여준 여러 행태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수용할 수 없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명확히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1)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한일관계

지난 몇 달 간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12월 30일 부산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 ‘담장’ 앞에 설치된 소녀상을 문제 삼아 2017년 1월 9일 주한 일본 대사는 일본으로 일시 귀국했다 85일만인 4월 4일이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왔다.3

위안부 합의를 포함하여 소녀상만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7년 3월 31일 통상 10년 주기로 개정되는 초 ∙ 중학교 신학습지도요령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면서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4 초등학교 단계부터 독도를 일본 영토인 것처럼 교육시키고자 하는 것은 최초의 시도이기 때문에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 및 대한민국 주권 침해는 극에 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더구나 2017년 4월 21일 일본 여야 의원 90여명은 춘계대제가 열리고 있던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적으로 참배했다.5 이는 여야에 관계없이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인식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처럼 대한민국과 일본 간에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포함한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에 대해 우호적이고 발전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2)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문제가 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는가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한 논란을 넘어 일본 정부의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 주권 부인, 교과서를 통한 역사왜곡 등이 ‘뉴 노멀(New Normal)’ 또는 ‘일상화’ 된 이유는 우리 전(前)정부가 위안부 합의 타결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 정부 스스로 일본 정부에 대해 레버리지를 포기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위안부 합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대한민국 정부라는 악의적인 프레임을 구축하면서 오히려 우리 정부의 대일 메시지가 수세적이 된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2016년 9월 7일 라오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로서는 합의를 지켜왔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소녀상 문제를 포함해 착실한 (합의 이행) 실시를 원한다”고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 당시 박근혜 전(前)대통령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언급을 하는데 그쳤다.6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 이행 문제가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을 기회로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보다 자유롭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투영하고 오히려 이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적반하장식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할 때는 위안부 합의 문제를 넘어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3. 문재인 정부의 2015년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

(1) 위안부 합의에 대한 기존 양국 정부의 태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정부의 공통된 입장은 위안부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2016년 10월 3일 아베 총리가 일본 중의원에서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죄편지를 보내는 문제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7고 말할 정도로 위안부 합의 이행과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 것은 일본 정부였다. 그런데 지난 연말 이후 소녀상 문제가 불거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위안부 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자 역으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 위안부 합의의 법적 성격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먼저 정리되어야 하는 문제는 위안부 합의의 법적 성격이다. 국제법상 국가들 간의 합의는 모두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이라 불리는 ‘정치적 합의(political or non-legal agreement)’도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8 즉,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위안부 합의가 정치적 합의라면 조약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고, 이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 부과하고 있는 의무의 일방적 불이행처럼 법적 책임을 야기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위안부 합의가 정치적 합의라면) 만약 대한민국이 위안부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해도 일본이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는 비난할 수 있겠으나 법적으로는 대한민국에게 그 합의 이행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 이유는 공동기자회견 형식을 택한 위안부 합의의 형식과 조약처럼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에게 법적 구속력 있는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해석되기 어려운 ‘자제한다’ 또는 ‘노력한다’ 등과 같은 용어의 사용이 위안부 합의의 법적 성격을 정치적 합의로 간주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일본이 반발할 수 있으나 만약 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명확하게 조약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일본 정부는 이미 2015년에 대한민국 정부를 향하여 서면형식의 조약 체결을 제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안부 합의를 정치적 합의로 만든 것도 일본의 선택인 만큼 설령 우리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 선언이 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위험 부담은 일본에게 있을 뿐이다.

 

(3) 문재인 정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떤 출구전략을 세워야 하나

문재인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해 두 가지 출구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하나는 위안부 합의의 ‘사문화’ 또는 그 존재 자체의 ‘무시’고, 다른 하나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이다.

 

가. 위안부 합의의 ‘사문화’ 또는 존재 자체의 ‘무시’

문재인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사문화 시키거나 그 존재 자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일본을 방문했던 문희상 특사가 2017년 5월 20일 귀국하면서 “재협상이라기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자는데 의견 합의를 봤다”고 언급9한 것도 기존 위안부 합의의 존재에 크게 얽매이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략은 위안부 합의의 법적 성격이 정치적 합의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선택지를 취하게 되면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한일관계는 2015년 12월 28일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독도, 교과서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공세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수정되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우리 정부의 일본 정부를 향한 레버리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지난 2016년 8월 31일 ‘화해 ∙ 치유’ 재단에 10억엔을 송금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시 기시다 외무상의 언급에 나와 있다. 당시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왔으며, 이에 기초해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재단 설립 등 ‘사업’에 일본 정부가 ‘호의적인’ 차원에서 출연 또는 기여를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10억엔은 법적 차원에서 배상금 등으로 정의될 수 없고 대한민국 정부의 사업에 일본 정부가 호의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준 것에 불과하므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 목적으로만 사용하면 된다. 즉, 10억엔이 소녀상 이전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또는 10억엔을 반환해야 하는지 여부는 위안부 합의 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논쟁을 위한 논쟁만 야기하는 의문에 불과하다.

