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7일 미국의 이란 제재가 부활했다. 이란과 주요 6개국 대표들이 2년간 수차례 만나 언성을 높이고 머리를 싸맨 끝에 체결한 핵협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하면서다. 이달 시작된 제재는 1단계로 이란의 달러 매입, 자동차·비행기 부품 거래 등을 금지한다. 유가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11월에 시작될 2단계 제재가 이란산 원유 거래를 금지하고 금융·에너지 분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재개 당일 트위터에서 “이란과 사업하는 어느 누구도 미국과 사업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확인했지만 미국은 다자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인 대선공약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유엔은 회원국에 이란 핵협정 지지를 요청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과 EU는 이란에 유럽 대기업의 철수에 따른 손실 보상을 약속했다. 이란과 거래를 이어가는 유럽 중소기업은 지원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와 동맹국의 반대에 아랑곳없다. 더 중요한 건 국내 지지세력의 만족이다. 러시아 게이트 의혹은 커져가고 성추문과 불법 선거자금 스캔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백인 복음주의자 지지층의 결집이 절실하기도 하다. 의회의 견제가 덜한 대외정책 분야는 충성파 유권자를 만족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다. 5월에 단행한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도 같은 맥락이다. 핵협정 탈퇴 이후 구체적 대안은 없다. 제재 부활로 이란을 압박한 후 새로운 협상 테이블로 불러온다는 단순 메시지뿐이다.
이란의 실세 강경파는 거세게 반발했다. 미국의 핵협정 탈퇴에 맞서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전쟁 불사를 선언했다. 미국의 동맹 아랍 산유국들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야만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 7월 말 예멘 내전에서 이란이 후원하는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달 중순 강경파의 군사조직 이란혁명수비대는 대규모 해상훈련을 벌이며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하지만 강경파의 위협은 시위에 그칠 것이다. 국내 지지층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민생고 항의 시위에 성직자 통치체제의 핵심 지지세력인 지방 보수층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파탄을 부정부패가 부른 인재로 본다. 구호도 전례 없이 이슬람공화국 체제 자체를 겨냥한다. “하메네이는 물러나라, 팔레비가 그립다” “트럼프가 아니라 성직자 체제가 문제다”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가 아닌 국내 민생을 챙겨라” 등 최고종교지도자와 강경파를 직접 공격하고 있다. 리알화 가치는 70% 이상 떨어졌고 생필품 가격은 50% 이상 올랐다. 청년 실업률은 40%에 달하고 물·전기 부족으로 전국이 아우성이다. 악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지방 보수층의 반체제 시위는 강경파에게 압박이다. 이란처럼 제한적이나마 선거가 이뤄지는 나라에서 체제 수호세력은 유권자와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독재체제에는 없는 제약이다. 지난주 최고종교지도자 하메네이는 부패 공무원과 은행 간부 60여 명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강경파는 핵합의를 성사시킨 온건파 정부에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책임을 추궁했고 저항경제로 돌아가 단속을 강화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1979년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슬람혁명 이래 최대 규모의 반체제 시위를 달래기엔 어림없어 보인다. 물론 유혈진압 옵션은 재협상보다 비용이 훨씬 높아졌다.
이란에 진출한 유럽, 일본의 여러 기업들처럼 우리 기업도 손해를 보고 있다. 대기업은 물론 2500여 중소기업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2012년 이란 제재 당시처럼 예외국 인정과 원화결제계좌 확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중국은 느긋하게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을 비난하고 있다. 과거 제재 시기 중국은 값싼 이란산 원유와 여러 사업권을 독점할 수 있었다. 이번엔 다자주의 수호라는 명분까지 얻을 것이다. 물론 국내 유권자의 압박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은 제재를 시장논리와 자유의지에 반하는 무능한 행위로 봤다. 2018년 미국발 이란 독자 제재를 정확히 짚어주는 말이다.
* 본 글은 8월 27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