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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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일본의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당선되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집권 여당의 총재는 곧 일본의 총리가 되며, 이시바 자민당 신임총재는 10월 1일 임시국회에서의 지명선거를 거쳐 일본의 102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이시바는 높은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내 비주류로 국회의원들의 지지가 높지 않아 당선가능성은 희박하게 여겨졌으나, 3파전을 벌였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전 환경대신의 준비부족,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담당대신의 강경노선에 대한 불안 속 당내의 소극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여기에 다가올 중의원 및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적 판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지지도 영향을 미쳤다(상세사항 별첨 참고). 자민당 총재의 임기는 3년으로 곧이어 있을 중의원 선거, 참의원 선거 등의 결과에 따라 총리로서 이시바 신내각의 집권 기간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시바 신임총재는 10월 27일 중의원 선거를 발표했는데,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중의원 선거(10.27)와 내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장기 집권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시바 신임총리는 ‘여당내 야당’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자민당에 대한 쓴 소리를 하고, 한국과의 역사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왔던 인물로, 기존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한국의 기대가 작지 않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의 자민당 내 약한 지지 기반 등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높은 기대감을 갖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논리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역사문제 해결과 한일관계의 진전을 기하고, 국익의 관점에서 한일협력의 노력을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외교 안보 측면에서 언급되는 ‘아시아版 NATO’ 창설 및 ‘핵공유’ 검토, ‘비핵3원칙’ 재검토 등은 일본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만큼 당장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 일정 부분 함께 논의하고, 협력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검토해 볼만한 여지가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비전을 공유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함께 발전적인 논의를 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국은 우리의 우려와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과거사문제에 대한 진전없이 안보분야에서의 급진적인 협력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한국 또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일 및 일본과의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논의를 검토할 수 있지만, 일본의 방위력 강화 등에 대한 높은 우려 속 역사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없이 안보협력을 이루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1. 이시바 신내각의 외교안보정책과 한일관계 전망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 주목할 부분은 이시바 내각의 외교안보 정책 및 역사문제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먼저 이시바는 일본 정치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안보 전문가이다. 본인 스스로도 “국방이 평생의 업(라이프워크, lifework)”라고 말할 정도로1 안보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갖고 있다. 오랜 지론으로 ‘아시아版 NATO 창설’과 ‘전수방위’ 및 ‘비핵 3원칙(非核3原則) 재검토’, ‘안보기본법 제정’, ‘미일지위협정’ 재검토, 그리고 ‘핵공유 논쟁 필요’ 등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안보: ‘아시아版 NATO’ 집단안보 체제 구축은 이시바의 오랜 지론, 현실화는 요원

