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레짐에 대한 공략이 거세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북한의 주요 무기수출을 금지하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시작으로 대북제재 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용해왔다. 위원회는 북한의 주요한 핵개발이 있을 때마다 대북제재를 주도했다. 무기의 전면금수를 규정한 1874호(2009), 제재대상을 개인과 단체까지 확대한 2087호(2013), 금융제재와 사치품 규제를 시작한 2094호(2013), 북한 경제 전반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규정한 2270호(2016) 등 10개의 대북제재가 그렇게 등장했다.
대북제재 위원회 산하에는 1874호의 제정과 함께 전문가 패널이 창설되었다.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되는 패널은 제재준수 감시, 위반혐의 조사, 보고서 작성, 권고안 제출, 관련 정보교환 등 대북제재 실무기구의 역할을 해왔다. 패널은 매년 3월경 결의안 채택 형식으로 임기를 1년씩 연장해왔는데, 러시아는 이 임기 연장에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결국 4월30일 전문가 패널은 종료된다.
러시아의 이러한 횡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북·러 협력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다. 북·러 협력이 공식화된 이후 북한은 컨테이너 7000개 이상의 탄약과 군수물자를 러시아로 보냈다. 포탄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 대한 핵공격 수단인 KN-23과 KN-24도 포함됐다. 이러한 방산거래의 대가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컨테이너 9000여개분의 물자와 식량에 더하여 유류와 자금, 그리고 기술지원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제일 큰 대가는 이번 유엔 전문가 패널의 활동정지와 같은 대북제재 레짐의 약화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국제규범이든 무시해왔다. 크름반도 점령부터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러시아는 정권에 이익이 된다면 약속위반이나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3년 2월 뉴스타트 조약의 참여 중단을 선언하여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남아있던 마지막 핵군축 조약을 무너뜨렸다. 11월에는 러시아 의회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대한 비준을 철회하여 국제 핵군축질서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그리고 그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북한이다.
유엔 전문가 패널의 가치는 그 조사내용의 국제적 공신력에 있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파견한 전문가들이 유엔의 이름으로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북한제 무기를 사들이는 러시아가 자국의 치부를 국제적으로 공개하는 전문가 패널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 그래서 패널 종료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게다가 미·중 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충돌로 유엔은 최근 기능적 한계를 맞이했다.
전문가 패널이 종료되어도 대북제재는 계속된다. 오히려 대북제재는 각국이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에 성공이 달려 있다. 다만 중요한 도구의 하나인 패널이 무력화된 만큼, 우리 정부가 그 역할을 주도해야 한다. 북한에게 러시아와 중국이 있다면, 우리는 미국과 서구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y)들의 지지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글로벌 사우스를 포함한 전 세계로 대북제재 지지세력을 확장하며 대응해야 한다. 한·미 양국이 ‘강화된 차단 태스크포스(EDTF)’를 3월26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연 것은 좋은 시작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 대한 경고와 응징이다. 미국과 국제사회도 제어하지 못하는 러시아를 과연 우리가 막을 수 있을지 회의론과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미 무기수입의 수준을 넘어 북한과 국가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어, 방치하면 더욱 큰 해가 돌아올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가장 아파하는 조치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으로 응징과 보복을 시작하자. 우선 천궁2나 신궁 대공미사일 등 방어 성격의 무기체계를 지원하는 것이 시작이다. 추후 러시아의 태도에 따라 천무 다연장로켓 등 공격무기로 확대해 나가며 경제분야는 전 범위로 압박하자. 이러한 조치가 당장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은 물론 국제사회의 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조치에 물러서지 않을 때, 세계는 대한민국을 글로벌 중추국가로 신뢰하고 함께할 것이다.
* 본 글은 4월 4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