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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면서 ‘대남사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새해를 전후로 한 북한 동향을 보면 대남정책 전환과 함께 두 가지 ‘이례적인’ 내부 조치가 병행되고 있다. 하나는, ‘대남’사업 전환이라고 하면서도 남한에 대한 조치가 아닌 북한 내부 조치를 우선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대남정책 전환과 무관해 보이는 지방경공업 발전 문제가 연초부터 북한의 정책 이슈에서 비중을 두고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남정책 전환이 내부 교양 강화와 민생 불만 해소 추진으로 이어지면서 김정은이 정책 전환을 시도하는 배경과 성격이 수세적인지, 공세적인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필자의 주장은 최근 북한의 대내외 정책 기저에 수세적인 기류가 없지 않으나, 이번 대남정책 전환 배경에는 내외 곤경(困境)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공세적 성격이 짙다고 본다. 북한이 남한과의 통일‧안보 경쟁에서 속도 조절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대북 경계가 이완될 수 있다. 이번 대남정책 전환은 핵미사일 고도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세적 조치로 평가된다. 내부적으로 배수진을 치고 독사 전술로 한‧미의 대북정책 근간을 흔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문제 삼은 우리의 대북정책 방향으로는 ‘좀 더 넓고, 길게 보는 일관된 정책 구사’를 제언한다. 북한 지도부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긴 안목에서 보고 통일을 포괄하는 안보 또는 평화 관리가 필요하다. 안보‧평화와 통일을 배척 개념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정책이든 성과를 거두려면 일관성이 중요하다. 안보를 확고히 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평화를 관리하며, 끊임없이 통일을 지향하는 노력은 견지되어야 한다. 통일·대북정책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의 확대재생산은 북한의 의도에 휘말리는 것이다.

 

1.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은 ‘수세적’ 성격인가, ‘공세적’ 성격인가?

 
김정은은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면서 ‘대남사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대남정책 ‘전환’의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 국가’로 간주하고, ‘민족, 화해, 평화통일’이라는 정책개념을 폐기하며,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는 준비” 사업에 초점을 맞추라고 지시했다.1 이에 따라 앞으로의 대남전략·전술은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을 배합하는 전통적 전술에서 비평화적, 특히 핵전쟁 위협을 지원하는 공세적 대남전술 구사가 예고되었다.

그런데 새해를 전후로 한 북한 동향을 보면 대남정책 전환과 함께 두 가지 ‘이례적인’ 내부 조치가 병행되고 있다. 하나는, ‘대남’사업 전환이라고 하면서도 남한에 대한 조치가 아닌 북한 내부 조치를 우선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남정책 및 기구는 물론 헌법 규정‧우상화물 관리‧주민 교양에서 ‘민족, 화해, 평화통일’ 개념과 관련된 것들을 다 지워버리고 ‘대한민국을 적대 국가’(엄밀히는 ‘괴리’)로 간주하는 정책‧제도‧교육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2 다른 하나는, 대남정책 전환과 무관해 보이는 지방경공업 발전 문제가 연초부터 북한의 정책 이슈에서 비중을 두고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지방공업 발전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다시 이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해 1월 23~24일 묘향산에서 노동당 정치국 확대 회의를 소집했다.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은 “지방 인민들에게 초보적 생필품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은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면서 “매해 각도마다 2개 군(郡)씩 지방공업공장을 증설할 것”을 지시했다. 그 이행 여부로 당 간부들을 평가하겠다면서 건설인력으로는 군대를 동원하라고 했다.3

북한 정권의 80년 정책사에서 세습 지도자가 선대의 유훈인 ‘우리민족끼리’ 정책을 폐기하고 남북관계를 ‘두 개의 적대국 혹은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게다가 적대관계 ‘규정’(엄밀히는 ‘공개 선언’)에 따른 후속 조치로 대적(對敵) 교양 등의 내부 조치에 우선순위를 둔 점도 특이하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발제한 ‘지방공업 발전’ 문제의 후속 조치를 결정하기 위한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이 생필품 공급 부진 상황을 ‘심각한 정치문제’라며 공개적으로 내부 취약점을 드러낸 점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대남정책 전환이 내부 교양 강화와 민생 불만 해소 추진으로 이어지면서 김정은이 정책 전환을 시도하는 배경과 성격이 수세적인지, 공세적인지가 하나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남정책 전환의 ‘성격’은 북한의 의도를 판단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데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특히 북한이 남한과의 통일‧안보 경쟁에서 속도 조절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대북 경계가 이완될 수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가. ‘수세적’ 측면의 제한성
 
