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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해리스 누가 되든
국제질서 근본부터 바뀔 것
상황별로 달라질 시나리오
정파 초월해 지혜 모을 때
 
미국 대선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미국 정치뿐 아니라 국제질서의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고 한반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대선 결과가 국제정치에 미칠 영향부터 살펴보자. 트럼프와 해리스의 외교 노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최근 수년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국의 컬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1980년, 1990년, 2023년 모두 미국은 글로벌 GDP의 25%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힘이 실제로 약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미국에 대한 근거 없는 비관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의 능력이 아니라 의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정점에 달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절정의 순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두 개의 전쟁을 시작했고 임기 말에 최대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 후유증을 다스려야 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다소 소극적인 외교를 펼쳤다. 예를 들어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막지 못했고, 시리아 내전에서 2013년 정부군이 미국이 그어놓은 화학무기 사용 금지라는 레드 라인을 넘었을 때도 무대응으로 임했다. 그러한 미국의 리더십 행사 의지의 약화 징후를 목도한 러시아, 중국은 세계 도처에서 공세적으로 힘의 공백을 파고들었다.

2017년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공개적으로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의지를 버렸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반중국, 반이민, 반세계화의 길로 나아갔다. 동맹에 대한 그의 불신은 미국-나토 관계를 악화시켰고 모든 외교 문제를 거래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의 외교는 2차대전 이전 미국의 오랜 고립주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징후를 보였다. 실제로 그는 지난 7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관세 인상을 주장하면서 19세기 말 보호무역주의자였던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를 언급했다. 과거 공화당의 오랜 보호무역주의 전통과 자신의 주장을 연결시키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전략적 강점인 60여 개 동맹국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하는 데 힘썼다.2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50여 국가들을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게 만드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트럼프 후보는 당선되는 경우, 미국우선주의라는 1기 때의 고립주의 성향 외교 노선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몇 주 전 대선 TV토론에서 트럼프 후보는 사회자가 “당신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묻자 끝내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당선되면 곧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러시아가 무력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러시아에 양보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미국이 지켜 오려 한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크게 약화되고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권위주의 세력권의 기세는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무력으로 타국 영토를 침범하는 사례가 용납되는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중립국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했고 동유럽 국가들은 군비 강화에 여념이 없으며 한국의 방산업체들은 호황을 맞고 있다.

이에 비해 해리스 후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노선을 계승하면서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켜내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예측된다. TV토론에서도 동맹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강조했고 권위주의 세력에 대한 억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국제질서가 규칙이 지켜지는 세상이 될 것이냐, 아니면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냐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대선 캠페인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미국 대선 지지도 추이를 보면 해리스가 근소한 차이로 유리한 듯하다. 전국 유권자 지지도는 9월 17일 현재 해리스가 50% 트럼프가 46%로 해리스가 4%p 앞선다. 그러나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데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270명을 확보하면 승리한다. 대부분의 주들은 오랫동안 공화당이나 민주당 지지가 확실하기에 결국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7개 경합 주이다. 트럼프가 승리하려면 7개 경합주 중에서 4군데(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네바다)에서 이기고 최소한 나머지 3개 러스트벨트 경합주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중 한 군데에서 이겨야 된다. 그런데 9월 17일 현재, 트럼프 후보는 애리조나와 조지아 주에서만 1% 표차로 우세하고 나머지 주들에서는 모두 해리스가 우세하다. (위스콘신 50:47, 네바다 49:47, 미시간 48:47, 펜실베이니아 49:48, 노스캐롤라이나 49:48로 해리스 우위.) 그러나 너무 박빙이어서, 아직도 대선 전문가들은 누가 승리할지 모른다며 50:50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40여 일 동안에도 우발적 변수들이 등장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선 결과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만일 트럼프 후보가 승리하면 그는 대북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그럴 의지를 내비쳤다. 그 경우 우리 입장에서는 기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이 있다. 기대되는 점은 2019년 2월 하노이협상 실패 이후 고조되어 온 남북 및 북미 간 긴장과 적대관계가 다소 해소되고 한반도 상황이 안정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성사에 급급해 한국이나 일본의 안보 우려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채 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ICBM을 폐기하고 핵 개발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어주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을 향해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의 운반수단을 제거했다, 미국은 안전하게 되었으니 외교적 승리”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은 여전히 북한의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에 탑재될 핵 및 재래식 위협에 노출될 것이다. 한국인들의 심각한 안보 불안감은 고조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또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상승을 요구할 것이고,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나 역할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정적이었던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한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3각협력 체제도 유지해 나갈지 의문이다. 폐기 처분하거나 이런저런 발언을 통해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도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압박이 예상되고, 한미자유무역협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10% 일괄 관세를 매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는 이미 전 세계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 10% 일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해리스 후보가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유지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동맹뿐 아니라 한미일 3각협력 체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서도 과다한 상승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래적 관점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며 한미 관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우려도 있다. 해리스 후보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정은과 같은 독재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한 언급에서 보여지듯이 북한에 대한 정책이 ‘전략적 인내 3.0’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중국, 러시아, 중동 지역의 국제 이슈들에 몰두하느라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쓸 여유가 없고, 그래서 손 놓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 경우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는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당선, 해리스 당선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다 상정하고 각각의 경우, 어떤 대응 시나리오를 가지고 중요 현안들을 풀어갈지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두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 또한 상황의 중대함을 인식하고 정파를 초월한 통합된 담론과 전략 전술을 만들어 나가는데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북한의 위협과 미중 대결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제질서의 근본마저 흔들리고 있는 심각한 국제정치 상황은 우리 정치권과 지도층에게 한치의 방심과 소홀함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 본 글은 9월 21일자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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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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