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동남아시아 혹은 ‘아세안 지역’이라 흔히 칭해지는 지역이 가진 대외정책은 시간이 갈수록, 특히 현재 미중 경쟁 속에서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 강대국 경쟁에서 동남아/아세안 지역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미국과 중국의 전략이 1차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멀게는 201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미중 전략 경쟁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강화를 우선적 목표로 생각했다.1 동남아 지역에서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던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미중 경쟁에서 동남아가 핵심적 충돌지점(flash point) 혹은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평가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2

동남아의 대외정책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과제다. 미중 경쟁이란 환경 속에 함께 놓인 전략적 파트너로 아세안은 한국에게 중요하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은 다양한 지역협력체에 동남아 국가들과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더 가깝게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중요한 대외전략 중 하나인 신남방정책(New Southern Policy, NSP)은 동남아 지역과 인도를 대상으로 하며, 동남아 지역에 훨씬 더 많은 자원을 할애하고 있다. 단순히 정부의 대외정책 노선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 아세안 지역은 한국의 두 번째로 중요한 무역 상대, 투자처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 사이 인적 교류는 이미 연간 1천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한국의 이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3

한국과 아세안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화하고 지역 전략 경쟁 속 공동의 전략 모색을 위해 아세안 대외정책의 장기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세안이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대외관계의 특성 뿐만 아니라 아세안을 구성하는 10개의 서로 다른 국가들, 이들이 보여주는 엄청난 국내적, 대외정책적 특성은 아세안/동남아의 대외전략의 특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개별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다양한 행동 양태와 전략이 존재하고 그 위에 아세안 차원의 공동 대응이라는 변수가 겹쳐지면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국내에서 동남아 국가 혹은 집합적으로 아세안의 대외정책의 큰 그림과 특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파악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아세안의 대응이 가지는 특성을 냉전시기부터 꾸준히 아세안이 견지해온 전략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할 때 미중 경쟁의 전략 환경 속에서 한국과 아세안의 의미 있는 협력도 가능하다.

아세안 혹은 동남아 지역 대외정책의 복잡한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 짧은 글로는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아세안과 동남아 국가들의 대외정책 행동 양태를 조금이나마 파악해 보려 한다. 최대한 포괄적인 틀에서 동남아 국가들을 묶어 내고 이를 단편적인 시간의 맥락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행동의 특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려 한다. 다소 거칠고 단순화된 지도라도 지도가 아예 없는 것 보다는 길 찾기에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 의미를 두고 여기서는 동남아의 대외정책 특성을 냉전기(1945~1990), 탈냉전기(1990~2000년대 말), 미중 경쟁기(2010년대~현재)로 나누어 큰 흐름을 각 시기별로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정리한다.

 

냉전기: 생존과 이익을 위해 전선을 넘나드는 유연성

 
냉전기 동남아 국가의 대외 전략은 신생국가로서 취약성을 반영한 생존 의지와 이를 위한 국가 이익 극대화 요구를 반영한다. 냉전이라는 지역 질서 속에서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혹은 자유주의 진영에 속해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진영을 넘나들면서, 그리고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 NAM) 등 제 3지대를 통해 협상력(leverage) 극대화를 추구했다. 약소국으로 어느 한 진영에만 머무를 경우 자신의 대외적 협상력이 줄어든다는 인식 하에 냉전을 지배하던 강대국을 상대로 유연한 대외정책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태국을 제외한 모든 동남아 국가들은 식민지배를 경험했다. 이 국가들이 식민지배를 마치고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를 건설한 시기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이다. 호치민(Ho Chi Minh)이 이끄는 북베트남은 1945년에 독립을 선포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1945년에 독립을 선포했으나 1949년까지 4년간의 독립 전쟁을 겪었다. 필리핀은 1946년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넘겨 받았다. 미얀마도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등도 1950~60년대에 걸쳐 식민통치를 종식하고 주권국가가 되었다. 다시 말해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냉전 속에서 태어났고, 독립, 국민국가(nation-state) 건설과 함께 곧 바로 냉전의 전략 환경 속으로 편입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 냉전 전선은 공산화 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와 자유진영의 태국을 가르는 국경선에 따라 형성되었다. 서쪽에서는 1962년 버마식 사회주의를 선포하며 대외적 고립에 들어간 군부 체제하의 버마와 태국을 가르는 국경선을 따라서 동쪽의 냉전 전선과는 다소 다른 성격의 냉전 전선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태국의 국경은 일종의 동남아의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역할을 했다. 태국 국경선을 중심으로 대륙쪽으로는 공산주의 정권과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고립주의 정권이, 태국 국경선 이남에는 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그리고 1966년 수하르토(Suharto) 집권 이후 인도네시아로 구성된 반공블록이 형성되었다.4