앞에서도 밝혔지만, 김정은이 공언한 ‘남조선 평정’ 혹은 ‘대사변 준비’가 내부 조치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북한 관찰자들 사이에서 김정은의 남북관계 단절과 대남 위협 강화가 내부 단속을 위한 ‘수세적 조치’라는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은 남북 간 체제경쟁에서의 패배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4으로, 일종의 ‘독사 전략’이기보다는 ‘고슴도치 전략’이라는 것이다. 수세적 방어전략이라는 시각은 대남정책 전환을 남북 간 체제경쟁에서 김정은의 패배 의식의 발로로 해석하면서 내부 체제 취약요인의 확산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김정은의 ‘두 개 교전 국가론’과 ‘대남정책 전환론’은 코로나-19 유입이 우려되자 국경을 밀봉했듯이, 핵미사일 일변도 정책에서 내부 불안요소의 침습·확산을 차단하면서 체제관리에 좀 더 비중을 두려는 봉쇄조치일 수 있다. 김정은이 체제 이반현상을 코로나 사태 이상의 위기로 제대로 인식했다면 가능한 해석이다.

수세적 내부 체제관리 방향으로는 다음 3가지를 가정할 수 있다. 첫째, 남북 간 생활격차가 극심해지면서 북한 사회 내 남한풍 또는 통일 희구심리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차단 전략 추구다. 둘째, 김정은의 핵 질주가 남한의 강력한 맞대응으로 이어지면서 그 부담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장기적 차원의 출구전략 시동이다. 셋째, 민생 만회 전략일 수도 있다. 오랜 기간 방치된 민생을 부분적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남쪽과의 안보 경쟁을 속도 조절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지방경공업 발전, 제2의 천리마 운동 주장 등 최근 김정은의 민생 행보가 말해주듯이 당장 흡수통일 위기 인식은 아닐지라도 내부 불만이 누적됨에 따라 의식주 개선을 위한 동원체제 강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주장은 최근 북한의 대내외 정책 기저에 수세적인 기류가 없지 않으나, 정책 발동의 배경에는 내외 곤경(困境)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공세적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에 입각한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고 본다. 이하 최근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과 내부 조치가 ‘수세적’인 수준에서 멈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부 체제 이반현상 차단 ▲핵 편향 정책 부작용 치유 ▲내부 불만 해소를 위한 의식주 개선 추진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나. 간접적으로 ‘남한풍 차단’ 도모
 
첫째, 남한풍 차단 전략 가능성이다.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적대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정책 전환을 선언하면서 그 이유로 ‘남한의 일관된 흡수통일’ 정책과 ‘미국의 식민지 속국에 불과’한 남한 사회의 성격을 들었다. 그리고 김정은의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 연계 조건들 분리” 지시에 따라 북한은 경의선 남북 통행로에 지뢰를 부설하는 등 MDL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이 남한에 대한 동경심 대신 적대감을 고취함으로써 체제 이반 심리의 확산을 방지하려는 전형적인 차단과 단절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은 김정은의 아래와 같은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김정은은 북한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통일노선으로 민족의 지지를 받았으나 남한의 방해로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남한의 역대 대북정책은 모두 “북한 정권 붕괴”를 추구했다면서 “괴뢰정권이 10여 차례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통일 기조는 변함이 없는 점”과 “헌법이라는데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된 점이 증거라고 했다. 또 “북한을 붕괴시키겠다는 야망은 민주든, 보수의 탈을 썼든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식민지 속국에 불과”한 남한 사회의 성격을 들어 남한과 대화 할 수 없다고 했다. 김정은은 “남조선은 정치는 실종되고, 사회 전반이 양키 문화로 혼탁하며,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신불수” 정권이라며 “동족이라는 수사 때문에 식민지에 불과한 족속들”과 통일을 논할 수는 없다고 했다.5

