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로 재정위기 몰린 양국
개인 의사·민주주의 중시하는
청년세대 의식 변화까지 겹쳐
국가 체질 개선 위한 광폭개혁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대세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의존과 보수 이슬람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혁에 한창이다. 2020년 UAE는 화성 탐사선 발사에 성공했다. 2009년 우리 기술의 도움으로 첫 위성 발사에 성공하더니 이젠 우리에 앞선 우주강국이 됐다. `희망`이란 이름의 탐사선 프로젝트 수장은 33세 첨단과기부 여성 장관이었다. UAE 정부는 2016년 개각에서 신임 장관 8명 가운데 5명을 젊은 여성으로 영입했고 2019년 연방평의회 의석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했다. 2020년 연방법 개정을 통해 명예살인 강력 처벌, 미혼 남녀 동거 허용, 주류 구매 허가제 폐지도 알렸다. 같은 해 UAE는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해 기념비적 데탕트를 이뤘다.
UAE보다 속도는 늦지만 사우디 역시 변하고 있다. 2017년 대중 공연을 25년 만에 재개했고 공연 내 남녀 혼석을 허용했다. 이듬해 여성 축구장 입장과 여성 운전이 가능해졌다. 2019년엔 리야드에서 BTS 콘서트가 열려 주변 나라 젊은이의 부러움을 샀다. 같은 해 사우디 정부는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의 재원 마련을 위해 세계 최대 석유회사 국영 아람코의 주식 상장을 결정했다. 이어 사우디 첫 여성 대사가 배출되기도 했다. 2021년엔 미래 도시 `네옴` 프로젝트에 탄소제로 지역 건설이 추가됐다.
UAE와 사우디의 과감한 개혁 행보에는 저유가 시대 재정위기라는 현실이 있다. 2014년 시작된 미국발 셰일 혁명으로 인해 자원 부국의 저주가 갑작스레 시작됐다. 사우디는 증산 정책을 통해 셰일 개발의 채산성을 낮추려 했으나 치열한 경쟁을 거친 셰일 업계는 오히려 안정을 찾았다. 결국 UAE와 사우디는 적자의 긴 터널로 들어갔고 대대적 복지 정책으로 유지하던 `납세 없이 투표권 없다`의 통치 권위가 흔들렸다.
이에 두 나라는 파격 개혁에 명운을 걸었다. 외자 유치를 위해 국가 이미지 개선에 나섰고 첨단기술을 제공해 줄 이스라엘과 밀착했다. 라이벌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팽창주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양국엔 정보기술(IT)과 첨단산업 분야의 질적 비약이 절실했다.
그런데 왜 유독 UAE와 사우디일까. 두 나라의 개혁 속도는 이들이 속한 걸프협력회의(GCC) 내에서도 단연 빠르다. 풍부한 석유자원 덕에 세금을 걷지 않던 GCC 회원국은 2016년 특별소비세, 2017년 부가가치세 도입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행동에 옮긴 나라는 UAE와 사우디뿐이었다. 바레인, 카타르, 오만, 쿠웨이트는 양국의 과세 실험을 지켜본 후 뒤따랐거나 아직도 세제 도입을 논의 중이다.
UAE와 사우디의 선도적 개혁엔 청년 세대의 의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35세 이하 청년 인구가 UAE의 58%, 사우디의 69%를 차지한다. 석유 개발 전 사막 유목 생활을 하고 진주 채취를 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이들 청년층은 세계 여행을 즐기며 생활 전반에서 IT 신기술을 활용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GCC 회원국 가운데 특히 UAE와 사우디 청년 세대가 종교, 가족, 민족 대신 개인 의사, 민주주의, 세계화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지난 10여 년간 이런 추세는 점차 뚜렷해졌다. 청년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이슬람이 중요치 않고 종교기관에 개혁이 필요하며 결혼에서 개인 가치관이 중요할뿐더러 민주주의가 최선의 체제라고 답했다. 또 이란이 아랍 지역의 종파 갈등을 부추기며 이스라엘이 적국이라는 견해에 공감하지 않았다. 산업화 단계를 거친 사회에서 전통적 권위는 힘을 잃고 자기 표현의 자유를 향한 합리적 욕구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저유가 시대 UAE와 사우디의 국가 체질 개선을 위한 광폭 개혁은 되돌릴 수 없는 티핑포인트를 넘어섰다. 바로 인구 과반수를 훌쩍 넘는 청년 세대의 변화 때문이다.
* 본 글은 04월 28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