이 시기 동남아시아의 전략 환경을 형성한 기본적인 원칙은 반공블록과 공산블록 모두에서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 체제’라는 단어로 요약된다.5 반공블록 안에서는 미국이, 공산블록 안에서는 소련과 중국이 허브를 형성하고, 동맹 국가는 물론이고 각 블록 진영에 속한 국가들은 이 허브에 연결된 스포크 국가들이다.6 이런 구조에서 허브는 스포크 국가들에게 안보와 경제적 지원이라는 공공재를 공급해 경쟁하는 체제에 대해 자신의 진영을 공고히 한다. 당연히 반공블록에 속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은 이 구조 속에서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을 약속 받는다. 반대로 공산블록에서는 소련이 베트남을, 중국이 간접적으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Khmer Rouge)를 정치, 안보적으로 후원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많이 간과된 부분으로 냉전 구조는 각 블록 국가들의 경제적 안정과 성장도 책임진다. 반공블록에 속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의 냉전 중 경제성장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후원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비교적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 국가들은 반공블록에 포함된 결과로 초기에는 안정적 자원 판매처를 확보하고 여기서 벌어들인 외화를 통해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할 수 있었다.7 이후 본격적인 수출지향산업화(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단계에서는 허브 국가, 즉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고, 이를 기반으로 초기 산업화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안보적으로, 경제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이 냉전블록의 어느 한편에 속하고 여기서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이 냉전블록 속에 안주해 그 안에서 최대의 이익을 누렸다는 것으로 냉전 기간 동남아 국가들의 대외전략이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일견 뚜렷하게 구분되는 냉전블록 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동남아 국가들은 다른 한편 부지런히 냉전 전선을 넘나들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에 대해서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두 냉전 강대국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전선을 넘나드는 전략도 함께 구사했다. 블록에 안주하는 약소국은 전략적 중요성을 상실할 수 있으나, 동남아 국가들은 강대국의 대립과 이들 사이 세력균형의 틈바구니에서 최대한의 협상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유연하게 이익과 자율성을 추구하려는 전략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미소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은 각 진영에 속한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원뿐만 아니라 양보가 불가피 했다. 자유진영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공산/사회주의진영의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는 비동맹운동의 대표적인 국가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수카르노(Sukarno, 1949-1965 집권) 시기 비동맹운동 주도 국가였고 이런 전통은 인도네시아가 명확하게 반공블록 안에 포함된 수하르토 시기에도 지속되었다. 동남아 국가의 비동맹 노선 채택, 비동맹운동 참여는 각 블록의 맹주,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일이었지만, 반공블록 동남아 국가들의 이탈 혹은 반공블록의 이완을 우려한 미국 입장에서 이런 국가들의 행동을 막을 뚜렷한 방안은 없었다.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해 베트남이 통일되고 베트남 전역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이후 반공블록 국가들로 구성된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은 공산화된 베트남에 전후 재건에 대한 지원을 제안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공산화된 베트남이 가져올 안보 위협을 관리하고자 공산 베트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베트남에 전후 재건을 지원한 것이다. 명확히 반공/공산블록으로 구분된 냉전 질서 속에서 반공블록 국가들의 공산블록 국가, 그것도 미국이 공산화를 막기 위해 개입했던 베트남에 전후 재건을 지원한 것은 냉전의 논리로 설명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국가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안보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냉전선을 넘나드는 대외정책을 추구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은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선포한다.8 미국이 아시아 국가의 경제적 지원은 계속하겠지만 핵전쟁 외의 안보 문제는 아시아국가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닉슨 독트린의 핵심내용이다. 이후 미국은 중국과의 핑퐁 외교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닉슨 독트린은 많은 반공블록 내 아시아 국가들에게 안보 불안을 가져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의 정책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취한다. 말레이시아(1974년 수교)와 태국(1975년 수교)은 다른 어느 아시아 국가들 보다 먼저 중국과 국교 수교에 나선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공산주의에 접한 제1 전선이고 말레이시아는 태국 바로 다음의 두 번째 전선이었다. 태국은 미국의 동맹국가이고, 말레이시아는 1948년부터 1960년까지 국내 공산주의 소탕을 위한 비상조치를 실시했던 국가로 동남아에서 가장 반공에 앞장선 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미국의 냉전전략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중국이 가져오는 안보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어느 국가보다 빨리 중국과 공식 국교를 수립할 정도로 대외정책의 유연성을 보였다.9

 

탈냉전기: 힘의 공백을 메우려는 야심찬 다자질서 주도 노력

 
탈냉전기 동남아의 대외정책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1990년대 탈냉전의 상황은 익숙했던 냉전 질서의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 소련이 사라진 힘의 공백이란 상황을 초래했다. 탈냉전기 동남아 대외정책의 특성은 동남아 지역에서 힘의 공백과 이를 메우기 위한 다자제도의 창설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된다. 물론 여기에서도 동남아 국가들의 대외정책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방향은 냉전기에 보인 것처럼 원칙이나 가치라기보다는 비교적 약소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동남아 국가들의 이익과 생존을 위한 실용적인 대외정책이다.

