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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의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는 외교적 승리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처럼 보인다. 일본은 이미 딴소리를 하고 있고 다시 우리 정부는 이를 반박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극적인 반전 속에 내려진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또 다른 극적인 반전 속에서 이루어진 조건부 연장에 이어 다시 한 번 새로운 반전이 찾아올까 두렵다. 외교를 이렇게 해선 안 된다.

흔히 미국이나 중국의 외교를 항공모함 같다고 표현한다.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한 번 바꾸면 일관되게 방향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강대국 외교의 특징이다. 반면 우리의 외교는 어떠한가. 항공모함은 차치하더라도 구축함이라도 되어야 하는데, 마치 고속정과 같은 외교를 하고 있다. 이번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처럼 툭하면 외교정책이 180도 바뀌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외교정책이 자주 바뀌면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정책의 추진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예산을 투입해서 바로 성과가 나오는 일부 국내정책의 영역과 달리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상대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면 문제가 바로 풀리겠지만, 억지를 부리며 버티게 되면 단기간에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러다보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추진력이 떨어지게 된다.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어떠한 약속을 할 경우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입장이 자꾸 바뀌면 상대는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드 추가 배치 반대, 미국 미사일 방어 가입 반대, 한미일 안보동맹 발전 반대’라는 사드 3불(不)을 약속한 정부의 입장은 그것을 원했던 중국으로부터도, 그리고 허탈하게 지켜봤을 미국으로부터도 모두 신뢰를 잃게 되는 행동이었다.

또한 인재들을 잃게 된다. 비단 외교정책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 정책에는 담당자가 존재한다. 중요한 업무일수록 유능한 인재를 배치하게 된다. 외교에서는 북핵과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만큼, 가장 유능한 외교관들이 그 일을 맡는다. 그런데 정책이 갑자기 바뀌면 이들에게 책임이 따른다. 본의 아니게 이들은 외교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 따라 무능하거나 일을 잘못한 외교관이 되고 핵심 부서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 결과 인재들만 줄줄이 잃게 되는 비극을 낳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항공모함 같은 외교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중한 의사결정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부처의 입장을 경청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의사결정 과정에서 왜곡이 생기지 않고 국익을 반영한 외교정책이 만들어진다. 지난 8월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이러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청와대 주도로 갑자기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한미관계만 악화되고 우리의 체면만 손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단 외교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이 내려졌다면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외교는 국익을 다루는 전문 영역이다. 국내정치적 인기에 영합할 경우 국익이 손상될 수 있다. 여론조사로 방향을 정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외교정책과 관련한 여론조사가 남발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미북 정상회담을 하면 정부 지지도를 조사한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과정에서도 여론조사를 했다고 청와대가 스스로 밝혔다. 이런 외교는 포퓰리즘을 낳는다.

언로를 열어 전문가 층을 두껍게 쌓으며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유력 연구기관은 대부분 국가가 예산을 대는 국책기관이다. 정부 정책에 반하는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이들에게 발언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전문가 층이 쌓인다.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말을 바꾸는 일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작년 한 동안 적지 않은 국내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행보는 다른 방향을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지 아니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전문가는 드물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은 우리 외교에 켜진 적색등이다.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하고는 겨우 주워 담더니 이를 성과라고 포장하는 모습으로는 외교 백년대계를 구상할 수 없다. 작금의 실수를 처절히 반성하고 하나라도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 말로 항공모함과 같은 외교의 길로 나가는 작은 변화가 될 것이다.

 

* 본 글은 12월 02일자 디지털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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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