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美, 북핵문제 제재 통한 압박 강조
文 ‘대북 짝사랑’ 고수 땐 한·미 동맹 흔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2020년 11월 24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그의 외교·안보팀에 참가할 전문가들을 소개하면서 한 이 말은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외정책을 함축적으로 시사한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미국 정부는 초반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남긴 국제질서의 상흔들을 치유해나갈 것이며, 정책의 추진 방향도 사뭇 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슈와 지역별로 바이든 행정부의 접근은 다소 차이가 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큰 변동이 없거나 수정·보완을 시도하더라도 호흡조절을 할 분야가 있다. 공화당이 대체로 공감하였을 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일부 인정했던 정책들이 이에 속한다. ‘아브라함 합의’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중동·아프리카 무슬림 국가 간의 관계개선 유도가 그 대표적 예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다루는 기조 역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거칠고 즉흥적인 방법 대신 더욱 정교하고 차분한 접근을 요구할 뿐 기본 방향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두 번째 분야는 민주당은 비판적이었지만 공화당이 트럼프 행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했던 정책들이다. 대이란 정책이나 쿠바와의 관계개선, 그리고 다자적 협력의 활성화 등에 대해서는 변화를 시도하되, 그렇게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기후협약 복귀 등 몇몇 이슈들은 상징성 측면에서 초반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마지막 분야는 민주당이 반대했을 뿐 아니라, 공화당도 딱히 환영하지 않았던, 그렇기에 공화당의 정책이라기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라고 불릴 수 있는 분야다. 동맹정책과 대북정책이 이에 속한다. 이들이 ‘트럼프 레거시(유산)’ 중 최우선 정리 대상이 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정책 전환은 분명 우리에게도 환영할 만한 것이며, 기회가 될 수 있다. 막무가내식의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가 누그러질 것이고, 동맹과의 협의 및 협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며, 미군 주둔 정책을 압력수단으로 악용하는 행태 역시 자제될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강화 움직임이 반드시 기회가 되리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돌아온 미국’은 동맹국들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가 혹은 같은 길을 가고 있는가에 주목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운동 시절부터 ‘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해왔다. 자연스럽게 권위주의·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공동 대응과 동맹·우방국들 간의 상호 연계를 중시하는 정책으로 구체화할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한국의 위치 선정, ‘쿼드 플러스’ 협력에의 동참 등이 이에 속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의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일에도 관심을 두고, ‘조건에 기초한’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한·미 연합 연습·훈련의 재개 등을 추진할 것이다. 만약 이 분야에서 우리의 방향만을 역설한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표정관리’를 하기는 하겠지만, 상호 간의 신뢰는 그만큼 타격을 입게 된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미 간 이견이 발생하고 이것이 적절히 조율되지 못할 경우 한·미 간 ‘디커플링’(decoupling) 위험을 불러올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바이든 신임 대통령은 보여주기식 ‘톱다운’ 접근보다는 엄격한 기준에 따른 미·북 실무협상을 선호할 것이며,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강조할 것이다. 비확산을 중요시해온 바이든 행정부의 성향, 이미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한의 실체를 경험했던 외교·안보 참모들의 진용을 고려할 때, 북한이 ‘핵무력의 지속 강화’를 시도하는 한 제재와 같은 대북압력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북한이 8차 노동당대회에서 던진 부정적인 대남·대외 메시지의 전체를 보기보다는 지엽적인 몇 단어에 집착하는, 우리의 ‘희망적 사고’에만 근거한 대북정책 방향을 강변할 경우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 공조가 흔들릴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잘 모른다고, 우리만이 북한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고 단정하지 말자. 우리의 주장을 설득하는 것 이상으로 바이든 행정부와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정말로 ‘같이 가는’ 길이다.
* 본 글은 1월 19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