갑작스럽게 냉전이 끝나며 동남아 지역은 예상치 못했던 힘의 공백을 겪게 된다. 소련이라는 변수는 공산블록 국가에게는 후원과 지원이 나오는 최종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국가였고, 반공블록 국가에게는 가장 최종적인 안보 위협이었다. 소련이라는 국가가 붕괴되고, 지역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변수가 사라졌다. 냉전시기 익숙했던 미소 대립, 보다 결정적으로 미소 힘의 균형이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중국이라는 공산블록의 큰 국가는 존재했지만, 1971년 미국과 중국 사이 데탕트(detente) 이후, 그리고 동남아 몇몇 국가가 중국과 국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무엇보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그리고 1980년대 동남아 공산주의 수출 포기 선언 이후 중국이라는 안보 위협의 성격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10 가장 중요하게는 냉전이 종식된 시점에서 중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동남아 지역에서 소련을 대체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미국 역시 동남아에서 재빠르게 발을 뺐다. 지리적 거리를 감안하고 냉전기간 미국이 담당해야 했던 군사적, 경제적 부담을 생각해보면 거의 미국의 대척점(antipodes)에 놓인 동남아에 군사적으로 전략적으로 더 이상 관여해야 할 필요성이 냉전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1992년 필리핀 수빅 만(Subic Bay)에서 미국 해군기지 철수는 미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전략적으로 철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1 필리핀 상원은 미국과 기지사용료 협상에서 보다 많은 보상을 요구했다. 필리핀은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면 미군 기지의 철수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필리핀의 경제적 보상의 큰 폭 인상 요구를 들어줄 만큼 필리핀에 대한 미군의 주둔이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미국의 대동남아 군사적 관여의 상징인 필리핀 주둔 미군의 철수가 일어났다.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과거와 같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안보 위협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태가 동남아 국가들이 아무런 안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동남아 안보 문제를 다룰 방법이 필요했고, 동남아 국가들은 아세안이 주도하는 다자협력의 제도를 통해서 안보 문제는 물론이고 경제적인 문제까지 관리하려는 시도를 했다. 냉전의 붕괴로 힘의 공백이 생긴 동남아 지역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이 문제를 다자협력 제도를 통해서 메우려고 했고,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점까지는 탈냉전 상황에서 이런 다자협력 제도들이 동남아 대외정책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런 의도 하에 안보 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이다. 1994년 아세안 주도로 만들어진 ARF는 지역의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포럼으로 미국과 중국은 물론 지역의 주요 국가들을 모두 포함했다. ARF는 지역의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구는 아니었다. 창설의 목적으로 제시된 세 가지 사항을 보면 첫째로 지역 국가간 신뢰 구축(confidence building), 둘째로 예방 외교(preventive diplomacy), 그리고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한 방법 모색이 있다.12 직접적인 분쟁이나 안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포럼이 아니라 분쟁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의 장으로 ARF는 고안되었다. 또한 분쟁의 해결이나 안보 문제의 해결 보다는 분쟁, 안보 사안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지역 국가간 신뢰 구축과 예방 외교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아세안은 ARF의 의장국은 항상 아세안 의장국이 맡도록 규정해 아세안이 ARF 의제를 통제하고 의장성명을 작성하는 등 ARF를 아세안 중심으로 끌어 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13

경제협력 분야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시도도 유사한 양상을 띠는데 더욱 복잡한 변수들이 결부되었다. 냉전 시기처럼 강대국들의 후원 하에 경제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안전한 기간이 끝났다는 인식과 냉전을 전후로 펼쳐진 국제 정치경제의 변동이 경제협력 제도 이면에 작용했다. 비록 ARF에 비해 성공적이지 못했고, 제대로 제도화되지는 못했지만 대표적인 제도는 1991년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인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ad)가 제안한 동아시아경제그룹(East Asia Economic Group, EAEG) 구사이다.

