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출범과 기대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을 통해서 등장했던 여·야 후보들 간의 정책 공약 중 궁극적인 정책 지향점은 유사했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정책 내용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냈던 분야는 에너지 정책 분야였다.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에 호응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한다는 정책적 지향은 여·야 후보들 모두에게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공통의 정책 지향점에 이르기 위한 정책 내용에는 큰 차이를 보였는데, 특히 과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계승 혹은 파기라는 여·야 후보의 정반대 입장은 이를 대변했었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탈원전” 혹은 “에너지 전환”은 가계, 기업, 정부라는 국민경제 3대 주체들 중 기업과 가계의 능력과 역할, 그리고 에너지 경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국가적 목표의 이상(理想)과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 및 수급 환경의 현실(現實) 사이에서 매개가 되어야 하는 에너지 정책들을 오직 정부의 정치력에 기반하여 수립하고 이행하였기에,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에 의해서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에너지 정책으로 이미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정책의 수립과 결정 과정에 있어서 국민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릇된 정책 효과를 기대하게끔 유도했기에 정권의 변화에 따른 정책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정책 결과로 볼 때 실질적인 탈원전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수사(修辭)로서의 탈원전 정책이었다. 따라서, 지난 5년 간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새 정권의 취임과 더불어 새롭게 정립되어, 앞으로의 정치적 변화와는 상관없이 실현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정책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5월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과정을 통해서 이미 “탈·탈원전” 정책을 표방하면서 기존의 탈원전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과거 정부의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극복하는 것 만으로 우리 경제의 에너지 믹스(energy mix)1 전략이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새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있어서 정치적 목적이 아닌 에너지 안보에 대한 고려가 정책 마련의 근거가 되어야만 한다. 아울러, 전통적인 에너지 정책이 산업과 사회 발전이나 가계 물가 등을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에너지 수급 안보나 에너지 접근성 확대에 정책 목표를 두었다면, 21세기의 에너지 정책은 기후위기(Climate Crisis)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야만 한다. 따라서, 에너지 안보나 경제성의 확보는 물론 생태환경의 지속가능성 향상이라는 통합된 목적을 지닌 국가전략과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의 정치화: 극복해야 할 과거 정부 에너지 정책의 오류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탈석탄·탈원전,” “재생에너지 3020” 혹은 “에너지 전환,” 그리고 “탄소중립” 정책 등의 명칭들로 선전되며 추진되었다. 정책의 대표명칭들에 담겨 있듯이, 에너지 정책의 목표 및 주요 내용은 탈석탄과 동시에 탈원전을 이루며, 감축되는 석탄이나 원자력 에너지를 대신하여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 수준까지 달성하고, 궁극적으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발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2017.12)>을 통해서 공식화된 “탈석탄·탈원전” 정책은 그 시작부터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최대 전력수요(peak load)가 발생하는 시점에서의 발전원별 설비용량의 운영기여도가 100%에 가까운 기저전원(基底電源)으로서의 석탄과 원자력 발전을 동시에 퇴출할 수 있었던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매년 총발전량 중 65%이상을 석탄과 원자력 에너지원으로부터 얻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로 볼 때,2 현재의 에너지 기술로는 가능성이 없는 막연한 미래기술에 기초하고 있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발생의 주원인인 석탄 발전의 퇴출은 범국제적인 동의를 얻어가고 있음이 사실이지만, 탈원전이 범세계적 추세라는 정부의 주장은 당시에도 설득력을 지니지 못 했었다.
자료: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12),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12), 2021년 자료는 EPSIS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kpx.or.kr)
문재인 정부의 “탈석탄·탈원전” 정책은 전체 설비용량이나 발전용량의 비중으로는 석탄과 원자력의 사용이 감소되는 정책으로 보일지라도, 발전설비의 절대용량 즉 사용 에너지 연료의 절대량 측면에서는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원자력은 9% 정도 감소, 석탄은 11% 정도 감소시키는 계획으로, 국제 기준의 탈석탄이나 탈원전 정책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즉, 정책의 내용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목표기간 중 설비용량 및 발전량 제로(zero)를 목표로 하는 국제 기준의 “탈(phase-out)” 에너지 정책과는 달리 본질적으로는 발전 비중에서 석탄 및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를 “감축(decreasing)”하는 내용을 지닌 정책이었으나 “탈석탄”과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수사로 포장되었을 뿐이었다. 그 정치적 목표를 위해 국민들에게 왜곡된 정보로 정책 수립과 이행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다는 점은 더더욱 비판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이다.