먼저, ‘아시아版 NATO’는 역내 집단안보체제가 없는 현실 속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곧 아시아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기반한다.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경우, NATO에 속하지 않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적극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데, 아시아의 경우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만의 경우, 유엔에도 속해 있지 않아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과 주변국의 대응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응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대만 유사 사태 등 지역불안정에 대비하여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주변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도록 ‘의무화’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역내 존재하는 다양한 안보 협의체, 예를 들어, 미일동맹, 한미동맹, 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ANZUS(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잘 연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QUAD에서의 안보협력 논의, ANZUS에 일본이 함께하는 JANZUS(Japan+ANZUS)를 논의 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시바는 이에 대해 하나의 안보협력 ‘틀’을 만들고 그 안에 관련된 국가들을 포함시키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소다자 안보협력체제를 ‘연결’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예전부터 이시바는 일본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핵 공유’, ‘전수방위 및 ‘비핵3원칙 재검토’ 등에 대한 언급도 계속해 왔다. 일본은 과거 전쟁을 일으킨 역사적 배경과 전세계 유일한 피폭국으로 1967년 사토 내각 당시부터 ‘비핵3원칙(핵을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원칙이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평화국가를 지향하며 오랜 기간 지켜온 방향성이자, 원칙이다. 하지만, 이시바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비핵3원칙’으로 핵 억지력을 높일 수 있는지, 그것으로 일본 국민들의 안전이 담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논의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며, 이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2 또한, 이시바는 일본이 견지해 온 ‘전수방위’는 군사적 용어가 아닌, 정치적 용어이므로, 군사적 합리성에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핵 공유’에 대한 논의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이것이 일본이 핵무기를 가지거나, 공유한다는 개념은 아니고, 핵무기 사용의 책임과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정치적인 구조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NATO의 경우, 핵무기 사용의 결정권한과 핵무기의 관리권은 미국이 갖고 있지만, 사용 여부의 결정과정에 동맹국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데, 미일 관계에서는 그러한 논의가 없어 핵억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핵공유 논의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3 나아가 “일본에는 50개의 기본법이 있지만, 안보기본법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며, 나라의 안보방식을 정하는 안보기본법 제정을 통해 국가, 지방, 국민의 책무를 정하고, 비핵3원칙, 전수방위 등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갖게 하겠다고 주장한다.4 이는 이시바가 선거기간 동안 자민당 총재, 그리고 일본의 총리가 되면 반드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防衛の在り方:방위 본연의 형태에 대한 기초를 다시는 일)로 언급되었고, 여기에는 2012년 자민당이 제출한 헌법개정 초안이5 핵심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미일지위협정’ 재검토는 선거기간 중인 9월 17일, 오키나와에서 개최된 연설에서 언급되며 주목받았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사례도 거론된다. 2004년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미군 헬기가 추락한 사고가 있었는데, 일본 경찰은 이에 거의 관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잔해를 전부 회수해 갔는데,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일본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불합리하며, 따라서 주일미군기지의 관리를 일본이 담당하는 등 미일지위협정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자위대 훈련장소를 일본에서 충분히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위대 훈련기지를 미국에 둘 필요성이 있고, 이것이 미일동맹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6 뿐만 아니라, 이시바가 선거 기간 가장 많이 강조했던 것이자, 총리가 되면 꼭 하고 싶은 일로 언급한 것 중 하나가 자위대의 처우 개선이다. 퇴임한 자위대 출신들이 영예로워야 한다는 것이며, 이들이 자신들이 쌓아온 기술과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맥락 속에서 자위대의 헌법 명기도 언급된다. 나아가 국회에서 현역 자위대가 제복을 입고 들어와 답변할 수 없는 올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표하며, 이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촉구한다.7

이와 같은 이시바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고, 이상적인 반면,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 사회에서도 논란이 많은 내용들이며, 주변국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사회에 넓게 퍼져있는 ‘핵’에 대한 거부감을 고려할 때, 비핵3원칙을 깨는 것은 쉽지 않고, 연립여당을 이루는 공명당의 평화주의 입장과도 배치되어 컨센서스를 이루기까지 상당히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그러나 안보통으로서 오랜 지론을 갖고 있었던 만큼 논의선상에 올리려는 노력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아시아版 NATO’는 사실상 동맹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시바는 이 집단안보체제에 들어갈 국가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이시바의 발언 속 언급되는 역내 소다자 안보협력체들에 속하는 국가들 중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구상 또한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대립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중국, 러시아, 북한을 위협대상으로 규정하는 일본의 입장이 한미일 vs 북중러의 대립구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집단안보체제가 대중견제 역할을 기대하는 만큼,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당장 미국의 유수 언론들 및 전문가들의 부정적 인식이 표명됐다.8 미일지위협정에 개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9 따라서 이러한 주장들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또한 이시바 총리가 오랜 기간 이야기를 해 온 만큼 논의의 주제로 올라올 가능성은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높고, 친한파로 알려진 이와야 다케시 (岩屋毅) 전 방위상이 외무대신으로, 나카타니 겐(中谷元) 전 방위대신이 방위대신으로 재임명된 것은 긍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야 다케시 신임 외무대신은 이시바 총리의 최측근으로 이시바의 입장을 가장 잘 지지하며, 원활한 정상외교를 돕는 역할을 할 것이며, 나카타니 겐 방위대신은 자위대 출신으로 자위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역사: 역사문제에 대한 직시에도 한국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

이시바는 자민당 내에서도 보기 드물게 한국과의 갈등사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과 이에 대한 일본 사회의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다. 구체적 사안으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고,10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당시에도 강제징용문제와 연계는 잘못되었다는 입장도 밝혔다.11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만큼 일본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도 알려져 있다.

