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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정책 변화를 예고한다. 그중 우려되는 것이 대북정책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타임’과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은을 안다. 그리고 그와 매우 잘 지낸다. 나는 아마 그가 제대로 상대해 본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트럼프는 “핵을 많이 가진 상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우리가 트럼프 당선인과 김정은 간의 만남을 우려하는 것은, 과거 미·북 협상의 경험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8년 6월 김정은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가진 후 한국과는 상의도 없이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다시 김정은을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으로선 일단 동북아의 안보보다는 미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만 제한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미·북 대화는 북한에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시간만 벌어줄 뿐이다. 미국은 북한과 만나기 전에 2018년 시작한 지난 3번의 정상회담 결과를 돌아봐야 한다. 북핵을 기정사실화했고, 김정은 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데 이용된 게 지난 3차례 회담의 결과다. 김정은은 트럼프 당선인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점을 내부 통치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9만 원으로 우리의 30분의 1 수준이다. 2022년 유엔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90달러(약 85만 원)로 세계 212개국 중 203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이런 가운데 북핵이 통치 도구로 작동하면서 김정은은 미국과 회담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대외로 돌리려고 한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저지하지 못해 비판받았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한계를 고려할 때, 어떤 방향으로든 북한과의 접촉 및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구상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구상은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 및 조율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핵 위협의 실태, 북·중 및 북·러 관계 현황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한반도 문제 해결과 관련해 한·미 양국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최종 목표’가 공유돼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미·북 협상을 통해 한미동맹을 이간하고, 미·북 협상의 이면에서 끊임없이 미국을 기만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그것은 한·미 모두에 이익이 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과 대화할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한국과 만나야 한다.

1991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당시 미국은 한국에 있던 100여 개를 포함해 태평양에 있던 1200여 개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다. 북핵 능력이 고도화한 지금은 그중 20∼30개라도 재배치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핵무기는 군사무기 이전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 공포심을 유발하는 정치적 무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국의 핵잠수함이나 원자력추진 항공모함은 정치적 무기로서 기능할 수 없는 만큼 전술핵무기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김정은과 잘 지낸다는 취지는 좋지만, 한·미 공조가 튼튼해야 정확한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 당선인이 생각하기 바란다.

* 본 글은 12월 24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