아울러,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논의가 집중되었던 에너지 전환 비용 문제 역시 정부는 왜곡된 정보로 정책적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었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원자력 발전보다 경제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주장했었다.3 실제로 균등화발전비용(LCOE: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의 측면으로 볼 때,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 원자력 대비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매우 긍정적으로 전망되기도 했었다.4 그러나, 이것이 미래 에너지 경제의 단상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는 있어도, 국토의 크기에 따른 토지비용이나 송·배전 비용 등 국가별 사정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있는 주장은 아니었다.5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하며 가졌던 공개토론회에서 태양광 설비와 원자력 발전 설비 간의 발전단가(LCOE)가 선진국에서는 2020년, 한국에서는 2030년 즈음에는 역전하게 되므로 에너지 전환에 따른 국민 부담은 없을 것이라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정부 분석으로도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결국 그릇된 정부 발표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직후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두차례에 걸쳐 보고했던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전망을 고의로 묵살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6 문재인 정부가 물러난 뒤 공개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계획대로 탈원전을 이행할 경우 2018년부터 2030년까지 2016년 대비 매년 2.6%씩 전기요금 원가 인상요인이 발생할 것이며, 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인상률은 14%, 2025년 23%, 2030년은 40%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른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액은 2016년 55조원에서 2030년에는 75조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며 따라서 2018~2030년 기간 중 전기요금의 추가부담 총액은 약 14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실제로, 담당 정부부처가 예상했고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전망했듯, 에너지 전환 비용은 전력의 구매와 판매를 총괄하는 한국전력의 엄청난 적자로 이전되어 나타났고, 탈원전 정책으로 의존도가 높아진 높은 발전단가의 천연가스(LNG) 연료가격 상승과 맞물려 2022년 적자규모는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7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망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 7월 5일의 국무회의에서 현재 27.4% 수준인 원전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상향하며, 신한울 3, 4호기 건설도 재개한다는 내용을 담은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안)”이 심의, 의결되었다. 그 구체적인 정책 내용과 추진 과제들은 올해 말 발표 예정인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내년 초의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서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통해 발표된 주요 에너지 정책 기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8
●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의 재정립
-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
- 실현 가능성, 주민수용성을 감안하여 재생에너지 보급의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
- 석탄 발전의 합리적 감축 유도와 무탄소에너지(수소, 암모니아) 활용
- 합리적 에너지 믹스를 뒷받침하는 미래형 전력망 구축
● 튼튼한 자원 에너지 안보 확립
- “자원안보특별법” 제정을 통해 선제적, 종합적인 자원 안보체계 구축
- 비축, 도입, 재자원화 등을 연계한 전주기적 에너지 공급망 강화
- 민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 산업생태계 회복
● 시장원리에 기반한 에너지 수요 효율화 및 시장구조 확립
- 산업, 가정/건물, 수송 등 3대 부문 수요효율화 혁신 추진
- 시장원리에 기반한 전력시장, 전기요금 체계 확립
- 전력시장, 요금 거버넌스의 독립성, 전문성 강화
● 에너지 신산업의 수출산업화 및 성장동력화
-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 수출산업화 및 유망기술 확보
-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과 세계1등 수소산업 육성
- 태양광, 풍력 산업생태계 경쟁력 강화
- 4차 산업기술과 연계한 에너지혁신벤처 육성 및 에너지 신산업 산출
- 기후변화 대응 제도 선진화 및 민간 투자 촉진
● 에너지 복지 및 정책수용성 강화
- 필수 에너지 복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취약 계층 보호 강화
- 주민, 지역과 협력을 통한 지역 단위 에너지 기반 구축 및 수용성 제고
- 안전하고 걱정없는 에너지 기반 구축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비전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조화시키며 탈석탄을 가속화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국내외 에너지 경제의 현실을 넘어서는 “탈원전”이라는 이상(理想)에 치우쳐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왜곡된 에너지 정책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정부가 확정했던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대해서는 계승을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한 향후 5년 간의 에너지 정책에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수립과 이행에 대한 제언