마하티르 총리는 미국을 배제하고 아세안 국가,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및 홍콩의 경제협력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냉전에 따른 경제적 힘의 공백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을 활성화하려 1984년부터 논의되던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의 지지부진함과 경제블록의 등장, 특히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Maastricht Treaty)의 가시화로 유럽연합이라는 배타적 경제블록의 등장, 또 북미에서 1992년에 최종 타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NAFTA)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고조된 위기감을 반영했다.14 냉전기간 중 수출에 크게 의존해 성장한 지역 경제 입장에서 냉전의 종식, 최대 수출 시장인 유럽과 북미의 경제블록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미래에 큰 부담이었다. 이런 부담을 지역 자체의 다자 경제협력을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한편 1995년과 1999년 사이 아세안이 기존 6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브루나이)에서 10개국(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가입)으로 늘어나고, 연무(煙霧,haze), 자연재해, 초국가적 범죄, 해적 문제 등 역내 다양한 비전통 안보 문제, 초국가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세안은 지역협력 기구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했다. 이런 돌파구의 모색은 1997년 아세안+3, 즉 아세안 국가에 한국, 중국, 일본의 확대된 지역협력체의 형태로 제안되었다.15 아세안은 아세안+3이라는 동북아와 동남아를 잇는 다자 제도를 제안하면서 아세안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 안보, 경제적 과제를 해결하려 했다. 아세안 내부의 증가하는 내적 모순의 해결을 외부 즉, 한국, 중국, 일본과의 다자협력 모색 및 이들 국가의 물적 지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1997년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비공식 정상회의를 개최한 아세안+3 국가들은 1998년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이 차례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적 다자협력의 형태로 제도화되었다.16 이 협력은 아세안+3라는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2005년에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를 출범시켜, 아세안 10개국, 한중일 3개국과 호주, 뉴질랜드, 인도까지 포함하는 16개국의 다자 협력제도로 확대되었고 이후 이 두 다자 제도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주요한 기제(main vehicle)가 되었다. 요약하면 아세안은 동남아의 자체 협력체인 아세안, 동남아 주도로 만들어진 ARF 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오세아니아를 아우르고 2010년 이후에는 EAS로 미국과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복잡한 다자제도의 건설을 통해 아세안/동남아의 지역 국제관계에서 주도권 확보를 꾀했다.

 

미중 경쟁기: 유사 냉전 구조 속 약소국 헤징 전략의 한계

 
201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미중 전략 경쟁 시기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냉전과 유사한 전략적 환경을 만들어 냈다. 미소의 대립과 미중의 전략 경쟁이 큰 맥락에서는 유사한 전략적 환경을 만들어 낸다. 한편 과거 미소의 대립이 거의 완벽히 분리된 서로 다른 두 개의 블록으로 이루어진 구조라면, 미중 대립은 미국과 중국 사이 탈동조화(decoupling) 시도와 함께 두 강대국 진영이 서로 무수히 많은 접점에서 만나고 있는 구조다. 동남아 국가들은 과거 단절된 미소 냉전 블록 구조에서도 진영을 넘나드는 전략을 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유연한 대외정책은 동남아의 전통이다. 현재 미중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 사이 선택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지만 동시에 미, 중 모두와 관여하는 정책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화 하려 한다. 미중 경쟁이 과거 미소 경쟁과 달리 상호 접점이 많은 상황이라면 동남아 국가들은 이런 헤징(hedging) 전략을 채택하려는 유혹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1990년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은 2010년대 초까지 거의 20년간 동남아에서 전략적으로 철수한 상황이었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무슬림 인구가 많은 동남아를 테러와의 전쟁에서 제2 전선으로 선포하고 다시 관여하려 했던 시기도 있지만, 이런 시도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17 미국이 동남아에서 부재한 사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남아 국가들은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다자협력으로 지역에서 아세안의 역할 확대, 동남아 국가들의 안보적, 경제적 이익 확보를 추구했다. 미국의 부재는 중국에게도 기회가 되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부재했던 20여년 간 중국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특히 중국은 아세안 중심의 다자제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아세안 국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강대국의 명시적 대립, 경쟁 상황이 부재한 1990년대 이후 상황은 20년만에 막을 내린다. 미중 경쟁의 시기가 2000년대 말, 2010년대 초 시작되었다. 중국은 성장한 경제력, 그리고 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건설된 군사력을 동원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렇게 확장된 경제력과 군사력이 명시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안보 위협으로 다가온 것은 2008년 UN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제출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의 공동보고서에 중국이 9단선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하면서다.18 대략 이 시기를 전환점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중국의 정책은 동남아 지역, 특히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과 중첩되고, 강대국이 빠져나간 힘의 공백에서 다자 제도를 통해 아세안의 이익과 자율성을 강화하려던 동남아의 전략은 다시 강대국 경쟁을 마주한다.

2010년대를 넘어서면서 동남아 일부 국가와 중국의 남중국해에서 갈등,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성장하는 힘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 정책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시 동남아 지역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견제뿐만 아니라 2008년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은 미국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무게의 중심(center of gravity) 혹은 세계 경제성장의 엔진(engine of growth)이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지역에 관여를 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고 성장하는 중국의 힘을 견제하고자 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미국의 관여를 원했다. 이 두 가지 이해관계가 맞아 들어갔다.19 제도적으로 미국과 동남아의 전략적 필요성이 중첩한 결과는 2010년 미국의 동남아시아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TAC) 서명, 그리고 미국의 2011년 EAS 참여로 나타났다.20

