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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베·아소 영향력 아래 내각 출범
오는 10월과 내년 여름 두 차례 선거가 분수령
 
지난 10월4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신(新)내각이 출범했다. 기시다는 9월29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제27대 총재로 당선되었고, 이후 지명 선거를 거쳐 일본의 100대 총리로 취임했다. 7년8개월여에 걸친 아베 신조 내각과 그 후 1년여간 아베 내각을 계승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퇴진하며 들어선 새로운 내각이다. 우리의 최대 관심은 과연 기시다 내각에서의 일본은 이전의 아베-스가 정부 때에 비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기시다 신임 총리는 일본의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조부 기시다 마사키 중의원 의원, 부친 기시다  후미타케 중의원 의원에 이은 3대 세습 정치인이다. 히로시마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으며, 1993년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다. 자민당 내 명문 파벌인 ‘고치카이(宏池會)’를 이끌고 있다. 고치카이는 ‘경무장, 경제 중시’를 주장하는 온건보수, 자유주의 성향으로 분류된다. 전통적으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파벌정치의 한계 넘어서지 못해

기시다는 아베 내각에서 4년7개월여 동안 외무대신을 역임했고, ‘2015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시다에 대해서는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안정감이 있고, 신중하며 겸손하고 침착하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다소 우유부단하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소극적이고 무색무취하다는 평도 따른다.

우리가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일본 정치체제에서 사실상 일본의 총리를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유독 주목받았던 이유는 곧 있을 중의원 선거(총선)에 내세울 ‘유세장의 얼굴’을 뽑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야당의 분열과 열세 속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민당이지만 코로나19 대응 미흡, 도쿄올림픽 강행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자칫 총선에서 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연임에 의욕을 보이던 스가 전 총리가 결국 사임하고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던 것도 ‘스가로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당내 불안감이 확산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는 자민당 3선 이하 젊은 의원들의 움직임이 주목받았다. 중의원 의원의 약 45%(126명)에 달하는 이들은 기존의 ‘파벌’에 의한 집단투표 관행을 깨고, 개인의 판단과 소신대로 투표하겠다며 당의 쇄신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베-스가 내각으로 이어지는 자민당 정치에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곧 있을 중의원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었다. 실제로 대다수 파벌이 자율 투표를 결정했는데, 지난해 스가 총리가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선출된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신구 세력 대결로 여겨졌다. 이번 선거는 ‘신구 세력 교체’, 소장파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고노와 중진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기시다의 대결, 혹은 ‘고노 대 반(反)고노’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파벌은 일본의 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파벌은 법적·제도적 조직은 아니지만 정책이나 이념 등 생각을 공유하는 의원들의 모임이다. 밀실정치·담합정치라는 비판을 받지만, 정치적 불확실성과 정보의 불균형 해소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한다는 이점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파벌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파벌이 아닌 개인의 판단에 기반해 투표하겠다는 소장파 의원들의 목소리는 가히 ‘반란’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선거도 결국 파벌정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없어 1·2위 득표자인 기시다와 고노가 결선투표를 치렀다. 1차 투표에서 기시다 후보와 다카이치 사나에 후보에게로 분산되었던 호소다파는 결선투표에서 기시다를 전면 지지했다. 호소다파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로 아베 전 총리가 속해 있다. 아베는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 내에서도 강성보수로 분류되는 다카이치를 전면 지지했다. 이는 약화된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고, 고노에게 쏠릴 표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0월31일 중의원 선거가 기시다 정치 첫 관건

고노는 자신이 속한 아소파에서도 전면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특히 계파 수장으로 있는 아소 다로 부총리와 같은 파벌의 아마리 아키라 세제조사회장은 오히려 고노가 아닌 기시다를 지지하며 기시다 당선에 힘을 실었다. 결국 기시다는 결선투표에서 자신이 이끄는 기시다파와 아베의 호소다파는 물론, 아소-아마리의 아소파 일부의 지지를 토대로 최종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이긴 것은 기시다였지만 진정한 승자는 아베와 아소, 아마리(이 3명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3A’로 부른다)였다. 이는 총재 선거 이후 자민당 내 주요 직책과 내각 각료에 ‘3A’의 측근과 호소다파, 아소파가 대거 포진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3A’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파벌정치의 역설로 탄생한 기시다 내각은 아베·아소·아마리를 중심으로 한 ‘3A’의 영향력 아래 놓일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우리가 가장 관심 있는 외교·안보 분야의 경우, 20명의 각료 중 유일하게 외교·안보 라인은 유임시키며 정책의 연속성을 예고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은 아베-스가 내각에 이어 기시다 내각에서도 일본 외교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스가 내각에 이어 기시다 내각에서도 방위정책을 담당하는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아베의 친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기시다 신임 총리가 일단 체제 안정을 꾀한 뒤 서서히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 변화를 꾀하려면 기시다를 중심으로 한 당내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아베가 7년8개월여의 장기집권을 하며, ‘아베 1강’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재임기간 동안 6번의 국정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오는 10월31일 있을 중의원 선거, 그리고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는 기시다 총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스가 전 총리가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코로나19 극복에 사활을 걸어 연임을 노렸듯, 기시다 총리에게는 연이은 두 번의 선거에서의 압승이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의미의 기시다 내각 탄생과 그 지속 여부, 그리고 ‘3A’의 영향력을 벗어나 기시다 내각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중대한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본 글은 10월 08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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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