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약속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가 최근 공개됐다. 북한에는 고개 숙이고 핵 위협 앞에는 고개를 돌린 문재인 정권과는 달리 윤 정부는 당당한 외교안보로 실리를 취하며 자유민주 국가로서의 가치를 드높일 것을 약속했다. 그래서 출범과 함께 글로벌 중추국가를 내세웠다.
북핵 위협 대응도 쉽지 않은데, 미·중 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혼돈의 국제정치 속에서 글로벌 중추국가가 가능하겠느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남북분단과 북핵 위협은 단순히 한반도 내부 정치가 아니라 국제정치가 실패한 결과다. 과거 안보 환경을 우리의 관점에서만 보던 ‘한반도 천동설’에서 벗어나,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찾겠다는 접근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래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는 ‘자유와 연대의 협력외교’가 주축이 된다. 한·미 양국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하고 일본과 높은 차원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지구촌 번영에 기여하는 한편, 과학기술 강군(强軍)을 만들면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점차 남북관계 정상화로 나아간다. 여기에 글로벌 경제안보 체제를 갖추고 코로나와 기후변화 등 신안보 이슈에 적극 대응하면서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해 나간다. 이것이 신(新)안보전략의 요지다.
이번 안보전략은 노무현 정부 이후 공개된 전략서 중 가장 잘 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국가안보전략서는 백서와 다르다. 전략은 정부의 행동계획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국가안보전략은 외교전략과 국방전략의 상위 문서로, 국가 전반의 목표와 비전뿐만 아니라 정부 임기 내에 수행할 수 있는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집권 5년은 절대 길지 않은 기간이며, 윤 정부도 이제 4년 남았다. 정책화의 중점을 잘 잡는 것이 핵심이다.
외교에서는 구체적 실행계획들이 잘 정리됐지만, 국방은 좀 더 현실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AI 등 과학기술 강군은 문 정권부터 추진됐을 정도로 당연히 나아갈 길이다. 문 정부는 드론봇이나 워리어플랫폼 같은 미래 군사력 건설을 실행했지만 과감한 투자와 혁신적인 운용 개선이 없어 ‘쇼’에 그쳤다.
전략서에서는 취업·창업 지원이나 정신전력 강화 등의 정책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군대로서의 정체성과 명예의 회복이 오히려 핵심이다. 최근 군 간부 지원 미달과 조기 전역 열풍은 군을 멸시하던 좌파정권의 유산이다. 국가안보의 근간인 군대를 되살리고 국민과 하나 돼 국가를 지키는 민·군 협력이 제시됐어야 했다.
우리 군은 인구절벽과 병력 부족 속에서 전술핵으로 위협을 높이는 북한에 대응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글로벌 중추국가가 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지 실행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과 하나 된 핵민방위 방호체계와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지역 자유민주 국가들의 협력을 끌어내는 가치 기반 안보 태세 등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도 북핵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핵전략이 필요하다. 한국형 3축 체계를 넘어서 워싱턴선언의 핵 동맹을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핵전략을 제시할 때 윤 정부의 안보전략은 완성될 것이다.
* 본 글은 6월 12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