아세안 입장에서 성장하는 중국의 힘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미국의 재관여를 이끌어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다시 동남아 지역에서 주도권 다툼을 하면서 세력균형을 맞추어 가는 상태로 돌입했다. 특히 과거 미소의 대결과 다르게 2010년대 이후 미국과 중국의 동남아 지역에서 세력균형은 많은 부분 아세안 주도의 다자협력 틀 속에서 일어났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ARF, EAS는 물론이고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의(ASEAN Defence Ministers’ Meeting Plus, ADMM+), 그리고 이런 지역 다자협력 아래 많은 하위 단위에서도 미중 경쟁은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지역 경제질서 및 통합과 관련 중국 주도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st Asian Free Trade Area, EAFTA) 건설,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등의 제도를 중심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건설하려 했다면 미국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이라는 제도로 이에 맞대응했다.21

일견 강대국의 지역에 대한 관여와 영향력 행사를 약소국 모임인 아세안 혹은 동남아 개별 국가가 어쩔 수 없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인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 그 속에서 약소국의 대 강대국 협상력 강화와 자율성 확대라는 시나리오는 완성된 듯하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균형이 지역 다자제도라는 틀을 이용해 나타나면서 아세안 중심으로 지역 국가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 주도록 고안된 지역 다자제도가 강대국 전략 경쟁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제 강대국 전략 경쟁 앞에서 아세안의 방식과 중심성이 관철되었다고 봤던 제도에서 소외되고 지역 국가들 간 실질 협력도 강대국 경쟁의 담론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고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강대국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아세안의 기대도 이루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22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지역 다자제도가 아세안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동남아 국가들은 점차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아세안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지역 다자제도 안에서 아세안의 위력이 약해지고 강대국 경쟁은 심화되는 추세는 개별 국가들의 전략적 불안정성, 불확실성, 미중에 의한 선택 강요라는 개별 국가의 전략적 딜레마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약소국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전략적 상황 속에서 꺼내 든 전략은 헤징 전략으로 요약된다.

헤징은 위험 분산 전략으로 특정 강대국과 긴밀한 협력을 하면서 새로 부상하는 다른 강대국에도 일정한 관여를 통해 세력 전이에 따른 위험, 부상하는 강대국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분산하는 대외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23 현재 동남아 국가들의 대외적 행태를 보면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는 미국 쪽으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는 중국 쪽으로 경사되어 있으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는 양측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대립한 베트남, 필리핀, 그리고 특히 바이든 행정부 이후 동남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전략적 협력 대상이 된 싱가포르 등은 미국 쪽에 포함시킬 수 있다.24

반면 경제적으로 보다 취약하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캄보디아, 라오스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태국도 2014년 군사 쿠데타 이후 국내 정치적인 문제로 현 태국 국내 상황에 비판적인 미국이나 서방국가 보다 중국을 편한 협력 대상으로 생각한다. 2021년 2월 군사쿠데타 이후 미얀마는 태국과 같은 정치적인 동기에 캄보디아, 라오스와 같은 경제적인 동기까지 갖춘 친중 세력이다. 말레이시아는 중국에 가까운 중립지대에, 반면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가까운 중립지대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있는 동남아 국가다.

이런 개략적인 협력 구도에도 불구하고 미국 쪽으로 경사된 국가나 중국 쪽으로 경사된 국가 모두 반대편에 있는 강대국과 일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위험 요소를 헤징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미국과 군사협력, 대만과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특히 대만과 군사훈련은 중국 입장에서 매우 못마땅한 일이다.25그러나 다른 한편 싱가포르는 지역 금융의 허브 국가로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일대일로(一带一路) 전략에 매우 협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한 평가도 철저하게 양비론적 입장에 서있으며 어느 특정 세력의 편을 들지 않는다.

필리핀의 두테르테(Duterte) 정부도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정권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중국에 접근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군사안보 부문에서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는 유지된다. 2018년 마라위(Marawi)에서 이슬람 반군의 폭동이 일어났던 때 미국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26 2020년 방문군지위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 VFA) 관련된 논란 역시 미국에 대한 협상카드로 유용한 것이지 미국을 벗어나 중국편으로 가겠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27 중국과 남중국해 문제로 크게 대립을 하고 있고, 반대 급부로 미국 쪽에서는 전략적 협력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다. 남중국해 문제로 인해 미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이면에서 중국과는 베트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 채널을 이용해 관리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28

냉전 이후 다시 형성된 강대국 경쟁이라는 구도 속에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세력균형을 활용하고 개별적으로는 헤징 전략을 통해서 강대국 및 강대국 전략 경쟁 속 나름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처럼 분리된 블록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던 세력 균형 전략이 현재 미중 경쟁 맥락에서는 그리 효과적인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의 집합적, 개별적 전략에도 불구하고 강대국 경쟁에 따른 불확실성은 계속 증가하고, 그에 반비례해 아세안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 명제는 강대국의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 아세안 내부의 단결(ASEAN Unity)의 약화, 미얀마 군사 쿠데타 등 아세안 내부 문제 등으로 인해 갈수록 약화되는 추세에 있다.

