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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도발적인 소녀상 문제 제기

2017년 1월 6일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 대사 및 일본 부산총영사를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이들은 어제(2017년 1월 9일) 일본으로 귀국했다. 이는 지난 2016년 12월 30일 부산에 있는 일본 영사관 ‘담장’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에 대한 외교적 항의 차원의 조치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스스로 전면에 나서 대한민국에 대하여 공격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베는 이미 10억엔을 대한민국으로 보냈으니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소녀상이 철거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행동에 대하여 우리 정부가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외교부는 부산에 소녀상이 설치되자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한 국제 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우리 정부와 해당 지자체, 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에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일본 정부의 소녀상 문제 제기에 대응할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일본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이 필요한 것 아닌가? 아래에서는 2015년 12월 28일 대한민국과 일본 간 ‘위안부 합의’ 내용 및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또는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포함된 규정을 고려하여 소녀상 문제에 대한 국제법적 대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2015년 대한민국과 일본 간 위안부 합의에 포함된 소녀상 관련 내용 분석

2015년 12월 28일 대한민국과 일본 간 위안부 합의는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기자회견 형식으로 공표되었다. 당시 우리 외교장관은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 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언급했다.

위안부 합의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인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외교장관이 언급한 내용을 이행했는지 여부는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행 여부에 대하여 일본 정부가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장관이 언급한 내용 중 세 가지 쟁점이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 대한민국이 일본 정부의 우려를 ‘인지’(takes note of)하고 있다는 언급이 과연 소녀상 설치가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accepts or acknowledges)했다는 의미인지 여부이다.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는 우려를 단순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와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법적 관점에서 동의하고 있는지는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안부 합의가 포함하고 있는 언급 그 자체만을 고려했을 때는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우려를 단순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만 해석될 여지가 크다.

둘째, 대한민국 정부가 관련 단체와 협의를 시행했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시민단체 등 관련 단체와 여러 차례 협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컨센서스에 도달하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관련 단체가 소녀상을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했다면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 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협의 의무 자체는 협의를 시행할 ‘행위 의무’(obligation of conduct)이지 협의를 통해 반드시 소녀상이 설치되지 않을 것을 보장할 ‘결과 의무’(obligation of result)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라는 문구 역시 ‘결과 의무’가 아닌 ‘행위 의무’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즉, 대한민국 정부가 소녀상 문제에 대하여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소녀상이 설치되었다면 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 책임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파상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소녀상 설치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제2항’(또는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항) 위반인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제2항’(또는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항)은 “접수국은, 어떤 침입이나 손해에 대하여도 (영사)공관 지역을 보호하며, 공관(영사기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단계를 밟을 특별한 의무를 가진다.”[The receiving State is under a special duty to take all appropriate steps to protect the (consular) premises of the mission against any intrusion or damage and to prevent any disturbance of the peace of the mission (consular post) or impairment of its dignity.]고 규정하고 있다. 소녀상 문제와 관련하여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제2항(또는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항)은 두 가지 쟁점을 던지고 있다. 참고로 서울에 있는 ‘대사관’이 아닌 부산에 있는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문제에 관한 한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항이 관련 있는 국제법 규정이나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제2항과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항은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소녀상 설치가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지의 문제이다. 미국, 영국 등에서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는지의 문제는 주로 ‘시위’(demonstration)와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다. 시위는 소음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공관의 업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높은) 시위가 아닌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는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는 문제가 아닌 품위를 손상시키는 문제인지 여부로만 한정해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소녀상 설치와 그나마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사건은 1991년 11월 12일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인들을 학살한 것에 대한 항의로 1991년 11월 18일 호주에 있는 인도네시아 대사관 앞에 몇몇 동티모르인들이 높이 50cm 정도의 하얀 십자가 124개를 가져다 놓은 사건이다. 1992년 1월 26일 호주 정부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제2항상 의무 등을 이행한다는 이유로 하얀 십자가를 치웠다. 비록 (호주 ‘국내’재판소가 다룬) 이 사건에서 하얀 십자가를 치운 호주 정부의 ‘절차적인’ 조치는 (국제법이 아닌) 호주 ‘국내법’상 유효하다고 결론지어졌으나, 하얀 십자가가 인도네시아 공관의 품위를 손상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둘째, 설령 소녀상 설치가 공관의 품위를 손상시킨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모든 적절한 단계를 밟지 않았는지의 문제이다. ‘모든 적절한 단계를 밟을 의무’는 공관의 품위가 손상될 가능성 정도에 따라 의무의 정도가 ‘가변적인’ 의무이다. 그러므로 만약 공관 앞에서 외국기를 불태우거나 공관을 향하여 계란을 던지는 경우에는 ‘모든 적절한 단계를 밟을 의무’의 정도가 높아지나 소녀상 설치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의무의 정도가 낮아진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 정부는 일장기가 불태워지지 않도록 할 상대적으로 더 큰 주의 의무를 부여받고 있으나,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는 소녀상이 반드시 설치되지 않도록 할 정도의 주의 의무를 부여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녀상 설치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제2항(또는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항) 위반인지는 국제재판소가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할 것이다. 다만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제2항(또는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항)의 해석상 대한민국의 국제법 위반이 인정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냉정하게 일본 정부를 향하여 어떤 국제법 위반이 존재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지금 현재 아베의 도발적인 언급은 일본 정부 내에서 국제법적 쟁점을 정리하지 않은 채 표현된 정치적 또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정부는 소녀상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국제법 위반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향하여 소녀상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또는 중재재판소 등) 국제재판소 회부도 제안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국제재판소 회부 제안은 아베 입장에서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일 수 있다. 국제법적으로 소녀상 설치가 대한민국의 국제법 위반으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국제재판소로 가지고 가는 것은 아베를 곤혹스럽게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재판소 회부 제안을 수용하지 않는 경우 아베는 자신의 도발적인 언급이 정치적 또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음을 자인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어떤 분쟁의 국제재판소 회부 제안이 양국 관계를 급랭시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과 프랑스 또는 미국과 캐나다 등 대표적인 우방 간에도 어떤 분쟁의 국제재판소 회부 제안은 빈번하며, 이는 문제를 해결하여 우방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제안이지 결코 양국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제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소녀상 문제를 국제재판소에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특히 미국은 이에 대하여 크게 환영할 것이다. 더 이상 양국 정부 관계자의 입장 표명을 들어줄 필요 없이 국제재판소의 판결만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게도 소녀상 문제에 대하여 일본을 향하여 주장할 수 있는 카드가 분명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카드는 손해볼 수 없는 카드이다. 일본이 소녀상 문제의 국제재판소 회부 제안을 받는 경우 대한민국 정부는 승소 가능성이 현저히 높은 국제재판을 수행하면 된다. 만약 일본이 대한민국의 국제재판소 회부 제안을 받지 않는 대신에 대한민국을 향하여 또 다른 카드를 만들어낸다 해도 결코 그 카드는 대한민국의 국제재판소 회부 제안이 가지는 임팩트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