 

나. 위안부 합의 재협상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이다. 그러므로 위안부 합의 재협상 추진은 일반적으로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개정 추진과 비교하여 법적 차원에서는 다소 장애물이 경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합의도 국가들 간에 만들어진 합의인만큼 재협상 추진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어느 정도 예상해야 한다.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 재협상 추진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상당한 동력을 찾아야 한다.

위안부 합의의 재협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행히도 지난 2017년 5월 11일 고문방지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의 이행을 감독하는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가 대한민국 정부를 향하여 내린 (법적 구속력은 없는) ‘권고’10가 재협상 추진에 대한 의미 있는 동인이 될 수 있다. 고문방지위원회는 위안부 합의가 고문방지협약 제14조11의 범위와 내용에 비추어 동 조문을 완전히 이행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위안부 합의가 배상 또는 가능한 한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한 수단 등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고문방지위원회는 위안부 합의 개정을 권고했다.

이러한 고문방지위원회의 위안부 합의 개정 권고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향은 두 가지로 알려지고 있다. 첫째,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 개정 권고가 오로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권고이고, 그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주장은 고문방지위원회의 권고 특성상 잘못된 언급은 아니다. 하지만 고문방지위원회의 권고는 이를 기초로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 나서는데 있어 힘있는 추진동력이 된다. 둘째, 일본 정부는 고문방지위원회에 일본의 입장을 표명하는 문서를 제출하고자 한다. 그러한 문서 제출은 일본의 자유이나 일본이 주장한 것처럼 위안부 합의 개정 권고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권고이기 때문에 고문방지위원회는 일본의 의견에 대해 어떤 답도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고문방지위원회가 내린 권고가 오로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권고라고 주장하면서 이와 모순되게 반박 문서를 준비하는 일본 정부의 비상식적인 행태만 부각될 뿐이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재협상 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가 응할 경우 문재인 정부는 전정부처럼 위안부 합의 재협상 타결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안부 합의는 우리 정부는 물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물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 소녀상 이전 가능성을 레버리지로 삼아 일본 공권력의 위안부 강제 연행 명시 및 이에 대한 유감 표명이 포함된 대한민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간의 공동선언 또는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체결을 제안해야 한다. 즉, 위안부 합의 재협상 시 그 결과물 도출에 대한 주도권이 대한민국 정부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4) 위안부 합의를 처리하며 우리 정부가 유념해야 하는 두 가지

위안부 합의를 처리하면서 우리 정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보다 일본의 역사인식 전환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 전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타결에 도달한 것에 대해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공조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교정하지 않은 채 (아무리 법적 구속력 없는 내용일지라도) 소녀상 문제를 위안부 합의 내에서 언급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전정부의 경솔함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위안부 합의를 사문화 시키는 전략을 취하든 아니면 재협상을 추진하든 우리 정부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가 타결된 이후에도 양국 정부 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한 적은 없다는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 때문이다. 위안부 강제 연행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일본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역사인식의 한계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역사인식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일본의 편협한 태도는 일국의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객관적인’ 태도가 아니며,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공조를 약화시켜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에 큰 걸림돌을 놓고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분명히 바뀌지 않는 한 일본이 그렇게도 해결하고자 하는 소녀상 문제는 양국 간에 논의조차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전제해야 한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녀상 문제의 해결을 조건으로 일본 공권력의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 및 이에 대한 유감 표명이 명시적으로 포함된 대한민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간의 공동선언 또는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체결은 가능하다는 시그널을 일본 정부에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 정부는 안보협력 문제와 역사 문제를 냉정하게 분리시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진정성 있게 안보협력을 추진한다면 오히려 우리 정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전환은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또는 인권적 차원에서 우위를 지니고 있다. 다만 너무 감정적으로 또는 정교한 전략 없이 위안부 문제 등에 대응하면서 그 도덕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협력 문제와 역사 문제를 냉정히 분리했을 때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전환은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달성된다.

 

4. 일본의 독도 문제 언급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 방향

문희상 특사가 일본을 방문하고 있던 2017년 5월 17일에도 일본 외무성은 독도 문제에 대해 역사적 그리고 국제법적 이해 자체가 결여된 발언을 했다. 일본 외무성은 “5월 17일 오후 1시께 독도 서쪽 40㎞ 지점의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한국 국립해양조사원 소속 해양조사선 ‘해양2000’이 쇠줄 같은 물건을 바닷속에 던지고 있는 것을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 확인했”고, “동의가 없는 조사활동은 인정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12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언론의 초점이 위안부 합의 문제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이 발언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일본 외무성의 이러한 언급은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끝까지 레버리지를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일본 외무성의 전제는 독도가 일본 영토이기 때문에 독도 서쪽 40km 지점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이라는 것이다. 이 전제 하에서 유엔해양법협약 제246조 제2항이 언급하고 있는 타국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해양과학조사를 수행할 때 그 국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의무를 우리 정부가 위반했다는 것이 일본 정부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 정부의 근거 없는 상상에 기인한 주장일 뿐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기 때문에 독도 인근 수역에서 해양과학조사를 수행할 때 일본 정부의 동의를 얻을 이유가 없다. 즉, 일본 외무성의 발언은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왜곡된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합의 이행을 더 이상 요구하기 곤란한 현실을 직시한 상황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라도 대한민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유지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반응일 뿐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독도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는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즉,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양국의 공조 논의 시 위안부 합의 문제는 물론 독도 문제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5.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의 미래