그러나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우려나 남한풍·자유주의 사조 차단은 이번 대남정책 전환의 부수적인 효과로 노릴 수는 있어도 핵심 목표로 보기 어렵다. 남북 간 체제경쟁의 운동장이 기운지는 반세기가 흘렀다. 대남 동경심과 비사회주의 확산이 북한체제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는 있으나 이미 수년 전부터 강력하게 단속해 왔다. ‘전사회적 비사회주의·반사회주의 투쟁’을 전개하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청년교양보장법(2021)·평양문화어보호법(2023)을 잇달아 제정해 통제를 강화하면서, 위반자들을 공개 처형해왔다. 남한풍에 대한 수세적 방어에서 ‘양키 문화’ 혹은 ‘반신불수 정권’의 사상이라고 공세하고 있으나, 북한 내 비사회주의 문제를 이번 정책 전환의 직접적인 동기로 보기는 어렵다.

 
다. ‘핵 개발 부담 완화’와는 무관
 
둘째, 장기적으로 핵폭주 출구전략일 가능성이다. 이번 조치가 핵 개발 몰두와 민생 유예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수세적인 조치가 아님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작업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김정은은 남북 간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의식의 발로로 지난 10여 년 핵 개발에 몰두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을 초래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남한의 대응, 북한의 추가조치로 이어진 악순환으로 북한의 핵 개발 부담은 지속 증대되었고, 민생 유예가 장기화로 사회적 불만과 권력층 내 정책 이견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그 사실은 김정은의 공개적인 설득과 지적(2022.6 최고인민회의, 2022.12 당 전원회의)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집권 초 김정은의 ‘인민들의 허리띠를 더는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주장(2012.4)은 2019년 12월이래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핵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바뀐 뒤 변함이 없다. 대남정책 전환 주장 이후에도 연일 ‘국방력 강화’를 주문하며 핵미사일 고도화와 대량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김정은이 말로는 남북관계를 ‘적대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대남정책 전환을 선언하면서 행동으로는 연초부터 해안포 포격 도발로 우리 서북 도서를 위협하고, 각종 미사일 도발을 지속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며, 공세적이다. 무엇보다도 핵개발 일변도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데 있다. 김정은은 치적으로 내세울 게 핵개발 밖에 없다. 핵미사일 고도화 노선은 김정은 지배 그 자체이다. 그런데 내부적으로 오랜 핵개발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핵미사일 고도화가 필요한 이유로 “대한민국의 악질적인 대결사 추구”를 둘러대면서 같은 민족이라는 ‘굴레’를 벗겨 남한에 대한 핵 공격 위협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물론 당면해서는 정책 전환이라는 기만전술로 남남갈등과 한·미 공조를 이간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남한 사회를 겨냥해 ‘전쟁이냐 평화이냐’라는 프레임을 걸겠다는 것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남한의 대북정책이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여론을 남한 사회에 조성하고 싶은 것이다. 더 큰 노림수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 전환을 도모하겠다는 것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겨냥한 정세 조작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은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핵미사일을 활용한 벼랑 끝 전술과 수위 조절로 트럼프에 유리한 정치적 성과물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한미동맹을 허물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두 개 국가론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에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 있다. 남한풍 차단이나 핵 질주 부작용의 치유라는 목적은 부차적이다.

 
라. 경제집중 의도와도 무관
 
셋째 민생부진 보완전략일 가능성이다. 이를 최근 추진하고 있는 ‘지방경공업 발전’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김정은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생필품 공급 부족의 심각성을 거론하면서 지방에 경공업 공장 증설을 약속했다. 그는 “인민들의 소박한 생활상 요구마저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고 “수도와 지방의 차이가 심각하다”며 경공업 공장을 매년 각도에 2개 시군씩 10년간 설치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문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당 정치국 회의를 1월 23~24일 묘향산에서 소집했다. 김정은은 “지방 인민들에게 초보적 생필품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은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면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은 과거처럼 말로만 해오던 선전이 아니라 실지 실행을 결단한 변혁적 정책”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정은이 북한 내부의 취약점을 왜 공개적으로 밝혔을까. 지난 5년 북한의 경제 사정에 대한 자체 평가는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김정은은 2019년 12월 당 전원회의 이래 경제사업의 ‘침체와 부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 증산을 독려했다6