 

한국의 아세안 정책에 대한 함의

 
이 글은 한국의 아세안 정책 수립과 실행에 대한 간단한 길잡이를 염두에 두고 동남아 국가/아세안이 보여주었던 대외관계와 정책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관찰했다. 긴 설명할 필요없이 아세안은 한국의 이익에 중요한 지역이다. 한-아세안 혹은 한-동남아 국가 사이 양자적 안보, 경제, 사회 문화 관계 뿐만 아니라 점증하는 미중 경쟁 속 전략적 협력의 대상으로, 지역 다자협력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동남아 국가와 아세안은 한국에 중요한 외교 파트너다. 이런 중요한 대상에 접근할 때 동남아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아세안 차원에서 집합적으로 띠고 있는 대외 관계와 전략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아세안 전략을 수립해 접근하는 것은 정책 실행의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

아세안 지역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대외전략 환경은 두 번의 강대국 경쟁 시기와 한 번의 힘의 공백 시기였다. 각 시기를 관통하는 아세안의 대외전략 특성은 생존과 이익을 위한 상당한 유연성이다. 약소국은 강대국 경쟁 속에 생존 확보를 위해 어느 한쪽을 선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동남아 국가들은 약소국으로 냉전시기 특정 블록에 속했지만 냉전선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움직이며 자율성을 극대화하려 했다. 미중 경쟁에서도 이런 아세안 국가들의 유연성은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탈냉전 직후 역내에 힘의 공백이 생겼을 때 아세안 국가들은 이 공백을 활용해 지역 국제 관계에서 역할을 확장하고 다자협력을 통해 지역 질서를 주도하기 위해 ARF 등으로 강대국을 끌어들이는 주체성도 보였다.

이런 아세안 대외관계 및 전략 특성이 한국의 대아세안 전략에 주는 함의는 두가지다. 먼저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은 민주주의, 인권 등 흔히 보편적 가치, 규범, 원칙이라고 하는 것과 아세안의 생존, 이익을 위한 유연성이라는 실용적 접근 사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아세안 국가들의 대외정책은 일반적으로 원칙이나 가치보다 생존과 이익을 우선시한다.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서 발전시켜온 아세안 국가의 생존을 위한 실용적인 외교의 특징이다. 싱가포르는 대외정책에서 실용(pragmatism)을 철학(philosophy)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스스로 평가한다.29 아세안 국가들이 몰가치적이고 비원칙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치와 원칙도 아세안 국가의 생존과 이익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동남아 국가를 포함한 약소국의 행동 패턴이다.

한편 한국은 성공적인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견국을 넘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다. 이런 국가에서 아세안과 좋은 관계를 위해 보편적 원칙과 규범, 가치를 무시한 대아세안 정책을 펼 수는 없다. 멀지 않은 과거까지 한국은 동남아 지역의 민주주의, 인권은 물론이고 남중국해 등 안보 문제에서도 입장이 없거나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런 모호한 정책은 더 이상 어렵다. 따라서 서로 배치되는 듯한 두 접근 사이 한국의 균형이 필요하다. 동남아 국가에 대한 지나친 눈치보기나 비타협적 원칙과 가치를 고집하는 사이의 균형이 요구된다. 2021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원칙 있는 대응은 매우 바람직했다. 남중국해 갈등 문제에서도 한국은 이제 나름의 입장을 정리했다.30 사례를 통해 이런 한국만의 기준을 차츰 확립해야 한다.