① 새로운 에너지 믹스 전략에 따른 정책의 수립
현실성 없었던 탈원전 정책으로부터 벗어나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현실에 맞는 에너지 경제를 고려한 에너지 믹스 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 믹스의 구성에 있어서, 새 정부의 “탈·탈원전”의 정책 기조가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을 최선의 정점으로 여기는 “친원전” 정책으로 경도되어서는 안 된다. 원자력 에너지는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실효성을 인정받고, 우리 경제와 산업을 경쟁력이나 국민경제에 안정적인 전력을 제공하기 위한 우리나라 에너지 믹스의 구성에서 정치적으로 이유로 소외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오류를 바로잡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
국가 경제에서 주요 에너지원의 적정 구성 비중, 즉 에너지 믹스에 대한 논의는 에너지 정책 설계의 기초를 제공한다. 원자력 발전의 적정 구성 비중은 오랜 기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인 탈원전 정책의 등장 이전까지는 외부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시나리오 구성에 따라 2035년까지 26~31% 정도를 적정선으로 보았고,9 윤석열 정부는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설정할 예정이다. 지난 5년 간은 정치적 논리가 에너지 경제 전문가들의 합리적 논의에 우선하게 되면서, 건전한 에너지 믹스 전략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어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장 이전의 에너지 믹스에 대한 논의들은 시기적으로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국가적 목표의 등장 이전이었음에 유의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장기적 국가목표로서의 탄소중립을 고려한 에너지 믹스에 대한 건전하고 합리적인 논의들이 정책의 수립에 앞서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공급 차원 이상으로 소비 측면에서의 에너지 정책 관리도 중요하다. 2021년 에너지경제연구원(KEEI)의 에너지 수요 전망에 따르면, 2025년까지 우리나라 총에너지 수요는 연평균 2.3%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10 경제규모의 성장에 따라 에너지 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경제성장율 대비 과도한 에너지 소비의 증가에 대해서는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와 절전을 장려하는 에너지 수요측면의 현실성 있는 대책들도 마련해야만 한다. 아울러, 새로운 원자력 기술에 대한 투자와 아울러, 고급기술 기반이며 수출 산업과 연계되어 있는 에너지원이므로 관련 인적 자원에 대한 육성 및 관리에도 다시 한 번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② 탈석탄과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정책 수립
“탈원전”으로부터 실효성 있는 정상적인 에너지 믹스 정책으로 회귀하는 동시에, “탈석탄” 정책은 보다 더욱 전략적으로 계획되고 추진되어야만 한다. 지난 2021년 11월 UN기후변화협약 제26차 당사국총회(COP26)에서의 주요 쟁점들 중 하나는 탈석탄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였다. 비록 CO26에서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주요 석탄 생산국 혹은 소비국들의 반대로 인해 초안보다 완화되기는 했으나, COP26 최종선언문을 통해서 국제사회는 “석탄 발전과 화석 연료에 대한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에 원칙적으로 합의하였다. “탈석탄”은 “탈원전”과는 달리 범국제사회의 협력 의제로서 공식적인 동의를 얻고 있다.
한국은 COP26 당시 “글로벌 탈석탄 전환 선언 (Global Coal to Clean Power Transition Statement)”에 서명을 하면서 2040년까지 국내에서 탈석탄을 이루겠다는 40여 개국 명단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직후 한국 정부는 그 동안의 탈석탄 정책기조와는 달리 “탈석탄의 시점을 명시한 성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11 석탄 연료의 “퇴출(phase out)”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감축(phase down)” 정도의 국제적 합의를 얻고 있지만, 선진국 그룹에서는 강력한 탈석탄 정책을 국내 에너지 정책은 물론 외교정책이나 개발협력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 문제의 해결이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기초로서, 그리고 에너지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 석탄에너지로부터의 탈피는 에너지 정책의 기조로서 더욱 공고히 정립되어야 한다.
탈석탄과 아울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의 국가적 목표는 에너지 정책 전반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새 정부는 2050년의 탄소중립 달성에 보다 큰 중점을 두면서, “신념이 아닌 과학기술과 데이터에 기반을 둔 실현가능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2050 탄소중립 달성 방안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고 공언하였다.12 과거 정부와는 다른 원자력 에너지 정책의 추진은 에너지 안보와 수급은 물론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주지해야만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이며, 2050년까지 국내 순배출량을 0으로 하는, 즉 탄소중립을 이루는 것을 목표는 준수되어야만 할 것이다.