그 이후 2년은 제재·방역·자연재해 때문에 “인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불안정한 요소가 많다”(2020.10)라고 하거나, “어느 부문이나 대단히 어렵고, 부족하다”(20214) 또는 “식량 형편이 긴장해졌다”(2021.6)라는 등 외부요인 탓을 하면서 경제난을 시인했다. 마냥 경제가 어렵다고만 할 수가 없어서인지 2022년에는 성과 위주로 평가하면서 ‘산적된 폐단과 부진 상태’를 내부적으로만 거론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7 그러다가 지난해 경제 사정은 개선된 것으로 평가했다. 2023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곡물 풍작 등 “인민경제 전반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했다”고 주장했다.8 그러나 평양 위주의 의식주 개선으로 지방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자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간장·된장 공장 증설을 거론했다.

이상에서 북한의 경공업 공장건설 추진 동향과 경제 사정 선전방식을 길게 기술한 이유는 생필품 공급 부족을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한 김정은의 발언이 그리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님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가 지방주민의 생활난을 실제로 심각하게 인식했다면 왜곡된 상황을 오랜 기간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각한 문제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발제를 옹호하려는 공세적인 선전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묘향산에서 민생대책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30년 전 묘향산에서 사망한 김일성의 ‘우리민족끼리’ 유훈은 어겼으나 ‘민생제일주의’는 지키고 있음을 과시했다. 북한은 1994년 7월 김일성이 묘향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도 경제난이 극심해지자 그 대책 회의를 주재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공업 발전’에 집중 투자계획을 밝히면서도 평양에 5년간 5만 세대 살림집 건설이라는 생색내기 사업을 끼워 넣었다. 그러다가 농촌을 의식해 김정은이 2021년 12월에 농업 기계화, 농촌 주거 개선 등 북한판 새마을운동인 ‘농업발전 10년 계획’을 제시했으며, 이번에 다시 ‘지방공업 발전 10년 계획’을 내세웠으나 그 추진 방식은 준(準) 자력갱생 방식이다. 군대를 동원해 시군마다 간장·된장 공장을 건설해 줄 테니 원료는 자체로 조달해 가동하라는 것으로, 규모의 경제와도 어긋난다. 내년 당 창건 80돌과 ‘경제발전 5개년(2021~25) 계획’ 종료를 앞두고 지방주민들의 불만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구색 맞추기 사업을 끼워 넣은 셈이다.

 

2. 김정은의 대내외정세 인식과 현상 타개 전략

 
최근 김정은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이 남북 간 체제경쟁에서의 패배와 핵 개발 일변도 정책의 부작용을 자인한 데서 비롯된 정책이라면 ‘수세적’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김정은의 주장이 ‘두 개 국가로 가도 좋으니 남북이 서로 흡수 통일하지 말고 공존하자’는 것이고, 앞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자기 백성들 민생도 챙기겠다’는 주장이라면 환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의 도래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외부의 제재·압박이 가중되고 내부의 불평·불만 소리가 더 커져야 생존을 위한 수세적 전략으로 나올 것이다.

최근 일련의 동향이 공세적 상황 타개 전략임은 무엇보다도 김정은의 내외정세 인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남북 간 체제경쟁의 운동장이 기울어진 지는 오래지만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당면한 정세 인식일 것이다. 김정은은 2023년 하반기 이후 국경무역 재개·곡물 증산·대러 외화벌이로 경제가 개선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절대적으로는 제재 이후 경제 규모가 워낙 크게 위축되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나, 최근의 호전으로 주민들에게 한동안 더 인고(忍苦)를 강요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습이다. 특히 대러 밀착을 통한 ‘국방경제’와 인력송출로 통치자금이 채워지면서 여유를 부려 연초 농기계공장 시찰, 지방발전계획 제시 등 민생 행보도 늘리고 있다.