한일관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호의를 일본도 최대한 활용하고, 윤정권이 한국 국내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이시바 시게루(2024), 「보수정치가 나의 정책, 나의 천명」 중
石破 茂(2024), 「保守政治家 わが政策、わが天命」中

이에 따라 한국에서 과거사문제에 대한 진전된 발언, 점진적 해결, 성의있는 호응을 보여줄 것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감은 섣부르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발언들은 한 명의 국회의원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이지만, 자민당을 대표하는 총재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로서 이와 같은 입장을 다시 표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고, 이시바의 발언은 정론(正論)에 가깝지만, 어떠한 사과, 어떠한 책임, 어떠한 행동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타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대법원 판결 관련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이후, 한국이 바라는 물컵의 반잔, 즉,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 법적 책임 인정, 일본 기업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일본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은 일본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인식이고, 이시바 총리 또한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를 직시해야 하고, 일본의 전쟁책임을12 언급하지만, 그것이 합법이라는 일본의 인식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한일관계의 악화가 일본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이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13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한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역사교과서 문제나, 독도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14

한편,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의 경우, 결선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다카이치가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겠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과 달리, 이시바는 신중한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 ’천황’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그러한 환경을 먼저 만들어가는 노력이 중요하며, 그것이 총리의 역할이라는 입장이다.15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주목할 첫번째 과제는 오는 10월에 있을 야스쿠니신사 추계예대제에 이시바 총리의 대응일 것이다. 2013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마지막으로, 일본의 현직 총리들은 신사 참배없이 공물을 보내는 정도로 그쳤다. 이시바 시게루가 이러한 기존의 관례를 깰 수 있을지 주목해 볼만한 지점이다.

더욱이 이시바가 결선투표에서 이겼지만, 이번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던 다카이치가 받은 상당 수의 표(당원표 1위, 국회의원표 2위)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16 즉, 당내 지지기반이 강하지 않은 이시바 신총리가 당의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당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오는 10월 27일 중의원선거의 결과는 이시바가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자금 문제로 얽혀있는 구 아베파를 비롯한 많은 자민당내 강경보수 의원들의 당선여부에 따라 자민당 의원과 국회의 구성이 달라진다면, 이시바가 자신의 의지를 보다 발현시킬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2. 정책적 고려사항

