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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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아산서원 알럼나이(졸업생)7명은 지난 8월 15일을 전후해 통일독일을 둘러봤다. 통일 20여년이 지난 지금 독일연방의 모습은 어떠한가. 출신을 둘러싼 갈등은 어느 정도 진정됐을까. 과거사는 어떻게 해결됐을까. 그런 물음들은 한반도 통일에 시사점을 제공할 포인트들이었다. 모두 합해 약 열흘간의 취재. 그 결과를 총 9개의 기사 형식의 글로 종합했다.

 

<한-독 청년통일마당 취재 기사 시리즈 5>

사회 통합의 견인차 독일 과학계

베를린 동독 지역의
아들러스호프 단지
통독 최대 과학타운

서원 졸업생 김현욱

 

지난 8월12일 베를린 자유대학(FU Berlin). 분단 시절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공산주의적 교육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대학답게 캠퍼스에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통일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알렉산더(Alexander Pfennig)를 만났다. 본인을 베를린 토박이로 소개한 알렉산더는 “젊은 세대들에게 더 이상 동서독 지역 구분은 없다. 정부의 파격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베를린은 매력적인 도시다”라고 말했다. 옛 동독 지역의 한복판, 베를린에서 젊은 인력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그곳이 새로운 수도이기 때문일까. 여기엔 구 동독 지역의 과학기술 부흥을 이루고자 한 독일 정부와 국민의 수많은 노력이 깔려있다.

동서독 과학기술교류, 32차례 모임으로 이뤄낸 끈기의 결실

통일 전 동독의 이공계 교육은 당의 목표와 요구에 따라 계획됐다. 연구자들의 의지에 따라 학문을 탐구하기보다는, 국가를 위한 응용에 초점을 두고 연구가 진행되었고 자연스레 비효율적으로 흘러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김종선 연구원은 그의 보고서에서 ‘1980년대 동독 과학기술계는 완제품을 조각내 기능을 역으로 추적하는 역공학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자 노력하는 정도’라며 통일 전 동서독 과학기술계의 수준 차이를 언급했다.

동서독 과학기술계는 통일 3년 전인 1987년 본격 교류를 시작했다. 과학기술협정 체결 시 동서독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 달랐다. 서독은 과학기술계 교류를 통해 동질성을 회복하고 동서독 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동독은 독자적인 과학기술연구 체제를 세우는 게 목표였다. 통일되기까지 3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과학기술교류를 통해 동서독은 상대의 과학기술계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석탄분석, 원자로 안전, 핵물리학 등 27개 분야에서 교류가 이루어졌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동서독 과학기술계 사이에서 150회가 넘는 만남이 성사되었다. 430명 과학자가 동서독을 왕래하며 핵공학기술학회, 에이즈학회, 미생물학회 등 세미나와 포럼에 참여하였다. 생명과학분야에서는 3건의 합동 특허를 출원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었다. 고려대학교 김상무 교수는 그의 논문 ‘독일통일 과정과 이후 구동독 대학의 변화 -구조와 인적 변화를 중심으로’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성향이 덜한 자연과학, 의학의 경우 사회과학 전공보다 신규 임용자 중 동독 출신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언급했다. 서독의 과학기술계 시스템이 동독지역으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동독의 과학기술계 인력들은 대학 및 연구기관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정치체제가 서로 다른 동서독이 1989년 첫 과학기술협정을 맺기까지 32차례의 모임을 가졌는데 당시 협상을 주도하던 정치인들의 뚝심이 없었더라면 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과학기술협정 체결의 주역인 당시 서독의 과학기술부장관 Heinz Riesenhuber 박사는 1989년 5월 24일 동독을 방문하여 과학기술협정을 통한 동서독 교류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6개월 후, 그는 독일 Bonn에서 열린 ‘Science Summit’에서 수학자이자 정치가인 프랭크 테르페(Frank Terpe) 동독 기술부 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두 대표는 통일 뒤 과학기술계의 통합을 위해 동독지역에 과학기술연구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동독 지역에 막스 플랑크 연구재단(Max Planck Institute)이 자리 잡게 됐다. 막스 플랑크 연구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당시 회담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연방교육연구부의 첫 장관인 유르겐 뤼트게르스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대폭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독과 서독에 관계없이 과학기술연구 네트워크를 형성시켜 이공계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 그에 이어 장관을 맡았던 에델가르드 불마흔(Edelgard Bulmahn)은 매년 같은 정책의 되풀이는 없을 것이라며 역동성을 가진 과학기술정책을 펼쳤다.

다양한 혁신정책으로 평형발전에 박차를 가하다

통일 전 3년 간의 짧은 과학기술계 교류는 오랜 분단으로 인해 벌어질 대로 벌어진 동서독 과학기술계 역량의 격차를 완전히 줄이기에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독일 정부는 통일 이후에도 과학기술계 통합을 위해 다양한 혁신정책을 내놓았다. 독일 학자 200여 명으로 구성된 학술정책자문위원회는 1993년 제 12차 독일연방의회에서 구 동독 지역의 과학기술 부흥을 위해 연구소 간 협력 강화, 정부의 연구 지원, 연구인력 쇄신 등 다양한 정책 기조를 제안하였다. 이에 따라 구 동독 지역에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뿐만 아니라 라이프니츠 연구소, 프라우엔호프 연구소 등 총 108개의 연구소가 들어섰다.