김정은의 자신감은 내부사정보다 유리한 주변 정세 전개에서 더 비롯된다. ‘신냉전’과 지정학의 귀환, 한·미의 선거 등 주변 정세의 유동성, 북·중·러 연대 강화로 북한이 ‘전략 국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듯하다. 특히 핵미사일 고도화에 진전이 있고, 무기고에 첨단장비가 쌓여가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오판’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김일성의 6.25 전쟁 도발 이후 70년 만에 김정은이 중·러를 등에 업고 한반도 정세 조작이 가능한 유리한 기회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의 정책 전환이 ‘수세적 성격의 고슴도치 전략’이라는 주장은 앞에서 검토한 북한의 당면 과제 즉, 내부 체제 이반현상 차단, 핵 편향 정책 부작용 치유, 내부 불만 해소를 위한 의식주 개선 추진 외에 김정은의 핵 사용과 전쟁 위협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기도한다면’등 조건부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러시아에 탄약과 무기를 대규모로 수출하고 있다는 점9을 근거로 들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김정은의 말은 정세 판단의 중요한 단서이나 그의 말 전체가 사실은 아니며, 그의 ‘입’과 ‘손’을 동시에 봐야 한다는 점이다.10 연초부터 ‘고체연료 기반 극초음속 IRBM 시험발사(1.14), ‘잠수함발사 전략순항 미사일(SLCM) 불화살-3-31형 시험발사’(1.28) 등 한·미를 위협하는 핵미사일 도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3. 결론 : 향후 북한의 대남공세 전망과 우리의 대응방향

 
북한이 핵 개발로 한반도 현상 변경을 추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김정은은 집권 초반부터 외부의 위협을 과대포장하는 역(逆) 강압으로 핵미사일 고도화에 집중했다. 핵 개발에 ‘성공’하자 핵무기의 억제력 외에 ‘제2 사명’을 거론하면서 김정은 지배 자체와 동일시해 핵 개발 정책을 절대화했다. 핵미사일 고도화를 장기간 추진하면서 부작용과 한계가 드러나자 새로운 정당화 논리가 필요해졌다.

폐쇄와 단절은 북한의 오랜 체제관리 수법이다. 그러나 이는 핵 개발 전략의 보조(補助) 전략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대남정책 전환을 내부 단속에 활용할 정도로 체제 이반현상이 현저해졌음을 자인했다. 그럴수록 핵 무력을 한반도 현상 변경에 공세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것이다. ‘영토 완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와 ‘독립 국가로서의 주권 행사’를 동시에 거론함으로써 남한 사회를 헷갈리게 할 수도 있다.

요컨대, 이번 대남정책 전환은 핵미사일 고도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공세적 조치이다. 전쟁할 의사가 없다는 신호와 핵전쟁 준비를 강화하겠다는 신호를 동시에 발신하는 것은 당장 ‘전쟁’은 아니더라도 핵 공갈이 포함된 ‘도발’을 예고한다고 보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배수진을 치고 독사 전술로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근간을 흔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겠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단발성 도발로는 한·미에 ‘전쟁 대 평화’ 프레임을 걸기가 어려움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대남 책임전가형 혹은 회색지대 도발, 점증형의 복합도발, 하이브리드 도발이 우려된다. NLL·MDL에서의 충돌이나 천안함 폭침 유사 도발을 시작으로 2013년 3월의 전방위적 전쟁 위협, 2015년 8월의 준전시상태 선포, 2017년의 핵미사일 도발을 올해와 내년 상반기 사이에 단계적으로 재현하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김정은의 비합리성과 정세 전개의 우발성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지나치게 불안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한도 정책 전환, 대적 교양, 경제 재건 등 앞에서 거론한 ‘수세적 성격’의 조치들을 취해야 하고, 9차 당대회(2026.1)를 앞두고 내치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남노선 전환과 핵전쟁 위협에 대비한 우리의 대응은 군사 및 민관부문의 대비 태세를 제대로 갖추면서, 북한의 의도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 북한의 이간 전술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말 폭탄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차분하고 단호한 대응은 많은 사람의 요구사항이다. 전쟁할 결심과 함께 대화할 결심도 필요하다는 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최근 북한의 도발에 대해 미국은 끊임없이 ‘외교’를 거론하고 있다. 북한의 반응과 무관하게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음을 밝힐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는 지난해 워싱턴 선언 이후 결성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확장억제체제를 강화하고,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을 통해 구축된 한미일 협력체제를 통해 공동의 미사일방어훈련 및 대잠훈련 등을 활발히 실시하여 공동 대응태세를 강화해야한다.