이시바 신내각의 출범으로 일본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내 비주류였던 이시바가 자신의 지론을 펼칠 수 있을지, 혹은 기존의 자민당 주류의 입장을 따를지는 지켜볼만한 지점이다. 예를 들어, 이시바 총리는 이례적으로 총리로 취임하기도 전인 9월 30일 총리의 권한인 해산권에 기반하여 10월 27일 중의원 선거를 발표했고, 당내 주요 4개 직위를 포함한 내각 구성도 발표했다. 이는 지난 선거 기간 이시바가 주장해 왔던 부분과는 배치된다. 당시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대신이 가장 빠른 시기에 중의원 해산을 언급했던 것과 달리, 이시바는 예산심의회 등을 거치며 여야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민들에게 판단할 수 있는 요소들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총리 취임 직후 지지율이 높을 때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당내 주류 의견에 따라 입장을 바꾸었고, 일본의 야당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17 이처럼 출범 초기이지만, 기존 발언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모습은 총리 개인의 의지와 당 주류의 의견 차이 속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노정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바 내각의 출범은 한국에게 많은 기회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도 이시바 총리 본인의 역사문제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 접점을 갖는 부분이 많고, 이시바 총리 주변에 포진되는 인물들 중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이와야 외무대신, 나카타니 방위대신을 비롯하여, 결선에서 이시바를 지지한 스가 전 총리(일한의원연맹 회장), 스가 전 총리와 함께하는 다케다 료타(일한의원연맹 간사장) 등이 있고,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시다 전 총리 또한 한일관계를 자신의 임기 중 성과 중 하나로 내세운만큼 현재의 한일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노력을 지지해 나갈 것이며, 이시바 또한 기존의 기시다 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우리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시바 내각과의 한일관계 구축은 논리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정책적 접근, 즉, 정공법(正攻法)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시바 총리는 본인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하며, 특히 국방 및 안보 분야에 있어 탄탄한 기반을 다져온 인물이다. 또한, 깊은 논의와 정책적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논리성과 합리성에 기반해 피력하는 정론가(正論家)이기도 하다.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지 않은 이유로 관계 형성이 서툰 점 등이 지목되는데, 이시바 본인은 인맥이나, 친분관계 등에 연연하지 않고, 정책적인 이해와 지향점이 같다면 함께 행동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친분을 만드는 시간보다 공부를 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들은 일견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대하기 어려운 상대일 수 있다. 상당한 지식에 기반하여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과 신념에 기반하여 입장을 굽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여,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차원의 납득, 설득, 이해의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며, 과거사 문제나 한일간 현안에 있어 일본의 적극적 자세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우리의 논리를 정교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우리가 기대하는 역사문제의 진전을 위해서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이 해 온 노력에 호응하도록 촉구해야 함과 동시에, 그것이 일본에게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 앞으로의 한일관계 발전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등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국내여론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강한 의지로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게 있어서도 현재의 모멘텀은 한일관계 발전의 중요한 기회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일본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성의있는 호응을 해야 한다. 다만,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갖기 보다는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합의한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의 고위급 관료를 보내도록 요구하고, 지난 해 G7 히로시마 정상회의 개최 계기, 기시다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이 함께 참배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참배를 지속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하나 쌓여 기반이 마련될 때 비로소 내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에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잇는 ‘윤석열-이시바 공동선언’을 제창하고, 그 안에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와 방향성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안보분야에서의 급격한 진전에 대해서는 한국의 우려와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과거사문제에 대한 진전없이 안보분야에서의 급진적인 협력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한국 또한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 역내 평화와 안정과 북한문제 대응을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일본과의 안보대화의 필요성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는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고, 소위, 방위비 증대, 군사력 강화가 곧 ‘군사대국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더욱이 역사문제에 대한 진전 혹은 전향적인 변화없이 일본과의 안보협력에 대한 논의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집단안보체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만하다. 당장의 실현은 어렵겠지만, 비전을 공유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함께 발전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선 이시바 총리가 추구하는 집단안보체제가 무엇인지 우선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간 이시바 총리가 주장해 온 집단안보체제는 이상적인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도, 유럽의 NATO와 다르게 동북아 지역에 집단안보체제가 없는 것은, 한국, 일본,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주요국들의 정치체제가 다르고, 상대국에 대한 위협인식이 동일하지 않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특히, 한국에게 있어 핵을 가진 북한은 경계하고, 위협에 대응해야 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한민족으로서 통일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즉, 북한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이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안보 측면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어떻게 집단안보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장기적 관점에서 상호 이해를 높이고, 우리의 대북정책과 지역구상, 그리고 일본의 대북정책과 지역구상의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국이 직면하고 있는 북핵문제, 일본 납치 피해자문제를 포함한 인권문제 등에 대한 해결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재해재난, 지방소멸 문제 등 양국 공통과제에 대해, 총리 개인의 관심이 많은 점 등을 십분 활용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시바는 선거 공약 중 하나로 방재성(防災省)을 만들 것을 약속하였다.18 지진, 홍수 등 일본에 빈번한 재난 문제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 또한 지진과 홍수 등의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은 바, 이에 대한 한일간 협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진 대비 등 일본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 것이며, 일본의 J-alert 오류 등의 문제에 대해 한국과의 기술협력 등을 통해 해결하고, 양국간 기상정보 공유 및 제휴 시스템 구축 등 한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이 공통으로 갖는 지방소멸/지방창생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시바는 인구 55만명, 일본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돗토리현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지방 창생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선거 기간에 이러한 부분을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지방도시의 농업, 어업, 서비스업 등 경제활동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지방 유입 등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도 표명하였다. 한국도 심각한 지방소멸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함께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일 청년들의 상대국 지방에서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 코로나19 이후 활성화된 원거리 국제협력 근무 등을 확대하여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직종의 경우, 상대국 체류 시 필요한 비자 혹은 자격 조건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방법 등을 제안해 볼 수 있다. 차기 한일정상회담 개최 시, 철도매니아로도 알려진 이시바 총리가 한국의 KTX를 타고 한국의 지방을 방문하여 양국 지방활성화에 머리를 맞대는 모습도 기대해 봄 직하다.