두 번째, 동남아 국가 대부분은 식민지 경험과 그 이후 이어진 강대국의 동남아 지역에 대한 관여 및 간섭 속에 강대국의 압력과 간섭으로부터 자율성 추구를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목표로 발전시켜왔다. 인도네시아 외교정책의 전통이라 언급되는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bebas dan aktif, independent and active)’ 외교는 이런 아세안의 전통을 한마디로 압축한 단어다.31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편승하기 보다는 양쪽과 모두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헤징 전략도 상대적 약소국인 동남아 국가, 약소국의 집합인 아세안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한국의 아세안 정책인 신남방정책은 미국, 호주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협력하고 있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신남방정책 협력도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다. 아세안 국가들의 대강대국 전략과 시각은 한국이 미국, 중국 등과 협력적으로 아세안에 접근할 때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한국은 아세안 정책에서 강대국과 같은 행동이나 강대국의 접근법을 따르는 정책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인태전략이나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이 강대국과 협력적으로 동남아에 접근하더라도 강대국과 한국을 일치화(identify)하거나 강대국에 편승하거나 강대국의 의제로 협력을 진행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신남방정책과 인태전략의 협력을 어떻게 아세안이 원하는 방향대로, 아세안에 실질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이재현. 2011. “미국의 대 동남아 재관여 정책과 동아시아 지역 협력 참여: 달라진 환경과 새로운 도전.” 외교안보연구. 7:11과 Kurt Campbell. 2016. The Pivot: The Future of American Statecraft in Asia. New York: Twelve Books. p. 260.
  • 2. Elizabeth Becker. 2020. “Southeast Asia is Ground Zero in the New U.S.-China Conflict and Beijing Is Winning.” Foreign Policy. August 29.
  • 3. 관련된 통계 자료 등은 이재현. 2018. “신남방정책이 아세안에서 성공하려면?”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18-04. 3-4쪽. 한-아세안 관계의 발전, 현재 한국에 대한 아세안의 중요성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최원기 외 엮음. 2019.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하다.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에 수록된 신윤환. “한-아세안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왔나”와 김현철. “왜 지금, 신남방정책인가”를 볼 것.
  • 4. 인도네시아는 1966년 이전 수카르노(Sukarno) 시기 미소 냉전 속에서 등거리 외교와 비동맹노선을 특징으로 하는 대외노선을 추구했다. 따라서 명확하게 냉전에서 반공블록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후 1965년 수하르토의 군사쿠데타, 그리고 1966년 수하르토 정권이 수립된 이후 인도네시아는 비동맹운동에 여전히 참여하기는 했지만 명확하게 반공 노선을 견지했다. 한편 브루나이는 198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기 때문에 냉전시기 대부분 동안 동남아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였다.
  • 5. 아시아의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 시스템 일반에 관해서는 Victor Cha. 2010. “Powerplay: Origins of the U.S. Alliance System in Asia.” International Security. 34:3 (Winter, 2009/2010)을, 동남아의 허브와 스포크 시스템에 관해서는 Charmaine Misalucha‐Willoughby. 2020. “Contesting the Hub‐and‐Spokes Model in Southeast Asia.” Asian Politics & Policy. 12:2를 각각 볼 것.
  • 6. 필리핀은 1951년, 태국은 1966년 미국과 동맹 관계를 수립했고, 태국은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최초 아시아 국가(1833년)다.
  • 7. Chris Dixon. 1991. “Southeast Asia in the World-Economy: A Regional Geography.” Geography of the World-Econom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9-12 and Richard Stubbs. 1999. “War and Economic Development: 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in East and Southeast Asia.” Comparative Politics. 3:1. p. 521.
  • 8. 닉슨 독트린 및 이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반응 및 전략에 관해서는 Sue Thompson. 2021. “The Nixon Doctrine and U.S. Policy on Regional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after the Second World War.” Journal of Cold War Studies. 23(1).
  • 9. Johan Saravanamuttu. 2010. Malaysia’s Foreign Policy, the First Fifty Years: Alignment, Neutralism, Islamism.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 123-128 and Donald E. Weatherbee. 2009. International Relations in Southeast Asia: The Struggle for Autonomy. Lanham: Rowman & Littlefield. p. 75-76.
  • 10. Catharin Dalpino and David Steinberg. 2004. Georgetown Southeast Asia Survey 2003-2004. Washington D.C.: Georgetown University. p. 48.
  • 11. Donald E. Weatherbee. 2009. International Relations in Southeast Asia: The Struggle for Autonomy. Lanham: Rowman & Littlefield. p. 86-88.
  • 12. ASEAN Regional Forum. 1994. “CHAIRMAN’S STATEMENT – THE FIRST MEETING OF THE ASEAN REGIONAL FORUM.” Bangkok. July 25 (https://aseanregionalforum.asean.org/wp-content/uploads/2019/01/Chairmans-Statement-of-the-1st-ARF.pdf)
  • 13. ASEAN Regional Forum. 2018. “ASEAN Regional Forum: A Concept paper” (https://aseanregionalforum.asean.org/wp-content/uploads/2018/07/Concept-Paper-of-ARF.pdf)
  • 14. 이재현. 2007. “마하티르의 동아시아 지역주의 담론 분석: 서구에 비판적인 아시아주의적 발전연대의 추구.” 국제정치논총. 47:1; 박사명 외. 2008. 위기에서 협력으로: 동남아 지역협력의 확대와 심화. 서울: 이매진. 157-165쪽.