③ 에너지 전환 비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 마련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정상화 방안 중 하나로 “전기요금 결정의 원가주의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과거 우리의 산업경쟁력을 지원하기 위해서 시장가격이나 발전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게 정책적으로 왜곡되어 책정되었던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우리 경제와 에너지 정책이 지닌 과제였다. 여기에,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는 값싼 화석연료에서 경제성이 높지 않은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데 드는 비용, 즉 에너지 전환 비용의 발생을 예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전환 비용은 탄소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너지는 “전환” 비용과는 상관없이, 일종의 소모품으로서 일반적인 가격 상승요인도 존재한다. 에너지 원가의 상승이나 인건비 상승, 대표적인 에너지원 수입국으로서 수출국들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 그리고 산업경쟁력을 위한 정부의 에너지 생산 관련 보조금 지원의 축소 등은 대표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요인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경제성을 지닌 원자력 발전의 축소가 가져올 추가 비용상승분을 감추고 “탈원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함과 아울러 “임기내 전기요금의 인상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으며 일반적인 에너지 비용 상승 요인들마저 정치적으로 묵과하게 만들어 우리 에너지 경제의 현실을 5년 동안 외면하게 만들었다. 정책적 당위성을 위해 국민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점은 정책적 한계나 실패보다도 더욱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이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들은 원유, 천연가스 가격 등 에너지 원가 상승 요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코로나 위기 극복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금리 정상화 역시 수입 에너지 비용 상승을 야기하고 있다. 이 모든 시기적 상황과 맞물려 에너지 전환 비용은 이전보다 더욱 국민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필연적으로 주요한 물가 상승요인이 되어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탈·탈원전” 정책이 마치 에너지 비용과 가격의 상승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으로 오인하게 이끌어서도 안되고, “탈석탄”과 같은 값싼 화석에너지의 축소에 따른 에너지 전환 비용에 대한 국민적 부담에 대해서 정치적인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결국 미루면 미룰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은 훨씬 더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국민 수준은 이미 우리 경제가 미래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정청에너지의 필요성과 에너지 전환 비용의 국민 부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여론조사 연구들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의 이용 확대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13, 에너지 전환에 따른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도 있다.14 윤석열 정부는 공언했던 “전기요금 결정의 원가주의 원칙”이나 에너지 전환 비용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합의를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물가 상승이라는 경제적 압박과 정책 지지율이라는 정치적 압박 등의 요인들은 전기요금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가격의 정상화를 계속 미루게 만들어 왔고, 탄소중립 시대에 더더욱 커지고 있는 에너지 전환 비용의 부담은 더더욱 에너지 가격의 정상화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탈·탈원전” 정책은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에너지 믹스를 정상적으로 되돌려 “탈원전”에 따른 추가 비용을 사라지게 하는 것일 뿐, 여전히 에너지 전환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만 한다. 모든 경제적 부담을 미래세대로 넘길 수 있다는 정치적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국민들을 설득하고 비용을 분담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지닌 국민대표의 정책 참여 등을 보장하면서 국민들에게 현재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경제의 현실적 상황과 정책 목표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진실된 노력이 필요하다.
