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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하반기의 한미 연합은 계절의 분기점이다. 숨쉬기도 뜨거운 태양을 피하여 지휘소 연습을 위하여 벙커로 들어갔던 이들은 약 2주간의 훈련이 끝나면 선선한 바람을 맞게 된다. 즉, 여름과 가을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바로 8월 말의 한미 연합 연습이다.

 

한미 연합 연습의 시작

하반기 연합 연습은 을지프리덤실드(UFS·Ulchi Freedom Shield)로, 상반기 연습은 프리덤실드(Freedom Shield·자유의 방패)로 불린다. 최초의 한미 연합 연습은 포커스렌즈 연습으로 한국전쟁 직후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사령부의 주관하에 1954년 최초로 시작됐다. 한편 북한의 후방 지역 침투에 대비한 독수리 훈련(FE·Foal Eagle)은 소규모나마 1961년부터 실시되었다.

연합 연습이 긴박해진 것은 1968년부터였다. 테트 대공세로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고전하는 사이, 북한은 1월 21일 청와대 기습사건을 필두로, 이틀 뒤에는 미 해군 정보수집선 ‘푸에블로’를 납치하는 등 대남 적화공세에 나섰다. 우리 정부는 NSC의 주관하에 1968년 7월부터 정부 종합 연습인 을지 연습을 실시했다. 안보 상황이 악화된 만큼 한미 연합 차원의 대응이 필수였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안보 공약을 입증하기 위해 1969년 3월 ‘포커스 레티나(Focus Retina)’라는 이름으로 11일간 대대적인 공수 기동연습을 실시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미군의 증원 역량과 의지를 입증했다. 그러나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주한미군 7사단 철수를 결정하면서 미국의 안보 공약은 또다시 의심받았고, 한미 양국은 1971년 ‘프리덤 볼트(Freedom Bolt)’ 연습을 통하여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또다시 과시했다.

 

정치 환경에도 굳건한 연합 연습

한미 연합 연습은 한미 양국의 정치적 불신과 반목을 통합하는 수단으로도 작용해 왔다. 1976년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당선된 지미 카터 행정부에 대응하여 박정희 정부는 독자 핵 개발 노선을 제시하면서 양국은 충돌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도 한미 양국은 오히려 연합 연습을 강화했다. 즉 유엔사 주도의 포커스렌즈 훈련과 한국의 범정부 전쟁 연습인 을지 연습을 합쳐 을지포커스렌즈(UFL·Ulchi Focus Lens) 연습을 실시했으며, 한미 양국 최대의 야외 기동연습인 ‘팀 스피리트(TS·Team Spirit)’를 최초로 실시했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Combined Forces Command)가 창설되면서 한미동맹은 오히려 더욱 강력한 안보동맹으로 발전했다. 연합 연습이 연례화된 것도 바로 이 시기부터였다. 특히 TS 연습은 ‘전략적 전개-운용-복귀’의 3단계로 실시되면서, 최초 4만6000명이 참가하던 연습 규모는 1984년에 이르러서는 20만 명으로 증가했다. 최초 10일이었던 훈련 기간도 후에 70~80일까지 증가했고, B-52 전략폭격기와 랜스 지대지미사일이 투입되는 등, TS는 핵전력까지도 포함하는 대대적인 전쟁 연습이 됐다.

냉전이 끝나면서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등 남북 간의 평화 무드가 조성되는 듯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1992년 TS 연습을 중단했지만, 북한은 이러한 훈련 중단을 활용해 오히려 핵 개발을 공식화했다. 결국 1993년 TS 연습이 재개되자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었고, 미국은 TS를 한미 연합전시증원연습으로 격상시켰다. 연합전시증원연습은 RSOI로도 불렸는데, 이는 수용(Reception), 대기(Staging), 전방 이동(Onward Movement), 통합(Integration)의 약어로 유사시 미 증원 전력의 한반도 전개 과정을 가리킨다.