‘중점연구분야 지원 사업’과 ‘혁신연구 지원 사업’을 통해 구 동독 지역 소재 대학들에 대해 연방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을 장기간 실시하였다. 동베를린의 훔볼트 대학, 작센주의 드레스덴 공과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 튀링엔주의 예나 대학 등 21개 분야 및 대학이 지원대상이었다.

지역혁신 프로그램(InnoRegio) 또한 동독과 서독의 과학기술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동독지역의 도시 내 위치하고 있는 교육 및 연구기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산ㆍ학ㆍ연 연계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통일부에서 발간한 독일통일백서에 따르면 지역혁신 프로그램에는 총 2억 유로 이상이 투입되었으며, 이를 통해 참여기업 중 30%가 특허를 취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용이 증가하였다. 이 외에도 동독지역의 인적 손실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과 첨단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기업 연구개발 역량강화 프로그램 또한 수행하였다.

물리학 박사 출신의 메르켈 현 독일 총리는 2006년 당선 이후, 독일대학의 연구능력 향상과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독일 우수대학 집중육성 사업(Exzellenzinitiative)’을 추진했다. 하버드 대학교, 캠브리지 대학교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과학기술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독일의 학제를 국제적인 기준에 맞추어 재편성, 석박사 과정을 새롭게 단장했다.

1단계(2006년~2010년), 2단계(2007년~2011년)를 거치며 미래 컨셉 연구 대학교와 신진학자 양성 대학원, 연구 클러스터를 선정하여 총 19억 유로를 지원하였다. 2014년 현재 3단계에 들어간 상태이다. 구 동독지역에는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예나가 사업 대상 지역이다. 베를린에는 현재 화학촉매 분야와 신경질환 분야를 포함한 총 12개의 교육프로그램이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베를린 자유대학, 베를린 공과대학 세 개의 대학들 간의 연합으로 이루어져 지원을 받고 있다.

독일 브레멘 대학의 주타 귄터 교수는 그의 논문 『Jahre nach dem Mauerfall: Transformation und Erneuerung des ostdeutschen Innovationssystems』에서 동독지역 개발 프로그램을 다음의 네 그룹으로 나누었다. ▷네트워크 지원 프로그램 ▷R&D 협력지원 프로그램 ▷ 단일 R&D 프로그램 ▷R&D 인력 지원. 과학기술계 통합과 부흥을 위해 광범위하게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정책의 성공사례, 최대과학단지 아들러스호프

5회 메인 사진

아들러스호프 전경

베를린 자유대학의 반대편, 베를린의 동쪽에는 아들러스호프(Adlershof)라는 독일 최대의 과학단지가 있다. 아들러스호프 과학단지의 부지는 20세기 초반 비행기술 실습장과 1차 세계대전의 군수병참기지 역할을 담당했으며 1930년대 나치 때에는 항공기술연구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후 과학기술원과 동독 미디어 센터가 들어섰으며 이 기관들은 독일 통일 전까지 유지되었다.

통일 이후 아들러스호프 과학단지는 독일 과학기술정책의 성공 사례가 됐다. 현재 아들러스호프는 1003개의 기업체와 연구소가 입주해있고, 1만5450명의 직원들과 9451명의 학생이 생활하고 있는 독일 내 최대, 세계 15위권의 과학기술단지이다. 교육과 연구, 적용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고 베를린 지역이 구 동독 지역의 과학기술계 중심지로서 성공적으로 재건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출판한 『기초자료로 본 독일 통일 20년』에 따르면 2004~2006년 당시 베를린이 구 동독 지역의 연구개발비 중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베를린 구 동독 지역은 거듭나고 있다.

아들러스호프는 기술창업 회사들이 기술사업화의 초창기부터 생산, 유통을 거쳐 수익을 창출하는 전 단계를 효율적으로 지원한다. 기술적 자문을 제공함과 동시에 마케팅, 재정조달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와 같은 지원을 통해 아들러스호프에는 광학, 정보통신기술, 환경기술 등 첨단분야 기업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산ㆍ학ㆍ연 연계를 통해 과학자들의 도전정신을 성장동력으로 바꾸고자 한 정책적 지원들이 주효했다. 베를린에서 공부를 마친 인재들은 자연스럽게 아들러스호프 과학단지로 흡수돼 동서독 출신에 상관없이 활발히 연구한다. 단지 내, 행정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린다(Linda Jentsch)씨는 훔볼트 이노베이션(Humboldt Innovation)을 사례로 들었다. “훔볼트 대학교가 100% 지분을 출자하여 설립한 ‘훔볼트 이노베이션’은 훔볼트 대학교의 졸업생들이 아들러스호프에서 자리를 잡도록 돕고 있다”며 교육과 연구, 기술혁신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