문재인 정부는 전정부의 대일 정책 모두에 대해 반감을 가지거나 이를 폐기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16년 11월 23일 체결된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문제이다. 무엇보다 2015년 위안부 합의와 달리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위안부 합의와 달리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부과하고 있는 의무의 일방적 불이행은 법적 책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제21조 제3항이 “이 협정은 1년간 유효하며, 그 후로는 어느 일방 당사국이 타방 당사국에게 이 협정을 종료하려는 의사를 90일 전에 외교 경로를 통하여 서면으로 통보하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1년씩 연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문재인 정부는 객관적으로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실효성을 판단한 후 2017년 8월까지 이 협정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면 될 뿐이다.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양국 간에 체결된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고 그 내용 가운데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이 협정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는 오로지 ‘실효성’ 하나이다.

만약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양국의 공조에 도움이 되고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이 협정을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연장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문제를 쟁점화 시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를 향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 문제와 안보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에 장애가 되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가 냉정하게 역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6. 문재인 대통령, 9월에 시작되는 유엔 총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매년 9월에 시작되는 유엔 총회에서 유엔 회원국 정상들은 기조연설을 활용해 자국 외교정책 및 당면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돌아오는 9월 유엔 총회에 직접 참석해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힐 좋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일본의 역사인식 전환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 시 한일관계를 언급할 때 네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절대로 감정적인 호소를 하면 안 된다. 동북아 역사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전제 하에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조차 대한민국의 주장에 대한 (동일한 무게를 가지는) 반대 주장으로 간주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도덕적 또는 인권적 차원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다음의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즉, 위안부 합의를 타결한 일본 정부의 노력에 대해 일단 경의를 표현한 후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2015년 12월 28일 이후 이에 배치되는 일본 정치인들 및 관료들의 발언이 지속되고 있음을 냉정하게 사례를 드는 방식으로 지적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다고 반발할 수 있으나 그러한 반발을 이용해 우리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해석상’ 논란을 일으키는 당사자는 바로 일본 정부라는 프레임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악의적인 프레임 구축에 대응하는 새로운 일본 정부의 ‘자의적인 위안부 합의 축소해석’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위안부 합의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여 올바른 이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일본 정부라는 것이 부각된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인식이 왜곡되어 있음에도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연장을 결정했음을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2017년 8월에 연장 여부가 결론지어지고, 9월에 유엔 총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는 국제사회를 향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역사 문제와 안보 문제를 냉정하게 분리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줄 것이다.

셋째, 독도 또는 교과서 문제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 이는 언급 시 오히려 독도를 놓고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존재함을 부각시킬 뿐이다. 독도 또는 교과서 문제는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양국 간 차원에서만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넷째,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유엔 총회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유엔 자체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국제사회의 정치질서 또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일본 정치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유엔 차원에서 수용되기 어렵다. 바로 이 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7. 나가며

한일관계는 참으로 어려운 국가 간 관계 중 하나이다. 군사적 ∙ 외교적 ∙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거의 없음에도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표현되는 순간 양국 간에 협력과 공조가 필요한 모든 문제는 그 왜곡된 역사인식의 발현 때문에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정상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인식만 가진다면 대한민국과 일본은 우방을 넘어 맹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역사인식이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 위안부 강제 연행 인정 여부,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하여 일본과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 야기한다면 이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해 동북아 평화질서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 정권과 일본 정부가 별다른 차이가 없는 비정상 정권 또는 정부임을 증명할 뿐이다.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대한민국 정부의 전방위적이기는 하나 이슈별로 분리된 대응을 통해 전환될 여지가 있다. 우리 전정부처럼 오로지 위안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모든 갈등 요소에 대해 일본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 동일한 압박을 가하기 보다 위안부 또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국제기구, 특히 유엔을 활용하여 압박할 필요가 있고, 독도 또는 교과서 문제는 양자 간 차원에서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대응 가운데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안보협력에 관한 한 일본 정부를 진정성을 가지고 긴밀한 파트너로 대우하고 이를 통해 동북아 평화구축을 위한 의미 있는 공조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감정적인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전환 및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 두 가지 모두 우리 정부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러므로 냉정을 유지한 채 국제사회의 여론을 잘 활용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고집을 꺽지 않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일본 정부라는 프레임을 지뢰처럼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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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