북한이 문제 삼은 우리의 대북정책에 국한해 좀 더 보탠다면 ‘좀 더 넓고, 길게 보는 대북정책의 일관된 구사’를 제언한다. 우리의 정책 대상은 북한의 지도자가 전부는 아니다. 권력 엘리트, 주민을 포함해 3주체를 고루 상대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을 배척 개념으로 간주하지 말고, 남북관계를 긴 안목에서 보고 통일을 포괄하는 평화 혹은 안보 관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어떤 정책이든 성과를 거두려면 일관성이 중요하다. 북한 지도부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안보를 확고히 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평화를 관리하며, 끊임없이 통일을 지향하는 노력은 견지되어야 한다. 통일·대북정책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의 확대재생산은 북한의 의도에 휘말리는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노동신문』, 2023.12.31.
  • 2.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공화국의 부흥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당면과업에 대하여”, 『노동신문』, 2024.1.16.
  • 3. “김정은 ‘지방에 생필품조차 제공못해 당정에 심각한 정치적 문제’”, 『연합뉴스』, 2024.01.25.
  • 4. 천영우, “[조선칼럼] 서독은 끝까지 동독의 2국가 체제 요구를 거부했다”, 『조선일보』, 2024.1.24.
  • 5.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노동신문』, 2023.12.31.
  • 6. 12월 자력갱생, 경제질시 재편으로 ‘경제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듬해 초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그해 3월에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을 하면서 ‘다른 사업은 뒤로 미루겠으나 병원은 오는 10월 당창건 75돌까지 200일 전투로 완공하겠다’고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올해 평양종합병원을 완공하여 개원한다”고 했다.
  • 7. 김정은은 2022년의 경제 상황에 대해, 2021년 알곡생산계획 미달과 경공업공장 생산 부진으로 ‘인민들의 초보적인 생할 조건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 8. 2023년에 “알곡 103% 생산 등 12개 고지가 모두 점령되었고… 국내총생산은 2020년에 비해 1.4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노동신문』, 2023.12.31.
  • 9. 우리 군 당국의 평가에 의하면,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과 600mm 초대형 방사포인 KN-25가 양산되는 즉시 수십 발 규모로 러시아에 흘러 들어갔다. KN-23/25는 북한이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신형 대남용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포탄은 최대 수백만 발이 러시아로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연말 기준 북한이 러시아로 보낸 컨테이너는 약 5,000개이다. 152mm 포탄 기준 약 230만발, 122mm 방사포탄 기준 약 40만 발을 채울 수 있다. “‘전쟁 불사하겠다’더니 핵심 무기 수출…북한의 아이러니”, 『중앙SUNDAY』, 2024.1.21.
  • 10. 히틀러·스탈린·김일성 등 전쟁범죄자들은 전쟁을 위협하면서도 평화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다. 협박과 회유, 혼란스러운 신호로 상대편 내부에서 저마다 편리하게 해석하도록 함정을 파놓아 분열을 유도한다. 강석천 칼럼, “생존 위해 萬難 각오해야 敵도 同盟도 움직인다”, 『조선일보』, 202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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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범
한기범

객원연구위원

한기범 박사는 국가정보원에서 20여년 북한 분석관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 2월 3차장(북한 업무 총괄)을 끝으로 퇴임했다. 퇴임 후 고려대 초빙교수,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3년 4월 ~ 2016년 2월 국정원 1차장(북한 및 해외 업무 총괄)을 다시 맡았다. 이후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에 이어 북한연구소에서 석좌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2024년 1월부터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도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