 

급변하는 북핵 사태와 한미 연합 연습의 진화

그러던 것이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를 즈음하여 2002년 RSOI 연습과 독수리 훈련이 통합되어 실시되면서 연습 규모는 더욱 확장되었다. 또한 2006년 1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북한에 대한 더욱 강력한 억제 대책을 추구하면서, 2008년부터는 RSOI 연습을 ‘키리졸브(KR)/독수리(FE)’ 연습으로, UFL 연습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Ulchi Freedom Guardian) 연습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대테러 전쟁으로 병력의 여유가 충분하지는 못했지만, 한미 연합 연습은 양국의 능력을 꾸준히 향상시키는 기회로서 활용됐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선에서 미군의 실전 경험은 한미 연합 연습을 통해 우리 군에 전수되었다. 특히 북핵 위협의 증가에 따라 킬체인과 KAMD 능력이 강조되면서 이에 대한 검증이 KR과 UFG에서 실시되곤 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8년부터는 남북대화와 미북대화의 국면이 형성되면서 한미 연합 연습은 중단과 축소의 길을 걷게 됐다. 특히 2018년에는 전쟁 전체를 준비하고 검증하는 연합 연습이 아예 실시되지 못했는데, 2019년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연합 연습 재개의 요청이 있었지만, 코로나19 감염병을 빌미로 연합 연습은 사실상 소멸했다.

 

동맹 70년을 맞이하는 연합 연습의 과제

2022년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한미 연합 연습을 부활시켰다. 작년 8월에는 하반기의 UFG 연습을 을지프리덤실드로, 올해 3월에는 상반기 KR/FE 연습을 프리덤 실드(FS), 즉 자유의 방패 연습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개했다. 이들 연습은 한반도의 전구 작전 수행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작전계획에 기초하여 모의로 진행되는 군사 지휘소 연습인 만큼, 상황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반영하느냐가 중요하다.

정부는 과거 정형화된 시나리오만을 반복하던 것에서 벗어나 더욱 실전적인 상황을 모의했다. 과거 연습은 국지 도발에서 전면전으로 위기 고조의 흐름을 준비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시나리오가 전면 개편되면서 평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전쟁 상태로 전환하여 신속한 전쟁 수행 체제 전환 역량을 점검했다. 특히 1부에서 정부 연습인 을지 연습을 포함하는 UFS는 국가 전체 차원의 전쟁 수행 능력을 입증했다. 특히 UFS와 연계하여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위 공습훈련까지 포함하면서, 북핵 위협에 전 국민이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2부의 군사연습에서는 지휘소 연습뿐만 아니라 연합 통합 화력 훈련과 공군 쌍매 훈련, 사단급 쌍룡 연합 상륙 훈련 등 30여 건의 연합 야외 기동훈련이 동시에 실시되면서 명실공히 종합 연습의 면모를 과시했다.

북한은 핵 그림자의 내러티브를 확립하여 핵무기 사용의 공포로 한미 양국의 인지와 결심을 교란하고 감히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도록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한미 양국은 워싱턴선언으로 핵 공동기획과 공동실행을 준비하고 북핵 사용 시 북한 정권을 멸망시킬 것을 약속했다. 그래서 한미 연합 연습은 더욱 진화해야 한다. 워싱턴 선언의 약속은 반드시 연합 연습에서 구현돼야 하며, 특히 한미 지휘소 연습에서 NCG(한미 핵협의그룹)를 통해 양국 지도자가 핵 사용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현장 부대에서 이를 즉각적으로 시행할 수 있음을 과시해야 한다. 한미가 하나처럼 핵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민관군이 하나로 통합되어 어떠한 핵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음을 입증할 때 북한의 핵 위협은 헛된 망상으로 끝날 것이다.

 

* 본 글은 이코노미조선 508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양욱
양욱

외교안보센터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방송을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