둘째, 기시다 전 총리와의 네트워크를 지속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기시다 총리가 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고 한국을 방문(9.6-9.7)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기시다는 한국에게는 한일 관계에서 소중한 정치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퇴임 전까지의 기시다 총리의 행보를 살펴보면, 한국 및 미국 방문 등 외교일정을 소화했는데, 이 과정에 한일관계 개선과 QUAD(미국-일본-인도-호주)의 협력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외교분야에 있어서 주요 국가들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재확인하고, 진전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비록 기시다가 총리로서의 임기는 끝났지만, 자민당 내 유력 정치인으로서 한일관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현재로서는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의 정치체제 상, 다시 총리로 재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이시바가 총재가 되는데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며, 향후 당내 입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아소 다로 부총재가 지지했던 다카이치가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스가 전 총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으나, 두 사람 다 상당한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자민당 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로서 기시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이시바 신내각에서 기존 기시다파의 2인자로 불리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이 유임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시다 총리를 비롯하여 기존에 기시다 내각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인물들과의 관계를 지속 관리 및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중장기적 차원의 의원외교 활성화 및 유력 정치인들과의 융합 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 기간 출사표를 던진 9명의 후보 중,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후보를 찾기는 어려웠다. 특히, 선거 후반부 3파전으로 좁혀지며 주목받은 이시바 시게루, 다카이치 사나에, 고이즈미 신지로 중 누가 되는가에 따라 한일관계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 전망이 우세했다. 그나마 이시바 시게루는 과거 한일관계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는 했지만, 의원표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아 당선가능성은 낮게 여겨졌다. 결선에서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실제로 1차 투표에서 의원표는 46표에 불과했다. 반면, 선거기간 초반에 우세했던 고이즈미 신지로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인 다카이치 사나에의 경우,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고,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 혹은 언급도 수십년 전의 발언에 불과했다. 더욱이 이번 자민당 선거에서 한일관계가 크게 이슈화되지 않으면서 한국과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어려웠고, 따라서 누가 당선되는가에 따라 한일관계 변화에 대한 우려도 높아졌다. 특히, 다카이치 사나에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 발언은 한국의 우려를 사기에 충분했다. 정권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일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을 지향하면서도, 여전히 한일관계는 리더십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불안정성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제도와 구조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외교이고, 이 과정에서 정책결정자의 인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적 상흔이 깊은 한일관계에 대한 이해는 특히나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였으나, 다음 선거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들 및 주요 정책결정가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3파전을 벌였던 다카이치 사나에, 고이즈미 신지로를 포함하여 4위에 올랐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5위에 올랐던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 전 경제안보담당대신 등과의 지속적인 교류도 필요 해 보인다.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대신은 30,40대 젊은 의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고, 여전히 젊은 정치인들의 기대주로 불린다. 고바야시는 첫번째 총재선거 출마에서 9명 중 5위를 차지하며 상당히 선전했고, 패배 이후, 다음 총재선거에도 도전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19 나아가 정치인 및 정부 당국간 대화뿐만 아니라, 민관 및 민간 차원에서의 대화도 촉진해야 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상대국을 연구하는 전문가 감소가 심각한 상황이다. 전문가의 감소는 상대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이는 건전한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오피니언 리더이자, 정부와 민간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30,40 한일안보전문가 양성프로그램, 한일전문가포럼, 한일 외교안보 연구기관 컨소시엄 등을 통해 지속적인 교류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깊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새로운 정권이 출범했고, 한일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리고 비교적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신중한 이시바 신총리의 등장으로 한일관계의 불안요소는 줄어들고, 현재의 개선 무드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의 당내 약한 지지 기반, 역사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존재함을 고려할 때, 이시바 총리가 한국이 기대하는 수준까지 진전된 수준을 보일 것이라는 등 기대감을 높게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별첨. 2024 자민당 총재선거 결과 분석 – ‘비주류’ 이시바의 총재 선출 요인

8월 14일,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정치자금문제에 대한 책임으로 차기 자민당 총재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자민당 총재선거는 이례적으로 많은 후보가 난립하며 혼전의 양상을 보였다. 출마의향을 표명한 의원이 12명에 달했고, 추천인 20명을 모은 역대 최다20 최종 9명이 입후보했다. 그리고 9월 11일 선거 고시 이후 15일간 이어진 선거운동을 거쳐 9월 27일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전 간사장이 당선되었다.