  • 15. Richard Stubbs. 2009. “Meeting the challenges of region-building in ASEAN” in Mark Beeson. Contemporary Southeast Asia (2nd ed.). Basingstoke England; New York: Palgrave Macmillan. p. 240.
  • 16. Rodolfo C. Severino. 2006. Southeast Asia in Search of an ASEAN Community: Insights from the former ASEAN Secretary-General.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 265-269.
  • 17. Alan Collins. 2003. Security and Southeast Asia: Domestic, Regional, and Global Issues. London: Lynne Rienner. p. 200-210.
  • 18. 중국의 이의 제기 및 9단선에 관해서는 중국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https://www.un.org/depts/los/clcs_new/submissions_files/mysvnm33_09/chn_2009re_mys_vnm_e.pdf)을 볼 것.
  • 19. 예를 들어 대표적인 주장으로 K. Kesavapany. 2010. “ASEAN+8 – A recipe for a new regional architecture.” East Asia Forum. May 8 (https://www.eastasiaforum.org/2010/05/08/asean8-a-recipe-for-a-new-regional-architecture/)와 Rizal Sukma. 2010. “Insight: An expanded East Asia Summit should be welcomed.” The Jakarta Post, July 27를 볼 것.
  • 20. 이 과정에 대해서는 Ralf Emmers. 2011. “US in East Asia Summit: Implications for US-ASEAN Relations.” RSIS Commentary CO11163 (https://www.rsis.edu.sg/rsis-publication/idss/1635-us-in-east-asia-summit-implic/#.YclwDC_kEfE)를 볼 것.
  • 21. Sanchita Basu Das. 2013. “RCEP and TPP: Comparisons and Concerns.” ISEAS Perspective Selections 2012-2013. Singapore: ISEAS–Yusof Ishak Institute and Shintaro Hamanaka. 2014. “TPP versus RCEP: Control of Membership and Agenda Setting.” Journal of East Asian Economic Integration. 18:2.
  • 22. 아세안 중심성은 아세안이 지역에서 가장 오랜 다자협력 경험이 있고 따라서 지역 다자협력은 아세안 중심으로 펼쳐지고 아세안이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 주장을 강대국으로 인정받아 지역 국제관계에서 아세안의 존재감과 위치를 확보하려 시도해왔고, 이는 아세안의 내적 단결이란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 Marty Natalegawa. 2018. Does ASEAN Matter? A View from Within.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 76-85.
  • 23. ASEAN의 헤징 전략에 관해서는 Cheng-Chwee Kuik. 2016. “How Do Weaker States Hedge? Unpacking ASEAN states’ alignment behavior towards China.” Journal of Contemporary China. 25:100을 볼 것.
  • 24. 2021년 3월 발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정책 중간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ic Guidance)’을 보면 동남아 국가들 중에는 단 두 국가 즉, 싱가포르와 베트남 만이 파트너 국가로 명시되었다. 아세안은 한번 언급에 그쳤고 그 외 나머지 동맹 국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마찬가지로 2021년 한 해 고위급 순방을 보면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과 싱가포르를, 그리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을 순방한 것이 전부다.
  • 25. 2016년 중국은 대만과 지속적으로 군사훈련을 하는 싱가포르에 대해 정치적 항의 표시로 대만에서 훈련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향하던 군용 장갑차를 홍콩에서 억류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면서도 군사적으로 ‘하나의 중국(One China)’ 정책에 위배되는 대만과의 군사훈련을 1975년 이래 지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Minnie Chan. 2016. “How Singapore’s military vehicles became Beijing’s diplomatic weapon.” South China Morning Post. December 3.
  • 26. 마라위 사태 당시 미국의 지원에 대해서는 BBC. 2017. “Marawi siege: US special forces aiding Philippine army.” June 10. 이런 미국의 지원에 대해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미국을 필리핀의 ‘가장 강력한 군사, 경제 동맹’이라고 추켜세운 적도 있다. Christina Mendez. 2018. “Duterte recognizes Philippines alliance with US, Japan.” The Philippine Star. April 10.
  • 27. 이재현. 2020. “필리핀-미국 방문군 협정(VFA) 폐기: 양자 군사동맹에 대한 함의와 미래”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20-06을 볼 것. 결국 2021년 바이든 정부 하에서 필리핀은 미국과의 방문군협정 폐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서는 Sophie Jeong and Brad Lendon. 2021. “Philippines renews key military agreement with the United States.” CNN. July 30을 볼 것.
  • 28. Huong Le Thu. 2020. “Rough Waters Ahead for Vietnam-China Relations.”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September 30.
  • 29. 전직 싱가포르의 외교관, 학자이고 주UN 싱가포르 대사를 지낸 토미 코(Tommy Koh)의 말로 Robert D. Kaplan. 2014. Asia’s Cauldron: The South China Sea and the End of a Stable Pacific. New York: Random House. p. 92에서 재인용.
  • 30. 한국은 2016년 이후 꾸준히 남중국해 갈등 문제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요약하면 남중국해 문제의 평화적 해결, 국제 규범에 대한 존중,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 그리고 남중국해의 비군사화가 한국의 입장이다. 외교부 보도자료. 2020. “강경화 장관, 역내 안보와 평화증진을 위한 협력과 공조의 메시지 발신(ARF 외교장관회의 참석 결과)” 9월 12일. (https://www.mofa.go.kr/www/brd/m_4080/view.do?seq=370448&page=1)
  • 31. Rizal Sukma. 1995. “The Evolution of Indonesia’s Foreign Policy: An Indonesian View.” Asian Survey. 35:3을 볼 것.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대외협력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아세안-대양주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