④ 미래성장전략과 연계된 에너지 기술 개발
윤석열 정부의 “탈·탈원전” 정책이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나 반(反)·신재생에너지 정책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현 시점에서의 원자력 에너지는 화석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 나아가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가교(架橋) 역할을 하는 에너지로 정의될 수 있다. 원자력 에너지는 보다 안전한 핵기술이나 핵폐기물 관리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때,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는 보다 획기적인 발전효율과 저장기술을 가져왔을 때 비로소 미래에너지로서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에너지원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원전 강대국 혹은 원전 수출국으로서의 명성을 되찾고 유지하기 위한 원자력 기술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선진적인 원자력 기술의 개발은 우리나라 에너지 환경의 미래는 물론 에너지 산업의 신성장동력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및 원전의 위험요인의 해소, 즉 폐기물 처리나 방사능 오염 등과 같은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 개발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청정에너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술 분야이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원자력 기술 관련 인력과 산업에 손실이 있었던 만큼, 이를 회복하기 위한 지원 정책으로 원자력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고 신성장동력으로 산업화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지난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설비용량을 늘리는데 치중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을 통해 발전효율을 늘리고 경제성을 높이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기간 중,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2021년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용량은 24,495MW(총설비용량의 18.26%)로 23,250MW(17.33%)의 원자력 에너지를 넘어서면서 설비용량 측면에서는 가스 (41,202MW, 30.71%), 석탄 (37,838MW, 28.20%)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큰 발전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15 그러나, 2021년 한 해 동안의 에너지원별 발전전력량은 석탄 197,966GWh (34.3%), 가스 168,287GWh (29.2%), 원자력 158,015GWh (27.4%)에 비해서 신재생에너지는 43,096GWh (7.5%)에 지나지 않고 있음에서 볼 수 있듯이16,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설비용량 대비 전력발전량은 여타 주요 에너지원에 비해서 매우 낮은 수준의 발전효율의 경제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 수준까지 달성한다는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태양광 발전 설비의 증설에 가격경쟁력을 고려한 중국산 모듈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내생산 모듈은 대폭 감소되었던 바 있다.17 문재인 정부가 눈에 보이는 결과에 치중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보다 내실 있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함으로써 에너지 경제는 물론 국내 관련 산업 육성과 연계되어 에너지 정책의 경제적, 산업적 파급력을 높여야만 할 것이다. 이에 녹색에너지 기술 투자는 가장 기본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 지형에 맞는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찾아 개발하고 육성하여 산업화하는 것은 곧 신성장동력 및 미래 에너지 산업 경쟁력의 확충 측면에서 에너지 정책을 넘어서는 산업 및 금융 지원정책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범국제적인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고 있는 21세기,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개발 및 산업화는 곧 국가경쟁력의 증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⑤ 기후·에너지 정책 컨트롤 타워의 재정비
현대 국가체제에서 대부분 국가들이 기후위기 대응이나 탄소중립을 위한 금융, 경제, 산업, 에너지, 환경, 교육, 문화 등의 관련 정책들을 조율하기 위해 효과적인 정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모든 분야를 조율할 수 있는 정책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대두되어 왔다. 특히 국가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상충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 및 산업을 총괄하는 부처들와 환경 및 기후문제를 총괄하는 부처들 간의 정책 조율은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임기 1년 남짓을 남기고 있던 2021년 5월 말 대통령 직속의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탄소중립위원회는 그 성격이나 역할에 있어서 기존의 “녹색성장위원회”와 큰 차이를 갖지 않는 조직으로, 가시적인 자신의 정책유산을 남기려는 전형적인 행정력 낭비였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과 관련된 모든 정책들을 심의하는 기관으로서 탄소중립위원회의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전문가 중심에서 50~100명 사이의 시민사회, 청년, 노동, 종교 등 사회 각계 대표들을 위원으로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정책 자문기구도 아닌 심의기구로서 100명에 육박하는 위원들이 과연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정책 심의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당시의 의문은 설립 1년이 지나고 있는 최근 그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즉 내부 민간위원들 중 71.9%가 비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관련 전문가들이 중심되어 관련 정책 수립에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심의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탄소중립위원회를 축소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18 에너지 정책을 심의하는 탄소중립위원회 1기 77인의 민간위원들 중에 우리나라 전력의 약 30%를 생산하는 원자력에너지 관련 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는 등 그 시작부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라는 정치성을 띠고 있었던 만큼 올바른 정책 심의기관으로 정립되기 위해서 시급한 개편이 필요하다. 정책 심의기관으로서 탄소중립위원회의 개편은 관련 정책들의 조율과 정부 역량의 통합적 운영을 가능하게 하여, 에너지 정책이나 기후변화 정책 등과 같이 일개 정부 부처가 추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정책들을 정부가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심의하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탄소중립위원회의 개편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공약했던 “기후위기 대책기구”의 역할 및 기능을 반영해야만 한다. 이미 탄소중립위원회가 법률에 의거 부여받은 기능과 역할에 대해 옥상옥(屋上屋)의 기구를 신설할 필요는 없다. 기후위기의 대응은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국가적 역량에 달려 있는 것으로, 지난 정부와 같이 정책적 유산을 과시하려는 정부기구의 신설로 또다른 행정력 낭비를 가져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맺는말
국민경제와 환경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은 우리가 처해 있는 에너지 경제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21세기 국가경쟁력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사고에 기반해야만 한다.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5년 간의 에너지 정책을 계획하고 또 그 이후의 장기에너지 수급 전략의 기틀을 다지는데 있어서, 지난 정부 에너지 정책의 수립과 이행에서 나타났던 오류를 냉정하게 평가해야만 할 것이다. 선거과정을 통해서 이미 예고되었듯, 새 정부가 에너지 정책에 큰 수정을 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지난 5년 간의 에너지 정책은 “탈원전”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그 정책의 중심에 두면서 우리나라 에너지 경제의 현실을 묵살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은 정치성을 벗어나 현실에 기반한 장기 에너지 수급 목표와 계획에 의거해야만 하며,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중립이라는 21세기 범국제적인 국가별 과제도 고려해야만 한다.