이시바 시게루는 차기 총리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1위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내 국회의원들로부터 지지가 높지 않아 당선가능성은 희박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마지막날까지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혼전 속에서 1차 투표까지 3파전을 벌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대신의 준비 및 경험 부족, 결선투표까지 접전을 벌였던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 담당대신의 강경노선에21 대한 당내 불안감이 가중되며 역전승을 거두었다. 특히, 1차 투표에서 368표 중, 46표에 불과했던 의원표를(1위. 다카이치 사나에 72표, 3위. 고이즈미 신지로 75표)를 결선투표에서 189표까지 끌어 모으며(2위. 다카이치 사나에 173표)로 승리했다.22 이와 같은 투표결과는 국회의원들의 상당 수가 이시바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동의에 기반하여 선택하였다기 보다 다카이치의 강경보수 노선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차선책, 소극적 지지, 안정감을 택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선거에서는 당초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가 당원 표에서는 1위를 할 것이라는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1표 차이로 다카이치 사나에가 당원 표 1위를 했고(109표), 가장 많은 국회의원들의 표를(75표) 얻은 고이즈미 신지로는 3위에 머물렀다(표1 참조). 이시바 시게루는 국회의원 표는 46표를 얻어 1위를 했지만, 높은 당원표로 2위로 결선에 진출해 역전승을 거두었다(표2 참조). 이시바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표1. 2024 자민당 총재선거 결과 (1차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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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2024 자민당 총재선거 결과 (결선 투표)

표2

■ 준비부족 고이즈미와 강성보수 다카이치에 대한 불안감 가중에서 이어진 ‘소극적 지지’

당초 이시바는 총재선거에 나오긴 위한 추천인 20명을 모을 수 있을지도 의문시되었다. 대만 방문 기간 중, 총재선거에 나갈 의향을 표명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추천인 20명이 있다면”23 이라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의 높은 지지는 이시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였다.

한편, 1차 투표에서 의원표를 가장 많이 획득한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대신은 9명의 후보자 중 가장 젊은 나이(43세)로 출마하며, 초반부 높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세대교체, 쇄신, 변화, 결착의 바람을 일으키며 큰 상승세를 탔다. 하지만 선거기간 동안 이어진 수많은 토론회에서 경험 및 준비 부족이 드러나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특히, 외교, 안보, 경제 등 제 분야에서 준비가 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는 모습, 본인이 내세운 노동시장개혁, 선택적부부별성제 등 개혁정책에 대한 부정적 효과와 비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거듭되며, 고이즈미의 발언은 힘을 잃어갔다. 토론회가 거듭될수록 하락하는 지지율은 이러한 불안감을 보여준다.24 뿐만 아니라, 무파벌, 젊은 세대를 강조했지만, 스가 전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원로 의원들과 다케다 료타(武田良太)25, 노다 세이코(野田聖子)26 등 중진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나선 모습은 기존 자민당의 구태의연한 방식을 그대로 노정시키며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었다. 특히, 정치자금문제로 탈당했으나, 구(旧) 아베파 및 참의원들에게 영향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세코 히로시게 (世耕弘成) 의원을 찾아 지지를 호소한 것은 적지 않은 비판을27 받았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대신은 당초 입후보에 필요한 추천인 20명을 모으는 것도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으나, 토론회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했다. 경제안보담당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지적재산전략, 과학기술정책, 우주정책, 경제안보), 총무대신 등의 경력을 쌓으며 다져온 풍부한 경험과 깊은 지식, 그리고 명확한 정책노선은 신뢰감을 주었다. 더욱이 과거 방송 캐스터를 했던 경력이 있던 만큼 화려한 언변으로 각 토론회에서 9명의 후보 각각에게 주어지는 짧은 발언 시간 내 핵심을 간파해 명확한 주장을 내세우는 모습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비록 정책리플렛 사건으로28 당원표가 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2021년 입후보했던 총재선거에서도 다카이치는 아베신조 (安倍晋三)전 총리의 지지를 넘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29 그러나 자민당 내에서도 강성보수로 분류되는 다카이치의 노선은 점차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특히,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력하게 견지하는 모습은 국제정세 불안 속 중국,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 한미일 협력 제동 등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 이시바였다. 마지막 도전을 내세운 이시바는 4번의 총재선거에서의 실패 경험이 있었던 만큼 노련했고, 신중했다.  국방, 안보, 지방창생 등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자민당 총재, 그리고 신임총리로서 이루고 싶은 점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강경하지 않았다. 고이즈미가 내세운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사회적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논의와 설득, 사회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렸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재와 오랜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30 알려져 있지만, 투표 전날 아소를 찾아 인사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고, 기시다 총리의 노선을 계승할 것을 알리며, 그 때까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던 기시다의 지지를 이끌었다.

