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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일본 외교가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격전지에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측한 많은 언론보도와 다르게 트럼프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일본도 이러한 결과를 앞다퉈 보도했다. 이어서 관심을 모은 것은 트럼프와 이시바 총리의 신뢰 구축과 정상회담이었다. 여기에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아베 전 총리가 재조명됐다.

아베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자 전 세계 어느 정상보다도 가장 먼저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와 만났고,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에게 최고급 금장 골프채를 선물하며 환심을 샀다. 트럼프를 대하는 아베의 외교는 ‘비굴할 정도’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은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과 전례 없는 밀월관계를 구축했다. 트럼프는 미·일 동맹을 동북아 번영의 반석이라고 부르며 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언급했고,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트럼프의 입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북·미 관계의 큰 움직임 속에 일본의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했으며 트럼프로부터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의 해결에 대한 관심과 지지도 이끌어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의 고민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깊다. 트럼프와 강한 친밀감을 보였던 아베는 사망했고, 그만큼 트럼프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인사로 발표되는 인물들이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상 간 신뢰 구축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이시바 외교’

그래서인지 일본은 트럼프와 이시바 총리의 공통점 찾기에 열심이다. 트럼프·아베 골프 회동에 주목하며 이시바가 학생 시절 골프부 소속이었던 것이 알려졌다. 두 사람이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점도 주목받았다.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는 0.5%도 채 되지 않을 만큼 매우 보기 드문데, 이시바가 그중에서도 4대째 이어져 오는 개신교 신자라는 점에서 신앙을 매개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이러한 공통점들이 실제 외교 현장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알기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결국 이시바의 외교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결국 정상 간 신뢰 구축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정상 개인의 역량이 강조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시바는 일본 정치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군사·안보 전문가다. 과거 방위대신을 맡았던 이력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총리가 되기 전부터 ‘아시아판 나토(NATO)’ 구상 등 일본의 안보구상을 제시할 만큼 개인적 관심도 크다. 그렇다 보니 그간 민감했던 방위비 분담이나 미일지위협정 재검토 같은 문제들도 양자 간 대화로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논리적인 토론과 심도 있는 논의를 좋아하는 이시바와 트럼프의 관심사가 손익계산적 측면에서 잘 맞는다면, 깊은 논의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논의를 위한 기반 구축에 필요한 이시바의 신뢰 구축 능력과 외교적 역량이 미지수다. 지금까지의 경력 중 외교 분야나 국제사회에서의 두드러진 활동이 없고, 본래 개인적으로도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시바가 취임 직후 참석한 아세안+3(한국·일본·중국)부터 최근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에서의 외교 매너 등 외교무대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받고 있다. 당초 일본은 이번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회담을 할 것을 추진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이에 대해 일본은 미국의 ‘로건법(민간인이 정부 허가 없이 외국 정부와 협의하거나 외교 협상을 하는 걸 금지하는 법, 1799년 제정)’을 이유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전 외교 협상이 제한된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8년 전 아베가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전에 회동을 성사시킨 것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트럼프 당선 직후 5분간 통화가 다른 나라(한국 12분, 프랑스 25분)에 비해 매우 짧았다는 점에 대한 초조함도 노정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시바의 국내정치적 불안정성에 있다. 10월27일 중의원선거에서 참패하고, 소수 여당으로 출범한 이시바 내각은 정권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에 일본 국회의 예산 심의가 있는 만큼 쉽게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고, 이렇게 국내정치적 제약 속에서 외교관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입장에서도 언제 교체될지 모르는 약한 리더와의 대화에 우선순위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일본 외교

이시바와 트럼프 두 정상 간 신뢰 구축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지지하고 보조하는 사람들이다. 실무적으로 주목받는 사람은 트럼프 1기 당시 아베 총리와의 통역을 도맡아 했던 외무성 사무관이다. 트럼프 2기 등장 가능성에 대비해 8월 중국에서 미국 담당 부서로 오게 되었다는 그는 이번 이시바와 트럼프의 전화 회담도 담당했다.

비록 아베는 더 이상 없지만, 자민당 중심의 정치가 지속되며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활동했던 모테기 도시미쓰 전 외무대신, 고노 다로 전 외무대신 등이 여전히 자민당 내 주요 정치인으로 포진하고 있다. 아소 다로 자민당 최고고문은 지난 4월 기시다 총리가 국빈 대우로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한 이후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를 만나고 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랜 기간 아베의 대항마였던 이시바가 이러한 인사들을 미·일 관계에 활용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들이 현직에서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은 일본 외교의 잠재력이자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축적해온 기록과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시스템으로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의 굳건한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한국 외교는 트럼프 차기 행정부와의 관계 구축도 차곡차곡 잘 준비해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 환경, 2기 트럼프 행정부에 대비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11월 24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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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