에너지는 사회와 경제 전반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어느 한 영역의 정책 수립으로 관련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국내 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국가적 차원의 안보(security) 문제이기도 하다. “에너지 안보”의 협의적 의미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과 적정 가격의 보장을 의미하지만, 광의적으로는 국민경제 전반의 안정을 도모하는 에너지 국가경쟁력 확보는 물론 에너지 전환을 통한 에너지 이용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포함한다. 에너지 안보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곧 에너지 관련 정책들의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 목표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장단기적 목표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조화를 이루어 현재의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혜를 담아야만 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에너지 믹스(energy mix)”는 특정된 지리적 영역에서 에너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다양한 주요 에너지원의 구성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100%의 에너지 공급을 가정한 구성비로 표현된다. “What is the Energy Mix?” https://www.planete-energies.com/en/medias/close/what-energy-mix.
- 2. 전력통계정보시스템, “에너지원별 발전량” 참고, http://epsis.kpx.or.kr.
- 3. 연합뉴스, “탈원전 전기료 논란… 인상 ‘있다 vs 없다’” (2017.10.13), https://www.yna.co.kr/view/MYH20171013004700038.
- 4.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건설비, 연료비, 운영비 등 발생한 비용을 생산한 전력으로 나누어 구하는 발전단가와는 달리 환경비용 등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며 발전시설의 건설에서 폐기까지 모든 비용을 반영한다.
- 5. 최현정, “탈원전·탈석탄 정책의 문제점: 그 경제성과 지속가능성은?” Asan Issue Brief 2018-05 (2018.2.5).
- 6. 조선일보, “탈원전땐 40% 전기료 폭등” 보고서, 文정부 처음으로 뭉갰다” (2022.6.7),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2/06/07/G6IU55II5ZEWJJWBV4X6XLT4OM/.
- 7. 매일경제, “올해 예상적자 30조원” (2022.5.25), https://www.mk.co.kr/news/stock/view/2022/05/462481/.
- 8. 관계부처합동,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안)” (2022.7.5).
- 9.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발전의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적정 전원믹스 연구” (2015.12).
- 10. 에너지경제연구원, “KEEI 중기 에너지 수요 전망 2020-2025” (2021.7), https://policy.nl.go.kr/search/searchDetail.do?rec_key=SH2_PLC20210275960.
- 11. 중앙일보, “외신도 놀란 ‘한국 탈석탄 서명’… 정부 ‘이행 약속은 아니다’” (2021.11.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21687#home.
- 1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선인 공약,” https://policy.nec.go.kr/.
- 13. 한국리서치, “에너지 전환 4년,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2021.7.28), https://hrcopinion.co.kr/archives/18925
- 14. 현대경제연구원, “탈원전 · 에너지전환정책의 성공 요건: 원전 및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2018.6.18).
- 15. 전력거래소, “2021년도 전력계통 운영실적” (2022.5).
- 16. 한국전력공사, “2022년 1월 전력통계월보(제519호)” (2022.3.11).
- 17. 에너지신문, “태양광 패널용 유리 전량 수입 의존… 대부분 중국산” (2022.2.10); 한국경제신문, “태양광 시장은 中 놀이터… 한국 글로벌 먹잇감 됐다” (2021.10.5); 매일경제신문, “태양광, 풍력 수입 기자재 90%가 중국産” (2021.10.6); 이투뉴스, “중국산 수입, 판매 늘어난 태양광 시장” (2021.5.31).
- 18. 매일경제신문, “출범 1년차 탄소중립위원회 내부에서도 ‘분과 너무 많아’ 자성 목소리” (2022.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