■ 정치자금 문제와 자민당의 위기 속 향후 중/참의원 선거를 위한 전략적 선택

지난 해 12월 이후 지속된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자민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자민당에 대한 신뢰 및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곧 치러질 중의원 선거,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던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가운데 고이즈미의 쇄신감은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경험 및 능력 부족이 드러나면서 믿고 맡기기 불안하다는 여론이 커지는 한편,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의원구성과 다카이치 본인의 강성보수 노선은 불안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다카이치의 경우, 총재선거에 출마하는데 필요한 추천인 20명 중 13명이 정치자금 문제에 연루된 의원들이었고, 다카이치 또한 이들을 공천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 온 점은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카이치의 강성보수 노선은 자민당 내에서도 온건보수 및 중도, 특히, 선거에서 무당파를 흡수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차기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정치자금 문제에 연루된 의원들이 공천을 받아 전면에 등장하고, 강성보수 성향이 더욱 선명해질 경우, 선거에서 중도층을 흡수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반면, 이시바의 경우, 입헌민주당의 새로운 당대표로 취임한 노다 전 총리와 중도 노선을 취하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접점이 많고, 입헌민주당과의 정책대결에서도 경쟁력을 지닌다.
결국 자민당 총재선거 이후 있을 중의원, 참의원 선거를 생각하면, ‘선거의 얼굴’이 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 파벌 해산 속 건재한 중견의원들의 영향력, 그리고 캐스팅보트가 된 기시다 총리 

정치자금 문제 이후 아소파를 제외한 모든 파벌이 해산하며, 이번 선거에서 적어도 표면상 파벌정치가 작동하기는 어려웠다. 과거 파벌 단위로 투표가 이루어지던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책적 성향 혹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부모임, 연구그룹 등 다양한 형태와 이름의 그룹들이 생겨났다. 형식적인 파벌은 사라졌지만, 전적으로 의원 개인의 판단만으로 투표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15일간의 선거기간 동안 9명의 후보에서 ‘이시바 vs 다카이치 vs 고이즈미’의 3파전으로 좁혀졌고, 결선투표에 갈 가능성은 높은 3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이시바 vs 다카이치’ 혹은 ‘이시바 vs 고이즈미’의 시나리오가 크게 부상했다. 그리고 국회의원표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는 결선투표에서 유일하게 해체하지 않은 아소파(54명)의 움직임이 주목되었고, 아소파의 수장인 아소 부총재의 선택에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이시바 vs다카이치’가 될 경우, 이시바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아소가 이시바를 지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이시바를 지지하는 스가와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아소의 경쟁구도가 될 것으로 여겨져다. 여기에 캐스팅 보트가 된 것이 기시다였다. 실제로 아소는 투표일 전날(9.26) 다카이치를 지지할 의향을 표명했고, 아소파 의원들의 상당 수가 다카이치를 지지할 것으로 여겨졌다.31 사실상 ‘스가 vs 아소’의 경쟁구도가 된 상황에서 캐스팅보트가 된 건 기시다였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 직전까지도 외교일정을 소화하며 특정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는데, 투표 당일 오전 “다카이치의 정책과 맞지 않으며, 당원표가 많은 후보를 지지”할 의향을 표명했다.32 이는 사실상 당시 당원 표 1위로 예상되던 이시바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다. 그리고 파벌은 해체되었지만, 결속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기시다파 의원들의 상당수가 이시바를 지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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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